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슈퍼파워 - 중국, 실리콘밸리 그리고 새로운 세계 질서
리카이푸 지음, 박세정 외 옮김 / 이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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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리카이푸는 타이완 태생으로 미국에서 교육 받은 AI 전문가이자 벤처투자자이다. 이 책은 크게 2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책 제목이 나타내듯 AI 분야에서 초강국이 될 두 나라가 미국과 중국이며 특히 중국의 강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도입부에 전세계에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던 알파고와 바둑기사의 대결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세돌과의 대결이 아니라 이후의 후일담일뿐인 중국기사 커제와의 대결이어서 이 사람 중화주의자 아니야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저자는 지금이 '발견의 시대'가 아니라 발견된 지식을 이용하는 '실행의 시대'이며, 최근 급격한 발전을 가져온 기계학습에 기반한 AI는 특히 데이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의 공장으로 자본을 쌓은 중국은 엄청난 인구를 기반으로 한 풍부한 데이터와 함께 정부의 강력한 비호를 받아 AI 초강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 부분은 AI로 인해 달라질 미래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다. 먼저, 저자 역시 범용 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은 앞으로 상당 기간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현재 우리에게 위기로 다가오는 AI는 영화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AGI가 아니라 알파고를 통해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던 인공신경망과 기계학습을 통해 특정 업무에 전문화된 AI(좁은 AI)이다. 


이러한 AI는 미래에 대규모 실업과 부의 극단적 불균형을 야기할 수 밖에 없다. 수공업에 종사하던 전문인이 기계를 이용하는 비전문인으로 대체되는 이전의 산업혁명과 달리, AI의 시대에는 결국 소수의 전문가와 기업가는 부를 독점하고 AI가 대체하는 많은 직종에서는 실업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AI로 인해 직업이 사라질 부분은 반복적 최적화를 주요 업무로 하는 직군이다. 의사와 법률가도 이러한 업무를 많이 하지만, 사람들이 기계에 자신의 질병 치료나 판결을 맡기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여전히 인간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된다. AI를 잘 이용하면 반복적 작업은 기계에게 맡기고 인간은 타인의 감정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오히려 더 좋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반복적 최적화 업무를 하는 직군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은행원을 예로 들면 대출 업무는 상당 부분 AI가 맡고 인간은 오히려 보조 역할만을 하게 되어 많은 인력 감축이 일어날 수 있다. 한편 AI나 기계가 아직 하기 힘든 부분은 저임금 노동이다. 호텔에서 방 청소를 하고 침대보를 교체하는 일 등은 현재 로봇이 하기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이러한 직군의 급여는 높지 않다. 


종합해 보면, 아주 높은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직군, 이 중에서 특히 사회성이 필요한 직군은 어떻게든 살아남겠지만, 중간의 화이트컬러 직종 중 상당수는 사라지고 대신 저임금 노동이 남아있을 것이다. 이러한 미래 전망 앞에서 실리콘밸리의 리더들은 재교육, 근무시간 감축을 통한 일자리 나눔, 기본소득 등을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것들이 충격을 줄이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AI로 인한 인간소외에 대한 궁국적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인간의 평가기준이 재화의 생산이 아니라 다른 인간에게 베푸는 돌봄과 사랑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AI가 증대시키는 생산성으로 인해 재화의 생산에 인간이 덜 필요한 만큼 이 재화를 통해 걷은 세금을 다른 인간들에게 돌봄과 사랑을 주는 사람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저자는 사회적 투자 급여(social investment stipend)라고 부른다. 지금은 돌봄 노동 역시 저임금 일자리이지만, 생각과 정책의 전환을 통해 세상을 훨씬 살맛 나는 곳으로 바꾸어 AI로 인해 생기는 실업 및 인간소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첫 번째 부분은 사실 중국 자랑처럼 느껴져서 별로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개인의 경험이 담긴 두 번째 부분은 훨씬 흥미롭게 읽었으며 곱씹어 볼 만 했다. AI로 인한 세상의 변화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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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lativity and Classical Field Theory: The Theoretical Minimum (Paperback) - 『물리의 정석: 특수 상대성 이론과 고전 장론 편』원서
레너드 서스킨드 / Basic Books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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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대학의 이론물리학 교수인 레너드 서스킨드의 강의록인 셈인데, 비교적 쉽게 쓴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교과서는 교과서이므로(물리 교과서!), 수식이 마구 나온다.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에 이은 그의 'The Theoretical Minimum'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이 책의 이해를 위해서는 고전역학 책을 읽은 후 보는 것이 좋겠다(다행히 양자역학은 필요 없다). 


특수상대성이론과 고전 장이론에 관심이 있어서 읽었는데, 처음에 나오는 특수상대성이론 이후 고전 장이론에 도달하기까지 중간에 수학과 물리 이론이 너무 많이 나온다. 끝까지 읽었다는데 일단 의의를 둔다. 필요하면 나중에 다시 읽어야지. 언제?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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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Paperback)
밀란 쿤데라 지음 / HarperPerennial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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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인 토마시와 그 주변 인물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대적으로는 1968년 '프라하의 봄'과 소련의 체코 침공이 배경으로 그려진다. 두 번째로 읽었다. 처음 읽었던 대학생 시절에는 큰 감흥이 없었던 것 같은데, 다시 읽어보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예전에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는 아름다운 도시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런 역사적 아픔이 있었음도 다시 상기하게 된다. 


