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만 잘 쉬어도 병원에 안 간다
패트릭 맥커운 지음, 조윤경 옮김 / 불광출판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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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천식환자다. 급성호흡곤란으로 의사의 치료를 받았고, 처방에 따라 6개월간 외래 진료를 받았다.

약은 더 이상 안 써도 되지만 담배는 끊어야 한다는 의사에 충고에 의해 좋아하던 담배도 끊었다,

걷기 등으로 가벼운 운동만 가능하다. 축구 등 심한 운동은 엄두도 못 낸다.

한 번 해봤지만 5분도 안 돼 숨이 차 더 뛸 수가 없었다.

의사로부터 가벼운 운동부터 시작하라고 권유 받았다. 폐기능이 하루 아침에 돌아올 수도 없단다. 가벼운 운동부터 하라는 게 의사의 지시다. 어쩌면 심한 운동은 앞으로 하기 힘들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걷기나 가벼운 둘레길을 산책하듯이 천천히 걷는 게 고작이다.

이 책은 어느날 갑자기 내게로 왔다. 절실했기 때문에 더 눈에 띄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약간의 의심도 있었다. 주치의가 해준 충고나 치료 이외의 별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겠어?

그렇다. 의학적 견지에서 보면 맞다. 그러나 이 책은 의학적 견해와 함께 습관으로 폐기능의 회복을 돕는다.

그런 점에서 굉장한 노력이 뒷받침된다. 하루 10분 운동이 말로 할 때 그렇지 평생 꾸준히 해야 한다면 쉽게 가능한 일인가. 이 책은 약으로 병(천식)을 고치는 게 아니라 습관과 운동으로 병을 고치는 내용이다.

출판사 서평을 참고로 이 책의 내용은 이렇다.

"산소도 적정 섭취량이 있다.근육을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산소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몸 속 온갖 기관과 근육에 산소를 전달하는 혈액 속 헤모글로빈의 산소 포화도는 94~97%로,

이를 넘어가면 산소를 아무리 더 공급한다고 해도 근육이 움직이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피로감과 노화를 촉진시키는 활성산소의 발생을 높이고, 우리 몸이 필요 이상으로 산소가 과한 환경이 ‘정상’이라고 느끼도록 훈련시켜서 산소가 조금만 부족해도 숨 가쁨을 느끼게 만들어 버린다.

이 책에서는 건강을 회복하고 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바로 이 호흡 능력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날 때 지니고 있던 호흡 기능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지만, 성장하면서 섭취하는 음식이나 생활 습관, 잘못된 상식 때문에 본래의 호흡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호흡 패턴을 파악하여 바로잡고, 산소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는 호흡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산소와 이산화탄소 각각의 기능과 관계 같은 이론적 배경에서 시작하여

적은 양의 산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우리 몸을 적응시키는 훈련법에 대해 단계적으로, 그리고 세세하게 알려준다."


이 책은 건강한 호흡이란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다.

"원래의 호흡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단 한 가지는 바로 ‘호흡량을 줄이는 것’이다.

호흡량을 줄인다는 건 호흡 횟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호흡 수를 줄여도 한번 호흡할 때 들이마시는 공기량이 늘어나면 결국 제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절대 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호흡 습관이 있다.

바로 입으로 숨쉬기(구강호흡), 심호흡(흉부 호흡), 한숨이다.

이 세 가지는 자기도 모르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공기량을 늘리는 대표적인 습관이다.

체내에 적정량이 있어야 하는 이산화탄소를 과도하게 배출해서 산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산소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만성 과호흡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신체의 여러 기능이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루어지듯, 호흡 역시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일어나는 불수의적 반응이다.

