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을 가장 먼저 알리는 곳은 골목이라고 생각해 ㅋㅋ 여기 보이는 골목은 지금은 전부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거든. 이때에도 사진은 전부 아이폰4로 담은 거 같아.

골목의 틈으로 봄이 되면 어김없이 민들레가 올라오잖아. 녹색의 풀들이 겨울의 차갑고 딱딱함을 뚫고 올라와서 골목을 봄으로 바꾸는 모습을 매년 볼 수 있어서 신기했지.

민들레는 잡초지만, 잡초라서 튼튼하고 생명력이 고래힘줄 같아서 좋아 ㅋㅋ 우효도 민들레를 불렀잖아, 노란 꽃잎처럼 내 맘에 사뿐히 내려앉으라고 말이야, 민들레 같은 사랑은 질긴 것 같아.

나는 골목을 좋아해서 골목의 모습을 지금까지 엄청 담았거든. 대부분이 봄의 사진들이야. 나중에 신문사에 팔아먹을 거야 ㅋㅋ

골목에 봄이 오면 방향제 냄새가 나거든. 아지랑이 냄새라고 할까. 집집 마당에 심어 놓은 나무가 봄에 잎을 올리면 허브처럼 향이 나거든. 목련에서 나는 향 같은 거 말이지.


근데 그런 방향제 향이 골목에서만 나더라고. 도로나 아파트 단지에서는 봄이 와도 나지 않아. 그래서 봄이 되면, 3, 4월에 골목을 다니면 그런 봄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신기했지.


새삼 느끼는 건데 아이폰4도 사진이 참 좋은 거 같아.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색감을 다 담아 내 거든.


봄의 골목은 따스함 정감 같은 게 있어. 뭐랄까 대문 같은 거 전부 열어 놓고 저녁에 아버지들 집에 오시면 된장찌개 끓이고 고등어 굽고 하는 냄새가 골목에 퍼지고 말이야.


요즘은 1인가구가 4인가구를 뛰어넘었잖아. 집에서 고등어 굽다가는 옆 집에서 소리 듣는 시대가 되어버렸네.

골목의 곳곳에 봄을 알리는 민들레와 초록초록한 잡초가 벽면에 그려 놓은 벽화와 어울렸지. 이 골목들이 전부 아파트로 바뀌어서 아쉽기는 해.


이렇게 골목을 지나가면서 사진을 담다가 방향제 향이 나면 그 자리에 서서 흠 하면서 향을 맡잖아, 그러면 기묘한 기시감에 사로 잡히거든.

초딩 때 봄소풍 갔던 그때가 생각나기도 하고, 봄소풍은 원래 요즘에 가지 않았나.


요즘처럼 미세먼지 같은 건 없어서 봄소풍 가면 재미있었지, 뿌옇고 먼지 낀 시야가 아니라 맑고 청명하니까 놀기 좋았지.


김밥을 터져 있고 조금 상한 듯한 맛이 나고 사이다는 시원하지 않아서 밍밍한데 그래도 맛있었다 ㅋㅋ

봄날의 골목은 그야말로 생명이 느껴지는 것 같아. 벌레들도 많아지고 ㅋ 길고양이들도 따뜻한 곳으로 나와서 볕을 쬐고 있고.


겨울 동안 듣지 못했던 새소리도 들을 수 있거든, 그 소리가 봄의 골목을 시끄럽게도 하지만 잘 들으면 운율이 있어 새 따위가 말이야.

방송 같은 곳에서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볼 수 없다고 하는데, 뛰어노는 아이들을 볼 수 없는 게 아니라 골목을 볼 수 없지.


어제 조깅하면서 보니 아이들은 지금도 시끄럽고 혼란스럽게 놀더라고, 그 어려운 밤양갱을 너무나 잘 부르데.


그리고 가방을 입구에 전부 던져 놓고 인생 네 컷 속에 들어가서 깔깔거리면서 시끄럽게 놀더라고. 장소가 바뀌었지 아이들은 아이들이지.

이런 봄날의 골목의 계단에 앉아서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읽으면 좋아, 교코부터 식스티나인, 코인로커 베이비는 정말 계단에 건방지게 앉아서 읽으면 좋은 거 같아.


