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훔친 소설가 -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책 제목에 '작가' 또는 '소설가'란 단어가 들어가 있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도 앞의 글자 보다 '소설가'란 글자 때문에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저자의 명성도 한몫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사자마자 읽어야 했는데 머뭇거렸던 건 게을러서가 주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저 '뇌를 훔친'이란 글자 때문이기도 하다. 실은 내가 과포자라서. 더구나 뇌과학이다. 무슨 소설을 읽는데 뇌과학이 필요하단 말인가.


석영중 교수에 대해선 명성만 들어오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운 좋게 EBS에서 연속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작은 체구에 조근조근 러시아 문학에 대해 들려주는데 참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는데 저자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유명했다. 우리나라의 유수한 출판번역상을 받은 건 차치하고라도 지난 2000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받았다고 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 저자가 이런 시도를 할 땐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더러 이런 연구를 하라고 한다면 멀리 도망갈 것 같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데 난 자꾸만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고만 한다. (얼마 전만 해도 키오스크는 선택이었는데 지금 웬만한 식당이나 카페에선 필수가 되었다. 이제 기계치란 말은 더 이상 통할 수 없게 되었다.ㅠ) 이게 뇌의 측면에서 보면 활동성이 둔화되고 작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뇌를 생각하면 싫어도 자꾸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그것을 막아야 한다.


과거에 뇌는 주로 정신과나 신경과에서 다뤘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오늘날은 인지심리학이나 신경생리학 등 광범위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심리학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도 한때는 심리학에 미처 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돌아섰던 건 앞서 말한 대로 과학 포기자여서인지도 모른다. (심리학은 문과지만 이과적 학문이기도 하다).


처음엔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을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예측한다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세분화하고 분석한다는 게 점점 거부감이 느껴졌다. 물론 어떤 이는 인간을 더 깊이 알아가겠지만 나는 좀 그렇지 않았다. 뭐 그런 게 아니더라도 그 알량한 지식 가지고 감히 인간을 분석하려고 하는 게 왠지 주제넘게 느껴졌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신세계를 보는 듯했다. 내가 심리학이란 학문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난 과포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 적어도 저자가 뇌과학을 통해 문학을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준 건 정말 경의를 표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책 초반에 나오는 푸시킨의 <에브게니 오네긴>에 나오는 주인공 오네긴과 그를 사랑한 타티아나의 이야기를 빗대어 저자는 뇌과학의 '거울 뉴런'을 설명한다. 특히 타티아나는 소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을 소설 속 인물과 동일시했다. 그걸 흔히 아는 말로 모방성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거울 뉴런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소설 좀 읽었다고 무슨 거울 뉴런이고 모방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괴테의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자살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하지 않는가. 놀라운 건 실연 당한 사람만이 아니라 실연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솔로도 자살을 했다고 하니 책이 주는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 싶다. 지금은 책 보다 영상으로 옮겨간듯하지만. 오래전에 '600만 불의 사나이'가 방영됐을 때 높은 곳에서 어린아이들이 떨어져 죽는 일이 있었다. 주인공처럼 자신에게도 초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그게 아니더라도 영화를 보고 모방 범죄나 폭력이 늘어났다고 하니 보는 것 거울 뉴런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이 책엔 톨스토이에 대한 일화도 나온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는 상당한 도덕 주의자며 나이 들어서도 열심히 공부한 학구파이기도 하다. 특히 인생 후기엔 종교에 심취해 신앙 서적을 많이 보았고 설교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나중엔 신학에 관한 책도 썼다.) 그 덕분에 그는 80 넘어서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장수하며 살았다. 물론 그의 최후는 객사이긴 했지만 그건 가출로 인해 체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이지 어떤 질병이 그를 잠식한 건 아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오래 장수하고 싶으면 공부하기를 멈추지 말고, 특히 외국어 공부를 하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정작 이 책에서 인상 깊게 본 건 따로 있다. 그건 프루스트다. 이 책은 주로 러시아 문학을 다루긴 했지만 이 책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안다면 프루스트의 불멸의 저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빠지면 안 될 것이다. (알다시피 프루스트는 프랑스 작가다.) 뇌과학에서 '기억'을 서사로 푸는데 이만한 작품이 또 있을까. 그래서 그 유명한 '프루스트 효과'란 이론도 나오지 않았는가.


