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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yrus
  • 2019년 9월 3일 공개
나는 정말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가?
돌잔치의 꽃은 돌잡이다. 돌잡이는 첫 생일을 맞은 아기의 미래를 재미로 점치는 행사이다. 아기가 무엇을 잡았느냐가 화젯거리가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에게 실, 돈, 연필과 같은 것을 보여주고 잡게 한다. 돈을 잡으면 돈을 잘 버는 사람이 되고, 연필을 잡으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요즘은 마이크, 판사 봉, 청진기, 공(야구공, 농구공, 축구공 등)이 돌잡이 물건으로 많이 나온다. 마이크는 가수, 판사 봉은 법관, 청진기는 의사, 공은 운동선수가 된다는 의미다.

만약 돌잡이 물건으로 책이 있다면, 그것을 잡은 아기의 앞날은 어떻게 보면 좋을까? 책을 잡았으니까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책잡는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오히려 문제투성이라서 상대방에게 책잡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방금 언급한 건 말장난[주]이니까 책을 잡은 아기의 미래를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책은 연필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부모는 책을 잡은 아기가 독서를 좋아하고, 공부 잘하는 똑똑한 사람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돌잡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아기가 책이 많은 집에서 태어났다면 그 아기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집안 환경은 아기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로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책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책 읽는 행위’가 몸에 배지 않으면 책에 친숙한 사람으로 자라지 못한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책을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읽을 능력이라든가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책 읽는 뇌》라는 책을 쓴 미국의 신경심리학자 매리언 울프(Maryanne Wolf)는 애초에 인간의 뇌는 처음부터 독서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문자를 읽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행위에는 뇌 회로의 연결이 필요하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고 서서히 문명을 만드는 와중에 뇌는 기존 회로를 재편성해 문자를 인지하고 해독하는 능력을 향상해 왔다. 그러면서 ‘독서’라는 문화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울프는 독서를 ‘문화적 발명’으로 본다. 따라서 독서는 타고난 능력도, 재능도 아니다. 책 읽는 사람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은 책 읽는 사람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는 책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을 누리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 안에서 동영상 프로그램 · 영화 · 음악 등 각종 미디어를 접한다. 콘텐츠도 전에 볼 수 없었던 형식으로 바뀌고 있다. 짧은 시간에 즐길 수 있는 영상 위주의 콘텐츠가 많아지고 있다. 울프는 이러한 디지털 시대를 ‘순간 접속 시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책으로》라는 제목의 책에서 ‘뇌의 읽기 회로’가 잊히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본다. 전작 《책 읽는 뇌》에서 언급했던 ‘뇌의 읽기 회로’가 사라진다면 책을 깊이 읽고 생각하는 능력도 같이 사라진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한다면 당연히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지 않게 되며 책을 읽는다고 해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는다. 책을 좋아하는 저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녀는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장편소설 《유리알 유희》를 다시 읽은 경험을 들려주면서 그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자신의 태도를 고백한다. 다른 사람보다 책을 더 많이 읽는다는 사람도 디지털 기기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한다.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책 속에 있는 문장을 빠르게 혹은 대충 읽고 있다. 마치 스마트폰 화면에 나온 짧은 텍스트를 훑어보듯이 말이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 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으면 글을 대충 훑어보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없다. 나만큼, 그리고 나보다 더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는 애서가 동지들이여, 우리 솔직해지자. 정말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가? 종이책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뇌의 읽기 회로’가 줄어들고 있으며 그 자리에 동영상과 짧은 글을 선호하는 뇌 회로가 생겨나고 있다. 예전과 다르게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정독을 피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다시, 책으로》는 책 안 읽는 사람과 책 읽는 사람 모두에게 경고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할수록 글을 훑어보고 건너뛰는 신경회로는 강해지지만, 집중력과 성찰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매일 영상과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디지털 시대에도 깊이 있는 사고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종이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저자는 종이책 읽기를 무조건 예찬하는 과거 지향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녀는 ‘양손잡이 읽기’를 제안한다. 디지털 기기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알고, 깊이 있는 사고를 유도하는 종이책에도 눈길을 주는 것이다.

《다시, 책으로》는 나에게 초심을 다지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준 책이다. 깊이 읽기를 강조하는 저자의 단순한 메시지는 나태해진 나를 깨우는 낙숫물이다. 종이책을 대충 읽으면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고, 그 시간 동안 여러 생각들을 모아서 재편성한 것들을 한 편의 글로 정리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독서는 책을 덮으면서 끝나는 종점에서 나만의 생각이 샘솟기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이 출발점을 잊어선 안 된다.