따라서 한번 그런 성향이 발현되면 내가 의식적으로 고치지 않는 한, 계속해서 그 방식대로 움직인다. 이를 교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바로 의도적인 ‘호흡 중지(숨 참기)’다. 처음에는 가만히 앉거나 누워서 숨을 참는 시간을 점점 늘려나가다가 익숙해지면 점차 서서 호흡 중지하기, 걸으면서 호흡 중지하기, 걷는 걸음 수를 늘려가며 호흡 중지하기, 뛰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호흡 중지하기 식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체질과 건강 상태에 따라 방법을 달리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자신의 현재 상태를 진단하는 법부터 시작한다. 바로 체내 산소 수치 테스트(BOLT)라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의 현재 상태에 맞는 단계별 훈련법과 그에 대한 주의사항까지 아주 세세하게 풀어 안내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부터 노약자까지, 그리고 체력이 좋은 사람부터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 누구나 실천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각각의 상태에 더불어 책의 말미에는 본문 중 나온 훈련법을 요약, 수록하여 지금까지 배운 것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손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호흡량을 줄여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은 ‘천식이 기도(氣道)의 수축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과호흡으로 인한 것’이라는 전제에서 개발된 부테이코(Buteyko) 호흡법과 맞닿아 있다.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약을 먹거나 호흡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천식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1990년대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이 호흡법은 천식 환자만이 아니라 수면장애, 고혈압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훈련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최근 국내 케이블 텔레비전 건강 정보 프로그램을 통해서 호흡기 질환에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소개되기도 하였다.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천식 환자였던 저자도 부테이코 호흡법의 도움을 받아 완치된 뒤, 현재 부테이코 호흡법 전문 교육자로 활동하며 5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 훈련을 진행했다.

이 책에 소개된 호흡 훈련법, ‘산소 활용(The Oxygen Advantage) 프로그램’은 바로 이 부테이코 호흡법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부테이코 호흡법의 천식 치료 효과가 아닌, 건강과 체력 향상 그리고 운동 능력 향상을 중심으로 훈련법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이를 통해 운동선수들이 지구력과 운동 수행력을 키우기 위해 공기 밀도가 낮은 고지대에 올라 훈련하는 것처럼 체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천식과 같은 호흡기 질환 치료, 심장 질환 예방 같은 의학적 효과와 특별한 식단 조절 없이도 자연스레 식욕이 줄어 다이어트가 되는 소소한 것까지 모두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숨을 크게 들이마셔서 더 많은 산소를 유입시킨다는 개념은 하루에 필요한 열량을 충분히 제공할 정도의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음식을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가르친 학생 중 다수가 처음에는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비록 나쁜 의도는 아닐지라도 서구 매체는 말할 것도 없이 스트레스 상담가, 요가 강사, 물리 치료사, 스포츠 코치 들이 심호흡이 인체에 ‘도움’이 된다고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통념이 사라지지 않은 원인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사실 심호흡을 하면 몸에 해로울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기분은 정말 좋아지기 때문이다.

한낮에 낮잠을 자고 난 고양이가 몸을 죽 펴서 스트레칭을 즐기듯이, 숨을 크게 들이마셔서 폐에 공기가 많이 들어가면 상체를 스트레칭하는 효과가 있어 이완되는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많은 사람이 이를 근거로 하여 호흡을 크게 할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라는 말이다." <p.42~43>

천식 환자가 지나치게 크게 호흡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관련 증거가 충분하지만 천식이 호흡량 증가의 원인인지, 아니면 결과인지를 판가름해야 한다.

기도가 좁아지면 질식되는 느낌이 생기므로 이러한 느낌을 없애기 위해 폐로 더 많은 공기를 불어넣으려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러면 천식 환자가 천식 때문에 호흡을 크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크게 호흡해서 기도가 좁아지는 것일까?

그리고 어느 쪽이든, 악순환이 반복된다. 기도가 좁아져서 호흡이 커지고, 그 결과 호흡량이 증가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기도가 다시 좁아지는 식으로 상태가 악화되면서 나쁜 호흡 습관이 확립될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받아들인 중요한 요소가 호흡 습관이다.

