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바라 스톡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메시스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관에 주차를 할 수가 없어 이리저리 떠돌다 결국 아무 데나 차를 대고 램프의 요정을 찾았다. 그냥 아무 책이나 좀 읽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리고 한 시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읽을 그래픽노블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해서 바바라 스톡 작가의 <반 고흐>를 만나게 됐다. 후딱 읽고 나서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67쪽까지 읽가 호출이 와서 잽싸게 램프의 요정을 벗어났다. 그냥 나오기가 그래서 이탈로 칼비노의 책 한 권도 샀구나.

 

예전에 고호라고 불렀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고흐가 되었다. 어쨌든, 그래픽노블 <반 고흐>는 훗날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린 화가가 되는 네덜란드 출신 화가 빈센트(뱅상?) 반 고흐의 말년을 다루고 있다. 화상을 하는 동생 테오에 빌붙어 살던 반 고흐는 새로운 작품활동을 위한 공간을 위한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아를로 향한다.

 

이곳에서 고흐는 자그마치 200점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그리고 그의 정신건강은 그림에 몰두하는 만큼 소진되어 가기 시작한 모양이다. 문득 어떤 예술가가 지닌 천재성 혹은 마스터피스를 만들기 위한 무언가는 계속해서 생성되는 게 아니라, 퍼내고 나면 소진되어 버리고 마는 게 아닐까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전에 물감 살 돈이 없어 구질구질하게 살았던 고흐와 달리, 피카소는 평생 동안 돈 걱정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하면서 잘 먹고 잘 살지 않았던가. 그런 걸 보면 참, 인생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다. 죽은 다음에 명예와 부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고흐는 성질머리도 고약했던 모양이다. 아를에서 머물던 호텔 직원과 싸우는 건 다반사였다. 자신의 모든 걸(영혼마저도!) 그림에 갈아 넣어야 했던 고흐는 얼치기 예술가들이 희희낙락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걸 참아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엄청난 속도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시간에 따라 풍경과 색감이 바뀌는 걸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빛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력도 엿볼 수가 있다.

 

고흐는 평소에 독주인 압생트를 즐겨 마셨다고 하던데, 이 그래픽노블에서는 그런 점이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화가들이 유곽을 찾아 허송세월하는 동안에도 그는 그림 그리기에 매진했다. 그도 물론 유곽의 고객이긴 했지만 말이다. 뭐랄까 일반인들과 다른 의미에서의 수도자라고나 할까.

 

고흐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 밖에 팔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런 그의 작품 활동에 가장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은 바로 동생인 테오였다. 아마 테오가 없었다면 우리는 고흐의 그 많은 작품들을 만날 수가 없지 않았을까.

 

한편, 고흐는 아를의 새로운 거처에서 화가들을 위한 일종의 공동체를 꿈꿨다. 자기가 아는 많은 화가들을 그곳으로 초청했지만 그의 초청에 응한 사람은 유일하게 그가 존경하는 화가였던 폴 고갱 한 명이었다. 고갱에게 많은 걸 배우기도 했지만, 성정이 달랐던 두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다. 고흐가 남프랑스의 아를에서 만족했다면, 열정의 사나이 고갱은 열대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색채를 구하기 위해 마르티니크 행을 꿈꾸었다. 이런 둘의 결정적 차이는 결국 파국으로 이어졌고, 고갱은 아를을 떠나기에 이른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고흐의 종말로 가는 뇌전증에 의한 정신병이 발발하게 된다. 고갱이 떠난 뒤, 자신의 귀를 자해한 고흐의 소식을 들은 동생 테오는 파리에서 바로 형님을 찾아온다. 고흐는 환각에 시달리는 자신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자발적으로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물론 그림에 미친 사내는 그곳에서도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그의 정신 상태에 대한 부분들을 읽으면서 아니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정신이 온전치 않은 작가가 그린 그림에 대해 그렇게 열광했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해바라기>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말이다.

 

그래픽노블 <반 고흐>는 그의 비극적 최후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건너뛴다. 오로지 그림에 전념했던 화가로서의 모습에 치중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고흐는 대중에 영합하는 그림을 그릴 생각은 1도 없었다. 그의 이런 비타협적인 태도 때문에 생전에 그는 자신의 그림을 팔지 못했다.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어 창조한 그림이 타인에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 괴로웠을까? 현대의 피카소 혹은 고갱처럼 그림을 팔아 제법 돈을 만졌더라면, 고흐의 영혼은 과연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을까?

 

너튜브에서 보니 고흐의 그림에서 은 영원을 상징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그림들에서 별이 등장하면서부터 이미 고흐는 이생에 대한 미련을 포기한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상당 부분 압축되고, 생략된 그래픽노블의 이미지만으로는 위대한 예술가가 구상한 생각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나 싶다.

