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유가 사람들이 삶을 대하는 자세(삶의 태도)를 결정한다는 건 딱히 어려운 말은 아닐지 모르지만 뭔가 진지하고 무게감있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과연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금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이어서 나오는 내용에는 소설《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작품의 일부분이 인용되어 나온다. 저자는 이 작품 속 주인공인 조르바의 삶의 태도에 대해 언급함과 동시에 문학의 효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꼭 이 작품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수많은 문학 작품들을 통해 다양한 인간의 삶들을 간접 경험하면서 현실에서 독자인 개개인이 취해야 할 삶의 태도 혹은 자신이 우선적으로 추구해야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정립해볼 수 있다는 저자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혹보면 문학을 왜 읽냐며 쓸데없다는 식으로 문학의 가치를 폄하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물론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태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게 옳고 그름을 따지자기 보다는 법의 테두리안에서 다른 사람이 뭐를 읽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p.313의 밑줄친 부분에 언급한 것처럼 문학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문학의 가치를 폄하하는 분들에게 명확하게 알려주고 싶다. 물론 문학을 읽든 읽지 않든 개인의 취향이야 존중해드리겠지만 자신의 한정된 관점만 가지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달라는 말이다.

뒤이어서 저자는 삶의 공허함을 조금이나마 채우기 위한 방법으로 장르를 불문하고 끊임없는 ‘배움‘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이에 동의하시는 분들도 있을거고 그렇지 않으신 분도 있겠으나, 독자인 내 생각에 괜찮은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외에 또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배움‘만큼 삶의 공허감을 끊임없이 채울수 있는 것이 또 뭐가 있을까 싶다.


살아가는 이유가 있는 삶이란 정말이지 고귀한 것이죠.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삶을 대하는 자세가 되기도 하죠. 삶의 태도는 살아가면서 마주할 수많은 일들의 행동 기준이 되기도 하고,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가치관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문학을 접한 후에는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상황과 인연이 그렇게 쉽게 재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것입니다. 흔히 문학을 ‘삶을 비춰주는 등불‘이라고 하잖아요.
간과하고 있던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떠올리게 해주는 멘토와 같은 존재
‘인간은 부족한 존재‘라는 깨달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있습니다. 이는 외부 요인에 의해 쉽게 바뀌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만큼 보이고 그것을 진실이라 믿고 살아가기 때문이죠.
인간은 누구나 절체절명의 위기와 공포 상황에 처했을 때 저마다의 길을 찾아 나섭니다. 내 앞에 닥친 재앙에 속수무책일 때 우리는 각자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할까요?
다양한 인간 군상과 삶의 태도를 엿보고 그 안에서 비로소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외부적으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 외부적인 파멸은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조르바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것을 실천해 내는 열정과 대범함 그리고 사소한 것에도 기쁨을 느끼는 순수함을 가진 인물입니다.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일단 해보는 것‘
해보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것과 실제로 내가 그렇게 사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기 마련이죠.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것‘
순간의 진실성에 충실하고 일상의 충만함을 소중히 여기는 것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더 조르바 같은 삶을 사는 것일 수도
가끔은 내 인생에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잠시 내려놓고 ‘막‘ 사는 삶을 지향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거나 막대한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한 번쯤은 조르바처럼 모든 걸 내려놓고 춤을 추듯 자유롭게 살아보는 것도 값진 경험일 테지요.
인생의 한때는 더없이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보다가, 또 다른 시기에는 내 삶의 무게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새로운 존재로 살아보는 유연한 삶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문학은 이런 삶의 변주를 가능하게 해주는 원동력입니다. 완벽하지 않은 삶들이 그려내는 희로애락 속에서 위안을 받기도 하고, 현재의 삶에 집중할 힘을 얻기도 하고, 삶의 가치와 태도를 바꿀 만큼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 삶은 공허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정이 아닐까요. 수많은 문학이 이런 공허감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공허한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 삶의 이유를 ‘배움‘이라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저 삶의 공허함을 조금이나마 채우기 위한 노력 그 자체
내가 모르는 대상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면 어떤 인생이든 적어도 공허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제게 배움은 지식의 범주를 넘어선 것입니다. 특히 문학을 통해서 실용적 지식을 얻는 건 아니잖아요. 문학을 통해서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을 살아보고, 내가 접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내 인생에서 경험해서는 안 될 사람과 겪어서는 안 될 상황을 작품 속에서 체험하면서 진실함과 가식을 구별하는 안목을 키우고 사람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기 위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서로가 서로에게 비극이 되는 여러 상황을 통해 삶에서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배웁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본성은 서로 비슷하나, 익히는 것에 의해 서로 멀어진다.
남의 것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당당해지기 위해, 타인의 인정에 끌려다니며 내 인생을 불태우지 않기 위해, 남들이 정해놓은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 늘 배우려는 삶의 태도를 가지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이 곧 배움입니다.
배움과 기록에 대한 끝없는 열의
배움과 가르침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제게도 아주 특별한 문학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미치 앨봄의《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입니다. 책 속 사제 관계가 제게는 아주 큰 울림을 안겨주었죠.
이 책은 모리 교수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인생에 대한 다양한 주제로 나눈 둘만의 수업과 토론의 결과물이자 마지막 선물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 진정한 스승이란 인생의 의미를 깨우쳐 주고 변화하게 만드는 사람
이 책은 우리가 삶에서 잃어버린 가치와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리 교수는 어느 화요일 미치에게 이런 말을 건네죠.

"미치,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배울 수 있어." (...) "다시 말하면, 일단 죽는 법을 배우게 되면 사는 법도 배우게 된다네."
모리 교수는 말합니다. 죽음에 직면하면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을 다 벗겨내고 결국 핵심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고요. 죽음을 생각하면 모든 일이 아주 다르게 보이고, 영혼과 관계된 것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것이죠.
죽음 앞에 서 있을 때를 생각하는 순간, 진정한 배움이 가능하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낮추고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접한다면 진정한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록하는 사람‘과 ‘배우려는 마음‘
가르침을 기록하는 일 못지않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알아가는 것에 대한 쾌감의 강도를 높여가는 일이 중요하다
무언가를 보고 즐길 때도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감동의 여운이 오래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것에 대해 ‘진짜로‘ 알고 난 후 보면 그때의 감동은 몇 배의 크기로 다가온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지점에서 분명히 더 배우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이 있을 거라는
인생이 풍요로워지고 숨 쉴 공간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배움
길들인다는 것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행위죠.
인간은 자신이 공들여 가꾼 것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이를 통해서만 자기 존재를 확장할 수 있다
길들이기는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모두 조금씩 때 묻어가며 인생을 배우니까요.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사람은 자신만의 소명과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늘 그래왔던 것처럼 제자리를 지키라고
누군가에게 배움의 가치를 전하는 사람은 그 무게감에 대해서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 북플
  • 향기로운이끼님도 <다시 문학을 사랑한다면>을 재미있게 보고 리뷰를 남기셨네요. 리뷰를 읽어보시겠어요?
  • 2024-05-07 08:48 좋아요  l  좋아요 0
  • 비밀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