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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민낯
조지 오엘의 '1984'와 대비되는 미래사회를 그린 소설 '멋진 신세계'의 모습은 멋지지 않았다. 가족도 고통도 없다. 가족을 위해서 희생해야하는 사람도 없으며, 가족 때문에 상처받을 사람도 없다. 물론, 가족으로 인해서 생기는 행복감과 푸근함도 없다. 대신 '소마'라는 해롭지 않은 마약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조건 반사 훈련을 통해서 스스로를 통제하며 자신의 계급에 맞는 일을 즐겁게해낸다. 1932년에 출간된 이 책은 콘베어밸트로 대표되는 대량생산 자본주의의 극단적 미래사회를 그리고 있다. 소설 속 미래사회에서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사회와 공산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이상 사회에 대한 민낯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민낯도 보였다.

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철학자가 있었다. 바로 플라톤이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국가는 세 계급으로 구성된다. '수호자 중의 수호자'라 할 수 있는 통치자와 전사 계급에 해당하는 수호자, 평민 계급인 생산자가 그것이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지도층인 '알파', 증산층 '베타', 하류층 '감마', 단순 노동을 담당하는 '델타'와 '엡실론' 계급으로 나뉜다.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사회보다 계급이 보다 세분화 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가족을 이루지 않고 자유로운 성생활을 영유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자라지 않는다. 플라톤이 우수한 남성과 우수한 여성이 성교하도록 유도하고, 열등집단이나 장애아는 유기되어 죽도록 방치했다면, '멋진 신세계'는 태아 때부터 영양 공급을 조절하여 우수한 계급과 열등한 계급을 조절한다. 이렇게 생산된 사람들은 고통이 스며들 때마다 소마를 마시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히 따른다. 플라톤이 상상한 이상 국가를 '멋진 신세계'는 첨단 과학과 이성의 힘으로 보다 구체화하고 보다 안정된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대공황이 불어닥친 1929년을 지나 아직도 대공황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서구 자본주의 사회는 대공황을 겪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1932년에 출간된 '멋진 신세계'에는 공산주의자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의 이름 '버나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상을 만든 '마르크스'에서 가져온 듯하며, 그와 잠시 교제했던 '레니나'는 '레닌'의 여성화 표현으로 보인다. 주인공 마르크스는 멋진 신세계의 모습에 의문을 품으며 레니나와 함께 야만인 사회에 가서 '존'이라는 야만인을 데려온다. 포디즘이 지배하고 있는 미래 사회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마르크스였다. 그리고 그에 의해서 '존'이라는 야만인이 멋진 신세계에 돌풍을 일으킨다.
야만인 '존'이 본 멋진 신세계는 새로운 지옥이었다. 촉감 영화를 보며 쾌락의 절정에 이르며, 파트너를 건너뛰며 새로운 쾌락을 즐긴다. 무료함을 느낀다면 소마를 마신다. 멋진 신세계는 포드탄신일을 기념하며 공동체 찬가를 부른다. 콘베어밸트에서 필요한 제품을 대량생산하듯, '런던 중앙 인공 부화 조건 반사 양육소'에서 쌍둥이들을 대량생산한다. 아기들에게는 조건 반사 훈련과 수면시 교육법을 통해서 자신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본능적으로 수행하도록 한다. 그들은 늙음과 죽음도 모른다. 호르몬제와 소마 덕분에 60세까지 젊음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죽는다. 그들에게 죽음은 애도의 대상이 아니다. 가족이 없으니 애도해줄 사람도 없다. 야만인 '존'은 어머니의 죽음을 보며 울분을 터트린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 사이의 C이다.'라고 말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멋진 신세계는 B (Birth, 탄생)와 D (Death, 죽음)를 빼앗아 갔다. 그로인해서 C (Choice, 선택)도 할 수 없게 했다. 죽음을 직면하지 못한 신세계인들은 각성을 할 수 없었다. 죽음을 직면한 야만인 '존'은 각성했다. 그리고 소마 배급을 받는 그들에게 달려가 각성하라고 울부짖으며 몸으로 그들을 막아섰다.
소마 배급을 받으려 늘어선 인간들을 보면서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인간들이 생각났다. 교주가 예수라고 세뇌 시키고 가스라이팅을 통해서 복종을 주입시킨다. 아름다운 그녀들이 교주를 위해서 나체로 교주를 영접한다. 교주가 원한다는 이유로 친구를 교주의 방에 밀어 넣는 신도들의 모습에서 멋진 신세계가 보였다. 수면시 교육법과 조건 반사 훈련으로 본능적으로 복종하고 주어진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멋진 신세계와 사이비 교주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행복해하는 불쌍한 신도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야만인 '존'은 총통 무스타파 몬드와 만난다. 재미있는 것은 총통의 이름이 '무스타파'라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시기, 갈리폴리전투에서 오스만제국을 구한 전쟁 영웅이자,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튀르키예 공화국을 수립하며 튀르키예 건국의 아버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이름이 총통의 이름이라니! 총통 무스타파는 논리적으로 야만인 '존'과 대화한다. 그리고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존'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었다.

이 부분이 이 책의 하일라이트이다. 완벽한 쾌락이 주어진 사회에서 스스로 '불행해질 권리'를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가? 성공만이 행복을 약속하며, 돈이 곧 성공을 뜻한다고 주입시키는 우리사회에서 '불행해질 권리'를 선택하는 사람을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다큐멘터리에 열광하는 수많은 남성들을 바라보며, '불행해질 권리'를 선택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그 길이 사실은 모두 불행해지는 집단체면의 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혹은 그것을 알지만, 선듯 야만인 '존'처럼, 자연을 선택한 '자연인'처럼 선택지에 없는 새로운 길을 걷지 못한다. 닭장에 갖힌 닭은 닭장에 불만을 품지 않고 맛있는 사료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난다. 혹시, 우리는 집단 체면에 걸려 현대 물질 문명의 닭장에 갖혀 행복하게 살고 있는 닭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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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31 05:26 좋아요  l  좋아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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