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yrus
  • 2019년 7월 3일 공개
민음사는 특별판 판매를 당장 중지하라!
민음사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호밀밭의 파수꾼》 특별판을 선보였다. 그런데 ‘특별판’인데 특별한 것은 없다. 북 커버 디자인은 1951년에 출간된 초판본 표지이다.





사실 내용도 특별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민음사는 오역이 많은 예전의 번역본(민음사 세계문학전집 No. 47)을 ‘특별판’이라고 홍보하면서 팔고 있기 때문이다.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 뒷날개에 ‘새 문학전집을 펴내면서’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그 글에 이런 문장이 있다.


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 엊그제의 괴테 번역이나 도스토예프스키 번역은 오늘의 감수성을 전율시키지도 감동시키지도 못한다.


민음사는 문학 전집을 펴내면서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지금의 민음사는 초심을 잃었다. 오역이 가득한 ‘엊그제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새로 번역해서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샐린저의 탄생을 기념한답시고 뻔뻔하게 특별판을 냈다. 오역 문장을 그대로 놔둔 특별판은 독자들을 감동시키지도 못한다. 오히려 독자들의 분노를 유발한다.





특별판의 번역을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대구 교보문고에 판매되고 있는 책을 참고했다. 《호밀밭의 파수꾼》(구판) 오역 문장을 기억하고 있어서 그 문장이 있는 쪽수를 확인했다.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오역도 고쳐지지 않았다.





* 원문
“We studied the Egyptians from November 4th to December 2nd,” he said. “You chose to write about them for the optional essay question. Would you care to hear what you had to say?”

* 구판 22쪽, 특별판 26쪽
「우린 11월 넷째 주부터 12월의 두번째 주까지 이집트인들에 대한 공부를 했었다. 자넨 선택 문제로 이집트인들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로 했어. 자네가 뭐라고 썼는지 한번 들어보겠나?」


→ ‘11월 4일부터 12월 2일까지’라고 써야 한다.





* 원문
My brother Allie had this left-handed fielder’s mitt. He was left-handed. The thing that was descriptive about it, though, was that he had poems written all over the fingers and the pocket and everywhere. In green ink. He wrote them on it so that he’d have something to read when he was in the field and nobody was up at bat.


* 구판 57쪽
동생인 엘리는 왼손잡이용 미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애는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묘사적이었냐 하면, 그 애는 손가락 위도 좋고, 주머니도 좋고, 어디에나 시를 써놓았다. 초록색 잉크로 말이다. 그 애 말로는 수비에 들어갔을 때 타석에 선수가 나오지 않았을 때 같은 때 읽으면 좋다는 것이다.


* 특별판 70쪽
동생인 엘리는 왼손잡이용 미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애는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묘사적이었냐 하면, 그 애는 손가락 위도 좋고, 주머니도 좋고, 어디에나 시를 써놓았다. 초록색 잉크로 말이다. 그 애 말로는 수비에 들어갔는데 타석에 선수가 나오지 않았을 때 같은 때 읽으면 좋다는 것이다.



→ 밑줄 친 문장은 문법이 맞지 않는 문장이다. 구판에 있었던 ‘수비에 들어갔을 때’라는 구절이 특별 판에서는 ‘수비에 들어갔는데’라고 고쳐졌다. 그래도 여전히 문장이 어색하다.





* 원문
Old Marty talked more than the other two. She kept saying these very corny, boring things, like calling the can the , and she thought Buddy Singer’s poor old beat-up clarinet player was really terrific when he stood up and took a couple of ice―cold hot licks. She called his clarinet a .


* 구판 104쪽
마티는 다른 두 여자보다도 좀 말을 많이 했다. 그나마 그녀가 하는 말도 케케묵은 이야기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화장실을 <어린 소녀들의 방>이라고 부르지 않나. 버디 싱어의 밴드에서 불쌍할 정도로 말라비틀어진 첼리스트가 보여준 정말 썰렁하기 짝이 없는 연주를 듣고는 멋있다고 하면서, 그 첼리스트를 <감초 줄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 특별판 129쪽



→ 사실 이 오역 문장 하나만 가지고 민음사의 특별 판 출간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따질 수 있다. 출판사는 클라리넷 연주자를 ‘첼리스트’라고 잘못 번역된 문장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가? 알고 있으면서도 오역을 고치지 않은 건 독자들을 속이는 직무유기다.