 

오래 전에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이미지에 도취되어, A4에 꽉 차게 그의 이미지를 인쇄해서 모으던 시절 생각이 떠올랐다. 고흐가 광인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나는 여전히 그가 그린 <해바라기>를 좋아한다. 지난주에 마지막 남은 해바라기 씨 다섯 개를 화분에 심었다. 어떤 녀석이 고개를 들지 기대가 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3-04-17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을 생략한 작가의 의도가 마음을 울리네요.

레삭매냐 2023-04-17 11:01   좋아요 1 | URL
너튜브에서 우연히 고흐의 그림
을 3D로 처리한 영상들을 보았
는데 레알 퐌타스틱~했습니다.

엔딩은 여백의 미라고나 할까요.
 
템플러 - 솔로몬의 성전에서 프리메이슨까지, 성전기사단의 모든 것
마이클 해그 지음, 이광일 옮김 / 책과함께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근 한 달 걸려서 십자군 원정기에 팔레스타인에서 결성된 성전 기사단에 대한 서사를 다룬 마이클 해그의 <템플러>를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산 게 7년 전이라는 사실은 안비밀이다.

 

그동안 다양한 종류의 십자군 원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섭렵해서 그런지 출발은 좋았다. 고대 이스라엘의 솔로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또 무슬림의 기원까지 다루면서 중근동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분쟁의 단초를 마이클 해그는 독자에게 잘 전달해 준다. 무슬림이 발흥하고 나서, 수백 년 동안 큰 무리 없이 이어지는 기독교인들의 성지 예루살렘 순례를 이슬람 지도자들이 막아서면서 서방 기독교 세계에서는 성지 탈환이라는 소위 십자군 운동의 전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잘 알려진 대로 교황 우르반 2세의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라는 말로 시작된 십자군 전쟁에 내로라하는 서방의 기사들과 다수의 민중들이 참여하면서 1099년 예루살렘이 기독교도들이 손에 떨어졌다. 뒤이은 숱한 양민들의 학살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과연 신이 그것을 원하셨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십자군 원정의 초기단계에서이 성공은 이슬람 세력의 분열도 한몫했다. 이집트의 카이로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양분된 이슬람 세계는 베르세르크급의 기독교 전사들을 우트르메르에서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다.

 

장기와 누레딘 그리고 살라흐 앗딘의 등장으로 드디어 이슬람 세계가 통일되고, 그들에게 역시 성지였던 예루살렘 혹은 그들은 알쿠드스라 부르는 성지탈환을 위한 지하드가 개시되면서 기독교도들이 지배하던 우트르메르에 위기가 닥쳐오게 됐다. 이에 불신자들의 무리로부터 성지 수호를 위해 성전 기사단이 창설되기에 이르렀다. 소위 템플러라 불리는 성전 기사단의 목적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성지 예루살렘을 목숨을 바쳐 지키자. 엘리트 군사 집단으로 구성된 수도자인 동시에 뚜렷한 목적 의식을 지닌 전사들이었다.

 

문제는 살라흐 앗 딘이 이끄는 통합 무슬림 세력의 매서운 파도가 템플러들이 지닌 각오와 전의 그 이상이었다는 점이다. 서방과 달리 우트르메르에서 병력 증강은 요원했다. 물자 역시 서방의 지원에 많은 부분을 의존해야만 했다. 서방 기독교 왕국에서 성전 기사단의 대의에 동참하는 많은 이들이 인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물적으로 부유해진 기사단의 자산을 훗날 역설적으로 그들이 파멸하게 되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된다.

 

하틴 전투에서 우트르메르 기독교 세력이 살라흐 앗 딘에게 궤멸적인 패배를 당하고, 뒤이어 88년 만에 성지 예루살렘마저 무슬림들에게 빼앗기게 되면서 성전 기사단은 위기를 맞게 된다. 물론 성지를 빼앗긴 책임을 모두 성전 기사단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모든 일들이 그렇듯 항상 일이 이성적으로만 전개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지중해 연안의 아크레(오늘날의 아코)로 기사단 본부를 옮기고 이집트 맘루크 왕조에게 우트르메르의 마지막 기독교 세력이 말소되는 1291년까지 근 1세기 가량을 버티었지만 모든 기독교인들을 팔레스타인에서 죽이겠다는 무시무시한 무슬림 세력의 도전 앞에 중과부적이었을 따름이다.

