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amoo
  • 2023년 4월 22일 공개
4.20. 에드워드 호퍼전
4.20.은 내 생일이다. 생일이라고 뭐 특별한 뭔가를 하지 않는다. 가끔 친한 지인들이 생일이라고 밥을 사 주거나 공연 티켓을 주곤했지만 이런 것도 요 몇년 사이는 없었다. 평일이라면 주야장천 일하다가 집에 와서 엎어져서 자는...뭐 평소와 똑같다.


근데, 23년 4.20.은 달랐다. 지인 중에 공연 전시 꼭꼭 챙겨보는 마니아가 있는데, 이분이 20일 지방 일정으로 시간이 겹쳐 예매한 걸 내게 넘긴다는 거다. 이 때가 3월 하순 무렵이다. 에드워드 호퍼전이라니. 것두 4.20.이 오프닝하는 날이었다.


난 바로 콜~을 했고, 은근히 20일만 기다렸다. 에드워드 호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현대미술가 중 한 사람이라, 사전 예매하려고 했는데, 가장 바쁜 때라서 예매시작하는 날도 몰랐다. 근데 예매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매진됐다고. 어렵게 구한 티켓을 내게 양도해준 지인이 고마울 뿐..ㅎㅎ


15시 오픈이라 조퇴를 하고 서둘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으로 향했다. 오래 전에 몇 번 왔었는데, 다시 가려니 어디가 어딘지 몰라 헤멨다. 배재빌딩 앞이었다는 데 다시 한 번 놀랐다. 아니, 미술관이 바로 배재빌딩 바로 앞이네?! 신선한 충격..ㅎㅎ


15시 오픈 시간 이전에는 들여보내 주지 않아 옆 배재 박물관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냈다. 거기 2층에 보니 임진우 건축가의 서울 정동 일대 일러스트 전시가 있었다. 매우 볼만했다. 작은 수채화(A4 크기) 그림이 대부분. 50점은 넘어 보였다. 정동 지역의 곳곳을 일러스트로 담아냈는데, 건축가의 섬세한 스케치가 돋보이는 그림들이었다.


시간이 돼서 호퍼전시관으로 가서 둘러보았다. 호퍼 그림을 다량 보유한 휘트니 미술관과 서울시립 미술관이 협약을 맺어 전시가 성서됐단다. 휘트니 미술관이 보유중인 호퍼 그림 중 270점이나 들여왔다. 호퍼의 아주 유명한 그림 몇 점은 빠졌지만 초기작품부터 상업용 일러스트까지 아주 다양했다. 미술관 1층부터 3층까지 꽉 채운 전시. '호퍼; 길위에서'

(위 그림이 주제 '길위에서'의 메인그림으로 걸려있다. 그의 일대기를 조명하는 주제 치고는 좀 문학적인듯. 호퍼는 판화 유화 수채화 일러스트 등 미술분야에서 안 해본 분야가 없는 전천후 작가였고, 그래서 전문성이 모호한 작가로 분류된다고..)




사실 호퍼 책은 딱1권 봤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2010년 쯔음에 읽었는데 당시 번역된 책은 딱1권이었다. 엔날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책이었는데, 지금도 표지만 바꿔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내 기억에 표지 갈이만 3번이상이었던 거 같다. 내용은 하나도 안바뀌고 표시 바뀔 때 가격만 뛰었던 듯하다. 어쨌든, 호퍼에 대한 지식은 이 거 한 권 읽는 게 전부였다.


요새 보니 호퍼 책이 몇 권 더 출간됐다. 헌데 타센에서 2만5천원에 나와있는 호퍼 책은 왜 번역을 안해주는지 몰겠다.
1904년 즈음에서 호퍼는 프랑스 파리로 가서 그림을 그렸는데, 이때 기독교(개신교)도이던 어머니의 도움으로 같은 교파의 집에 머물렀다. 당시 이 집 내부를 그렸던 그림들이 전시 초반부를 길게 장식하고 있다. F3 크기의 판넬에 유화로 그린 그림이 20점은 족히 돼 보였다.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해서 복기해 보면 호퍼는 작은 사이의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주로 판넬에 유화로 그렸다. 물론 큰 사이즈의 그림은 캔버스로 그렸다. 수채화도 꽤 많이 그렸는데, 이건 아내에게 받은 영향이라고.


보통 수채화는 아무리 잘 그려도 잘그렸다는 느낌을 못받는 1인. 헌데 호퍼의 수채화는 정말 잘그렸다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불투명하게 해변이나 당시의 주택(주택은 호퍼가 관심있는 주제였다) 또는 배들을 묘사한 그림들을 보면 매우 치밀하게 계산하여 그린 그림임을 알 수 있다.