프루스트는 병약했고 일생 기억하고 쓰는 일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꼭 그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거의 모든 작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녹여 작품을 쓴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자전을 쓴다. 경험을 말한다는 건 기억하는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어찌 보면 세상 편한 직업이면서 (펜과 종이 또는 노트북만 있으면 되니까) 동시에 불가사의한 존재들이다. 세상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글로 쓰는가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여 글을 쓰지만 한쪽에선 기억이란 정확한 것이 아니란다. 사람이 불완전한 존재인 만큼 기억도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자서전은 다 가짜라고 비판한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말만이 유일한 진실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프루스트의 책은 한낱 개고생의 끝판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발견하게 되는 건 기억이 아니라 현실과 환상을 떠도는 오기억 혹은 인출 뒤 다시금 변형되어 새로운 고착을 기다리는 '기억의 재고착'을 발견하는 거라고 했다(184p). 말이 좀 어렵다. 즉 하나의 서사로 재구성될 수 있는 상상력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가 프루스트의 작품을 대할 때 그가 얼마나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를 보려고 읽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가 불멸의 작품을 썼다는 것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오기억일지 모르지만 (뇌과학에 의한다면 이제 기억이나 추억을 말할 때 꼭 이 말을 붙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온 기억을 전부 글로 쓴다면 그 양은 책 몇백 권 분량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즉 평생을 써도 다 못 쓴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건 여전히 그의 기억의 일부를 쓴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건 그는 썼고 우리는 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작가와 독자가 나뉘는 지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랬다. 작가는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본 죄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야 하는 형벌을 받는 거라고. 그렇다면 작가는 관찰과 기억을 과다하게 쓰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또 그런 걸 생각하면 작가를 마냥 동경해도 좋을지 알 수가 없다.


기억이 작가의 것이라면 망각은 독자의 것이다. 저자는 알렉산드르 루리야란 러시아 심리학자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란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이 책은 번역된 적은 있지만 절판됐다.) 그가 단순히 기억력이 좋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그 기억이란 것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폐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망각은 확실히 축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가 작가의 작품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기억하고 있다는 건 좋은 것이 아닐 수 있다. 빨리 잊어줘야 다른 작품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잊지 못한다면 자신도 괴롭지만 작가는 다음 작품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작가는 독자가 자신의 작품을 잊었다고 서운해하거나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 독자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 작품이 좋았다면 다음 작품을 기다릴 것이고, 만약 나쁘다면 한 달 뒤 자신이 무슨 책을 가지고 이를 갈았는지 기억도 못 할 것이다. 그러니 망각은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다 좋은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흥미로운 책을 나는 왜 지금껏 읽지 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읽으면서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검색해 보느라 좀 바빴다. (사실 이건 언제부턴가 나의 습관으로 고착되어버렸다.) 특히 조나 레러의 '프루스트는 신경과 학자였다'란 책이 눈에 띄었다. (이 책 역시 아쉽게도 절판됐다. ㅠ) 하지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의 찾아서'만큼 읽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다.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조만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빙점>>은 두 번 정도 읽은 작품인데 소박한 문체도 좋지만 어떤 글을 써야할 것인가에 뭔가의 이정표를 제시해줬던 책이라고 생각한다.

<<고래>>는 동화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으로 우리나라에 이런 글을 쓰는 작가가 있었다니 스스로 놀랐던 작품이다.

<<부할>> 톨스토이는 어떠한 최상급의 수사적 표현을 쓰더라도 다 가능한 작가가 아닌가. 

<<예술가로산다는 것>> 몇년 전 읽었는데 어느새 절판이 돼서 어느 개인 중고서점에서 비싼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찌감치 사두길 잘한 것 같은데 내 방구석 어딘가에 잠자고 있을텐데 끄집어 내기가 자신이 없다.ㅠㅠ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곡 2024-04-24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활이 인생책이시군요 네 저 역시 부활도 좋아합니다...