 

<템플러>의 저자 마이크 해그는 성전 기사단이 맹활약을 펼쳤던 방어전에서 소수의 거점에 난공불락의 요새들을 건설하고 맹렬하게 불신자들에 맞서 싸운 성전 기사단의 활약상 묘사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병력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수의 전사들로 엄청난 수의 무슬림 전사들을 상대해야 했던 성전 기사단의 전투력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점과 선의 확보만으로는 적진에서 저항 거점의 유지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살라흐 앗 딘에 맞선 사자심왕 리처드가 예루살렘 수복을 눈앞에 두고서, 예루살렘의 배후지를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지 탈환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물러서는 장면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십자군 전쟁 초기, 유리한 상황에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쳐서 확보해 두었다면 우트르메르가 좀 더 유지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 그리고 성지 수복에 앞서 이집트와의 고리를 떼어 놓아야 한다는 전략은 좋았지만, 이집트 술탄의 역습으로 숱한 성전 기사단 전사들이 학살당하고 십자군 전쟁이 종언을 가져온 사실에 대한 지적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13세기 초, 프랑스에서 알비 십자군이 결성되어 카타리파 이단을 섬멸했다. 끝까지 저항하던 이단들을 모두 화형에 처했다. 교황에게 공식 인가를 받고 국가와 상관없이 독자적인 무장과 자산을 지니고 성지 수호라는 대의명분 아래 활약하고 있던 성전 기사단의 어두운 미래에 대한 하나의 징조가 아니었을까.

 

중세 은행이 부재하던 시기에 성전 기사단은 금융과 무역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 주었다. 각지에서 답지하는 후원 자금을 관리하고, 성지에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서방으로부터 우트르메르로 수입업을 맡기도 했다. 한 때, 성전 기사단이 실질적으로 프랑스 재무부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십자군의 이집트 원정 당시 무슬림에게 포로가 된 프랑스 국왕에 대한 몸값 지불을 거절하기도 했다고 하던데, 혹시 이때부터 프랑스 왕들이 성전 기사단에 앙심을 품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성지 실지로 위상이 급격하게 추락하기 시작한 성전 기사단은 결국 카페 왕조 출신의 필리프 4세의 음모에 의해 와해되기에 이르렀다. 13071013, 필리프 4세는 성전 기사단의 단장 자크 드 몰레와 나머지 기사들에게 이단 혐의를 씌워 모조리 체포했다. 당시 필리프 4세의 수중에 있던 교황 클레멘스 5세의 성전 기사단 구명에도 불구하고 단장 자크 드 몰레가 화형에 처해지게 되면서 화려했던 성전 기사단 활동은 끝이 났다.

 

이젠 거의 신화가 된 성전 기사단의 비밀주의 덕분에 후세에 그 유명한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비롯한 사이비역사 및 소설들이 범람하게 되었다는 지적이 가장 흥미로웠다. 음모론 신봉자들에게는 아무리 사료에 근거한 이야기들을 해도 그들이 듣지 않는다는 점 역시나 탈진실 시대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2001년 바티칸 서고에서 발견 <시농 양피지>의 존재다. 사실 성전 기사단에 대한 모든 저서들은 이를 기점으로 다시 쓰여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문서가 아닐 수 없다. 교황 클레멘스 5세가 성전 기사단원들이 재판에 회부되기 이전에 이미 이들에게 씌워진 이단혐의가 무죄라는 점과 이들을 사면 복권했다는 점이 <시농 양피지> 기록을 통해 드러났다. 당시 서유럽 각국에서 민족주의가 발흥되던 시기에, 세계주의자들이었던 성전 기사단의 존재와 자산에 눈독 들인 필리프 4세가 벌인 자작극이었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다.

 

성전 기사단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던 프랑스에서 성전 기사단이 비참한 최후를 맞은 뒤, 잔존 성전 기사단원들은 잉글랜드와 에스파냐/포르투갈에서는 비교적 나은 대우를 받았다. 동방의 예루살렘에서 성지 회복이라는 기치 아래 싸웠다면 서방에서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슬림을 몰아내기 위한 레콩키스타 무대에서 성전 기사단은 가공할 전투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 다음에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무대를 옮겨 프리메이슨 조직으로 변신했다는 사이비역사 음모론도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역사에서 호사가들과 음모론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바로 성전 기사단의 화려했지만 비참한 최후의 서사가 아니었나 싶다.

 

나중에 소설과 영화 장르에서도 성전 기사단의 서사는 무한반복된다. 특히, 인디애너 존스 시리즈 3탄인 <최후의 성전>에는 성배를 지키는 800살 먹은 성전 기사단원의 등장이 기억을 소환해냈다. 나치는 금으로 만든 화려한 성배를 들었다가 바로 죽었고, 우리의 히어로 인디애너 존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목수였다는 점에 착안해서 허름한 나무로 만든 성배로 죽어가는 아버지 헨리 존스를 살려내는데 성공한다.

 

근 한 달 걸려서 드디어 다 읽었다. 십자군 전쟁에 대해 내가 모르고 있던 사실들과 성전 기사단의 전체 모습에 대한 고찰이 마음에 들었다. 뭐 이런 재미에 계속해서 책을 읽는 게 아니겠는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3-04-12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로 기사단에 대한 내용을 접했는데 기독교, 이슬람 등 종교가 과연 무엇인지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십자군 원정의 첫 목적도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재미로 읽기에는 좋았던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3-04-12 11:46   좋아요 1 | URL
시오노 할머니의 ‘게스타이‘는
어린 시절에 죽어라 읽었답니다.

