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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한복판에서 만난 코스모폴리탄 - 『헨리 제임스』
오랜만에 아르테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만났습니다.
이번 32번째로 이어 가는데 주인공은 바로 '헨리 제임스'.
솔직히 그에 대해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세계 문학계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현대 소설의 아버지'로 인식되기도 한다는데...
이번을 기회로 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상상력이라는 만능무기를 지닌 야심 찬 소설가는
문학 안에서 누구보다 강하고 자유로웠다."

『헨리 제임스』

미국인이었으나 완벽하게 유럽식으로 교육받았고,
미국 소설가였지만 영국 문학의 전통에 속해 있으며,
파리를 꿈꾸었지만 런던에 정착했고, 하지만 가장 사랑한 땅은 이탈리아였으며,
엄청난 부를 지녔지만 사회적 위치가 결여된 그.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그는 어디에 있든 어색함을 느꼈다. 무신론자로 키워져 뉴잉글랜드의 청교도주의를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발자크의 파리를 선망했지만 편협한 파리 문학계는 이방인에게 좁은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결국 런던에 정착하는 데 성공했지만, 각광받는 사교계 인사가 된 뒤에도 런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저 미국에서 온 괴짜 소설가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따금 의심했다. - page 14

헨리 제임스는 이처럼 두 문명의 충돌 지점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도 종종 예술적이고 부패하며 매혹적인 오래된 세계(유럽)와 종종 거칠고, 개방적이고, 공격적인 새로운 세계(미국)의 캐릭터를 대조시키면서 그 충돌에서 생기는 긴장감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헨리 제임스의 소설 속에서 멋지고 사랑스러운 여자들이 반복적으로 회귀하는 장소가 '결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여인의 초상』의 이사벨, 그리고 후기 소설 『비둘기의 날개』의 밀리.
두 여인이 원했던 것은 삶 그 자체, 그것을 살고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부자이고, 유럽인들처럼 신분이라는 운명에 휘둘리지 않는, 그들의 욕망을 막을 장애물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변변찮은 남자들에게 얽혀서 파멸에 이른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매번 변변찮은 남자를 선택하고, 실패한 결혼에 절망하며, 하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온 생을 거는 것일까...?

제임스 소설 세계의 기본 설정은 만인을 향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홉스의 말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그것이 정말로 부정할 수 없는 보편적 인간 조건인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미국의 여자들은 누구보다도 이 무정한 홉스식 투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카오스의 한가운데 새로운 세계의 매력으로 가득한 전사들. 21세기에도 그 새로움의 샘은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언제나 자신만만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쉽게 혼란에 빠져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반영과 타인의 눈에 비친 이미지들 사이를 영원히 오가는. 누구보다 독립적이고자 하지만 결국은 타인의 투쟁에 휘말려 짓밟히는 비극적인 운명의, 아름다운 희생자. 하지만 끝끝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 남고 마는 그녀들. 광기의 집행자이자 피해자. 탐스러운 포획물이자 동시에 잔혹한 승리자. 아메리칸 뷰티. 완벽한 아메리칸 걸. 세계는 그런 그들을 열렬히 사랑한다. - page 63

발자크에게 파리가 있었고
도스토옙스키에게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었던 것처럼
헨리 제임스에게는 런던이 있었습니다.
런던이란 도시...

자, 보시오. 여기 당신들이 그렇게나 바라던 과거와 역사와 문학의 먼지가 있소. 그것의 과연 몇 퍼센트가 과거와 역사와 문학에 속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의 도대체 몇 퍼센트가 런던 출신인지조차 나는 확신할 수 없지만, 아무튼 자, 여기에 있소. 당신들이 찾던 바로 그 환상이, 당신들이 그토록 갖고자 하는 그 미친 망상이, 갈망하는, 소망하는, 기원하는, 환상들의, 오직 환상들로 이루어진, 환상의 제국, 이미 아주 오래전 사라져 버린 그 위대한 제국의 재와 먼지가......

착란과 유령으로 가득한 제국의 환상 속으로, 지상 최대의 지옥, 그 찬란했던 기억 속으로 헨리 제임스와 함께 거닌 런던에서의 순례의 끝은 씁쓸함만이 남았었습니다.

한 세기 뒤, 우리는 여전히 위대한 제국과 잔혹한 지배자들의 이야기에 매혹됩니다.
대영제국의 위대함, 19세기 유럽의 화려함, 도금시대 미국의 막대한 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살육전을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혹되는 것은 인간 문명의 위대함인가, 아니면 그 뒤에 감춰진 인간 문명의 끔찍한 야만성인가?
인간이 놓인 이 이율배반의 조건 위에 헨리 제임스의 문학이 놓여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 가장 국제적이었던 인간의 진짜 모습과, 그것을 가능케 한 인간 문명의 본질적 폭력성을 복잡한 심리 묘사와 섬세한 문체로 그려낸 헨리 제임스.

결국 헨리 제임스에 따르면 소설이란, 작가가 그럴듯한 모습으로 "삶이라는 환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환영은 독자들에게, 현실이 주는 환영(인상)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소설 또한 하나의 경험, 결코 한계도 없고 끝도 없는, 즉 작가가 만들어 낸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 page 184

저 역시도 그를 마주하기 위해선 그의 작품을 읽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가 소설에서 만들어낸 환영 속에 나는 어떤 느낌을 받을까...

우리들의 선택과 상관없이 인간들의 세계는 이어진다. - page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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