역시 주인공은 토마시와 테레자라고 할 수 있겠다. 평생의 사랑. 이들은 서로에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긋나다가도 행복하게 끝나는 것 같아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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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1-28 18: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라하에 직접 가 보셨군요 ㅎㅎㅎ 영어판을 읽으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저는 어릴 때 체코 출신 작가면 이 책 원어가 체코어야?했는데 사실상 프랑스문학이더라구요 ㅎㅎㅎ

blueyonder 2024-01-29 09:02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우리말로 읽었는데 다시 읽어보려고 찾으니 없더라고요. 그래서 한 권 사려고 찾아보다가 영어판이 싸길래 사서 읽었습니다. 100퍼센트 이해했다고는 말씀 못 드립니다 ㅎㅎ 그래도 읽으면서 좋았다는 말씀은 드릴 수 있습니다. ^^
 
시사IN(시사인) 제852호 : 2024.01.16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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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기사가 특히 눈길을 끈다. 첫 번째는 김명희의 '주기율표 위 건강과 사회' 연재인 "트랄파마도어 행성에서 질소가 울먹였던 이유" 기사이다. 커트 보니것의 소설 <타임 퀘이크>의 한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1차대전 중 독일에서 독가스 생산과 이를 이용한 전쟁 수행에 기여한 프리츠 하버, 그리고 2차대전에서 유대인 학살의 불가해성에 대해 프리모 레비의 글을 빌려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이러한 불가해적 비인간성이 박해 받았던 이들에 의해 현재 다시 일어나고 있음을 말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고향에서 쫓겨나고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역사를 경험했던 이들의 일부가 '정착지 확보'라는 낯익은 명분을 내세우며 팔레스타인 반도에 수천 년 거주해온 주민들을 내쫓고, 그곳에 거대한 장벽을 쌓아 세상에서 가장 큰 감옥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하마스의 공격을 빌미 삼아 압도적 무장력으로 팔레스타인에서 학살을 벌이는 중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쥐와 바퀴벌레'라는 낯익은 표현을 써가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비인간'으로 취급하고 있다. (49 페이지)


역사는 돌고 돈다. 한 때의 피해자가 다른 때는 가해자가 된다. 누군가는 악의 고리를 끊어야만 하며 그래서 역사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다음으로 "'교전국 관계'라는 낯설고 심각한 위기"라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북한이 요즘 우리를 그냥 '대한민국'이라고 호칭한다는데 더 이상 동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전쟁 중인 다른 나라로 여기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핵무기와 전쟁의 위협이 높아지는데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무감각하고 정부는 손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평화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정부의 의무이다. 정부가 위기를 고조시키지 말고 잘 관리하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진정한 평화가 한반도에 도래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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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해석에서 실재주의(realism)과 반실재주의(anti-realism)의 대립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주류로 취급 받는 코펜하겐 해석은 반실재주의를 대표한다고 여겨지며, 아인슈타인은 이 반실재주의에 대한 반대로 끝내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관찰(또는 측정) 이전에 물리계의 성질이 정해지지 않으며 관찰을 해야만 정해진다고 말한다. 이 얘기는 적어도 미시세계에서는 객관적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처럼 보여서 반실재주의로 통칭된다. 한편 양자역학을 실재주의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는데 루이 드브로이가 시작해 데이비드 봄, 그리고 최근 리 스몰린이 이어서 고민하는 향도파(pilot wave)에 기반한 해석이 그것이다[*]. 한편, 양자역학이란 순전히 '우리'가 미시 자연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것을 레시피처럼 정리한 것이라는 조작주의 해석도 있다. 이 외에도 여러 다른 해석이 있는데, 이러한 해석이 단순히 개인의 취향 문제인지 아니면 이후에 모두가 동의하는 해석이 나올지는 미지수이다. 


최근 양자역학에 대한 책이 국내에 여러 권 출간되고 있는데, 전쟁사 책과 마찬가지로 용어의 혼란이 있어서 몇 마디 적는다. 위에서 언급한 'realism'을 어떻게 번역하느냐이다. 철학에서는 realism을 보통 실재주의(또는 실재론)로 번역하므로 당연히 이를 따라야 한다고 본다. 'reality'는 '실재'이고 'realist'는 '실재주의자'이다. 하지만 이를 '현실주의','현실', '현실주의자'로 번역하는 책들이 있다. 다음의 두 권이 예이다.
















realism은 분야에 따라 다른 단어로 번역된다. 예술 분야에서는 보통 '사실주의'로 번역되며, 찾아보면 국제정치 분야에서 ('이상주의'에 대비된) '현실주의'로 번역됨을 알 수 있다. 양자역학에서 철학적 함의를 갖는 realism을 현실주의로 번역하는 것은 오역이라고 본다. 역자와 편집자들이 이런 것에 신경을 쓰면 좋겠다. 


평소 좋아하는 노라 존스의 곡 하나를 함께 올린다. 이 노래가 실재주의, 반실재주의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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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향도(嚮導)'란 길잡이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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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4-01-11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막연히 혼란만 느끼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짚어주셔서 다시 생각해봅니다. 용어를 사용할 때마다 고민해볼 문제군요!

blueyonder 2024-01-11 13:46   좋아요 1 | URL
초란공 님, 관심 갖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새 양자역학 관련 책이 많이 나오면서 용어의 혼란을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썼습니다~

그레이스 2024-01-12 18:07   좋아요 1 | URL
저두요!~ 감사합니다

blueyonder 2024-01-12 19:11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 관심 감사합니다! 평안한 저녁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