stella.K 2024-04-24 16:47   좋아요 1 | URL
저는 역시 톨스토이가 좋더라구요.^^

페넬로페 2024-04-24 17: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빙점‘, 읽어보겠습니다~^
저도 ‘부활‘ 좋았는데 한 번씩 등장하는 톨스토이의 장황한 세계관이 조금 걸려요 ㅎㅎ

stella.K 2024-04-27 20:22   좋아요 0 | URL
사춘기 한때 미우라 아야꼬를 좋아해서 나름 꽤 읽었죠.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이 작가 때문에 일본문학도 알게되었지요. 페페님은 어떻게 느끼실지 긍금하네요.^^

페크pek0501 2024-04-25 2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빙점과 부활을 예전에 읽었습니다.
여러 서재에서 인생 네 권의 페이퍼를 보니 재밌습니다.^^

stella.K 2024-04-26 09:55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이번엔 좀 재미있는 것 같아요. 장식장에 걸 수 있게해놨잖아요. 언니도 한번 하셔야죠.^^

페크pek0501 2024-04-27 18:05   좋아요 1 | URL
언니도 한 번 하셔야죠, 라는 스텔라 님의 댓글이 떠올라 오늘 인생 네 권의 페이퍼를 작성했는데 도중에 살짝 후회했어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요.ㅋㅋ 제가 쓴 글을 옮겨와 작성할 생각이어서 쉽게 끝날 줄 알았는데, 막상 시작해 보니 고칠 부분이 눈에 띄고 사진을 올일 일도 생기고... ㅋㅋ 이젠 제가 배터리가 다 됐나 봅니다. 이 간단한 일에 쉽게 지쳐요. 예전엔 어떻게 글을 많이 올렸을까 싶네요.
배터리가 다 됐나 봐요. 안 그래도 나이듦을 요즘 새삼 느끼고 있었는데 아, 슬퍼져용..

stella.K 2024-04-27 20:22   좋아요 1 | URL
앗, 안됩니다. 다 되시다뇨. 물론 그런 때가 있어죠. 그때는 젊기도 했지만 개인 블로그가 생긴다는 게 신기해서일 겁니다. 이젠 그걸 해 온 세월만해도 20년을 헤아리니 새로울 게없죠. 저는 필사라도 해 볼까 했는데 늘 생각뿐이지 안되네요.

인생책을 네 권만 고른다는 건 역시 말도 안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알라딘이 여러번 할 수는 있지만 적립금은 한 번만 지급한다고 명시한 거겠죠. 이건 그냥 순삭으로 해야해요. ㅎㅎ

2024-04-28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28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28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28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감 2024-05-01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천명관 작품이 있을줄 알았읍니다 ㅋㅋㅋㅋㅋㅋ
빙점의 명성은 알고 있었는데 분량의 압박으로 손이 안가더라고요...

stella.K 2024-05-01 11:05   좋아요 1 | URL
제가 천명관을 픽한 걸 이리 좋아하시다닛!ㅋㅋㅋ 근데 고령화 가족까지는 좋았는데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좀 별로더군요.
빙점은 두권짜리는 좀 부담스럽고 예전에 범우사에서 문고판으로 나온게 있는데 그게 참 좋았습니다. 책은 원본으로 읽어야겠지만 축약본도 나쁘지 않는 것 같아요. ㅋㅋ

cyrus 2024-05-01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느라 알라딘 마을에 일주일 정도 안 나타났는데, 그사이에 알라딘 마을에 ‘인생 네 책’이 유행하고 있었네요. ㅎㅎㅎ

stella.K 2024-05-02 09:56   좋아요 0 | URL
너는 참가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40권이라면 모를까 4권만 어떻게 뽑니? 그지? ㅋ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동생 볼프강 모차르트에 가려진 누나 나넬의 삶을 그렸다. 음악성은 동생 못지 않았는데 시대를 잘 못 타고났다고 할 밖에. 그나마 (진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부모는 나름 나쁘지 않은 부모였다는 것. 

한때 부모를 떠나 독립적으로 살아 보려고 했지만 다시 돌아와 

스스로 자신의 음악적 자질을 접고 평범한 삶을 산다. 그 시대치곤 장수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선 볼프강의 존재 크게 나오지만 이 영화에선 한낱 소년으로 나와 묘한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영화를 보니 갑자기 비발디의 생애가 궁금해졌다. 성직자지만 그가 음악활동을 하는 걸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특별히 오페라란 장르가 그다지 환영 받지 못했다는 건 시대 탓인 건지 아니면 비발디였기 때문에 그랬던 건지 그게 좀 모호하다. 당대의 사람들은 비발디가 성직에 충실해 주길 바랐던 것고 같고.