아직 없어지지 않은 골목에서 독서모임해서 그늘에 앉아서 책 읽고 서로 이야기하면 재미있을 것 같지 ㅋㅋ


봄의 비는 땅에 떨어져 시가 되는 것 같아, 시는 골목에 내려와 풍경을 바꿔 놓지. 하지만 사람들은 골목에 떨어진 봄비에서 시를 느끼지 못해. 시는 가까이 있는데 못 보는 거지.


아름다움은 주위에 널려 있으니까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 하지 말고 주위의 아름다움을 실컷 볼 수 있을 봐야 해. 왜냐하면 골목은 다 사라지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가 좋아하는 코난과 라나.


코난은 라나를 위해서는 뭐든지 하잖아, 목숨이고 뭐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몸이 반응을 하거든.


라나가 위험에 닥치면 그대로 돌진을 해, 팔딱팔딱 뛰는 숭어처럼 말이야. 앞뒤 쟤고 가리지도 않아.


어떤 방해요소도 두렵지 않고 무서움도 몰라, 그래서 코난의 사랑은 더 감동적인 거 같아.


라나를 향한 코난의 사랑은 마치 주인을 향한 강아지처럼 맑고 투명하기만 해.


요즘 눈물의 여왕에서 홍해인을 향한 백현우의 사랑이 그런 거 같아.


그래서 미움이 가득한 요즘 사람들이 그 홍해인을 향한 백현우의 사랑에 빠져들어 백현우 앓이를 하지 않는 게 아닐까.


미래소년 코난 이거 원작 소설은 너무나 암울하고 디스토피아적이라 하야오가 수정을 엄청나게 했지.


절대 행복할 수 없는 이야기를 행복하게 이끌어 냈어.


눈물의 여왕 역시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은데 행복하게 끝나잖아.


요즘은 어쩐지 나를 비롯해서 행복하게 끝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별로일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 같은데, 이렇게 행복한 결말이 마음의 어느 곳을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아서 좋아.

맨 위의 사진은 이렇게 사진을 찍어서 코난의 섬을 합성을 했지.


코난이 라나를 발견했던 장면 기억들 나나?


상어 들고 갈매기들이 모여있는데 그 장면 잘 보면 마치 갈매기들이 라나를 쪼사 먹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코난은 사람들이 대부분 좋아하는데 내용은 잘 모르는 거 같애.


마지막은 다이스 선장과 몬스키가 결혼을 하면서 끝나잖아 행복하게 말이야. 그게 좋아. 그 장면이 정말 좋아. 특히 아주 빌런이었던 몬스키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 너무 예쁜 거야.


이건 팔콘이야, 아주 정교해. 팔콘 안에 몬스키가 보인다.

왜 있잖아, 몬스키가 아직 빌런 일 때 라나를 납치해서 태워 가는데 창 하나 들고 코난이 팔콘의 날개 위에 발가락으로 그 장면 다 기억나지?


라나를 구하는 일에 그냥 달려드는 거지. 불을 향해 몸을 날리는 나방처럼 말이야.


그다음에 코난의 세계관에서 가장 강력한 비행선 기간트의 모습이야.

팔콘과 단순비교 하면 크기의 차이는 이렇지.

포비는 라나를 처음 만났을 때 코난의 친구라는 걸 알고 포비가 가장 아끼는 걸 라나에게 주거든.


그게 도마뱀 꼬리인지 엄청나게 큰 개구리 뒷다리인지 그걸 줘.


마치 길러준 길고양이가 계속 쥐를 잡아와서 주인 앞에 놓는 것처럼.


그리고 그걸 받은 라나는 꺄악.


포비는 원래 사람 빼고는 다 잡아먹는데 아기 돼지들과 지내면서 동물과의 교감을 알아가, 영리한 새끼 돼지가 라나와 코난을 구하기도 하지.


이 장면은 미래소년 코난 중에서 가장 기분 좋은 장면이야.


인더스트리아에서 개고생을 하고 라나를 구해서 라나의 할아버지와 포비와 함께 탈출하는 장면이거든.


꿈의 섬 하이하바로 가는 장면이야 하이하바로 가서 제2막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잖아.


코난과 포비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서로 복부를 있는 힘 껏 때리면서 기분을 표현하는데 웃겨.


라나를 향한 코난의 사랑이 백현우와 비슷하더라고. 아니 백현우가 코난과 비슷했지.


