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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입촉‘에 성공하지만, 나라를 지킬 ‘인재‘가 턱없이 부족하다
[My Review MDCCLXI / 코너스톤 9번째 리뷰] 유비는 형주를 얻고 촉나라를 취하기 위해 '입촉'을 서둘렀다. 마침맞게 장송이 찾아와 손수 만든 '촉 지역의 지도'를 유비에게 건내주었고, 방통까지 합류하게 된 유비일행은 드디어 '천하삼분지계'를 완성하러 유장이 다스리는 촉으로 진군하였다. 이때 유비의 나이가 쉰이 넘었다. 조조는 그보다 나이가 더 많았으나 일찌감치 천자를 끼고 승상의 지위를 누리며 성공을 누렸고, 손권은 풍요로운 강동의 이로움을 바탕으로 아버지 손견과 형 손책이 일군 나라를 비교적 어린 나이에 다스리며 군주로서 모자람이 없었다. 허나 유비는 나이 오십을 넘기고서 겨우 자신의 영지를 갖게 된 것이다. 물론 로마의 종신독재관(사실상 황제) 자리에 오른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도 마흔이 되어서야 관직에 오를 수 있었고, 쉰이 넘어서야 '일인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으니, 유비가 못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비가 좀더 야심차게 욕심을 부렸다면 유표가 죽고 난 뒤에 '형주 일대'를 물려받아 조조의 남하를 양양성이라는 굳건한 성벽에 기대어 '적벽대전'을 치루고 난 뒤에 보다 안정적으로 촉 지역을 취하면서 '천하삼분지계'를 구축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엎어치나 메치나 유비가 '형주'를 취하고, '촉'을 꿀꺽한 것은 매한가지였을 테지만, 적벽대전 당시 아무런 '연고'도 없이 오나라에 '형주'를 빌리는 형식을 취한 것이 끝내 유관장 삼형제가 줄줄이 죽임을 당하는 불우한 일을 치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역사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독자들로서는 유비가 좀더 야욕을 부리며 '명분'보다 '실리'를 챙기는 현명함을 발휘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심정인 것이다. 허나 만약 그랬다면 <삼국지연의>의 독자들은 유비에게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른바 '촉한정통론'이라는 것도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테고 말이다. 그저 혼란스런 시대를 살아가며 '평범한 야심가들'에 의해 천하가 어지러웠을 뿐이라고 이 시대를 평가하고 말았을 것이다. 독자들이 유비에게 이토록 애착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유비에게 '덕치'라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조나 손권은 엄연히 '한나라의 신하'였기 때문에 이들이 스스로 '왕'이나 '황제'를 칭하는 것은 찬탈이자 역모다. 그러나 '한 황실의 종친'이었던 유비(물론 신빙성이 낮긴 하지만)는 '한나라를 정상을 되돌릴' 의무이자 권리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유비는 자신의 영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야심'을 드러내지 않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느림보 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또 그것이 '유비'에게 딱 어울리는 방식이었고 말이다.

이런 유비의 '느린 행보'가 오히려 백성들에겐 환영받을 일이었다. 나라가 아무리 부강하더라도 하루가 멀다하고 '전장터'로 끌려갈까 두려움에 떨고, '전쟁물자'를 대기위해 그간 모아놓은 재산을 빼앗길까 불안해하는 조조와 손권쪽 백성들은 삶이 고달펐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마땅한 영지도 없는 '유비의 편'을 드는 백성들이라고 두려움과 불안함이 없을 순 없었다. 하지만 똑같이 빼앗긴다 하더라도 신분이 천한 자신들을 위해 '선정'을 베풀려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녔다는 유비에게 빼앗기는 편이 덜 억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들을 지켜주기 위해 조조와 손권과 맞서 싸워준다고 하니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승리하고 성공한 사람'에게나 내어줄 수 있는 호평이다. 덕치를 하며 선정을 베풀다가 '야만인'들에게 짓밟히고 패망한 다음에 '착한 사람이었어'라는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유비는 당시에는 별볼 일 없는 사람으로 평가 받다가 '명나라, 나관중'이라는 '시대와 사람'을 만난 뒤에야 겨우 호평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야기로 되돌아와서, 유비에게 제갈량과 방통이라는 두 날개가 생겼다.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은 유비를 위해 손권에게 달려가 '주유'를 도발시켜 조조와 싸우도록 부추겼고, 방통은 유비를 위해 조조에게 달려가 '연환계'를 써서 효과적으로 패배할 수 있도록 부추겼다. 그리고 와룡과 봉추는 유비의 품에 들어왔다. 만약 유비가 좀더 현명한 군주였고,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조금만 더 뛰어났더라면 촉을 취하고 난 뒤에도 제갈량과 방통을 적절히 써먹으며 '형주와 한중'이라는 두 요충지를 효율적으로 다스리며 조조를 톡톡히 괴롭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비는 '입촉 과정'에서 방통을 잃고 만다. 유비는 이미 실력이 '증명'된 제갈량을 우대하고, 아직 실력을 '검증'하지 못한 방통에게는 소홀히 했던 것이다. 굉장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아직 '입지'를 굳히지 못한 군주라면 사람을 그렇게 다루면 안 되었다. 유비는 방통을 군사로 쓰면서도 끝없이 '제갈량의 지혜'를 끌어다 쓰길 좋아했고, 이것이 뛰어난 실력을 갖춘 방통으로 하여금 '초조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달리 말해, '고용불안'에 시달렸던 셈이다. 이렇게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되면 뛰어난 능력자라 하더라도 '성과'를 내기 위해 조급해지고, '대박'을 치기 위해 섣부른 모험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절대 금물이다. 유비는 뛰어난 능력자에게 '고용불안감'을 심어주어 큰 거 한 방을 노리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한 쪽 날개'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가뜩이나 인재가 부족한 유비에게 아주 큰 실책을 안겨준 셈이다.

