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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아니고 반항인! -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이해하려면 이 책을 읽자
알베르 카뮈 저, 유기환 역
《반항인》
현대지성
2023
제1장 반항인
제2장 형이상학적 반항
제3장 역사적 반항
제4장 반항과 예술
제5장 정오의 사상


주류 의견이 아니라 조금 시간을 들여야. 결론 빌드업을 위해 쓴 문장도 생각하게 함. 여백이 많아서 좋은 책.


저,
알베르 카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당신 지금 알베르 카뮈의 《반항인》 서평단에 선정되어 읽는 것 아닙니까?"

네. 그렇습니다. 근데 안 좋아할 수 있지.

솔직히 카뮈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명성 때문에라도 그에 관한 몰이해를 많은 경우 제 탓으로 돌리고는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알못'이라 카뮈를 모르는 거라고. 그래서 《반항인》 서평단에 신청한 거라고. 저는 《이방인》은 정말 별로였습니다. 이해도 안 되고, 서사와 캐릭터가 주류가 아니라 그로 인해 말하고자 하는 저자의 메시지가 우선이고, 서사와 캐릭터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는 인상이었습니다.

반면 《페스트》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같은 저자이니 이번에도 서사와 캐릭터는 이용당했을 뿐...!!! 이지만, 그래도 《이방인》보다는 좀 더 재미있는 스토리였어요.






몇 달 전부터 현대지성 출판사의 뉴스레터를 받고 있는데요. 《반항인》 출간과 함께 《반항인》에 대한 설명을 읽었습니다. ...사실 다 못 읽었습니다. 읽다가 터치 미스로 메일을 영구 삭제해버렸어요.

카뮈의 작품 세계는 부조리, 반항,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반항인》은 '반항'에 속하는데, 같은 '반항'에 속하는 《페스트》를 더 잘 이해하게 해 준다네요. 잠시 《페스트》 내용을 기억ㅎ 봤는데, 읽은 지 햇수로 최소 오 년이라서 오랑에 페스트가 돌고, 한 도시를 알려면 거기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봐야 한다 하고, 의사가 노력하고, 타루는 뭐하는지 모르겠고, 그런 감상이 있었네요. (남자만 잔뜩 등장한다는 것까지.......)


출판사에서 제공한 《반항인》을 소개하는 글을 읽으면, 카뮈의 의견은 주류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좌파(사르트르 같은 좌파는 아니었겠지만)의 눈으로 좌파를 비판한 것이니 내부자로서 약간 비틀린 시선으로 비판한 것 같아서, 내부자의 의견 중에서는 좀 더 객관적인 비주류 의견이 아닌가 싶었어요. 저는 주류 의견에 동의하지만 약간 삐딱한 노선을 타는 사람이라 궁금했습니다.




카뮈는 셸러의 정의와 자신의 정의를 비교한다.거칠게 비교하자면 원한과 반항은 상반된다는 것이 카뮈의 주장이다.


결국 《반항인》은 완독하지 못했습니다.(ㅠㅠ) 어렵기도 하지만 업무나 건강 문제가 겹쳐서 익숙하지 않은 문체와 사상이 담긴 철학 에세이를 심도 있게 읽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 책을 이해하려고 몸부림쳤습니다.

성과가 있습니다. 저는 알베르 카뮈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습니다. 카뮈는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대학을 나온 뒤 프랑스에서 활동했습니다. 알제리에서는 프랑스인, 프랑스에서는 알제리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알제리 출신에 알제리에서 대학을 나온 카뮈는 프랑스에서 나고 자라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에게 이방인이었을 테고, 알제리에서는 프랑스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이방인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카뮈에게 '이방감'은 평생 천착할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김치'라고나 할까요.......




책에 절대 낙서하지 않는 제가 꼼꼼히 읽고 싶어서 표시하고, 말을 좀 더 쉽게 바꿔서 이해하고, 내용 정리도 했는데요. 다 읽지 못했기 때문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만한 것도 아닐 뿐더러 이 책이나 다른 출판사 번역본에 실린 해설은 난도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본 텍스트가 어렵기 때문에,

'그...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이야???'


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책을 꼼꼼히 읽는 타입이 아니어서 내용 파악을 위해 동그라미도 쳤는데, 치면서도 이게 이 책의 텍스트를 통틀어서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무래도 나중에 시간을 들여서 다른 번역본과 비교하며 이 책을 꼼꼼히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책이지만 여러모로 때가 좋지는 않았어요.




반항의 세계와 신성의 세계는 공존할 수 없다. 현재의 세계는 신성과 거리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반항의 세계에 살고 있다.


현 시점에서 이 책을 완독하진 못했지만, 이해를 위하여 이래저래 찾아본 바로는 카뮈는 이 책을 1942년에 구상했고, 1951년에 발표했습니다. 소련의 전체주의적 양상이 조금씩 드러나던 시기였습니다. 전쟁과 학살 직후이고 냉전이 시작되려는 시기라 카뮈는 외압에 저항하는 것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대해 깊이 고찰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두 행동은 윤리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불문학자 김화영은 카뮈의 작품에는 "어떤 '윤리적인 요구'가 관류하고 있다'고 합니다. (알베르 카뮈 저, 김화영 역 《반항하는 인간》 민음사, 2021. 532p.)