정말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사랑이 아닐까. 우리는 드라마 같은 사랑을 꿈꾸고. 이 어렵고 힘든 현실을 자꾸 외면하고 싶고.


코난과 라나는 후에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파즈와 시타로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장 기시감이 많이 드는 날이다. 이런 날은 늘 엘리베이터 어딘가에 오랫동안 붙어 있던 아버지의 작업복 냄새가 엘리베이터에 타면 난다. 사춘기에 들어 아버지와는 그렇게 친하지 않았지만 아버지 등에 매달려 작업복 냄새를 맡았을 때가 있었다. 아버지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했던 했던 어린이였던 시절.


냄새는 기억의 마지막까지 붙어 있다. 이 죽일 놈의 후각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후각은 여러 감각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기억을 붙잡고 있다.


벚꽃이 전부 떨어지고 그 자리에 하얀 눈송이 같은 아카시아 꽃이 세상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계절은 그렇게 흘러간다. 이렇게 밝고 맑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도심지에서 나의 고독을 구원해 주는 사람은 나의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다.


어마어마한 큰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외롭다. 누구나, 어떤 누구나 실존적인 고독을 가지고 있다. 그 고독의 늪에서 구원이 되는 사람은 생판 모르는 다른 남자일 수 있다. 내가 기대하지 못한 만남이더라도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만남이 될 수 있다. 인생이란 어떻게 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잘못 탄 열차가 목적지로 데려다줄 때가 있다]


블레이드 러너 속 세상은 2019년이다. 발달에 발달을 거듭하여 초고도화가 된 세상이다. 그 세상이 2019년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이다. 현실은 영화 속 아무 먼 미래보다 5년이 더 지났다.


당시에는 2000년이라는 숫자가, 그런 년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마음속에 여기고 있었다. 맨 앞의 숫자 1이 바뀌는 것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당시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미래 영화는 디스토피아적이다. 어둡고 암울하다. 미래는 있지만 내일은 없고 오늘 산다, 같은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것처럼 보인다.


목욕탕의 탕에 몸을 담그고 얼굴에 땀이 흐르는 것을 참고 있는 것이 싫었던 어린 시절, 이맘때였다. 몸에 잔뜩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목욕탕에 가서 탕에 몸을 풍덩 던졌을 때 그 기분. 온탕, 냉탕에 번갈아 들어가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곧 초파일이 다가오면 티브이에서는 서유기가 나왔다. 가장 좋은 계절, 난방기기와 냉방기기가 전혀 필요 없는 계절. 뛰어다니며 놀면 땀이 나지만 그늘에서는 무한 사색이 가능한 시기였다.


토요일 오후 친구들과 땀을 흘리고 일찍 퇴근하고 오시는 아버지와 함께 목욕을 하고 집으로 오면 어머니는 마른 김에 밥을 싸 주셨다. 마른 김이 조미김보다 맛있을 리가 없다. 입천장에도 쩍쩍 들러붙고. 그러나 기억은 조미김보다 마른김을 붙잡고 있다.


아버지는 마른 김에 밥을 싸서 간장에 살짝 찍어서 주었다. 마른 김에 밥을 싸 먹는 건 이렇게 먹는 거야.라는 식으로. 그러면 참새새끼들 마냥 동생과 나는 따라 하면서 마른 김에 밥 싸 먹는 맛을 알아갔다.


아버지와 목욕 후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오는 동안의 풍경이 기시감을 필두로 눈에 선하다. 그 도로와 여 중학교의 담벼락, 전봇대, 작은 슈퍼. 특별할 것이 전혀 없는 풍경과 기억이 마른 김을 먹고 있으니 특별하게 느껴진다. 후각에 들러붙은 추억을 조금씩 연소시키며 오늘 하루도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건 제리 율스만을 오마주 한 거야. 나는 제리 율스만을 무척 좋아하거든. 그림에 마그리트가 있다면 사진에는 제리 율스만이지. 우리나라 안동에도 와서 작업을 했었거든. 안타깝지만 제리 율스만은 코로나 시기에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


이런 초현실을 좋아하는 녀석들에게는 뭔가가 있는데 그 뭔가는 상상력이야. 어른이 되면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이 많은데 비참하지, 아주 비참해. 상상력이 없는 어른은 아주 끔찍해.