건강한 호흡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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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입문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사이구사 미쓰요시 지음, 이동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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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대한 관심은 오래됐다.

전문적으로 불교를 공부하거나 불교의 사상을 연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인류의 마음과 삶의 지침으로 불교가 미친 위대한 영향이 좋아서다.

특히 최근에는 마음 치유를 위한 독서, 수행하는 스님들의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 불교 관련 서적에 목마른 상태다. 그러나 기본 지식도 없이 불교 서적을 접하다보니 제대로 독서를 했는지에 대한 자신이 없어 영어 공부 시작할 때 알파벳을 공부한다는 차원에서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 의미와 발원과 전개부터 담은 <불교 입문>은 그런 의미에서 제대로 된 출발점에 서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얼핏 불교 사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 불교 발원이나 전개 등은 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다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한 졸렬한 생각이었다는 느낌도 얻게 됐다.

이 책은 목차에서 붓다의 불교 창시부터 종교와 철학으로서 사람들 삶에 자리 잡고 문화를 꽃피우기까지 인도 불교를 중심으로 한 역사와 사상사의 흐름을 들여다본다.

이는 불교가 탄생해 자라고 성숙해진 여러 연대의 과실들이 인도에 있으며, 그들 종자 하나하나가 아시아 각지로 전파돼 꽃을 피워 열매를 맺었기 때문이다.

붓다가 성장한 인도의 사회 배경, 그의 포교 활동과 사상의 변천을 상세하게 알아본다.

불교 서적을 읽을 때 몹시 당황스러웠던 점은 용어를 잘 몰라(특히 범어를 한자로 적은 게 많아) 그 뜻을 제대로 해석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여러 책에서 어려운 용어는 주석을 달거나 책 내용에서 설명을 곁들이긴 하나 책 읽기에 바빠 심오한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적이 많다. 용어를 제대로 모르니 문장 전체의 뜻이 제대로 해석될 리 없으니 말이다. 책을 읽은 이유에 대해서도 100% 만족한 독서가 아니었으리라.

이 책은 들어가기부터 체계적인 설명을 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줘서 좋았다.

역사도 종파도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이 책에 담은 저자의 의도가 읽힌다. 불교에 대한 관심만 있는 독자라면 읽어감으로써 용어의 의미와 발전 등을 알 수 있게 설명해준다.

아주 쉽게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로 해석된다.

이 책은 불교는 무엇을 어떻게 말하였는가를 둘러싸고 논의를 전개한다.

주요한 불교 기본 용어와 개념에 대해 문헌적 근거를 바탕으로 명확하게 분석하며, 나아가 불교 전체를 시대별, 지역별, 주제별로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서술한다.

동시에 서양의 여러 사상과의 비교도 시도한다.

아시아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한 인도 불교는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각 나라의 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불교가 각지에 어떻게 파급되어가는지 그 양상을 그려본다.

불교 사상 흐름의 전체상이 한눈에 들어오며, 그 본질을 깊게 이해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니르바나는 (번뇌가) 죄다 소멸한 양상을 나타내며, 거기에서는 안도 밖도 평안하다는 뜻에서 이 양자를 합하여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고 칭하는데, 이것이 삼법인에 추가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서술하였다.

석존은 보리수 아래의 깨달음에서 이 니르바나를 달성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성도(成道)라는 것은 니르바나의 체득이며, 그에 의해 고타마는 붓다(각자) 내지 무니(성자)가 되고,

따라서 니르바나는 석존 또는 불교의 출발점인 동시에 또한 목적지이기도 하다고 평가될 것이다." <p.166>

"미륵의 원어인 마이트레야는 미트라라는 말에서 유래하는데, 미트라는 이란의 미스라신(神)이나 인도 일반의 미트라신(神)과 이어진다.