저도 십자군 이야기도 읽었구요.

나중에 극우 본색을 들어낸 다음
에는 싹 손절했습니다.

책들을 읽으면서도 쫌 이상하다
싶었는데, 결국은 사고를 치더군
요.

종교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데
그 종교를 가지고 무언가 하겠
다고 나선 이들이 문제라고 생각
합니다.

새파랑 2023-04-12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템플러 하니까 하이 템플러 다크 템플러 이런게 떠오르네요 ㅡㅡ
전 역사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잘 안가지던데 역시 레삭매냐님의 독서 범위는 십자군 원정처럼 광범위 하십니다~!!

레삭매냐 2023-04-12 16:50   좋아요 1 | URL
오옷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
다크 템플러의 유래가 성전
기사단에서 ~~~ 놀라운 연결
점이 아닐 수 없네요.

저자에 따르면 훗날 템플러
에 대해 어두운 이미지가
덧씌워졌다고 하는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역사도 좋아하는 종목이라
열심히 읽으려고 한답니다.

얄라알라 2023-04-16 0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7년 숙성해두셨다가 1달 동안 꼭꼭 씹어서 드셨으니 굉장한 보양식이 되실 듯!

레삭매냐 2023-04-16 17:46   좋아요 1 | URL
산 책은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읽는다!는 모토 대로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
 
반란의 멕시코 - 존 리드, 멕시코혁명을 기록하다
존 리드 지음, 박소현 옮김 / 오월의봄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노래가 있다. 멕시코 민요라는 <라쿠카라차>. “병정들이 전진한다, 이 마을 저 마을 지나~” 참 많이도 불렀다. 그런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파라과이 살던 스페인어를 할 줄 알던 아는 누나가 라쿠카라차가 무슨 뜻인지 아냐고 물었다. 당연히 몰랐고 뜻을 물었더니 바퀴벌레라고 했다. 믿어지지가 않아서 찾아 보니 바퀴벌레가 맞았다. 그리고 더 나중에 이 노래에 멕시코 혁명의 전설적인 영웅 판초 비야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번안된 노래에 판초 비야의 이름은 없었다.

 

러시아 혁명을 르포르타주로 다룬 전설적인 저널리스트 존 리드(이하 후안 리드로 부르겠다)가 앞서 이름을 날리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책인 <반란의 멕시코>였다. 멕시코의 현대화에 일부 공헌도 했지만, 30년에 걸친 장기통치로 결국 독재자로 변신한 포르피리오 디아스에 대항해서 멕시코 민중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켜 정권을 뒤집어엎었다. 후임 대통령으로 선출된 프란시스코 마데로는 보수주의자들과 기득권층에 포위되어 민중들이 원하는 적극적인 개혁을 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빅토리아노 우에르타의 반혁명이 발생하면서 마데로 대통령은 암살당하고, 해산했던 민중 혁명군이 다시 우에르타 정부군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이게 1914, 그러니까 우리의 후안 리드가 멕시코 북부에 침투한 시점의 이야기다.

 

<반란의 멕시코>를 읽기에 앞서 시간을 들여 러시아 혁명에 앞선 20세기 최초의 민중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멕시코 혁명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한 나라의 현대사를 주마간산식으로 공부한다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몇 편의 논문들과 너튜브(특히 정성태 교수님의 콘텐츠가 도움이 되었다)로 멕시코 혁명에 대해 얄팍하나마 지식을 쌓고, <반란의 멕시코>를 읽기 시작했다. 읽는데 한달 정도 걸린 건 다른 책에 대한 외도도 있었지만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멕시코 혁명은 러시아 혁명 같은 이데올로기가 우선한 혁명이 아니었다. 전 국토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대지주들의 횡포에 맞선 다수 민중들이 앞장서서 싸운 혁명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층은 자신들이 가진 것과 권력을 순순히 내려놓지 않는다. 그래서 헌정군이라 불리는 멕시코 반란군(?)들은 정당성이 결여된 우에르타 연방군에 맞서 변변치 않은 무기로 무장한 채 투쟁에 나섰다.

 

헌정군에 소속된 전사들과 동행하면서 후안 리드는 그들의 내면을 관찰했다. 사실 처음에 미국인 후안 리드는 그링고 스파이라는 의심도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미국인이라는 후안 리드의 정체성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게다가 멕시코 민중들이 가진 반미감정은 수위가 높았다. 이미 전쟁으로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애리조나 그리고 텍사스에 이르는 방대한 자국의 영토를 빼앗기지 않았던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멕시코 내정에 개입하는 모습도 민중들에게는 불만의 원천이었다.

