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enny
  • 2024년 5월 22일 공개
📚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은이), 정혜윤 (옮긴이) 문학동네 2022-02-28, 408쪽, 에세이

🍊 십여년 넘게 win-win을 고민하던 협력사로 있다가 이제는 친구가 된, 미국에 가 있는 친구와 그의 아내분이 감사하게도 이 책과 ‘죽음의 수용소에서‘ 영문판과 쿠키, 쵸코 이것저것을 보내주었다. (EMS박스안에 키우고있는 고양이 밀이의 흰털도 있을 수 있다 했으나, 아쉽게도 발견을 못함 ㅠ) 이미 그런 의미에서 뉴욕서 건너온 이 책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책이나... 읽고나니 더 내게는 의미가 깊어졌다.


🍊 책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미국인 아빠와 한국인 출신 엄마를 둔 2세대의 성장과 엄마의 암투병, 임종을 겪는 이야기이다. 요즘 세상에 보편적일 수도 있지만 그걸 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후회, 아쉬움, 슬픔, 그리고 기쁨과 가족의 의미까지 어떻게 간단히 말할 수 있을까. 읽는데 쉽지 않았다. 좋은 글이고 가독성이 좋은 책이었고, 지금은 다시 재독을 할 것이며 정말 의미있는 책이 되었으나... 정말 어렵게 읽었다. 이 책을 병원 입원 중에 처음 읽었는데 쉽지 않았고, 좀 쉬다가 3주 후 다시 병원 입원 중에 읽었는데.. 그랬으면 안되는 거였다. 그리고 퇴원해서 읽으며 정말 웃으며 울며 읽었다. 엄마의 투병, 임종, 상실과 애도를 읽자니... 가독성이 좋고 작품이 좋다는 건 읽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함부로 추천을 하기도 어려운 책이다.

🍊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중간 중간 마음은 상해도 서로를 사랑하겠지만... 칠순이 넘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픈 나, 누가 먼저 간다고 해도 슬픔이 덜하거나 잦아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실도 갑작스럽지 않은 것이 없으며, 어떤 애도도 쉬운 것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그런 마음을 절실히 보여주며, 또한 잃어버린 존재와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평범한 사람의 시선에서 묵묵히 감정을 나눈다. 혼혈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화자의 이야기, 모녀간만 느낄 수 있는 애틋하고도 전쟁같은 이야기, 돈이 되지 않고 완성되어 있지 않은 직업을 가지며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이야기,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친척들과 관계에 위로를 얻는 이야기, 내가 모르던 엄마에 대해 알아가는 이야기, 나에게 힘이 되는 사랑을 얻는 것 많은 이야기들이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로 잘 다져서 웃고 울게 만든다. 그리고 엄마를 떠나 보내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습에서 엄마를 찾아가고, 한국의 음식을 영상을 찾으며 하나하나 만들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거의 마지막에 다르면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어떤 슬픔도 슬프지만 받아들이고 회복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 개인적으로는 수필이지만 소설같은 전개와 드라마에 얼마 전 읽었던 비비안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를‘를 다시 복기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도 절로 나오던 책이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내 안에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구분 짓고 마음 먹었지만, 글로 남기기에는 아직도 엉성하여 가슴에 안고만 있다. 글을 역시나 써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보내면서 무슨 마음이었을지, 그리고 지금 외할아버지를 보는 엄마 마음, 아빠도 한 때는 나 보다 어렸던 것을, 이 책을 보내준 친구와 그의 아내는 벌써 2년 가까이 한국을 떠나 미국에 있는데 어떤 마음일지... 하나하나의 기억이 그냥 소실 되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단순히 슬픈 것이 아닌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책 표지는 면을 한인타운에서 나누어 먹는 모녀의 식사 같지만, 젓가락은 눈이고 면은 눈물 같기도 하다가, 어느 사이 울면서 웃기도 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Thanks to Charls , Miseon and Cats (Meal & Ssal)


🍊 남기고 싶은 문장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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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불공평하고, 때로는 분별없이 남 탓을 해보는 게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때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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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에는 엄마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지 지금처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엄마는 어마어마한 상실의 영역으로 넘어갔지만 나는 아직 그쪽으로 넘어가지 않았으니까. 나는 엄마가 자기 엄마에게서 떨어져 지낸 그 모든 세월에 대해, 한국을 떠난 것에 대해 느꼈을지도 모를 죄책감도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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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는 한참 지나서야 내게 말해주었다. 우리 부모님이 자신에게 먼저 전화했노라고 엄마가 아프다는 걸 자신이 나보다 먼저 알았노라고 내가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에 반드시 내 옆에 있겠다고 두분에게 약속했노라고.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다 지나갈 때까지 자기가 내 옆에 있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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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내가 말괄량이처럼 제멋대로 굴고 점잖게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 덜렁댄다고 시도 때도 없이 야단쳤지만 그런 엄마도 한때는 나 같은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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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한국말. 내가 평생 들어온 그 다정한 속삭임. 어떤 아픔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라고 내게 장담하는말.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엄마의 모성이, 엄마가 느꼈을 테지만 능숙하게 숨겼을 무진장한 공포를 제압해버린 것이다.
203

