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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마조프의 자매들] 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

잘 알려진 고전 명작 속 인물의 성별을 바꾸면 어떤 느낌일까. 정원사 작가의 <까라마조프의 자매들>은 이러한 착상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까라마조프의 자매들>의 원작인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소설로, 아버지 표도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까라마조프 가의 장남 드미트리와 차남 이반, 삼남 알렉세이, 가정부 스메르쟈코프 간에 쌓인 복잡한 애정과 지독한 증오를 그린다.


'형제들'이 '자매들'로 바뀌었을 뿐 각자의 직업(퇴역 장교, 대필 작가, 성직자, 가정부)이나 성격, 관계성 등은 그대로인데 원작보다 훨씬 재미있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일단 형식이 소설이 아닌 만화(웹툰)인 덕분이 크다. 아무래도 만화는 소설에 비해 내용이 훨씬 더 간략하고 눈에 잘 들어온다. 더군다나 인물들의 외형이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그 인물들이 서로 사랑하고 증오하고 갈등하고 결국 파멸에 이르는 장면들이 이어지니 눈을 떼기 어렵다. (원작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기가 힘들다면 <까라마조프의 자매들>을 먼저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같은 선택, 같은 행동이라 할지라도 남성이 할 때와 여성이 할 때 다르게 느껴지는 면도 있다. 이를테면 장녀 드미트리는 골초, 주정뱅이, 색정광이라는 설정인데, 여성 독자인 나로서는 골초, 주정뱅이, 색정광인 남자보다 골초, 주정뱅이, 색정광인 여자가 덜 혐오스럽고, 혐오스러움이 덜한 만큼 인물을 객관적, 중립적인 관점으로 보게 된다. (드미트리와 삼각관계를 이루는 카체리나, 그루첸카가 원작에서보다 더 음흉한 인물들로 보이는 부작용이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버지에게 맞서는 존재가 아들(들)이 아닌 딸(들)이라는 점이 통쾌하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딸은 아버지의 뒤를 잇는 가정의 계승자, 후계자가 아니라 언젠가 이 가정을 떠날 예정인 객식구(출가외인) 또는 아내, 어머니의 역할을 보조하여 가사 노동을 하는 잉여 인력(살림밑천)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고, 문학 작품에서 그런 식으로 딸을 묘사하는 경우 역시 많은데, <까라마조프의 자매들>에선 자매들이 모두 직업을 가지고 있고(심지어 드미트리는 남초 직업인 군인이다), 스메르쟈코프를 제외하면(물론 스메르쟈코프는 다른 자매들과 처지가 좀 다르다) 가사 노동에 종사하지 않는다.


아버지 표도르를 살해한 범인이 아들(남성)일 때와 딸(여성)일 때의 느낌도 사뭇 다르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경우에는 아들이 동성인 아버지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그 자신의 광기, 재산 또는 권력에 대한 탐욕 등으로 동기를 추측할 수 있지만, 딸이 아버지를 죽인 경우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해당이 안 되고, 가부장에 대한 적개심, 성적 학대 등이 추측 가능한 동기에 추가될 수 있다. <까라마조프의 자매들>은 이런 식으로 원작과 비교, 대조하면서 원작에 대한 해석을 보다 풍부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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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kang1001님도 <까라마조프의 자매들 1>을 좋아합니다. thkang1001님이 읽은 다른 책이 궁금하신가요?
  • 2023-09-08 11:30 좋아요  l  좋아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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