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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없는 것인가, 이름을 빼앗긴 것인가.
앞선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에서 강수가 등장하며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다. 태종은 극심한 가뭄을 괴력난신의 힘을 빌어서라도 끝내고 싶어했고, 여전히 교태전을 냉랭하게 대했다. 궁에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괴이한 일들이 벌어졌다.


비가 내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왕이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서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왕이 덕이 없어 그렇다 말하고, 누군가는 계모를 홀대하는 불효를 저질렀기 때문이라 말한다. 치열한 권력 싸움 끝에 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백성들의 소리는 그를 흔들었다. 계모였던 신덕왕후에 대한 미움이 너무 커서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격하하고, 그가 묻힌 정릉을 파헤치면서까지 신덕왕후의 흔적을 지우던 왕은 비를 원했다. 강력한 왕권을 위해 한 때는 동지였던 아내를 외면하고 교태전을 냉궁으로 만들었다. 그런 왕이 비를 원했다.


강수는 자신이 기이한 인물임에도 공자의 말을 받들어 괴력난신을 논하려 하지 않았다. 사실, 공자는 괴력난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기에 현실에 좀 더 집중하고자 괴력난신을 멀리하라 한 것일 뿐이건만. 어쨌든 강수는 신녕궁주 양유와 함께 궁 안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이때 궁에서는 '행운의 서신'이 돌고 있었다. 우리도 익히 아는 바, 이 서신을 읽고 며칠 안에 몇 부 이상을 베껴서 퍼뜨리지 않으면 불행이 온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고려 시대 때도 있었다 하니, 사람의 마음을 갖고 노는 이런 장난은 아주 오래되었다고 볼 수 밖에. 이 서신이 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신녕궁주와 강수는 이유를 찾아가며 하나씩 괴이한 존재들과 마주하게 된다.


'강철'은 용이 되려 했으나 용으로 불리지 못해 강철이 된 놈이다. 하지만 원래 용이었으나 사람들이 강철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우누이는 뛰어난 인재였으나 셋째 오라비가 누이를 여우라고 말해서 여우누이가 된 것인가.


강수가 속은 것인가, 여우가 속인 것인가. 여우 스님이 보리밭을 일구고 가뭄 속에서도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한 것은 사람을 잡아먹기 위해서일까, 사람을 구하여 덕을 쌓기 위해서일까. 강수가 여우의 뜻대로 행동한 것일까, 여우의 뜻에 반한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 조선에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원'의 뜻인가. 용의 이름을 빼앗은 왕을 벌주는 것인가 아니면 궁인 100명을 죽여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려는 것일까. 사람을 죽여 비를 뿌릴 것인가, 부덕을 행하는 왕을 벌하고 승천하면서 비를 뿌릴 것인가.


"은혜를 갚지 않으면 군자라고 할 수 없지."
"그러하옵니다."
"원한이 있는데 갚지 않으면 그 또한 군자라고 할 수 없어."(pp.262-263)


성인의 말씀을 따르며 성리학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양지는 임금이 가져가고, 괴력난신이니 미신이니 구태의연한 관습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교태전으로 몰아넣어 어리석은 여인의 역할만을 맡게 하는 왕을 '원'은 어떻게 할까. 결국 비가 오지 않으면 괴로운 것은 힘 없는 백성들이니 진짜 '원'은 여우일까, 강철일까. 그토록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자부하는 왕이나 대신들은 비를 내리게 하지 못하나. 하늘의 도는 무엇인가. 사람의 바람을 들어주고 사람의 울음을 닦아주는 것은 무얼까.


여우누이의 부모는 아들 셋을 낳았으나 자신을 돌보아 줄 딸을 원했다. 살가운 딸, 자신들을 돌보아 줄 딸. 왜 아들은 부모를 돌보지 못하나. 그리하여 딸에게 밀려난 아들들은 쫓겨났다. 집 안의 가축들은 모두 간을 빼앗긴 채 죽었고, 밤에 보초를 섰던 셋째 아들은 누이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말의 힘은 무시무시해서 여우라고 불리자 누이의 모든 행동은 '여우이기 때문에'로 귀결되었다. 가축들의 간을 빼 먹은 것은 누이일까? 여우라고 불려서 여우가 된 것일까?


도깨비 집터였던 경복궁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살아간다. 사람을 찾는 게 더 빠를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궁처럼 무섭고 권력 투쟁이 난무하는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사람이 아닐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들은 사람이었으나,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일까.


여전히 비는 내릴 조짐이 보이지 않고, 교태전은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제 신녕궁주와 강수는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될까. 다음 권이 기다려진다.
그들은 한밤의 것들이었다. 비정상적이고 감성적이며 괴력난신인 괴물들이었다. 하나 그들은 고양이매의 비호 아래 있으니 한낮의 것들에게 꼭 진다고만은 할 수 없으리라.

  • 유부만두
  • 강수랑 신녕궁주 콤비가 멋졌어요.
  • 2024-04-22 10:04 좋아요  l  좋아요 1
  • 꼬마요정
  • 저두요^^ 둘이 좀 잘 어울렸어요. 신녕궁주 무예 솜씨도 무척 궁금합니다. 다음 권이 얼른 나오면 좋겠어요!!
  • 2024-04-22 10:56 좋아요  l  좋아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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