* 원문
“You’re goddam right they don’t,” Horwitz said, and drove off like a bat out of hell. He was about the touchiest guy I ever met. Everything you said made him sore.

* 구판 115쪽, 특별판 143쪽
「그렇게 생각하면 됐어요」 호이트가 말했다. 그러고는 총알처럼 사라져버렸다. 그 사람은 이제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다. 내가 한 말은 전부 그 사람을 화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 이 번역문을 다시 보면서 알게 됐는데, ‘Horwitz’는 ‘호이트(Hoyt)’가 아니라 ‘호위츠’라고 써야 한다.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 구판을 사서 읽은 독자이다. 오역을 고치지 않은 채 특별판을 낸 민음사의 행보가 매우 유감스럽다. 내가 보기에 민음사는 작가를 기념하기 위해서 특별판을 낸 게 아니라 ‘리커버판’ 열풍에 편승해서 책을 더 팔아보려는 심산으로 낸 것 같다.

민음사는 특별판 판매를 당장 중지하고, 독자들의 지갑을 털 생각을 하지 마시라. 특별판을 구입한 독자들에게 책값을 환불하라! 오역이 고쳐지지 않은 책은 ‘잘못된 책’이며 ‘파본’이다. 민음사는 출판사 이름에 걸맞게 좀 더 ‘백성의 소리(독자의 소리)’를 귀담아들어라. 세계 문학 전집 출간을 위한 새로운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그 마음, 초심을 되새겨 보길 바란다.




  • 2019-07-03 17:02
  • 비밀 댓글입니다.
  • cyrus
  • 세계문학전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출판사가 민음사에요. 지난달 독서모임 선정 도서가 <동물농장>인데 그 날 참석한 분들 대다수는 민음사 번역본을 읽었어요. 민음사 <동물농장>도 나온 지 꽤 오래된 책인데다가 요즘 나오는 타 출판사 번역본과 비교하면 다시 다듬어야 할 문장들이 있어요. 고전 문학 작품을 읽으려면 ‘탈 민음사’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ㅎㅎㅎ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국내 최고 문학전집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 2019-07-03 17:17 좋아요  l  좋아요 1
  • 잠자냥
  • 이 리커버 판은 샐린저의 초판하고 표지가 같아서 혹했는데.... 그러면서도 번역은 좀 고쳤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살까말까 망설이고 있었거든요... 에휴 그만 마음을 접어야겠습니다.
  • 2019-07-03 17:18 좋아요  l  좋아요 0
  • cyrus
  • 초판본 표지 디자인의 양장본이라서 책의 겉모습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판에는 구판에 없던, 단어의 의미를 설명한 역주가 달려 있어요. 그 외에는 보시다시피 크게 달라진 것 없어요. ^^;;
  • 2019-07-03 17:22 좋아요  l  좋아요 0
  • 2019-07-03 17:25
  • 비밀 댓글입니다.
  • cyrus
  • 박맹호 회장이 지금 살아계셨다면 이번 일을 용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 2019-07-04 15:21 좋아요  l  좋아요 1
  • 雨香
  • 소설을 읽을 때 번역평을 살피곤 합니다만, 번역평이 없어서 많이 아쉽습니다. ‘최고의 고전번역을 찾아서‘‘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를 읽어보는데 다루는 책이 많지 않고, 그리고 그 뒤로 번역된 책들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예전에 관련 기사인지,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번역평도 상당한 예산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고 ㅠㅠ

    조금 더 출판시장이 커지고, 번역본도 많아지고, 번역평도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믿고 읽으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 2019-07-03 18:02 좋아요  l  좋아요 1
  • cyrus
  • 번역 평이 서평보다 쓰기 까다롭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된 번역 평을 작성하려면 번역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고, 번역 평에 대한 예상 반론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만큼 정신적 노동의 양이 많이 생겨요. 번역 평을 쓰려면 마음 먹었다면 욕먹을 각오를 해야 됩니다... ㅎㅎㅎ
  • 2019-07-04 15:24 좋아요  l  좋아요 1
  • 곰곰생각하는발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그지같은 번역은 이미 악명이 높죠... 하, 파리대왕 보고 정말 기절하느 줄 알았습니다. 1940년대 말투의 작렬이라니...... 번역의 질 문제는 정말 많은 이들이 지적했을 텐데, 어떻게 눈 깜짝도 안 하고 뻔뻔하게 특별판이라며 책을 내는지..... 판형도 그지 같아서 마음에 안듭니다..
  • 2019-07-03 18:31 좋아요  l  좋아요 1
  • cyrus
  • 제가 가지고 있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책 중에 제본이 갈라지려고 하는 것이 있어요. 문학전집은 양장본으로 나오는 게 좋아요. ^^
  • 2019-07-04 15:27 좋아요  l  좋아요 0
  • 레삭매냐
  • 제가 개인적으로 만난 최악의 번역은
    오래 전 민음사에서 나온 <한 여름 밤의
    꿈>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나라가 배경인데 박혁거세 운운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발번역인지 정말.