카뮈는 머리말에서 논리에 의한 이성적 범죄에 주목합니다. 원초적 시대에는 범죄가 아무리 노골적이어도 양심은 확고하고 판단은 명료할 수 있었는데, 자유의 기치 아래서는 노예수용소, 인간에 대한 사랑, 초인에 대한 취향에 의해 정당화되어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썼습니다. (본문 21p를 참고해 주세요!)

이렇게 보면 김화영 교수의 말이 이해됩니다. 그러니까, 충동적 범죄는 자기가 나쁜짓을 하는 걸 알긴 알았는데, 논리에 의한 이성적 범죄는 자기 범죄를 정당화할 만한 이유를 대서 자기가 진짜 떳떳한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윤리적인 요구'가 있을 수밖에 없겠죠. 간혹 자기는 선의에서 우러나온 좋은 일을 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해도 괜찮다는 정당화를 하며 타인에게 무례하고 폭언을 퍼붓는 사람을 봐서, 카뮈에게는 빌드업에 지나지 않을 이 말이 저에게는 무척 와닿습니다.

그리고 이런 점으로 인해 카뮈의 매력이 보이는 것 같군요ㅋㅋㅋ


역자 해설이나 다른 번역본의 해설, 리뷰까지 다 읽었지만, 카뮈는 두괄식이 아니라 미괄식으로 책을 써서 제가 읽은 분량에서는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머리말은 너무 어려워서 서너 번 읽었는데도 이해가 잘 안 됨...오히려 본문이 더 쉬웠다. 아무래도 구성이 반항인에 대한 카뮈의 정의-문학이나 역사에서 사례를 찾아 설명함-이를 토대로 결론을 내리는 구조로 보여서,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부조리의 경험에서 고통이란 개인적인 것이다. 반항 운동을 기점으로, 고통은 집단적인 것이 되며 만인의 모험이 된다. 이방감에 사로잡힌 인간이 실현한 최초의 진일보는 그 이방감을 만인이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인간 현실이 전체적으로 자아와 세계에 대한 거리감으로 그늘져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데 있다. 단지 한 사람을 괴롭혔던 질병이 집단적 페스트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 시련 속에서 반항은 사고의 순서에서 '코기토cogito' 와 같은 역할을 한다. 반항은 최초의 명석판명한 사실이고, 이 명석판명한 사실은 개인을 고독에서 끌어낸다. 요컨대 반항은 모든 사람 위에 최초의 가치를 정립시키는 공동의 태도이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47~48p

이 번역본에 관해서는 역자 유기환 교수(한국외대 프랑스어문학부)의 카뮈에 대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역자도 나름 유심히 보는 편인데, 번역 작업을 했기에 애착이 생겨서 그게 작품과 작가에 이어진 경우는 종종 봤지만, 처음부터 애정을 가진 역자는 처음 봅니다... 주관적인 경험입니다. 처음이라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중.


조금 아쉬웠던 점은 번역이 어려운 편이라서 읽기 좀 힘들어요. 더 쉽게 쓸 수도 있는 표현을 더 쉽게 쓰지 않은 것 같은데, 최근에 책 소개를 위해 가볍게 번역을 했다가, 영어로는 술술 읽혀도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옮기자니 누락되는 의미가 많아서 번역이 어쩌고저쩌고... 말할 힘이 안 납니다. 그저 이 책을 번역해주신 것만으로도, 그로 인해 카뮈의 반항인을 두 가지 이상의 국역으로 읽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너무 멋지고, 빌드업하기 위해 쓴 문장조차 제가 책을 덮고 잠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지만, 한편으로는 21세기에는 추천이 덜한 미괄식이나 배경지식(니체, 사드, 바쿠닌, 이반 카라마조프 등을 다 알아야 하니까요)이 필요해서 어려운 책이기도 하네요.

근래에 어떤 독서 관련 책에서 글을 쓰는 건 소통이기 때문에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저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의견을 접했습니다. 인문서, 학술서 등의 저자들 중에는 간혹 읽는 독자를 고려하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고도 해요. 제가 건너 들은 어떤 저자는 당신 책은 이해할 사람만 이해하라고 쓴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카뮈가 그런 사람이다, 아니다, 책임이 있다, 없다 따지기 이전에 반 세기 전 수사와 현재의 수사는 다를 수밖에 없어서 어려운 건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루소의 《신 엘로이즈》도 어려워요ㅎㅎ


......하지만 난 카뮈 그리고 루소 탓을 조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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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재 전용 의견...
이 역자분이 문학동네에서 나온 에밀 졸라 소설도 번역하셨는데
김화영 교수가 쉽게 번역한 것과 비교하면
뭐 큰일났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걸까요
부조리의 경험에서 고통이란 개인적인 것이다. 반항 운동을 기점으로, 고통은 집단적인 것이 되며 만인의 모험이 된다. 이방감에 사로잡힌 인간이 실현한 최초의 진일보는 그 이방감을 만인이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인간 현실이 전체적으로 자아와 세계에 대한 거리감으로 그늘져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데 있다. 단지 한 사람을 괴롭혔던 질병이 집단적 페스트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 시련 속에서 반항은 사고의 순서에서 ‘코기토cogito‘ 와 같은 역할을 한다. 반항은 최초의 명석판명한 사실이고, 이 명석판명한 사실은 개인을 고독에서 끌어낸다. 요컨대 반항은 모든 사람 위에 최초의 가치를 정립시키는 공동의 태도이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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