 

어쨌든 헌정군과 함께 연방군과 콜로라도 민병대에 맞선 최전선을 달리면서 후안 리드는 멕시코 반군들의 심리 상태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들은 아시엔다에서 반노예 상태로 일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토지를 원했지만, 기존의 시스템 아래서 그것은 미션 임파서블한 판타지였다. 그래서 세상을 뒤집어엎어야 했고, 판초 비야의 북부군과 에밀리나오 사파타의 남부군에 들어가 먹고 살기 위해 무력투쟁에 나섰다. 멕시코 혁명은 소위 먹물들을 위한 정치투쟁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싸움이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과 희생이 뒤따른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 싸움의 결과는 뻔했다.

 

후안 리드는 멕시코 민중군의 입을 빌려 지식인들이 혁명의 과정에서 지도자 반열에 오를 순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지적한다. 자고로 잃을 게 많은 이들은 위기의 순간에 슬쩍 발을 빼기 마련이다. 잃을 게 없는 이들이야말로 끝까지 투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이야기들을 지난달 달궁 독서모임에서 책동지들과 함께 나눈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후안 리드는 북부군의 사령관 판초 비야를 직접 만난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말한다. 멕시코 혁명에서 그의 활약은 그야말로 전설 그 자체였다. 신출귀몰한 전술 전략으로 비야가 이끄는 헌정군은 압도적인 병력과 무장을 갖춘 연방군을 패퇴시켰다. 물론 콜로라도 민병대의 기습으로 전초기지에 머물던 헌정군과 우리의 후안 리드도 목숨을 잃을 뻔 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도주하는데 성공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반란의 멕시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그것은 마치 스타워즈의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와 반란군들이 <제국의 역습>에서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지만 결국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된다는 서사가 연상되기도 했다. 비야가 이끄는 헌정군 역시 토레온 격전을 통해 두 번째 혁명을 성공시키는 계기를 가져오게 되지 않았던가.

 

후안 리드는 또다른 문제적 인간 베누스티아노 카란사와의 만남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겼다. 상당히 귀족적 취향의 카란사는 많은 피를 흘린 멕시코 혁명의 최고 수혜자가 아닐까 싶다. 혁명의 지도자랍시고 거드름 피우는 꼴은 정말 보기 싫을 정도였다. 판초 비야는 투박하고 잔혹스러운 점도 없지 않지만, 민중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만 카란사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지도자의 면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에 나서는 혁명의 투사들이었지만, 전투가 끝나고 나서 휴식시간에는 밤새도록 춤을 추고 또는 토레온 전투가 끝나고 나서 카지노에 몰려와서 얼마 안되는 돈으로 도박을 즐기는 장면에서는 역시 그들도 보통의 대중들과 다를 게 없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명민한 저널리스트 후안 리드는 민중의 틈에서 언론의 중립적인 자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사건 사고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모름지기 언론인이란 이런 게 아닐까. 진실을 전달하는 역할 말이다. 왜 자신들이 플레이어가 돼서 사실을 왜곡하고, 조종하거나 판단하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반란의 멕시코>를 읽으면서 방대한 멕시코 혁명의 한 자락 정도를 맛본 느낌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멕시코 혁명 전반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혁명투쟁에 나선 민중들의 솔직한 심정에 대해서도 후안 리드는 정확한 필치로 그려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정선태 교수님의 강좌를 통해 멕시코 혁명에 직접 참가했던 의사 출신 혁명가 마리아노 아수엘라의 <천민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무려 35년 전에 나온 책이라 구할 수가 없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한 세기 전, 혁명의 최전선에서 귀중한 기록을 남긴 후안 리드에게 경의를 표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3-04-07 2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지만 멕시코의 역사도 파란만장하지 않았나 싶어요.
멕시코혁명이 러시아혁명 전에 일어난 사건이군요~~
역사를 다룬 책도 많이 읽어야하는데 매번 시간부족만을 핑계로 대고 있습니다 ㅠㅠ

레삭매냐 2023-04-08 10:01   좋아요 2 | URL
메히코의 역사도 우리의 그것
만큼 파란만장하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제국의 4백년에 걸친
지배 그리고 독립, 전쟁, 혁명
까지 아주 버라이어티했지요.

전 요즘 성전기사단의 이야기
인 <템플러>를 읽고 있답니다.

서니데이 2023-04-07 2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라 쿠카라차는 처음에 악보로 보고 알게 된 건데, 스페인에서 온 노래라고 하더라구요.
그게 바퀴벌레였어? 했던 생각이 나는 걸 보니, 나중에 알게 된 것 같긴 해요.
멕시코도 근대사를 찾아보면 여러 사건들 많을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세계대전이 2번이나 있었던 지난 세기였으니, 아무일 없던 나라는 없었을지도요.
잘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좋은 하루 되세요.^^

레삭매냐 2023-04-08 10:02   좋아요 2 | URL
흥겨운 노래 자락과 달리
혁명 영웅의 이름이 들어
가 있다는 점에 저는 더욱
놀랐답니다.

