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5일 수요일. 이덕일 소장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비판한 연재글로 인해 이소장과의 가벼운 논쟁으로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으며 뜨겁게 시작한 <권력과 인간>은, EBS 평생대학-역사 이야기 강연, 가을 고궁 답사 등으로 마지막까지 그 열기를 이어갔습니다. 총 조회수 4만 2천여 회, 댓글 수 5천 개 의 기록을 남기며 성공리에 끝난 <권력과 인간>. 12월 연재가 끝난 뒤 많은 분들이 단행본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게시판으로도, 전화로도 출간 시기를 문의주신 분들께 번번이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라고 말씀드리면서 담당 편집자로서 빨리 책을 소개하고픈 안타까움과 연재글보다 완성도 있는 책으로 소개하고픈 욕심 사이에서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때로는 장을 병합하고, 때로는 사족 같아 보이는 부분은 쳐냈고, 연재시에 있었던 사소한 오류 몇 가지를 수정하는 등 방망이 깎는 노인의 심정으로 선생님과 연재원고를 다듬어갔습니다. 각 장에 들어가는 아이콘 하나, 도판 하나도 고심 끝에 선택했습니다. 표지도 수많은 B컷을 뒤로했습니다. 곤룡포가 떠오르는, 궁궐의 이야기를 담았구나 싶어지는 붉은빛의 표지로 드디어 출간된 <권력과 인간>. 그 붉음은 왕실의 상징으로, 그리고 원고의 뜨거움의 상징처럼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아버지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임오화변은 조선시대, 아니 한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사도세자의 죽음은 <이산> <성균관 스캔들> <영원한 제국> 같은 드라마, 영화, 소설로 끊임없이 재해석, 재생산되어 일반 대중에게도 익숙한 소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어땠을까요? 2010년 <한중록>을 번역, 주석하면서 정병설 선생님은 몇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일차적인 해석도 잘못되고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논거를 토대로 학문적 가설이 아놀 수 있었을까? 어떻게 몇 명이 계속 잘못을 증폭해가며 그릇된 학설을 정착시킬 수 있었을까? 왜 학계에서는 지금껏 그것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을까?" 정병설 선생님은, 사도세자가 미쳤다 하여 영조가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광증설'과 우수한 자질을 가진 사도세자가 약소 당파를 편들다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당쟁희생설' 같은 논의가 있었으나 두 가지 설 모두 제대로 된 근거자료가 뒷받침되지 못했다고 보았습니다. <권력과 인간>은 이렇게 제대로 된 학문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그동안 오독해온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다각도로 분석하고자 한 첫 성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권력과 인간>을 통해 맹비난을 받은 이덕일 소장측에서는 정병설 선생님의 논의에 대해 혜경궁 홍씨가 자기 집안을 변명하고자 쓴 <한중록>을 토대로 하고 있으니 신뢰할 수 없다, 노론사관(식민사관)이다 등으로 반박합니다. 하지만 노론사관(식민사관)에 대한 논의는 뒤로하더라도 <권력과 인간>은 <한중록>'만'을 토대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이재난고> 등 당시의 다양한 사료를 두루 읽으며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오늘날 우리는 100퍼센트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저 남은 자료를 통해 진실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기 위해 애쓸 뿐이지요. 제대로 책을 읽지 않고,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기보다 <권력과 인간>을 찬찬히 읽어나야 하는 것 아닐까요?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사도세자의 고백>과 <권력과 인간>을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분명 흥미로운 독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책을 만들면서 두 책을 비교해서 읽어봤는데, 실록의 같은 부분이라 해도 독법이 전혀 달라 놀랐습니다. 요즘은 원문도 쉽게 열람할 수 있으니 세 텍스트를 비교해서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권력과 인간>을 통해 만나는 조선의 어둠은 분명 불편하고 아픕니다. 권력을 위해 서로 이전투구를 하고, 권력 앞에서는 부모도, 자식도, 형제도 없습니다. 아버지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고, 아버지 사도세자를 잃은 아들 정조는 아버지를 신원하기 위해 사실을 교묘히 편집해 아버지상을 새로이 만들어냅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진실은 조금씩 왜곡됩니다. 가슴답답한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사도세자의 죽음만 읽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더 밝은 역사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가슴 아프긴 하지만 이 과정을 함께 나눌 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