아무튼 이 영화를 보면 귀가 호강하는 건 확실하다. 비발디의 음악을 장면 장면마다 잘 살려서 들려준다. 




작화는 요즘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확실히 떨어진다.  하지만 누가 감히 이 작품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본격적으로 독서를 하게된 계기가 바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하도 오래된 일이라 가물가물하다.) 그건 나만 그러진 않았을 것 같다. 어느 시대건 여자 아이라면 누구나 자기 도서목록에 이 책 한 권쯤 끼어있지 않을까?

20년 전쯤이었나? TV 외화시리즈로 방영되기도 했는데 거의 환호하며 봤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 작품은 '플란더스의 개'와 함께 애니메이션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재밌는 건 이번에 볼 때 난 앤 보다는 다소 무뚝뚝하고 어린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마릴라 아줌마한테 더 마음이 갔다는 것. 이거 꼭 나를 보는 것 같잖아 했다. ㅎ 

이 작품의 단점은 앤이 어린 때부터 17살(?) 때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요즘의 사춘기 17세를 생각하면 안 된다. 그 시절 17세는 이미 성인으로 진입하는 때다.) 키와 얼굴 선만 다소 성숙한 모습으로 나오고 머리 모양이나 옷 모양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것. 거의 말미에 옷이 바뀌긴 한다.

그리고 등장인물 하나 하나가 너무 지나칠 정도로 착하다는 것 앤이 학교에 처음 들어가 길버트가 앤을 홍당무라고 놀리는데 무슨 악의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는 정도. 

하다못해 앤이 학교 장학금을 받느냐 못 받느냐를 놓고도 주위에 학교 친구들은 들러리처럼 앤이 안 받으면 누가 받느냐며 옹호할뿐 뚜렸한 경쟁자가 없다. 그나마 앤을 놀렸던 길버트가 경쟁자라면 경쟁잔데 그는 장학금을 받지 않는 대신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메달을 받게 되므로 앤과 공평한 행운을 누린다. 그러니 요즘의 스토리텔링에 익숙한 아이들은 싱겁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긴 나도 바로 이점 때문에 좀 김이 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이렇게 착하게 그려도 영원한 명작으로 남을 수 있는 걸 보면 역시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생각을 했을까? 천국 가면 물어보고 싶다. 

추억이 방울방울 솟는다. ㅠ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24-04-22 06: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각해 보니 모차르트 위인전에 모차르트의 누나가 있다는 내용을 본 것 같아요.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음악이든 지금 보면 촌스럽고 무언가 부족한 점이 보여도.. 그래도 좋아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지만, 한 번쯤 생각날 때마다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좋아요. ^^

stella.K 2024-04-22 09:57   좋아요 0 | URL
난 이 영화가 있다는 걸 잊고 살다 이제야 봤다. 그래도 부모가 차별해서 키우지는 않았다는 게 다행이야.
요즘 애니는 거의 실사에 가까울 정도로 입체적이잖아. 그래도 옛 정서는 무시 못하는 거 같아. 모처럼 옛 추억에 빠져 봤다. ^^

페크pek0501 2024-04-25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많이 보셨네요. 뿌듯하시겠어요.
저는 요즘 넷플릭스 영화를 안 보게 되고 유튜브 동영상을 많이 보게 됩니다. 법륜 스님과 강신주 님의 강의 그리고 심리학 강의를 들어요. TV로 볼 수 있어 좋답니다.^^

stella.K 2024-04-26 10:00   좋아요 0 | URL
ㅎㅎ 아무래도 TV로 보면 좀 편하지 않나요? 그렇지 않아도 유튭을 tv로 볼 수 있다는데 전 아직 한번도 그렇게 안 봐봤네요. ㅎ
 