메히코 작가들의 책들을
제법 모아 두기는 했는데
게으름 덕분에 읽지는 못
하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3-04-09 2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아침 기온이 낮지만, 낮에는 따뜻한 날씨입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시고, 좋은 밤 되세요.^^

레삭매냐 2023-04-10 09:03   좋아요 1 | URL
저도 아침에 추운 줄 알았는데
낮에는 또 덥더군요 :>

활기찬 한 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달에 30일 걸려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었다. 물론 30일 동안 내내 이 책만 잡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 사이에 무려 15권이나 되는 책을 읽었으니까 말이다. 시간과 기회가 될 때마다 소세키 작가의 책들을 사들이긴 했는데 정작 읽은 건 몇 권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달에 한 권씩이라도 소세키 읽기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4월에는 <갱부>를 읽는다.

 

다른 책들에서도 그랬지만 소세키 작가의 책에는 무언가 이렇다 할만한 그리고 자극적인 서사가 펼쳐지지 않는다. 요즘 워낙 그런 부류의 책들이 넘쳐나서 그런 걸까? 왠지 심심한 맛이 난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이번에 만난 <마음>도 그랬다.

 

도쿄 제대에 다니는 화자 는 시골 출신이다. 책이 발표된 해는 1914년으로,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로 메이지 유신 이래 탈아입구라는 모토를 이루었다고 착각할 만한 그런 시기였다. 물론 내부 모순들을 해결하지 못해 혼란스러운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보니 소설의 어느 부분에서 메이지 국왕이 죽었다는 뉴스가 나오지 않았던가. 고향의 아버지 병세와 맞물리는 그런 시점이 기억난다.

 

대개의 경우 리뷰는 시간/서사의 흐름에 따라 기술하는 게 보통인데, 이번에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써보고 싶다. 일본 최고 대학에 다니는 나는 어느 해 여름, 가마쿠라의 휴양지에서 중년 남성 나중에 선생님이라 부르는 한량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를 따르며 선생님이라 부르게 된다. 무언가 비밀을 품고 있는 이 양반과의 만남은 스릴과 미스터리 두 가지를 모두 청년 화자에게 준다.

 

자식도 없이 그리고 마땅하게 하는 일도 없이 작고하신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산으로 먹고 사는 선생님이 지닌 특징 두 가지는 우울함과 무력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반복해서 읽다 덮다를 반복했다. 화자와 선생님이라는 캐릭터에 좀처럼 몰입할 수가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선생님처럼 화자 역시 당시 청년들처럼 졸업하고 나면 야심을 품고 무언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냥 되는 대로 하루하루를 사는 인생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막연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정작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어쩌면 청년 시절의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외면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되고 싶지도, 그렇다고 해서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이런 화자에게 선생님은 딱 안성맞춤의 짝꿍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 와중에도 청년 화자는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졸업 논문을 부지런히 준비하고, 또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일자리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제국군의 일원으로 아시아 정복이라는 황당무계한 야심을 키우고 있던 일단의 청년 장교들과는 정말 결이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독자들을 궁금하게 만들던 선생님이 자주 찾던 묘지 미스터리는 세 번째 이야기에서 선생님이 남긴 유서로 풀리게 된다. 뭐랄까 느릿느릿 굴러가던 서사가 막판에 가서 거의 산꼭대기에서 굴린 눈덩이 같은 무게로 독자들을 강타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화자와 선생님의 관계의 밸런스가 맞지 않았던 것처럼 서사의 갑작스러운 해소 역시 기대와 달랐다. 그 뒤에 찾아오는 스산함과 무력감은 더 말할 것도 없었고.

 

화자와 선생님의 관계 속에서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마음들은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궁금해졌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을 적에는 상대방에 대한 나의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얼마나 애달파 했던가.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과연 그렇게 했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안되면 안 되는 대로 그리고 되면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게 속은 편하지 않을까.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런 감정의 고개를 넘어야 비로소 서로의 마음을 나누게 되는 건 또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걸 적당한 거리라고 해야 할까? 상대방의 어느 지점에서 마음의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면 그 이상의 관계로 넘어가는 게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래서 대개의 경우 똑똑마음의 문을 두드려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마음을 접고 회군하여 그저 그렇고 관계가 되고 만다. 이래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쉽지 않다고 하나 보다.

