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눈잡이 아침달 시집 25
이훤 지음 / 아침달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가이자 시인의 ‘양눈’으로 바라본 세상. 고국과 이국의 시선이 담긴 ‘양눈’으로 바라본 타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치볼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네가 지나치게 슬픈 사람이었던것도
내가 기분을 잘 알아차리는 편인 것도

앞서 가도 느긋하게 걸어도
이름 부를 때
자주 다른 곳에 있었다

쉽게 짧아지는 사람과 긴 마음을 염원하는 사람이 번갈아가며 실망한다

누구도 수건을 몰래 두고 가지 않았는데

술래가 되어 술래를 만들고

눈빛이 눈빛을 살리고 눈빛이 눈빛을 놓치고
고요가 침묵을 시작하고
침묵이 고여
곰팡이 - P44

문에서 새로 태어나는 수건이 문만큼 쌓이면
집이 떠난다

타인이 타인을 지을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끝나고

또 타인을 초대하고

지어지고

이름 부르고

확인하고

지워지고

헐거워져

바람 빠진 공과
흐르지 않는 눈을 얻게 된 사람이 어느 날 스스로에게 묻는다 - P45

헤이, 아직 거기 있어?


술래가 그곳을
빠져나간다

아무도 공을 던지지 않는다

아무도 퇴장하지 않는다 - P46

증언 9


덜 마른 바지를 입고 볕에 누워

바삭해질 때까지 그리움을 말리는 사내를 보았다 - P69

증언 11


어제는
울고 싶을 때마다 물을 한 잔씩 마셨다

다 마신 컵들을 창 쪽으로 뒤집어두고 잤는데

여름 내내 비가 왔다 - P88

피에르


피에르는 주로 혼자 있거나
무언가를 읽는다

읽기 때문에 이곳으로부터 유보될 수 있다 책은 가장 현재형으로 달아나는 방식
월말에 잡아둔 약속으로부터
사람들이 자취를 감춘다

어디 가?

효용을 멀리하고 싶은 인간들이 연구자를 옹호했지

피에르는

혼자 있다 비생산적인 자세로 누워 책을 읽고

다크 초콜릿을 부러뜨려 반 개씩 입에 넣고 최대한

지연되기 위해 공들이고 있다 - P95

읽다 말고 방금 지은 얼굴이 저가 만든 것인지
어제 읽은 문장이 만든 것인지

더는 알지 못할 때

책은 피에르를 어떤 모양으로든 굴릴 수 있다

굴러가다 말고
저를 주워
피에르는
집으로 돌아간다 - P96

옥사나

아직 살아있는 엄마 무덤에 왔다

미리 써둔 시와
잘 기억나지 않는 당신 표정과
기록된 적 없는
이 대화가

전부 미리 자라고 있다 - P1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몇 달 전 어딘(김현아)의 <활활발발>을 읽다가 알게 된 고정희 시인.

여성해방을 노래한 페미니스트로 <여성신문> 주간 등 여성문제를 최초로 폭넓게 탐구한 여성주의 시인이자 민중시인이며 서정시인이라고 한다.


구매를 벼르다 드디어 위트앤시니컬에서 구매했다.


시집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아벨'로 표상되는 떠나간 자들(민중, 동지, 아우 등)에 대한 속죄의 마음, 부끄러움, 그리움, 슬픔의 시들이다.


첫 마주침이 중요한 건가. 사람의 마음이 비슷한 건가. 시집을 구매하기 전에 블로그 등에서 본 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닿던 시가 한 권의 시집을 다 읽고 나서도 가장 좋았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서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을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판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서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