    그나저나 표지갈이만 하고 번역에는 돈
    을 들이지 않았다는 것 같이 들리네요.
    언행불일치의 표본으로 보입니다.
  • 2019-07-03 21:16 좋아요  l  좋아요 3
  • cyrus
  • 헐~ 저 그 책 읽었는데 ‘박혁거세‘가 나오는 대사가 있었군요. 처음 알았어요... ^^;;
  • 2019-07-04 15:28 좋아요  l  좋아요 0
  • Falstaff
  • 그런데, 악명 높은 역자들이 너무 많은 책을 번역해서, 도무지 이이들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 진짜 비극입니다.
  • 2019-07-03 22:03 좋아요  l  좋아요 0
  • cyrus
  • 네, 오역 문제로 제대로 한 번 찍힌 번역가를 알게 되면 그 번역가가 옮긴 다른 책들까지 번역이 잘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의심부터 하게 되더라고요.. ^^;;
  • 2019-07-04 15:29 좋아요  l  좋아요 0
  • 2019-07-04 01:18
  • 비밀 댓글입니다.
  • cyrus
  • 제가 영어 독해 능력이 부족합니다. 영어 공부를 안 한지 오래 됐거든요... ㅎㅎㅎ
  • 2019-07-04 15:30 좋아요  l  좋아요 0
  • transient-guest
  • 집단행동이 아니면 회사들은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습니다. 포장만 다시 해서 ‘리커버리판‘으로 둔갑시키는군요.
  • 2019-07-04 03:17 좋아요  l  좋아요 0
  • cyrus
  • 이 문제는 민음사만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독자들이 잘 모르는, 리커버판 열풍에 가려진 그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 2019-07-04 15:31 좋아요  l  좋아요 1
  • 비연
  • 번역자가 공경희... 꽤 유명하고 번역도 많이 한 분인데 왜 이런 초보적인 실수들을 했을까 잠시 의아하네요. 저도 이 표지 보고 사려고 보관함에 두었는데 님의 글 보고 당장 내렸습니다. 사실 민음사 세게문학전집 몇 권 보면서 번역에 불편한 경우가 꽤 있었는데 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싶어 이상한 안심이 되구요 =.=;;;
  • 2019-07-04 08:31 좋아요  l  좋아요 0
  • cyrus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나온 지 시간이 많이 흘렀고, 다른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번역과 비교하면 상당히 올드한 편이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에 개정판이 나온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90년대 후반에 나온 세계문학전집 중에 새로 번역해야 될 게 몇 권 있어요.
  • 2019-07-04 15:34 좋아요  l  좋아요 0
  • 목나무
  • 적어도 특별판이라고 내놓을 거면 기존의 번역 오류는 제대로 확인하고 내놓아야 하는 게 출판인의 도리인 듯 싶은데 그저 표지만 바꾸면 혹해서 살 거라는, 독자들을 얕잡아 보는듯한 행동에 실망스럽고 화도 나네요.
    민음사 세계문학은 번역도 편집(오타 등)도 제법 거슬리는 게 많은 건 사실이라 선듯 구입하기가 꺼려지긴 하네요.
  • 2019-07-04 09:53 좋아요  l  좋아요 0
  • cyrus
  • 네, 맞습니다. 출판사도 회사이니 책을 팔아서 수익을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독자들을 기만하면서 책을 팔면 안 되죠. <호밀밭의 파수꾼> 오역 문제는 이미 십년 전부터 나왔던 얘기입니다. 저보다 훨씬 먼저 오역을 지적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출판사는 문제를 개선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하지 않았어요. 출판사가 독자들의 의견을 귀 담아 듣지 않은 셈이죠.
  • 2019-07-04 15:39 좋아요  l  좋아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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