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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문
『시구문』이란 독특한 제목의 청소년소설을 만났습니다. 먼저, 제목인 “시구문”이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시구문을 한자로 쓰면 “屍口門”입니다. 말 그대로 시체를 내가는 문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광희문(光熙門)과 소의문(昭義門, 서소문(西小門))이 바로 도성 안의 시체를 밖으로 내가는 문인 “시구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죽은 자를 내어가는 문인 시구문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주인공 기련은 무당의 딸이랍니다. 기련은 무당의 딸이라는 사실이 너무 싫습니다. 그래서 어서 빨리 돈을 모아 어머니에게서 도망치고 싶답니다. 기련이 돈을 모으는 방법이 바로 시구문에서 시체를 내가는 이들을 등쳐먹는 일이랍니다. 죽음이라는 세력 앞에 일상의 담대함을 상실하고 슬픔 가운데 처한 이들에게 조언 아닌 조언하는 한답시고 살짝 겁을 주고 푼돈을 얻어내는 겁니다.

그런 기련의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멉니다. 아니 너무나도 힘겨운 삶입니다.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계속하여 더욱 진득하게 달라붙는 악몽 같은 삶입니다. 특히, 기련의 친구인 백주의 삶은 더욱 그러합니다. 착하기만 한 백주는 언제나 이용만 당하고 자신의 것을 챙기지 못하는 삶입니다. 항상 땀 흘리며 일해도 언제나 배고픔만이 가득한 삶이랍니다. 이런 민중의 삶, 그 힘겨운 삶의 모습이 먹먹한 소설입니다.

기련은 어느 날 대감 댁 따님인 소애 아씨를 알게 됩니다. 우연한 기회에 만나 알게 된 소애 아씨, 다음에 만나면 친구가 되자던 소애 아씨인데, 그만 소애 아씨의 신세는 기련보다 더 고단한 상황에 처해지고 맙니다. 대감이 누명을 쓰고 참수되고 만 겁니다. 그렇게 역적의 딸이 되어 버린 소애 아씨와 기련은 다시 만나게 되고, 더 이상 도성 안에서 살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둘은 도성 밖으로 도망치려 합니다. 도망칠 수 있는 문은 오직 시구문뿐입니다. 죽은 자가 나가는 문인 시구문이 과연 더 이상 내몰릴 곳조차 없는 인생들에게 생문이 될 수 있을까요?

소설은 죽음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만듭니다. 소설의 제목조차 죽은 이가 나가는 문인 『시구문』이니까 말입니다. 무엇보다 죽음의 공포에 대해 작가는 고민합니다. 그런 작가가 내놓은 해결책은 ‘기억’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죽음으로 떠나보내게 되지만, 결국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마음속에 살아 있는 한 그 사람 역시 가슴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겁니다.

나의 아버지도 몸은 여기에 없지만 내 마음속에는 늘 살아 계신다. 사람의 기억이란 지나간 사람의 기억을 이어 붙여 또 끝끝내 삶을 살아가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육신이 여기 없어도 그 사람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마음, 기억 속에 함께 이어져 있다.(123쪽)

이처럼 소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아울러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기련은 어머니가 무당이 된 것이 싫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대화하는 것도 싫고, 언제나 어머니에게서 도망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련은 어머니가 왜 그 길을 선택해야만 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어머니는 기련을 위해 그 질고의 길로 들어섰음을 말입니다. 언제나 어머니의 사랑은 가슴을 젖게 만듭니다. 그 사랑과 희생에 소설을 읽으며 눈시울을 적셨답니다.

소설은 죽은 자를 내어가는 문이 도리어 생문이 되어 또 다른 삶을 향해 나가게 함을 보여줍니다. 이는 우리 삶의 질고와 고통, 아픔과 슬픔의 자리가 도리어 우리에게 생문이 되어 또 다른 삶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여전히 고단하기만 한 삶이지만, 그 삶 속에서 또 하나의 행복이 시작되길 소망해봅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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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준아사랑해님도 <시구문>을 재미있게 보고 리뷰를 남기셨네요. 리뷰를 읽어보시겠어요?
  • 2021-04-15 12:32 좋아요  l  좋아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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