또한 보통명사인 미트라는 친구를 의미하고, 이 말에서 파생한 보통명사인 마이트라라는 말은 우정·친절을 나타내며 마이트리와 함께 ‘자(慈)’의 원어에 해당된다. 마이트레야도 그 유의어로서, 자씨(慈氏)로 한역된 사례도 있다.

이 미륵불은 미래불(未來佛)로서 간주되며 현재는 일찍이 석가불이 머물렀던 투시타(도솔천)에 산다고 한다."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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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던 그 사람 -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장적폐 지음 / 이음스토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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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아 관심이 갔다.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픈 이름 '적폐'를 필명으로 내세울 정도로 강렬한 작가가 있었는가?책에 관심을 갖자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매우 평범한 신파극이나 로맨스 소설쯤으로 생각될 정도로 단순하다.그러나 표지에 흰색으로 보일락말락하게 적어놓은 명조체의 글들 사이로 정치색 짙은 책으로 보이기도 한다.'대통령' '북' '평화' '전쟁' 등의 낱말과 '조용필' 등의 이름이 보인다. 다큐멘터리인가?궁금증은 책을 펼치며 쉽게 풀렸다.'책을 열며' 제하의 작가의 글에서 '배제리스트'(작가는 '블랙리스트'를 대신해 이렇게 적시했다)에 관련된 글이구나를 알 수 있다. 책의 분위기나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대체 무슨 책이냐?’라고 물으면 ‘희곡’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기본적인 책의 틀은 ‘희곡’이지만, 그 내용의 절반 이상은 희곡의 앞뒤 그리고 사이사이에 나오는 작가의 자기 고백이다.

“사실, 형식은 희곡이지만 정확하게는 희곡으로 가장한 내 이야기, 희곡으로 가장한 부끄러운 기도문 정도일 것이다.”(56P)



이 책에 대한 설명 네 가지이다. 이 네 가지 설명이 합쳐지면 이 책 한 권이 된다.

첫째, 가상 역사 희곡이다.

희곡의 배경은 2022년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희곡 속 시간은 가상 역사이다. 광화문 ‘촛불 역사’와 ‘대통령 탄핵’은 없었다. 2017, 2018년, 우리 대통령의 들고남이 현재와 다르고, 2018년 봄, 보수 정권의 대통령이 취임했다.

당연히 2018 평창올림픽과 같은 평화로의 국면전환도 없었다.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실험은 계속되고,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드디어 미국 코앞까지 도달했다.

한반도가 전쟁 바로 앞까지 갔다. 일촉즉발, 위기의 한반도…. 희곡 속 대통령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그의 문제 해결방식은 문학적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2050년 미래에서 편지가 하나 날아들며, 연극이 시작된다.


둘째, 조용필 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 희곡은 조용필로 시작해서 조용필로 끝난다.

우선 부제로 붙은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은 조용필 10집(1989년) part 2에 실린 조용필의 노래 제목이다. 조용필에 대한 존경을 담아 만든 오마주이다.

“2000년 전후 언제쯤이었던 것 같다. 조용필을 글감으로 뭔가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그 많은 시간을 조용필과 보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23P)

이런 연유로 이 희곡의 배경음악은 모두 조용필의 노래다. “이 희곡의 절반은 조용필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글을 썼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 희곡은 불가능하고, 밋밋하기 이를 데 없는 절대 빈곤이 되었을 것이다.”(51P)

희곡의 부제로 쓰인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에서부터 〈서울 1987년〉, 〈상처〉, 〈애상〉, 〈정의 마음〉, 〈바람이 전하는 말〉, 〈그 또한 내 삶인데〉 등 희곡 본문에 직접 등장하는 곡이 13곡, 〈킬리만자로의 표범〉, 〈Q〉, 〈생명〉 등 길게 짧게, 여러 방식으로 인용된 곡이 12곡, 모두 25곡의 조용필 노래가 글감으로 쓰였다.

희곡의 처음 시작은 〈상처〉이고, 희곡이 절정에 이를 즈음엔 〈서울 1987년〉과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이 울려나온다.

