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YOH
  • 2021년 10월 24일 공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정의 회고록
한 달 전인가. 캐럴라인 냅의 유고집 '명랑한 은둔자'를 읽었었다. 나는 늘 죽은 자를,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남아있는 자들에게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므로,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므로 나는 늘 산 사람들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걱정이었다. 그들이 감내해야할 슬픔의 무게를 알기에.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다는 게일은 어찌 되었을까,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나서 남자친구 모렐리와 결혼을 했다던데 그 남자친구는 어찌 살고 있을까. 쌍둥이 언니가 있었다던데 언니는 어찌 살까. 극진한 사랑을 주고 받았던 개 루실은 어떻게 됐을까. 내가 궁금해 하던 그 뒷이야기의 일부가 이 책에 담겨 있었다. 바로 그 게일이 쓴 책이므로.



물론 그 앞이야기도 있다. 그들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우정을 나눴고, 캐럴라인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 그의 지인들이 그의 죽음과 그로 인한 충격을 어떻게 감내했는지.


조정 이야기라든가, 사람을 개의 종류로 분류한다든가 그런 부분을 읽을 때면 이거 너무 백인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파티 이야기, 문학평론가나 저술가들의 이야기, 캐럴라인 냅의 가정 환경, 바이블벨트 출신의 개일 콜드웰의 가정환경, 뉴잉글랜드의 분위기 등등이 나올 때면 이들이 동양인에 대해서는 대체 뭘 알까, 뭘 알려고는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이너 필링즈'를 읽고 있어서 그럴 지도 모른다(마이너 필링즈는 아무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과감하게 했다는 면에서 공감이 많이 되었지만 읽어내려갈수록 뭔가 반발하고 싶어져 잠시 읽기를 중단한 상태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언어나 문학 관련 종사자들의 프라이드를 알기에 그런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읽어 내려갈수록 이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간과 인간이 나눌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관계의 이야기였다. 한 인간이 한 인간과 얼마나 서로를 배려하며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는지를, 그것이 두 인간에게 얼마나 의지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고지순한 이야기였다. 더불어 개와 나눈 사랑도 함께 나오고. 조정을 잘 하는 한쪽은 조정을, 수영을 잘 하는 한쪽은 수영을 서로에게 가르쳐주기도 하고. 지극하게 개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생활도 함께 하고.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던 한쪽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갈 수밖에 없을 때 남은 한 쪽은 어떤 고통의 과정을 겪게 되는지도 세세하게 나와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 이야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정의 회고록'이 아닐까 싶다. The memoir of Friendship which is the best in the world.


개와 함께 했던 그들의 산책을 끝내기가 아쉬워 Let's take the long way home(바로 이 책의 제목)이라고 말했다던 캐럴라인 냅은 왜 그리 서둘러 저 세상으로 가야만 했을까. 물론 본인의 의도는 전혀 아니었겠지만(폐암 4기 진단 7주만에 사망했다고 한다. 진단 후 두 달도 안 되어서 사망하다니 이렇게 갑작스러운 죽음이 있을 수가). 얄궂은 인간의 운명이 안타깝고 슬플 뿐이다. 둘만이 나눴던 소중한 추억 사이에 만들어졌던 그의 애칭을 불러본다. 브루티타!!


+나에게 15시간이 오롯이 주어진다면 원서를 읽었을 텐데. 원서는 샘플로만 보고 결국 번역본을 읽었다. 캐럴라인 냅의 다른 저서들도 다 원서로 읽고 싶은데 도저히 15시간을 만들 수가 없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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