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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리틀 포레스트에 산다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자가 되는 법이야."
"도시에 살다보니 보이더라고. 농사가 얼마나 괜찮은 직업인지...."
내가 가꾸는 건 작은 텃밭에 불과하지만, 농사를 직접 지어 먹어보기 전까지는 환상만 품고 있었을 뿐 이해하지 못했던 대사들을 이제는 모두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33-)


주말 놎장을 시작한 첫해, 겨우내 얼고 굳은 땅을 갈아엎으러 텃밭에 가던 날, 옷장 문을 열고 당황했다.힘쓰며 노동하러 가기에 적합해 보이는 마땅한 옷이 없었다. 그때 내 눈에 띈건 구석에 곱게 포개져 있던 레깅스였다. 그날 마땅한 옷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입었던 레깅스는 나에게 흙먼지 속에서도 개의치 않고 자유로운 노동을 할 수 있는 활동성을 선사했다. (-71-)


어쩌다 우리 집에 들어온 무당벌레와 거미는 창문 열고 밖으로 내보냈고,작은 날파리들은 입으로 호 불어 그냥 내 주변에서 날려 보냈다. 어차피 며칠 살지도 못하는 애니까,집에서 그냥 함께 살자는 마음이었다. 비 올 무렵 산책길 인도에서 만나는 달팽이와 지렁이는 다른 사람들 발에 밟힐까봐 꼭 잔디밭으로 옮겨주었다. 이런 변화는 내게 있어 굉장히 신선했다. 자연과 조금 더 가까워진 관계를 뜻했으니. (-106-)


농사를 시작하기 전만 해도 내게 쌈 채소는 돈 주고 사 먹는 게 당연했다.심지어 한 봉지에 2,500원은 아주 저렴하다고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텃밭 수확 타이밍이 잘 안 맞아서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아까워서 지갑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147-)


오늘 한 아름 수확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 수확한 양의 배 이상으로 자라 있을 거라는 견고한 믿음이 상추에게는 있다. 열심히 애정을 주며 키운 작물이 수확해 보지도 못하고 시들어 죽었을 때, 혹은 밭에 나왔는데 아직 여문 게 없어서 빈손으로 집에 들어가야 할 때 나에게 위안을 주는 것도 언제나 상추였다.

'괜찮아,우리에겐 상추가 있어'라는 마음. 상추는 나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자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196-)


흙먼지 생각일랑 던져두고서 눈 질끈 감고 어머님의 시범 아래 열심히 산딸기를 따 먹었다. 남편이 따주는 것도 먹고, 어머님이 따주는 것도 먹고, 아버님이 따주는 것도 내가 다 먹었다. 산딸기 따느라 자꾸만 뒤처지는 도시에서 온 며느리 때문에 등산은 어느새 뒷전이 되어버렸다. (-225-)


도시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농촌 인구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현대인들의 편리미엄, 문화적 혜택을 누리기엔 농촌 시골의 삶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1차,2차 산업 중심 이었던 대한민국이, 3차, 4차 산업 중심으로 바뀌면서,도시 인구는 늘어나고, 농촌 인구는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었다.과거 아날로그적 정서,친자연주의적인 정서에 대한 그리움이 존재한다. 도시에 텃벝가꾸기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도시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다.


자가 이혜림, 도시의 며느리, 4년차 텃밭러라 부른다. 초보 농사꾼이기도 하다. 5평 남짓 텃밭에서, 자급자족을 하였고, 농사짓는 재미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지낸다. 상추,대파, 배추, 서민이 먹는 채소들이 어느 순간, 자본주의 물이 들어서,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채소로 전락하고 ,식당에서, 채소 먹는 것이 눈치가 보일 정도다. 채소는 우리가 즐겨 먹었던 의식주의 하나였지만, 이제 바뀌고 있으며, 다시 자급자족의 일상 패턴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마져 보인다. 도시시인에게,굳이 시골의 맹지를 사서 텃밭을 가꾸기에는 경제적으로 맞지 않다.그렇다고 농사를 포기하기엔 이르다. 텃밭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비어있는 땅, 묵혀놓은 땅,어린 시절 시골생활을 했던 이들은 그 땅이 아깝다. 비닐 멀칭하나 사서, 땅을 덮고, 골을 지어서, 상추 하나, 가지 하나, 고추밭을 만들수 있기 때문이다.기찻길 역 주변에, 텃밭이 주르륵 있는 이유도 무관하지 않았다. 책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에 산다』에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영화 속 이상을 현실로 바꾼 것도 여기에 있었다.


초보 농사꾼에게, 농사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고,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고난이 닥칠지 모른채 시작했다.제주도 올레길, 산티아고 순례길도 다녀온 마당에, 5평 텃밭가꾸기는 쉬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좌충우돌, 이혜림 작가의 주말 일상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웅크리고, 쪼끄리고 앉아서, 가치치기 하고, 솎아내기 하는 모습, 조금씩 조금씩 채소 모종으로, 채소를 직접 수확해서 먹었던 일상들이 자신감이 붙으면서, 욕심을 내게 된다. 딸기 나무를 심고,사과나무를 심고, 내 삶의 평온함을 제공해주는 식물도 심고, 5평의 텃밭이 아니라, 5평의 정원이 있어서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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