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에서 론다로, 론다에서 다시 그라나다로, 옛적의 비유를 쓰자면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하는 것 같은 하루였다. 낮에는 론다의 절경을 보고 저녁엔 그라나다의 야경을 보고. 그 야경은 물론 알함브라궁전의 야경이다(그라나다의 야시장과 밤거리도 도보로 둘러보았다).

알함브라궁전의 내부 투어는 내일 오전에 할 예정인데, 오후에는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 오를 터라 오늘 저녁시간이 그라나다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자 마지막 시간이었다. 그리고 과연 스페인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라는 그라나다의 명성이 허명이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23만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는 그라나다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세력의 마지막 거점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그라나다의 이슬람왕국의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국이 주도한 가톨릭세력의 레콩키스타(국토회복전쟁)가 마무리된다. 1492년의 일이다.

어제 콜럼버스(스페인어로는 콜론)의 무덤이 있는 세비야의 대성당에서도 이 시기의 역사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는데,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한 이사벨 여왕이 남편 페르난도와 함께 바로 레콩키스타를 완결지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 이사벨 여왕의 무덤이 유언에 따라 그라나다의 왕실 예배당에 마련된다(찾아보니 남편 페르난도 2세도 같은 곳에 잠들어있다). 관광도시이기 이전에 중요한 역사도시인 것.

물론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이슬람 지배하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그라나다는 알함브라궁전을 포함해 가장 많은 이슬람문명의 유적과 흔적을 갖고 있는 도시다. 하지만 (역사기행이 아닌) 문학기행의 관점에서도 그라나다는 의미가 있는데 바로 20세기 스페인 최고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고향이기 때문이다(로르카의 출생지는 그라나다 근교의 작은마을이다). 알함브라궁전 투어에 이어서 로르카 문화센터 방문이 내일의 주요 일정이다. 그렇게 일정을 소화하면 바르셀로나로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게 될 텐데, 그 공항의 이름이 로르카공항이다. 그렇게 로르카와 만나고 헤어지면서 스페인문학기행은 중반을 지나 후반부로 넘어가리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22-11-06 0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르카 문화센터가 있군요. 알함브라 궁전 꼭 죽기 전에 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다녀오신 분 말로는 해가 질 때 알함브라가 정말 절경이라고 하더라고요.

로쟈 2022-11-06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해질녘부터 야경투어가 시작됩니다.~

2022-11-24 0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론다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그라나다로 향하는 중이다. 앞서 작은마을이라고 적었는데(그렇게 소개받기도 해서) 확인해보니 인구는 3만5천 가량. 하지만 관광객들로 북적이는지라(다른 한국인 단체관광팀도 보였다) 체감으로는 작지만은 않은 도시다. 유명한 협곡과 누에보다리를 보고 헤밍웨이의 산책로를 따라 투우장 앞에 있는 헤밍웨이 동상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론다의 바깥쪽 풍광을 보면서 멋진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그라나다로 향하고 있는 것. 그라나다의 아경을 구경하는 것이 오늘의 마지막 일정이다.

스페인 작가가 아니지만 명예 스페인 시민증을 받을 만한 작가가 헤밍웨이다. 그의 대표작 <태양은 다시 떠올다>(1926)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 그리고 투우를 다룬 논픽션 <오후의 죽음>이 모두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다.

헤밍웨이 문학의 특징으로 ‘고독한 개인‘의 형상을 자주 지목하는데(‘헤밍웨이와 실존주의‘가 언급되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보면 주제적으로 가장 진화한 작품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다. 하지만 작품은 제목과 제사를 빌려온 존 던(17세기 영국시인)의 시를 잘 구현하고 있는지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 헤밍웨이의 의도(내지 명분)와 실제 사이에 간극이 있어보이는 것. 참고로 존 던의 시는 이렇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어라.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구라파는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모래톱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린다.˝

주제적으로 <누구를>을 정점으로 하고서 헤밍웨이의 문학은 수축하여 다시 <노인과 바다>(1952)에서 안정화된다. 중편(분량)이라는 형식과 고독한 개인의 인정투쟁이라는 주제에서 그의 문학은 안정감과 함께 최고의 성취에 도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편소설의 미흡함을 상쇄한다고 할까. 그렇지만 그 주제는 <누구를>에 견주에 결코 앞선다고 할 수 없다. 헤밍웨이 문학세계에 대한 짧은 강의의 결론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절반을 지난 스페인문학기행은 세비야를 떠나 론다로 향한다. 론다는 말라가주의 작은 마을인데 헤밍웨이 덕분에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헤밍웨이가 아니더라고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광으로 알려질 만한 곳.

세비야에서 론다로 가는 두시간 정도 여정에 세비야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돈후안>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대심문관‘에 대해 강의했다. 문학기행에서 강의는 주로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이나 관련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짧게는 10분, 길게는 1시간까지.