비참한 우리가 상상력이 떨어질 때 아이와 이야기를 하잖아. 아이와 이야기를 하려면 상상력이 있어야 해. 아이들은 달이 따라온다며 왜 달이 나랑 술래잡기를 해?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잖아.


아이들은 본 것 들은 것이 많지 않아서 주로 상상력으로 말을 하잖아, 아이와 대화를 잘하려면 아이가 되어야 해. 상상력이 있어야지.


아이의 장난감, 아이가 부르는 동요, 아이가 보는 만화 이거 다 아이들이 만들지 않잖아. 이건 아이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상상력이 풍부한 어른들이 만드는 거야. 상상력이 결여된 어른들은 생각하기를 싫어하지.


아이들에게 요리를 시켜봐 한편으로는 기막히지만 한편으로는 기가 막히는 요리를 만들어 내. 절대 상상력이 없는 어른들은 따라 하지 못하지.


상상력을 상실하잖아, 그러면 권력은 잡기 쉬워. 지나친 권력은 코카인과 같은 작용을 하지, 중독이 된다는 얘기지.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되면, 너무 많은 도파민이 분출되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실패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터널처럼 아주 좁은 시야를 갖게 하며, 오직 목표 달성이란 열매를 향해서만 돌진하게 된다고.


그런 어른은 자기애에 빠지게 하고, 오만하게 만들어. 권력은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해. 오직 목표만 보며 돌진하지.


오로지 목표 달성이란 열매를 향해서만 돌진하게 되는 건 좀비와 같아. 좀비는 신념 하나만 있어. 다른 아무것도 없고, 인간을 먹어야 한다는 그 하나의 신념으로만 덤비지.


그래서 삼일 밤낮 잠도 자지 않고. 지치지도 않고 그저 신념으로만 움직일 뿐이야.


상상력을 잃는다는 건 그렇게 무서운 거야.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적어도 상상력이 결여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경제와 사회가 발전한다고 다가 아니잖아. 문화, 문화가 있어야만 해.


문화의 힘은 경제 사회 못지않지. 아니 어쩌면 더 크지. 영화는 상상력의 산물이잖아.


영화의 기본은 뭐다? 바로 각본이지. 각본은 글이잖아. 그 글은 상상력에서 나오지. 노래는 시에 음을 붙인 거잖아. 시 역시 상상의 발현이지 그래서 노래를 들으면 울고 웃고 공감하고 마음이 움직이잖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거지. 그래서 블로그도 인스타도 열심히 하고, 노래도 열심히 부르고, 영화도 열심히 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돈을 다 잃은 시민덕희가 있다면 여기 기억을 다 잃은 윤덕희가 있다.

감독이 코로나 시기에 자본이 충분하게 조달되지 못해서 부족하다는 점을 말했는데 자본이 더 있었다면 좀 더 미스터리하고 좀 더 애절하고 좀 더 스릴러로 영상을 담아냈을 것다는 생각이 든다.

텔 미 썸딩은 당시 굉장했으니까.

당신이 잠든 사이는 그래픽이 확 줄어든 대신 주인공들의 연기로 주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미스터리한 스릴러와 멜로를 위해 이 영화는 영화적 허용을 조금 지나치게 사용을 했다. 한 가족에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란 비극은 총망라했다.

교통사고로 두 아들 중 한 아들을 잃고, 거기에 해리성 기억 장애 - 기억이 소실되었고, 아들은 친구가 대신 돌봐주고, 남편은 말기 암에, 기억을 잃은 아내를 위해 남편은 아픈 몸을 부여잡고 집안은 전부 리셋 시키고, 그리고 아내를 위해 아내를 위한 글을 쓰고 죽음으로 간다.

이런 엄청난 설정을 이무생과 추자현의 연기로만 끌고 가야 하니 아쉬운 부분들이 많이 드러난다. 그래픽이 들어가야 할 부분에는 과감하게 사용이 되어야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교통사고 장면에 다 들어가 버린 것만 같다.

현실에서도 비극은 꼭 이렇게 소박한 사람들에게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 같다. 안 좋은 일, 나쁜 일은 늘 한꺼번에 몰려온다.

이무생은 시민덕희와 현피를 뜨더니 윤덕희와는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무생의 장점은 악역을 하도 많이 해서 그런지 가만히 있으면 그런 분위기가 감돈다.

스릴러 미스터리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