“조용필이 없었으면 이 희곡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열두 살 어린이 때부터 좋아했던 나의 가수, 조용필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담고 싶었다.”(37P)



셋째, 일기 혹은 기도문이다.

작가는 책날개에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오래 전 사회학과 예술경영을 공부했고, 지금은 북한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북한문학 중에서 특별히 소설 쪽에 관심이 많다. 대학졸업 후 한 직장에서 25년을 근무했다. 성실하게 일했다. 장삼이사,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2015년, 저 위쪽에서 시작된 배제리스트가 내려와 닿은 맨 끝단, 거기에 내가 있었다. 내 인생계획에는 없던 기이한 만남. 배제 지시를 거부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나를 적폐라고 불렀다. 그래서 필명을 적폐로 했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적폐(積弊)로 하면 사람들이 놀랄까봐 한자(漢字)를 바꿨다. 붉을 적(赤), 비단 폐(幣), 붉은 비단이다.”

작가의 이야기대로, 2015년 배제리스트 사건 당시, 배제리스트가 내려와 닿은 맨 끝단, 그곳에 그가 있었다.

배제리스트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며, 2016년, 2017년, 2018년, 배제리스트로 대한민국이 들썩일 때, 저 위쪽 명령을 지시한 사람들이 재판정을 오가고 감옥으로 갈 때, 관련 기관들도 큰 몸살을 앓았다.

배제리스트 실행기관, 실행자로서, 모두가 죄인이었던 시절, 작가에게 글쓰기는 도피처, 피난처였다고 한다.(56P)

이 책은 그 기간 동안의 기도문, 참회문이다.

“살아오면서 너무도 많은 빚을 졌다. … 남은 날들, 빚진 얼굴들에게 이 빚을 갚으며 살아가겠다.”(278P)고 한다.


넷째, 시선, 사회 평론이다.

희곡 대사에 나오는 70여 개 단어에 각주가 달려 있다. 그런데 그 각주는 희곡 〈사랑했던 그 사람〉의 또 다른 이야기이다.

“이 책의 각주는 각주 자체가 또 다른 본문처럼 보이니, 각주를 빼고 읽으면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하기도 좀 멋쩍은 형국이다. …

희곡의 빈약함을 메우기 위해서 그랬고, 희곡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서 그랬다.”(54P)

희곡의 각주들은 ‘BTOB(비투비)’, ‘장기려’, ‘윤동주’와 같은 이름들로부터 〈간양록〉, 〈상처〉,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그 또한 내 삶인데〉 등 조용필의 여러 노래들로까지 다채롭게 이어진다.

이들 각주 에세이는 사회학과 북한문학 전공자인 필자가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 사회 평론이다.

보통 시민의 순박한 바람부터 전공자의 깊이 있는 고민까지 두루 담고 있다.

대학시절, 조용필 〈Q〉에 나오는 대사처럼 “램프가 켜져 있는 작은 찻집”에도 가보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너는 나의 인생을 쥐고 있다 놓아버렸다”라고 말할 만한 그런 연애를 해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나의 첫사랑은 너무도 건전했고(?) 손목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그렇게 지나갔다.

(중략) 돌아보면, 누군가의 인생을 쥐고 있다 놓아버리는 것이 그렇게 좋은 사랑은 아니었을 텐데….

스무 살 그 시절에는, 행여 그럴지라도,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어디엔가 있을, 운명 같은, 우주 같은 사랑을 바랐던 것 같다.

