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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제거를 위한 보수파의 비열한 술수
여전히 카이사르는 장발의 갈리아에 있다. 갈리아인들과의 싸움에서 여러 차례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반발은 잠잠해질 것 같지가 않은 상황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점차 정돈이 되어 가는 느낌이지만, 콜린 매컬로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 전쟁이 과연 끝나기는 할까 하는 회의감이 좀 더 짙게 든다. 두 작가 모두 카이사르라는 인물에게 푹 빠져 있는 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이 시기를 보는 관점이 퍽 다른 게 재미있다.



갈리아 전쟁 후반부에서 카이사르를 가장 괴롭혔던 인물은 베르킹게토릭스(보통은 베르킨게토릭스라고 쓰는데 이 책에선 이렇게 표기한다)였다. 갈리아인이라고 통상 부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부족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서로 협력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갈리아 하면 오늘날 중부 유럽의 대부분을 가리키는 넓은 땅이고,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에 갈리아 전역이 일치단결한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땅과 인구는 많지만 갈리아인들이 로마군에게 연전연패했던 것은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겼던 베르킹게토릭스는 이 불가능한 작업에 도전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큰 약점이 있었는데, 그의 출신 부족이 세력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좀 더 큰 부족을 이끄는 이들은 그가 앞으로 나서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었고, 형식적으로는 머리를 숙였으나 내심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그가 아이두이족 같은 유력한 부족의 대표였다면 갈리아전쟁의 결과는 달라졌을까.



이야기를 읽어 나가면서 오늘날의 EU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2천 년 전 베르킹케도릭스가 꿈꿨던 갈리아의 통일(물론 EU는 당시 갈리아인에게 큰 위협이었던 라인강 동쪽의 게르만족의 땅도 포함되어 있긴 하다)이 마침내 실현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EU 내부의 알력과 각 국가별로 다른 정치적, 경제적 상황 때문에 다들 다른 꿍꿍이를 품고 있으니 여전히 EU가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있을 지는 미심쩍다.




그래도 전쟁에서 수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모든 갈리아인들이 다 함께 들고일어난 것은 아니라도, 당장 모인 수만 해도 족히 수십 만 명이었으니, 제한된 수의 군대만 이끌고 갈리아 전역에서 싸워야 했던 카이사르로서는 가볍게 볼 수 없는 적이었다. 만약 그들이 한 자리에 모여 로마군과 대규모 회전을 벌이겠다는 생각만 안 했더라면...



갈리아 전쟁의 대미는 알레시아 공방전이 장식한다. 알레시아 요새를 둘러싼 로마군의 압도적 포위망, 외부에서 적의 지원군이 올 것까지 대비해 성을 둘러싼 방향만이 아니라 그 바깥에도 대비가 되어 있는, 어떻게 보면 도넛 모양으로 안과 밖에서 적과 맞서야 하는 일종의 배수진 비슷한 전술이었지만, 카이사르의 병사들은 그 어려운 걸 해 냈고, 마침내 전쟁은 사실상 끝이 난다.



전체의 윤곽을 그리고 시간대 별로 변해가는 상황을 서술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시오노 나나미와 일종의 극으로서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콜린 매컬로의 방식은 여기에서도 다시 한 번 차이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로마인 이야기의 방식을 더 선호하는데, 어느 정도 선이해가 없이 보면 그냥 ‘치열하게 싸웠다’ 수준을 넘기가 어려우니 말이다.



사실 말이야 쉽지 포위망의 안팎에서 공격해 오는 적과 싸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배수진은 퇴로를 차단해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도록 아군을 몰아가는, 마지막 전술 같은 건데 이런 전술이 늘 유효하지 않다는 건 임진왜란 초기 조선 기마군을 사실상 전멸시킨 신립의 탄금대 전투가 잘 보여준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했던 건, 역시 부하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카이사르의 능력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실제 작품 속에서도 그런 언급이 자주 보인다). 전적인 신뢰, 그리고 존경 어린 시선을 받는 장군은 그의 부대가 갖고 있는 힘 이상을 끌어낼 수 있다. 물론 그런 존경과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자신의 “능력”을 여러 차례 보여주어야 했을 거고. 탁월한 리더는 단순히 말빨이나 심리조종이 아니라 확실한 능력 위에 공정함과 너그러움, 정치적인 감각 또한 갖춰야 했다.




한편 로마 본국에서는 끝을 알 수 없는 막장 행보가 계속 이어진다. “보니”라고 불리는 원로원 내 보수파들은 어떻게든 카이사르를 실각시키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가 저지르지 않은 온갖 범죄혐의를 뒤집어씌우기도 하고, 그의 적법한 요구는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를 반역자로 몰아 일찌감치 포섭해 둔 폼페이우스를 동원해 군사적으로 제압하려는 시도까지... 결국 아마도 다음 편에 나올, 루비콘 도하는 보니파가 작정하고 카이사르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는 보니파도 뭐 대단한 것 하나 없었다. 그들 모두가 태생적인 귀족 혈통이었던 것도 아니었고(오히려 카이사르가 속한 율리우스 씨족이 대표적인 파트리키였다), 대표적인 반 카이사르파였던 카토는 평민귀족 출신으로 같은 보니파 내에서도 과하다고 여길 정도로 자기 고집에 빠져있는 유아독존적 인물로 묘사된다. 심지어 자신의 마음의 평정이 깨진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그러면서도 또 그녀를 잊지 못해 새 남편이 죽자 다시 그녀와 재혼을 하는 뭣도 아닌 그런 인간.



사실 곧 이어질 내전을 앞두고, 카이사르의 반대편에 서게 될 인물들을 지속적으로 깎아내리고 있는 콜린 매컬로다.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갈리아 전쟁 내내 카이사르의 오른팔 같은 인물로 묘사되던 라비에누스는 야만적 성향이 강한 촌뜨기로(그는 내전이 시작되면서 폼페이우스에게 달려가는데, 시오노 나나미는 그가 폴페이우스의 클리엔테스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카이사르의 애인 세르빌리아의 아들이었던(그리고 카토의 조카였던) 부르투스는 겁쟁이라 전쟁터는 늘 피해 다니면서 고리대로 돈벌이를 하는 데만 빠져있는 쫌생이로 묘사하는 식이다.



그리고 내전까지는 카이사르의 편에 서 있었지만, 훗날 카이사르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와 대립했던 안토니우스도 어느 정도 군사적 재능은 있었지만 허영심이 좀 과한 인물로 등장한다. 훗날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독자들이 보면 살짝 미소가 띄워지는 부분. 카이사르를 당장 제거해야 할 무슨 심각한 범죄자로 몰아가던 이들이, 정작 일상에서는 철저하게 비틀린 인물들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이건 뭐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이야기가 점점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 그래도 아직 카이사르가 암살당할 그날까지는 책이 여러 권 남아 있으니 다행.


  • 북플
  • transient-guest님도 <카이사르 2>를 재미있게 보고 리뷰를 남기셨네요. 리뷰를 읽어보시겠어요?
  • 2024-04-27 10:05 좋아요  l  좋아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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