이언 와트가 <근대 개인주의 신화>에서 근대적 인간의 문학적 원형으로 제시하는 네 주인공(돈키호테, 돈후안, 파우스트, 로빈슨 크루소) 가운데 둘이 스페인문학의 주인고이다. 산술적으로는 스페인문학이 절반의 지분을 갖고 있는 셈. 이 가운데 돈후안의 가장 유명한 두 판본, 티르소 데 몰리나판(1630)과 호세 소리야판(1844)은 각각 크리스토퍼 말로의 <포스터스 박사>(1592집필, 1604발표)와 괴테의 <파우스트>(1808, 1832)에 대응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각각 르네상스적 인간과 근대적 인간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 순서는 비가역적이다.

이에 대한 설명에 이어서 ‘대심문관‘의 주제와 함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1부 1605, 2부 1615)와 도스토옙스키--<백치>(1869)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79-1880)까지--의 대응관계에 대해서 설명했다(이번 문학기행 과정에서 숙고하게 된 주제다). 덧불이자면 이렇게 확대된 구도에서 <돈후안>과 <돈키호테>는 재조명될 수 있다. 그것이 스폐인 국민문학의 틀을 넘어 세계문학의 차원에서 재평가할 수 있는, <돈후안>과 <돈키호테>의 의의다....

P.S. 사진은 어제 찾은 세비야 감옥터 앞 돈키호테 동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비야가 그렇게만 불린다면 부당하겠지만 문학적으로는 그렇다. 로시니의 오페라로 유명한 <세비야의 이발사>(이어지는 <피가로의 결혼>도 마찬가지)와 티르소 데 몰리나의 <돈 후안>(원제는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 등이 모두 세비야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다(거기에 메리메 원작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까지 더하면 세비야는 오페라의 도시이기도 하다).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씨에(세비야의 날씨답지 않다지만 지금은 기후변화의 시대다) 세비야의 도심 투어를 진행중이다. 1929년 이베리아-아메리카 엑스포가 열렸던 스페인광장에서 출발해 왕립담배공장(<카르멘>의 배경)을 지나서 레알 알카사르와 유대인지구까지. 스페인과 세비야의 역사를 더듬고 있다.

유명한 대성당을 둘러보고 세르반테스가 수감되었다는 감옥터(<돈키호테>를 착상했다는 곳이다)도 보았다. 도보 투어라 세비야는 발로도 기억하게 될 듯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22-11-04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안녕하세요. 너무 부러워 불쑥 인사드렸습니다. 안달루시아 지방 꼭 가보고 싶은 곳인데 이렇게 나마 생생한 현장 소식과 함께 사진 볼 수 있어 좋네요. 즐거운 투어되세요!

로쟈 2022-11-04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
 

스페인문학기행 3일차 일정은 작품 <돈키호테>의 고장 탐사다. 비가 잠시 흩뿌리는 마드리드를 뒤로 하고 먼저 엘 토보소로 향했다. 두시간쯤 소요되는 거리. 마드리드의 시경계를 벗어나니 예의 너른 들판이 펼쳐졌다. <돈키호테>의 독자라면 예상할 수 있지만 엘 토보소라는 작은 농촌마을의 주인공은 둘시네아다.

우락부락한 농사꾼처녀를 돈키호테는 그가 숭배하는 귀족아가씨로 변모시키고 ‘엘 토보소의 둘시네아‘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렇게하여 얼핏 ‘돈키호테의 여인‘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지만 실제 둘시네아는 <돈키호테>에 등장하지 않으며 돈키호테와의 실제 만남도 일어나지 않는다(<돈키호테>를 영화화할 때의 맹점이다). 엘 토보소에는 그 ‘둘시네아의 집‘이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박물관으로 들어서는 작은 광장에는 돈키호테와 둘시네아의 철로 된 조각상이 미리 손님을 맞이했다.

둘시네아 집은 민속박물관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정작 작품속 돈키호테나 둘시네아와의 연관성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치 둘시네아가 작품에서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대신 박물관 안쪽 마당에서 돈키호테의 세계문학사적 의의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보기엔 스페인 국민문학으로서 <돈키호테>가 갖는 의의와 세계문학으로서 의의는 같지 않기에 그 차이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했다.더불어 세르반테스에서 도스토옙스키까지의 근대소설사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엘 토보소 다음 행선지는 돈키호테가 기사 서임을 받는 여관(돈키호테는 성으로 생각하고 여관주인을 성주로 오인하지만)을 찾아 푸에르토 라피세를 찾는 것이었는데 예상치못하게도 문을 열지 않아서 문틈으로 엿볼 수 있었다. 대신 풍차의 마을 콘수에그라에서 제법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사진으로만 봤을 때보다 훨씬 근사한 풍광을 보여주었고 바람도 세게 불어서 마치 스페인의 ‘폭풍의 언덕‘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로소 돈키호테 공간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풍차마을에서 현지식으로 점심식사. 우리는 이제 세비야로 향한다. 절반쯤 와서 들른 휴게소의 이정표를 보니 마드리드가 왼편이고 코르도바가 오른편이다. 세비야는 안달루시아의 주도이자 안달루시아 여정의 첫 도시다(이어서 론다와 그라나다를 방문한다). 카스티야에서 안달루시아로. 스페인문학기행도 이제 중반으로 넘어간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11-04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