2시간을 꼼꼼히 보고 1층에 내려오니 호퍼가 그린 상업용 일러스트들이 즐비했다. 호퍼는 10년 간 그림을 하나도 팔지 못했는데 이를 만회하고자 상업용 일러스트를 주로 그렸다고. 잡지 표지나 신문 연재물에 일러스트 그림을 주로 그렸다.


(A4크기 잡지의 표지 일러스트. 1919년10월호 MORSE지)




20세기 전반기의 미국은 일러스트의 시대였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들에게 상업용 일러스트 주문이 끊임없이 밀려들었다고. 호퍼의 일러스트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이게 도록에서 보던 그 호퍼의 그림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 작가를 가리면 호퍼가 그린 그림이라고 전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주 작은 크기의 일러스트. 엽서 크기. A4를 반으로 접은 정도. 이것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정방형 스케치도 전시되어 있다.)


1층 전시관이 제일 컸는데, 신문과 잡지에 그린 일러스트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예외적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어 열심히 찍어 왔다. 세계 미술의 연대기와 호퍼의 작품 연대기도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그리고 전시 공간 앞 쪽에 스크린에 영상을 틀어주는데, 호퍼 다큐였다. 미술관 큐레이터와 호퍼 전문가들이 나와 호퍼의 성격과 그림의 특징 그리고 예술사에서 호퍼의 위치를 설명해 주는 다큐. 매우 유익한 다큐영화였다. 1시간38분 분량. 후반부 15분 정도는 못보고 나왔다.


3시에 입장했는데 6시가 넘어서고 있었고, 7시에 저녁 약속이 잡혀 있었다. 부랴부랴 나오다가 보니 호퍼 굿즈를 파는 부스가 있는 거다! 시간이 없어 대충 보다가 저렴한 거 위주로 여러개 구매했다. 스카프퍼럼 천으로 된 4만원 짜리 굿즈는 아직 안판단다.ㅠㅠ 교보에서 구매하란다.


어쨌거나 뭘 집어 넣었는지 모르고 있다가 집에 와 가방에서 꺼내보니 많이도 샀다. ㅎㅎ 아주 유명한 그림만 굿즈로 만든듯보인다. 상대적으로 그림이 큰 건 안경닦개다.ㅎ 무려4천원..ㅎㅎㅎ 그래도 그림이 커서 액자에 넣어 보관할까 생각중이다..ㅋㅋ

넘넘 뿌듯한 전시였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게 없는 게 아니라 아주 풍성했다. 명성에 맞지 않게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전시된 적 없는 호퍼의 1회 개인전이다. 꼭 가서 다큐 영상을 보시라 강추드린다. 책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호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끝)




[덧]
1. 역시 전시는 혼자 봐야 자유롭게 꼼꼼히 둘러볼 수 있다. 여유는 덤. 담부터 전시는 꼭 혼자가서 봐야지~~
2. 8월20일까지 합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꼭 한 번 가보시길~~

  • stella.K
  • 와우, 야무님께 딱 어울리는 생일선물이네요.
    복도 많으십니다.
    저는 대본 쓴다고 온 동네방네 소문내도 누구 하나
    연극 티켓 선물해주는 사람이 없던데...ㅎㅎㅎ
    암튼 늦었지만 생일 축하합니다.^^
  • 2023-04-22 18:55 좋아요  l  좋아요 2
  • yamoo
  • 네..결과적으로..의도치 않게 그렇게 됐습니다. 솔직히 별로 기대 안했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첫 전시하는 호퍼전이라 관심은 갔지만 티켓도 요즘 인터파크 같은데서 예매해야하기에 너무 귀찮고 해서 나중이 가려했습니다. 끝무렵에. 경험상 이렇게 생각하다가 이건희 전도 놓쳤거든요. 해서 기회가 온김에..마침 생일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겄는데...설사립미술관에서 했던 전시 중 최고로 볼게 많아서 좋았습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서 더 그랬던거 같아요. 굿즈도 사놀 줄 몰랐어요. 어쨌건 의미있는 생일 선물이 된 거 겉아 뿌듯해요..ㅎㅎ
  • 2023-04-23 11:54 좋아요  l  좋아요 2
  • 그레이스
  • 저는 이번 주 수요일 예약해 놨어요~~
  • 2023-04-24 20:18 좋아요  l  좋아요 2
  • yamoo
  • 아, 그레이스님두 가시는군요~~
    정말 볼 게 많아서 후회하지 않으실 거에요. 1층에서 반복적을 방영하는 다큐영상은 꼭 보셔야 해요!!
  • 2023-04-25 19:10 좋아요  l  좋아요 2
  • 그레이스
  • 감사합니다
  • 2023-04-25 19:46 좋아요  l  좋아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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