 

다음에는 나의 성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화자나 선생님에 비추어 볼 때 과연 나는 그 시절보다 성장했을까? 아마 누군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겠지. 그런데 실제는 거기서 한 두 단계 정도는 빼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을 주고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나는 성장하게 되고, 나라는 인격을 만들게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3월에 <마음>을 읽다 말다 하면서 달을 넘기지 않고 다 읽는데 성공했다. 내가 소세키 작가의 이 책을 쓴 마음을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소세키 읽기 프로젝트를 일단 시작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만족하다고 자평하고 싶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3-04-03 14: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전집 중 7권 정도 읽다 멈춘 상태인데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심심한 맛도 나고 주인공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는 뭔가 좀 어정쩡한 상태인데 그래도 전작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프로젝트를 언제 다시 시작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레삭매냐님의 프로젝트, 응원합니다^^

레삭매냐 2023-04-03 16:33   좋아요 2 | URL
저자의 후기를 보니
작가 자신도 영국 유학 다녀와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은...

암튼 저에게는 쉽지 않은 작가라
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읽어 볼랍니다.

얄라알라 2023-04-05 09:00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은 7권..레삭매냐님께서는 한달 한 권 프로젝트!

전 아직 소세키 입문 전이라
리뷰와 댓글 읽으며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전집에 도전하게 하는 매력이 과연 무엇일지 상상하는^^

stella.K 2023-04-03 16: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두번 정도 시도했다 멈춘 상탠데
심심한 게 이 사람 작품의 전반적 특징인가 보내요.
자꾸 읽다보면 심심한 것에도 맛이 느껴질텐데…
암튼 저도 프로젝트 응원합니다.

레삭매냐 2023-04-03 16:34   좋아요 2 | URL
전 <고양이> 두 번인가 세 번
도전해서 결국 다 읽지 못했다는.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 생각
이 나네요. 그래도 그 책은 다 읽
었는데 -

심심한 게 소세키 선생의 특기일
지도요. 응원,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3-04-03 1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의 100년 전의 일인데,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드는 건, 작가 이름을 자주 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잘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좋은 하루 되세요.^^

레삭매냐 2023-04-03 22:13   좋아요 1 | URL
예전에 일본 지폐에도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천 엔 짜리 지폐 한 장 가
지고 있어서 확인해 보니
나쓰메 소세키 선생이 아니라
노구치 히데오였네요 ㅠ

아사히 신문 선정 지난 일본
지난 천 년 최고의 문인이라는...
그렇다면 천년작가인가 보네요.

그레이스 2023-04-03 19: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읽기 프로젝트 중이신군요?
응원합니다.
마음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심심하긴 하죠?
그래도 뒷부분의 결말때문에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던 듯 합니다.^^

레삭매냐 2023-04-03 22:14   좋아요 1 | URL
그렇다고 전작 하기에는
좀 그렇고... 한 달에 한 권
읽기 프로젝트라고나 할까
요. 과연 일년 내내 유지할
진 모르겠지만요.

엔딩이 참 그랬습니다 -
우울과 무력감...

새파랑 2023-04-04 08: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작품이 좀 심심하긴 한데 그게 소세키만의 매력인거 같아요. 그래서 안질리고 더 오래읽히는거 같기도~!!

레삭매냐 2023-04-04 09:47   좋아요 0 | URL
소세키 선생의 책을 읽다
보니 슴슴한 맛이 매력이
라는 말쌈이 이해가 됩니다.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얄라알라 2023-04-05 09:01   좋아요 1 | URL
심심 + 슴슴
no 캐미컬!
그러한 매력이군요!^^

자목련 2023-04-04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심한 맛, 그거였어요. <태풍>, <산시로>, 레삭매냐 님이 읽은 <마음>까지 선생님이 꾸준하게 등장하네요. 대학, 공부, 지식인, 그리고 방황하는 삶, 비슷한 구도일까 싶기도 하고요. 소세키 읽기 프로젝트 응원합니다!

레삭매냐 2023-04-04 11:48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
선생님이야말로 소세키 작가의 책
을 읽는 하나의 키워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풀베개>, <그후> 그리고 <문>
등등이 대기 중이랍니다. 열심히
읽어 보겠습니다.

transient-guest 2023-04-06 14: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세키를 아주 좋아합니다 덕분에 일본 군대문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네요 ㅎ 전집을 하나씩 읽던 기억이 나네요

레삭매냐 2023-04-08 10:00   좋아요 1 | URL
그러시군요.

전 주로 현암사 버전을 선호하
는데, 하나둘씩 모으는 재미가
있더라구요.

물론 읽지는 않았지만요 ㅋㅋ
책쟁이가 다 그렇지요.

transient-guest 2023-04-08 13:17   좋아요 1 | URL
저도 현암사 전집 갖고 있어요 ㅎㅎ
 
열병의 나날들 -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코로나 시대의 한국
안드레스 솔라노 지음, 이수정 옮김 / 시공사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3년 간 전무후무한 그런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렀다. 아니 그전에 이미 전세계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이 있었던가. 하지만 이번에는 그 전과 달리 엄청난 속도의 파급력을 자랑하는 신종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모든 이들이 공포에 떨지 않았던가. 우리 삶의 양태를 바꾼 것은 물론이고. 문제는 앞으로 더 쎈 녀석들이 등장할 거라는 아포칼립스적인 예언이다.