미 항공우주국 나사에선 한 연구원이 하는 프로젝트에 엄청난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실패했다고 해서 해고시키는 일도 없다고 한다. 
(다른 회사같으면 자른다고 했겠지.) 그건 그 사람이 실패를 발견하므로 
다른 사람이 하게 될지도 모르는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해주었으니 
그만큼 시간을 벌어준 셈이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어떠한가? 성공만을 얘기하고 그것에만 귀를 기울이려 한다.
이제 멋지게 실패하고 남의 실패에 귀를 기울일 줄도 알아야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페크pek0501 2024-04-15 11: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생각입니다. 인간은 시행착오 끝에 뭔가 얻어내지요.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stella.K 2024-04-15 11:51   좋아요 1 | URL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면서 실제론 실패담은 들으려고 하지 않지요. 우울하고 듣기 싫거든요. 이제 그 생각을 바꿔야 할 것같아요. 실패 배틀이 필요한 것 같아요.^^
 


몇달 전부터 내 스마트폰에 만보기앱을 설치했다. 그동안은 설치만하고 잘 보지도 않았다. 춥다는 핑계로 외출하는 날 보다 집에 있는 날이 더 많았고 외출을 해도 마트 정도 다녀오는 정돈데 스마트폰을 챙기는 게 귀찮고 자꾸 잊어버린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봄이 돼서 그런지 스트레칭 효과를 좀 보고 있어서인지 다리가 전 보다 좋아져 걷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그러다보니 내가 걷는다면 얼마를 걸을까 궁금해서 만보기에 마음이 갔다. 그런데 하루에 만보 걷기가 쉽지 않다. 외출해서 들어오면 만보기 기록을 보는데 이럴수가 하며 매번 썩소를 날린다.  

누구는 만보는 그냥 상징적인 숫자고, 최소 2300 보 내지 4천 보는 걸으라고 조언한다. 걷기의 확실한 효과를 보려면 7천 보를 걷고. 

나는 일주일치를 합쳐도 하루에 해당하는 만보에도 못 미친다. 어느 날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날도 있다. 이렇게 말하면 약간의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집에선 여간해서 스마트폰을 들고 있거나 몸에 잘 지니지 않게되니 집안에서 종종거린 발걸음은 카운팅이 안 될 것이다. 그러니 1, 2백보 정도는 더해줘야하지 않을까? 뭐 그래도 저조한 기록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요즘엔 자주 봐서 그런지 웬지 모를 승부욕 같은 것이 꿈틀 거린다. 역시 눈으로 보는 것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없는 것 같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24-04-15 06: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플 덕분에 주말에도 (억지로) 3,000보 이상을 걸어요. 주말은 거의 카페에 앉아서 책 읽고 글을 쓰는 날이라서 평일에 걷는 수보다 적은 편이에요. ^^;;

stella.K 2024-04-15 12:24   좋아요 0 | URL
네 댓글이 은근 나한테는 위로가 된다. ㅎㅎ

페넬로페 2024-04-15 07: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북플의 독보적에 하루 5000보를 정해놨는데 그 덕분에 걷게 되더라고요.
이 앱은 소모되는 칼로리가 있어 좋네요^^

stella.K 2024-04-15 12:27   좋아요 2 | URL
5천보 대단하신데요?하루나 하루 반나절이면 없애야할 칼로리를 일주일 동안 걸리는 것 같습니다.ㅠ

페크pek0501 2024-04-15 1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진작에 설치되어 제가 그날 하루 몇 보 걸었는지 매일 갱신되어요. 외출할 일이 있는 날은 4천보 이상은 걷는 것 같아요. 운동하기로 작정하고 걸으면 6천보 걷는데 8천보 걸었더니 병이 나더군요. 그래서 6천보 이상은 걷지 않기로 했어요.^^

stella.K 2024-04-15 12:31   좋아요 1 | URL
ㅎㅎ 8천보! 병나죠. 자기 몸에 맞는 걷기가 딱 좋은 것 같습니다. 4천보도 저에겐 쉽지 않습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ㅋ

transient-guest 2024-04-23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수치화해서 확인하면서 더욱 열심히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측정은
기계마다 차이가 있으니 큰 의미는 두지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면서 자꾸 보니까 도움이 되더라구요 ㅎ

stella.K 2024-04-23 21:02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transient-guest님에 비하면 영 형편없는 수치지만
모르고 하는 것 보다 알고하는 게 뭔가 승부욕이 생기더라구요.
집밖을 나가기 싫은 날은 방에서 제자리 걷기 운동만 해도 숫자가
올라가더라구요. 많이는 못하지만 숫자 올라가는 재미에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