[주] ‘책잡다’는 ‘남의 잘못을 들어 나무라다’는 뜻의 동사다.



  • 북플
  • 독서중님도 <다시, 책으로>를 재미있게 보고 리뷰를 남기셨네요. 리뷰를 읽어보시겠어요?
  • 2019-09-03 11:50 좋아요  l  좋아요 0
  • 2019-09-03 13:06
  • 비밀 댓글입니다.
  • cyrus
  •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20대가 독서 모임에 꾸준하게 참석하는 일은 드물어요. 독서모임에 호기심이 생겨서 오는 20대들은 많지만, 그들은 매번 모임에 자주 오지 않아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건데, 아무래도 요즘 20대들은 책보다는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책을 집중해서 읽고 책에 대해 토론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 2019-09-03 17:19 좋아요  l  좋아요 0
  • 2019-09-03 13:57
  • 비밀 댓글입니다.
  • cyrus
  • 그런 독서 패턴에 가끔은 질리지 않던가요? ㅎㅎㅎ 저는 책을 꼼꼼히 읽는 방식이 귀찮다고 여러 번 느낀 적이 있었거든요. 그럴 때는 정말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
  • 2019-09-03 17:23 좋아요  l  좋아요 0
  • stella.K
  • 헉, 찔리는데...?!ㅋㅋ
    습관이 무섭다고 난 완독주의였지. 비록 책을 많이 못 읽어도
    완독해야 속이 풀리지 안 그러면 찜찜하더라고.
    내가 독서에 취미가 붙었을 때 어느 명사가 완독을 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책을 읽는 거냐고 지금 생각하면 권위주의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막 강하게 어필했던 게 내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더군.
    지금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책들은 발췌독을 하던가 읽다가 포기하지만
    정말 좋은 책이다 싶은 책은 완독을 하지.
    누구는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라고도 하고.
  • 2019-09-03 15:43 좋아요  l  좋아요 0
  • cyrus
  • 저도 완독해야 할지, 아니면 발췌 독서를 해야 할지 혼자서 생각이 많아질 때가 있어요. 완독하지 않으면 찝찝함을 지울 수 없거든요. 그래도 발췌 독서를 하면 편하긴 해요. 요즘에 나오는 책들은 색인이 잘 만들어져 있어서 내가 알고 싶은 내용만 찾아서 골라 읽을 수 있어요. 하지만 색인이 아예 없는 책은 어쩔 수 없이 정독해야 돼요. ^^;;
  • 2019-09-03 17:27 좋아요  l  좋아요 0
  • 레삭매냐
  • 6월 달궁모임에서 책읽기에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제가 풀어낸 스토리가 기억이 나네요.

    책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
    지요.

    하지만 그렇게 요약된 이야기들 혹은 짤을 보다
    보면, 장편 소설 같은 스토리는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된다 뭐 그런 식의 이야기를 주장했던 것
    같습니다.

    긴 호흡으로 만나야 하는 책들이 외면 받고 있는
    상황이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아서 말입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과연
    힘들게 장편을 써도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다면
    누가 장편을 쓰려고 할지 전 그게 궁금했습니다.
  • 2019-09-03 17:30 좋아요  l  좋아요 1
  • cyrus
  • 페미니즘 독서 모임이 있는 날에 멤버들을 만나면 많이 나오는 대화 주제가 ‘영화’입니다. 저도 영화가 책보다 재미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영화를 많이 보지 않는 저는 경청만 해요. 하지만 책 얘기만 나오면 수다쟁이가 됩니다. 아, 물론 상대방을 위해서 적당하게 말합니다. 너무 많이 떠벌리면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쉽거든요. ^^;;

    긴 호흡으로 만나야 할 책들은 독자들의 외면을 받기 쉽고, 이러면 소리 소문 없이 절판될 확률이 높아요.
  • 2019-09-03 17:40 좋아요  l  좋아요 0
  • syo
  • 네임밸류가 사이러스 쯤 되니까 당당하게 ˝너 똑바로 읽고 있냐?˝ 이렇게 지를 수 있는 거지요. 호쾌하다 ㅎㅎㅎ
  • 2019-09-04 10:00 좋아요  l  좋아요 0
  • cyrus
  • 저도 책을 제대로 안 읽고 그냥 넘긴 적이 많아요. 시간이 없어서 그냥 대충 본 것도 있고, ‘이건 다 알고 있으니 훑어보고 넘어가자’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전자의 반응은 나태해서 그런거고, 후자의 반응은 오만이에요. 그래서 <다시, 책으로>을 읽으면서 저의 독서 생활에 대해서 반성했어요. ^^;;
  • 2019-09-04 12:03 좋아요  l  좋아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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