 

어쨌든 우리는 바이러스의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았고, 하루의 일상을 여느 때처럼 보내고 있다. 지난 3년이란 시간이 공포에 떨던 시절에 대한 기억을 무감각하게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 것도 아닌 보통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지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다시 되짚어 보게 되었다. 콜롬비아 출신으로 그 시절을 글로 풀어낸 안드레스 솔라노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래도 같은 사회에 속해 있다 보면 대상을 객관화시키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방인의 시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언론이나 미디어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아마 누구나 처음에 코로나가 이렇게 사회에 치명적인 재앙이 될 줄 미처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재앙으로부터 벗어나는데 3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절에 나도 생각한 거였는데, 이렇게 장기적으로 끌 게 아니라 한 이주 정도 모든 것을 스톱시키는 게 차라리 낫지 않나 싶었다. 사실 기나긴 격리와 발병 그리고 세컨드 웨이브라는 고통의 시간이 계속될 줄 알았다면 전면적인 봉쇄가 해답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모든 건 지나간 다음의 후회와 미련 일지도 모르겠다.

 

몇몇 슈퍼 전파자들의 이기적이고 상식에 벗어난 행동으로 결국 코로나는 지역에 국한된 질병이 아닌 전국적인 더 나아가 전 세계적인 재앙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국가는 거의 전쟁 상태에 육박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면전에 나섰다. 개발독재 시대 이래 계속되어온 국가 통제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서인지 코로나 발발 초기, 동선을 파악하는데 굉장히 효율(?)적인 시스템을 가동할 수가 있었다. 물론 나중에 엄청난 수의 확진자들이 발생하면서 그런 초동 대응이 의미가 없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초기에 대구를 중심으로 신천지 교인들 사이에서 코로나가 폭발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니 코로나 초기, 해외로 통하는 문을 걸어 잠그라는 주문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코로나의 발원지로 알려진 우한, 중국에 대해서. 그나마 솔라노 작가는 우리에게 국민건강보험이라는 든든한 무기가 있어서 다행이었노라고 증언한다.

 

이단 사이비들이 유난히 한국에 많다는 점에 대해서도 작가는 예리하게 지적한다. 자신이 스스로 영생불사의 신이라고 주장하는 자칭 교주들이 자그마치 50여명 정도 된다고 했던가. 그런 이들을 모아서 <나는 예수다>라는 진짜 신을 가리는 서바이벌 오디션을 개최해야 한다는 유머가 최근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나는 신이다>라는 프로그램으로 기억에서 소환되기도 했다. 도저히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현실 세계에서 역시나 부인할 수 없는 존재들이 아닌가.

 

솔라노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나의 코로나 시절은 어땠나 하고 그 시절을 떠올려 본다. 좀 답답하기는 했지만 결국 그 시기도 무사히 넘길 수가 있었다. 역시 혼자서 즐길 수 있었던 독서가 큰 도움이 되었다. 누구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시간 보내기에 책읽기만한 게 있었던가. 물론 나도 결국 코로나에 걸려서 고생했다.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잘 버티다가 지난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걸렸는데, 열이 나거나 많이 아팠던 아니고 더운데 계속해서 땀이 줄줄 나서 방안에 갇힌 상태로 격리하는 게 너무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전에 맞은 두 차례의 백신 접종 때문이었다고 해야 할까.

 

저자는 이방인답게 코로나의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외국인에게 손가락질하고 싶은 혐오의 감정들 그리고 책임전가 같은 다수의 비이성적인 태도들에 대해서도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아마 우리가 그네들의 나라에 가서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아마 그랬을 때, 나는 그들이 나에게 보내는 그럼 혐오 섞인 시선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맞서 싸우기보다 내부로 움츠러들지 않았을까.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라고 조용히 주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던 코로나는 이제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다. 아직 치료제가 나오지 않아서 걱정이긴 하지만, 최악의 위기는 어느 진정된 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앞으로 등장할 더 쎈 녀석들에 대한 경고다. 앞으로 남은 생에 그런 녀석과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3-03-31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뉴스에서, 앞으로 격리기간이 5일로 단축되고, 그리고 조금 더 있으면 격리기간이 없어질 것 같더라구요.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확진자가 되면서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몇년간 힘든 시기가 길었는데, 이제는 코로나19의 시기가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잘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레삭매냐 2023-04-01 10:56   좋아요 1 | URL
앞으로 그럴 예정이라고 하네요.

아마 봄이 와서 더 사람들이 나
들이에 나서게 되면서 격리 해제
혹은 마스크 쓰기도 완화되지 않
을까 싶습니다.

오늘 날이 좋네요.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