〈Q〉를 들으며 드는 마지막 생각. 첫사랑이든 마지막 사랑이든 사랑을 쿨하게 보내는 것, 그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사랑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못 잊고, 아파하며 마음 쓰였던 시간들. 그때는 아팠지만 지금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그렇게 보낸 시간들,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며 조금은 더 성숙하게 되었고, 세상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어른이 되었으니 말이다. (138P)



세상을 보는 입장과 전략적인 판단에 따라 친소(親疏)가 다를 수 있다. 국가도 그렇고 개인도 그렇다. 꺼삐딴 리, 염상구, 염상진, 이명준…. 친소(親疏)가 낳은 다양한 삶의 유형들. 문제는 그 누군가의 친소(親疏) 팻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난과 조롱, 심지어는 타격의 대상이 된다. 수렴과 타협은 없다. 이상과 도덕이 높을수록 가차없다. 수렴은 패배이고 타협은 변절이다. 토착○○, 빨○○라는 속된 말들이 난무한다. 한국사회에 구조화된 비난과 조롱은 견고한 진영을 갖추고 서로를 향해 인생을 걸고 칼을 겨눈다. 서로를 향한 미움과 증오, 조롱은 끝이 없다.

(중략) 탁월한 국력, 높은 문화, 모두가 평화롭게 넘나드는 나라, 무엇보다 누구와 편먹지 않아도 되는 나라다.

우리 안 ‘꺼삐딴 리’는 더 이상 없고, ‘이명준’은 평화롭다. 그날에는 성조기든 일장기든 오성홍기든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생활의 악센트, 취향이 될 것이다.

북핵문제가 해결되고, 일제 35년을 넘어, 동북아가 평화와 번영으로 내딛게 될 어느 날, 사랑하는 우리 딸들이 이룰 세계이다.” (241P)


〈사랑했던 그 사람〉은 희곡은 희곡대로, 노래는 노래대로, 각주는 각주대로 자기 이야기를 해나가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큰 그림이 된다. 각자 취향에 따라, 희곡만 먼저 읽어도 좋고, 아니면 각주만 끝까지 읽어봐도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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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詩作 - 테드 휴즈의 시작법
테드 휴즈 지음, 김승일 옮김 / 비아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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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쓸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내가 쓴 시가 제대로 읽힐까 하는 의문이다.

상징과 은유를 쓸 때 각 시어(詩語)가, 문장이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게 하는 데도 힘들지만...

쓰고 읽고를 수없이 반복해도 막상 쓰는 것은 압박감과 함께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좀 더 시를 쉽게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은 의외로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 주었다.

'역자의 말'에서 단초를 잡았다. 바로 시를 그림으로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그려나가면 될 것 같았다.




저자 테드 휴즈는 평생을 시인으로 살아오면서 터득한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그가 느낀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 이 책에서 털어 놓고 있다.

각 장의 끝에는 실천 가능하고 유용한 조언을 담은 ‘시인의 노트’가 추가됐다.

이를 통해 테드 휴즈는 시와 친해지고 싶은 모두에게 유쾌하고 진솔하며 실용적인 격려를 건넨다.

아일랜드의 시인 셰이머스 히니가 “땅과 언어의 수호자, 테드 휴즈의 창의적인 글쓰기에 대한 고전적인 앤솔러지”라고 평한 이 책에는 휴즈가 직접 선별한 50여 편의 걸작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어 감상하는 재미를 더한다.




해적판의 오역을 바로잡고 내용을 가다듬어 비아북에서 <오늘부터, 詩作>이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특히 한국 현대시의 ‘지금’을 대표하는 젊은 시인, 김승일이 번역을 맡아 원문에 실린 시의 말맛과 독특한 느낌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이 번역자는 내게 큰 감명을 주었고, 난 영감을 얻어 시 연습을 더 열심히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오늘부터, 詩作>은 총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장은 동물, 날씨, 사람, 생각, 풍경, 가족, 환상 속 생물 등 독자가 주변에서 찾기 쉬운 친숙하고 일상적인 소재들을 주제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각 장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날 ‘동물 사로잡기’는 유년 시절에서 출발해, 사냥에 대한 저자의 각별한 애정이 어떻게 시에 대한 열정으로 옮겨갔는지 그 과정을 따라간다. 그러면서 저자가 쓴 두 편의 동물 시 「생각여우」와 「창꼬치」를 소개하는데, 두 시를 통해 동물들을 종이 위에서 창조하는 일에 관해 이야기한다.

