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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파는 법 - 온라인 서점에서 뭐든 다하는 사람의 기쁨과 슬픔

나는 출판사에 다니고 있고 오전 업무가 정해져 있다. 출근하자마자 각종 인터넷 서점 또는 오프라인 서점에서 온 주문서를 정리해 출고율을 먹여 발송하는 업무.

그러면서도 인터넷 서점 엠디들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적어도 격일로는 전화를 주고받는 수많은 엠디들이 예스24 또는 알라딘 또는 교보문고의 분자같은 느낌이었다.(내가 이렇게 시야가 좁다)

책 초반쯤 엠디는 독자들의 주문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8시에 출근해서 그날 새벽 주문까지의 발주를 넣는다는 대목에서 이마를 탁!쳤다. 생각지도 못했다. 어쩐지 9시에 전화를 해도 여유롭게 받으시더라.

신선한 충격으로 시작한 책은 꽤 흥미로웠다. 엠디라는 사람들이 일하는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엠디들의 일을 아주 거칠게 나누자면

1. 출판사에 발주넣기
2. 신간 소개 미팅 및 이벤트 기획 미팅
3. 굿즈 기획/ 이벤트 기획
4. 팔릴 책 찾아다니기

동질감이 느껴질락 말락하는 느낌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우리 출판사의 책을 팔기 위해 기를 쓰는 나와 그 책이 무엇이든 책을 팔아 매출을 올려야 하는 엠디들의 미묘하게 어긋나는 대화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몇 권 이상부터 출고율 몇으로 해주실 수 있으신지...?
이 이벤트가 이 가격값을 하나...?
이 책 이 카테고리로 넣을 수는 없는지...?
카테고리를 몇 개까지 걸칠 수 있는지...?
(책 내용에서 카테고리를 언급할 때 지나간 수많은 엠디님들의 목소리여...)

확신이 없는 끝맺음으로 핑퐁거리는 대화들이 생각나 잠시 관자놀이를 짚었다.

엠디들은 출판사에게 같이하면 든든하고 아니면 어색한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걸까.

*

독자로서, 소비자로서 내가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기도 하다. 유구한 책덕후들은 당연히 알겠지만 내가 의아했던 바는 항상 알라딘은 소설/문학 층 독자가 많은 것 같다는 뭔지 모를 이미지, 예스24는 어린이/가벼운 에세이류 독자가 많은 것 같다는 느낌, 교보문고는 인문을 왠지 많이 산다는 이상한 소문? 과 같은 것들.

그리고 책덕후들 사이에서 왠지 모르지만 일단 쓰이고 나도 쓰임새를 알고있는 주력서점이라는 단어. 이것들은 어떻게 파생되었는가.

이 책이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었다. 도서정가제 이전의 세상은 약간씩 가격도 다르고 홍보를 위해 진행되는 이벤트도 달랐다는 것.
아마 내가 본격적으로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기 전(엄마가 책을 사주던 아름다운 시기)에는 인터넷 서점에 고인물이 많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잘 팔리는 책에 할인을 적용하거나 적용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문학층 강자, 어린이책 강자 같은 이미지도 생겼겠지.
하지만 도서정가제 이후 모든 인터넷 서점은 평준화되어버렸고, 서점들은 새 독자를 구하기 위해 내꺼, 나만의 것, 여기서만 있는 것!을 찾다가 굿즈의 세상으로 풍덩 뛰어들었다는 설명.
아주 명쾌했다.

20여년을 인터넷 서점 엠디로 살아온 작가의 경험들은 인터넷 서점이 발전하는 과정을 너무나 명확히 보여주었다. 작가님은 인터넷 서점계의 화석이 아닐까.

리커버와 굿즈에 대한 엠디의 성찰도 좋았다. 누군가는 그런 것을 상술이라고 말하겠지만 소비자가 책을 더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면 좋지 않냐는 말. 아주 강력하게 동의한다. 그리고 그게 상술이라고 욕을 먹고 후킹이라고 무시 받아도 그게 뭐 어떤가. 사고싶은 사람이 사겠다는데. 특히나 책이지 않나. 책은 더 많이 팔려도 된다. 나는 우리나라가 제발 책이 잘 팔리는 나라가 되길 빈다. 내가 출판사 직원이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맞는데, 한 학기 한 권 읽기 운동이 다소 충격적인 꼰대 유교걸이기도하고, 또 내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으니까.

아주 개인적인 잡념이지만 뭔가 예스24는 엠디님들이 전화를 받을 때 더 조용히 받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소곤소곤 받는 느낌? 알라딘은 좀 더 목소리가 큰 느낌. 전화의 음량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느낌을 다른 출판사 직원 및 책 관련 근무자들도 가지고 있나 궁금해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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