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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바쁜 것도 습관이다. 한때 나는 이 ‘바쁨’에 몸을 맡기며 존재감을 확인하곤 했던 것 같다. 입에는 바쁘다 바쁘다하며 잡생각이나 혼자만의 시간을 거부하면서 내 멋대로 사는 것에 취해 살았다. 새벽에 등산을 하고 출근을 해서 업무 중 짬짬이 공부도 하면서 서평도 쓰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무엇이라도 배웠다. 누군가가 내 안에 들어올 틈도 가족들에게 구속되거나 아줌마로서의 어떤 일도 부담을 느끼지 못하며 나에 몰입해 사는 시간들이 무척 소중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나니 노안이 왔고 시간도 나이를 먹는지 이제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가고 싶어져 조금씩 일도 줄이고 책도 줄이고 나에게 쏟던 시간을 줄여나기 시작했다. 나를 몰아대던 그 조급함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바쁘게 산다는 자체에 나를 무척 뿌듯해 했고 남들에게 대단하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 더 미친 듯 나를 몰아댔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살며 나와의 약속을 자주 잊었고 자신이 한 말을 잘 기억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를 어필하며 만나도 수십 통의 전화로 대화에 진정성이 없었다. 바뻐서인지 모든 것이 엉성하고 진중한 면이 느껴지지 않자 그 사람을 만나면 종종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고나서 돌이켜보니 내 모습도 저러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각종 모임에 임원을 하다 보니 매번 행사업무로 바빴고 그렇게 바쁜 와중에서 8년 동안 새벽 등산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지금은 한 달에 책을 5권에서 6권정도 읽고 서평을 쓰고 있지만 몇 년 전만해도 하루에 한 권씩 읽고 서평을 썼으니 정말 너무 타이트한 일상이었다. 게다가 학과공부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바쁘게 살았을 때 그 시간들을 온전히 내가 평온하고 충실함을 누렸냐고 한다면, 절대 아니다. 나는 그 바쁜 시절의 기억들을 잘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만난 사람들조차도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바빴기 때문이다. 왕성한 독서 기록이 내가 읽어 왔던 책들을 알려주고 있었고, 사람들과의 관계와 아이들의 삶에 조금씩 균열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면서 시간의 다이어트가 절실히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렇게 해서 찾아온 것이 지금의 고요이다.

혜민 스님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이 내게 무척 필요한 말들이며 많은 위로가 된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모든 말들이 내게 들어와 심작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내가 바쁨으로 떠나보냈던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바쁨으로 덜성숙한 채로 헤어지고 말았던 아쉬운 이들이, 지금처럼 조금이라도 남을 챙겨줄 수 있는 여유와 마음이 준비되어 있었더라면 절대 서운하게 떠나보내지 않았을 이들이 기억나 마음이 아팠다. 내가 바쁜 것이 행복이라 착각하며 나를 몰아대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조금은 천천히 가더라도 진한 인간미를 나누었을 것을 하는 후회들이 공허한 가슴을 채우곤 한다. 그때는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사는 게 힘들어
오늘은 걷는 것조차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걸음을 그냥 반보씩 천천히 걸어요.
천천히 걷다 보면 느껴져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걸음으로 걸으면
괜찮아진다는 사실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갔기에
지금까지 힘들었다는 것을.

혜민스님은 우리가 힘들고 지친다는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내 삶의 고요함을 잃어버리고 살아서라고 한다. 나도 바쁘게 산다는 것이 나를 지치게 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똑같은 아바타를 만나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게 되면 분명 바쁨으로 인해서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음이 보인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온전히 한다는 것은 매우 소소해보이지만 큰 행복을 가져온다. 지금이라도 잠시 멈추고 나의 고요를 들여다보게 된다면, 분명 나의 아픔이 심장 아래서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삶에는 내면의 나를 어루만져줄 시간이 간절해질 때가 오는 법이다.

나는 바꾸지 않고
세상이 내 마음에 맞게 바뀌길 원하기 때문에
삶이 고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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