둘째 날 ‘바람과 날씨’에서는 사람의 감정이 날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날씨가 변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시로 표현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예시로 보여주는 비, 바람, 안개에 관한 다양한 작품들은 독자들이 날씨에 따른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느껴볼 수 있도록 돕는다.

셋째 날 ‘사람들에 관해 쓰기’는 사람을 묘사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의미하게 늘어놓기만 하는 묘사는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다. 저자는 비유의 힘을 언급하며, 사람들을 가능한 생생하고 또렷하게 언어 속으로 데려오는 여러 방법을 제시한다.

독자들은 사람에 관해 쓴 다양한 시들을 통해 지금까지 몰랐던 인물들을 새로 만나게 될 것이다.

넷째 날 ‘생각하는 법 배우기’는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하는 법을 다룬다.

저자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쉽사리 놓치는지 지적하면서, 어슴푸레하기만 한 생각들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도록 붙드는 기술을 연습해 볼 수 있도록 돕는다. 함께 실린 저자의 시 「돼지 관찰」에는 저자가 강조하는 ‘생각하는 법’이 무엇인지 잘 나타나 있다.


다섯째 날 ‘풍경에 대한 글쓰기’에서는 풍경이 사람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사람들이 풍경을 보며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지, 왜 그런 감정을 원하는지를 차분히 설명해나가는 동시에,

어떻게 시를 통해 그런 감정을 포착하고 강화할 수 있는지 예시를 통해 보여준다.

여섯째 날 ‘소설 쓰기-시작하기’는 모든 사람들이 천부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생각을 글로 써내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 방법 중 하나로 소설 쓰기를 제안한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마주치기 마련인 어려움들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을 몇 가지 제시한다.

일곱째 날 ‘소설 쓰기-계속하기’는 앞 장에서 하던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글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정한 관심사를 찾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러면서 글을 쓸 때 주의해야할 점과, 글을 쓰는 태도에 관해서 조언하고 있다.


여덟째 날 ‘가족 만나기’는 우리 주변에 있는 가장 흥미진진한 소재, 가족을 통해 시를 발전시키는 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가족을 비틀고, 뜯어 고치고, 심지어는 새로 만들어내며 여러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진시킨다.

이 장에서 독자들은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시를 쓰는 기쁨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홉째 날 ‘달에 사는 생물’에서 저자는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환상의 달을 현실로 끌어오는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 자신의 달에 살고 있는 환상 속의 생물들을 시로 그려내면서, 독자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다채롭고 무한한 상상력을 끌어내도록 돕는다.

저자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독자들은 무한한 상상의 힘이 기다리고 있을 자신만의 달을 찾아 나서기만 하면 된다.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 최소한 시와 시작에 대한 감이 잡히고,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솟아오른다. 두고 두고 수시로 읽어볼 생각이다. 나의 시작에 많은 교감을 해주고 때론 영감을 주는 텍스트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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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해 사느라 오늘을 잊은 당신에게 - 90세 현직 정신과 의사의 인생 상담
나카무라 쓰네코 지음, 오쿠다 히로미 정리, 정미애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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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가 90세란 점에서 굉장한 매력이 끌렸다.

더욱이 현직 의사란 점은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름다운 삶을 위한 것이란 생각에서 읽고 싶은 욕심이 컸다.

책은 짧고 작은 책이지만 읽는 동안 나에게 많은 공감을 줬다. 읽은 후에도 감동이 오래 남아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상은 우리에게 인생의 목표라 불릴 만한 꿈과 그 꿈에 상응하는 열정을 가지라 말하고, 일 또는 직업이란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고귀한 수단으로 여긴다고 전제한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깎아 결국은 꿈에 도달한 사람들의 인생을 ‘성공’ 또는 ‘행복’이란 이름으로 대명사화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우리는 그 목표에 쉽게 닿을 수 없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생겨나는 상실과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일터에서 물러나 삶을 되돌아보는 사람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말이다.