그로 인해 형주를 지키던 제갈량이 부랴부랴 '성도(촉지역 수도) 공략'을 위해 유비에게 달려갔고, 패배한 유비를 지키기 위해 장비와 조운까지 대동해서 입촉을 떠나게 되었다. 이것만 보아도 '방통'이 얼마나 실력이 뛰어난 인재인지 알 수 있다. 방통은 장비와 조운이 없이도 '입촉'할 수 있던 군사였고, 제갈량은 장비와 조운까지 대동해야 '입촉'할 수 있는 군사였던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적으론 방통은 '실패한 책략가'였지만 말이다. 암튼 이제 형주를 지키는 것은 '관우'뿐이었다. 힘과 지혜를 갖춘 용장임에 틀림없지만, 애초에 갖고 있는 지혜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공격'에는 능한 장수지만 '수비'에는 그닥 효용을 발휘하지 못하는 장수가 유비의 목숨줄과도 같은 '형주땅'을 맡게 되었다. 그래서 제갈량은 관우에게 '지혜'를 빌려주며, 조조와는 맞서 싸우고, 손권과는 화친하라 일러주었건만 끝내 일을 그르치고 만다.

유비와 합류한 제갈량은 기이한 '용병술'을 쓴다. 이전에도 곧잘 쓰던 방식이었지만, '황충'이라는 장수를 얻고 난 뒤에 아주 노골적으로 써먹기 시작한다. 바로 '충분히 승산있는 싸움'인데도 '승률 100%'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배수진'을 쳐버리는 용병술이었다. '배수진'이란 뒤로 물러설 수 없게 만들어 죽을 힘을 다하게 만드는 진법인데, 늙은 황충에게 "당신은 늙었으니 전투에서 빠지라"고 말한 뒤에, 황충으로 하여금 "늙었음에도 젊은 장수들보다 더 실력이 뛰어남을 증명해보이겠소"라면서 "만약 지고 돌아온다면 목을 치시오"라는 필승의 각오를 확답으로 받고 난 뒤에 전장으로 내보내는 방식이다. 어찌 보면 제갈량은 장수를 아끼는 마음을 내보이면서 장수로 하여금 '죽을 각오'로 충성을 다하겠다는 열의를 보이게 만든 뒤에 승리를 거두는 지혜를 써먹은 셈이지만, 매번 이런 식이라서 문제였던 것이다. 이는 그만큼 '유비쪽에 인재'가 부족했던 탓이다. 형주 일대와 촉 지역을 차지하면서 '사람'을 많이 얻기도 했지만, 정작 '쓸만한 인재'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물론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인재가 부족해도 걱정할 일이 없었겠지만, 상대적으로 일찌감치 터를 잡고 자신의 영지를 안정시키려 여러 방면에서 인재를 등용해 부렸던 조조와 손권에 비해서 '뒤늦게 터를 잡은' 유비에겐 그렇게 안정을 시킬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부리고, 사람을 써야 할 때마다 '적절한 인재'를 찾지 못해 애를 먹던 제갈량은 궁여지책으로 '부족한 인재들'로 애써 돌려막기를 했던 셈이다. 그래서 촉나라는 유관장 삼형제가 죽고 난 뒤에 그렇게 허망하게 패망하고 만 것이다. 물론 '유비의 아들(유선)'이 무능한 탓이 더욱 큰 원인이었겠지만...

그럼에도 유비는 '입촉'에 성공하고, 새로 얻은 황충, 위연, 마초, 법정 등을 활용해서 '한중 공략'에 성공하고, 관우가 '형주 방어'에 성공하면서 탄탄하게 나라를 다지는 듯 싶었다. 한편, 위왕에 오른 조조는 '한중 방어'에 실패하면서 손권과 손을 잡고 '형주'를 취하고자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장료의 활약'이 돋보이게 된다. 일찍이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뒤에 '강동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장료를 남겨 두었다. 그리고 장료는 손권의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고 버텼을 뿐만 아니라 '강동 공략'에 선봉을 서며 손권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준다. 이 때문에 오나라에서는 "장료가 온다(료~ 라이!)"라는 말이 두려움의 대명사였다고 한다. 우는 아이도 "료~라이"라는 말을 들으면 울음을 뚝 그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손권이 다스리는 오나라는 '장강'을 넘지 못하고 조조와도, 관우와도 '화친'과 '적대'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뜸만 들이다 '노숙'이 죽고 만다. 유비와 손권이 서로 '화친'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이 죽었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인가?

한편, 위왕에 오른 조조는 슬슬 후계자를 골라야 할 처지가 되었다. 첫째 '조비'와 셋째 '조식'이었다. 조조 마음에 쏙 드는 자식은 셋째였지만, 가후에게 후계구도를 묻자, 가후는 "원소와 유표를 떠올리십시오"라는 말로 조언을 대신했고, 조조도 그 말을 듣고 첫째 조비에게 왕세자의 자리를 물려준다. 그리고 드디어 '사마의'가 등장한다. 이제 한중을 놓고 제갈량과 한판 대결을 벌일 바로 그 사마의가 말이다. 이제 천하는 새롭게 짜여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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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on님도 <삼국지 원전 완역판 8 : 도남>을 좋아합니다. yoon님이 읽은 다른 책이 궁금하신가요?
  • 2024-04-19 23:48 좋아요  l  좋아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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