🌱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이미 찢겨나간 육체적 자율성의 조각들은 하루하루 누더기 꼴이 되어갔고, 이제 살아가는 일과 죽어가는 일은 그 차이를 분간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215

🌱 아빠는 부부 사이가 별로 친밀하지 않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나는 아빠의 비밀을 알았지만 아빠가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늘 믿어왔고, 인생이란 게 그냥 그렇게 생겨먹을 때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238

🌱 세상에 우리 엄마만큼 내 기분을 있는 대로 잡쳐놓을 수 있는 신랄한 사람도 없지만, 또 우리 엄마만큼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도 없었다.
240

🌱 우리는 아름답고 냉정한 성인 여자가 곧장 눈물 터뜨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추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엄마라는 말 한마디의 파급력은그 정도였던 것이다. 나는 몇 년 뒤에 똑같은 감정과 맞닥뜨릴 내 모습을 상상했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벌에 쏘이는 그 순간부터, 나란 존재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남은 평생을 벌침이 박힌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247-248

🌱 ‘사랑스럽다‘는 말은 엄마가 굉장히 좋아하는 형용사였다.
엄마는 나를 딱 한 단어로만 표현해야 한다면 ‘사랑스럽다‘는말을 고를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엄마에게는 그 단어가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열정을 아우르는 말처럼 느껴졌나보다. 그것은 엄마의 묘비명에 새겨넣기에도 딱 알맞은 단어였다. 자애로운loving 엄마는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지만 사랑스러운 lovely 엄마는 온전히 자신만의 매력을 지닌 사람이니까.
268

🌱 오빠 역시 자기 몫의 슬픔이 있을 테지만 그 순간만큼은 꼭 삼켰다. 한 사람이 무너지면 나머지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어깨를 내주며 그 무게를 감당하는 법이니까.
270

🌱 겨우 요 몇 년 전에 와서야 우리는 불가사의한 문을 열어 서로를 수용할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탐색했다. 그러다 가장 풍성한 이해의 과실을 거둬들여야 했을 시간들이 그만 난폭하게 잘려나가고 말았고, 이제 나는 열쇠도 없이 남은 비밀들을 혼자서 해독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285

🌱 정말로 아버지는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고 절대 이해 못할 방식으로 전 생애에 걸쳐 자기 것을 빼앗겨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어린 시절과 자기 아버지를 빼앗겼고 이제 또 사랑한 여자마저 강탈당했다. 관계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 사이가 좀 멀어지긴 했지만 그 기간은 몇 년 되지않았다.
299

🌱 그동안 엄마의 옛 편지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나는 이모를 자주 떠올렸다. 그걸 이모에게 보여줘야 할지 아니면 그것들로부터 이모를 보호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326

🌱 나는 이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너무나 많았다. 엄마가 나를 한글학교에 보낸 모든 세월을 생각했다. 엄마한테 딱 한 번만 학교를 빠지고 금요일 저녁에 친구들이랑 놀면 안되겠냐고 애원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갖다버린 돈과 시간도 전부 다. 한국어 공부를 지겹게 생각한 걸 언젠가 후회할 날이 올 거라고 엄마는 골백번도 넘게 말했다.
336

🌱 나는 궁금해졌다. 만일 엄마를 가장 잘 아는 우리 세 사람,
그러니까 아빠와 나미 이모와 나에게 엄마가 남겨둔 10퍼센트의 부분이 제각각 다르다면, 우리가 같이 그 숨겨진 부분을 짜맞추어 엄마의 전모를 알아낼 수 있을지.
338

🌱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 병원 격리 생활로 변해버리기 전에 엄마가 나를 데려가려 한 곳이었다. 엄마가 나와 함께 만들려던 마지막 추억이고, 엄마가 나를 키우며 내가 사랑하도록 만든 것의 원천이고, 내가 기억했으면 하는 맛이고, 내가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이었다.
344-345

🌱 한번 갈 때마다 본인부담금을 100달러씩 내고 있었으므로 그돈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50달러짜리 점심을 사 먹는 게 정신건강에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은 상담을 취소하고 스스로를 돌볼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354

🌱 내 기억을 곪아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 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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