<내일을 위해 사느라 오늘을 잊은 당신에게>는 사회적 통념이 만들어놓은 성공, 행복이라는 잣대에 맞추어 나의 인생을 재단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일과 인간관계에 집착하느라 정작 나에게 중요한 것은 놓치고 사는 우리들을 위한 책이다.

“일이 삶의 보람이 될 필요는 없다. 돈 때문에 일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자신감 부족은 나쁜 게 아니다. 급조된 자신감이 가장 위험하다" "남을 변화시키는 일에 에너지 소모하지 말자. '어떻게 하면 내가 쾌적하게 지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에 에너지를 사용하자" "인생에서 견뎌야 할 시기는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덜 아프게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찾자" 등 정곡을 찌르는 내용이 많다.



90세의 현역 정신과 의사로서 70여 년간 다양한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온 저자는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내 마음이 납득할 수 있는 행복을 찾는 법’을 조언한다. 어찌 공감이 가지 않겠는가.

현실과 이상은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사이에서 어떻게 타협점을 찾아가느냐가 인생의 행복을 결정한다.

스스로를 먹여 살리면서 보통의 날들을 담담하게 살아내는 것만큼 대단한 일은 없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너무도 당연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잊고 살았던 삶의 진리와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느끼는 좌절과 상실의 대부분은 ‘괴리’에서 온다.

어렸을 때 꾸었던 꿈과 어른이 되어 맞닥뜨린 현실의 괴리, 세상에서 통용되는 행복의 기준과

내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감 사이의 괴리, 주변에서 바라는 나와 진짜 내 모습의 괴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꼈을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오래 버티고 견뎌왔다.

때로는 언젠가 다가올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들이 행복을 가져다주었는가, 그렇게 바라던 내일이 찾아왔는가 묻는다면 긍정의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대다수의 평범한 우리에게 내일이란 아직 오지 않은 날이며, 해피엔딩이라 불리는 이상적인 삶은 허상에 불과하다.

괴리감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타협’하고 ‘납득’해야 할 감정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것을 체념으로 여겨 적당히 하다 포기하려는 이들의 나약한 마음이라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타협하고 납득하는 것은 ‘삶의 방식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우리 각자에게는 나에게 알맞은 삶의 방식이 있다.

꿈을 이룬 인생이나 이루지 못한 인생, 자식이 있는 인생이나 없는 인생, 금전적으로 풍족한 인생이나 그렇지 않은 인생,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저자는 연령도 성별도 제각각인 수많은 환자들의 고민에 온화하면서도 단단한 어조로 ‘잘 풀어나가는 방법’을 조언한다.

그는 “이 모든 고민은 결국 현실과 내 마음 사이의 괴리에서 어떻게 타협점을 찾아가느냐의 문제”라고 말한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을 중심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과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멀어지는 일, 그것이 '타협'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고됨을 거름 삼아 내일의 꿈을 이루는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은, 목표가 없는 인생을 경멸하며 무엇인가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기혐오를 일삼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시작부터 끝까지 미완인 채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삶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목표나 꿈의 크기가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이상은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 우리에게는 저마다 살아내야 할 평범한 ‘오늘’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없으니 자신감을 잃고 조바심을 냅니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에게는 괴로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왜 꼭 그 이상에 도달해야 하나요? 그건 누구를 위해서인가요?”

인생의 고민은 의외로 명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기쁜 일이 있으면 마음껏 기뻐하고,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별 수 없지’ 하고 담담하게 해내면 그만.

먼 훗날의 행복을 찾느라 지금 여기에 있는 만족감을 놓치지 말 것. 내일을 위해 사느라 오늘을 잊은 당신에게도 이 메시지가 전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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