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의 간단 소개
소야곡, 세레나데: “남자가 밤에 연인의 창 밑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의 세레나데는 serenade(영) serenata(이) Serenade(독)이탈리아어로 '저녁'을 뜻하는 'sera'와 '옥외에서'란 뜻이라고 한다. 'al sereno'에 그 어원을 둔 세레나데는 기악과 성악 모두에 적용되는 포괄적인 음악양식으로 18세기에는 소규모 오페라를 뜻했다. 기악에서의 세레나데는 18세기 중엽에 발달한 양식으로, '카사치오네', '디베르티멘토', '노투르노'등과 같은 것을 말한다고 하는데, 현악기나 관악기, 혹은 작은 앙상블(실내악 규모)을 위해 작곡되었으며, 여러 개의 악장이 있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모짜르트의 '작은 소야곡'(Eine kleine Nachtmusik)이 이 장르에선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그 밖에 19세기에 들어와 드보르자크, 엘가, 차이코프스키 등이 같은 제목으로 작곡한 '현을 위한 세레나데'또한 널리 사랑받는 작품들이라고 한다.
3) 그림 속 이야기
위의 두 주인공을 등장 인물로 하고 있는 신화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달의 여신인 셀레네는 문득 어느 날 밤, 천상의 거주 지역에서 아무도 모르게 땅으로 내려오게 된다. 그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의 소유 중 하나인 Mount Latmus였다.
그렇게 사뿐히 내려와 월광 아래 여유롭게 산책을 하다가 그만..... 한 순간 그녀는 그 자리에 전신이 얼어 붙은 듯 넋을 잃고 만다. 어느 나무 아래 쯤을 지나려는데... 글쎄 대리석 조각 하나가 아름다운 자신의 달빛을 반사시키며 감히 女神의 눈을 부시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달의 신 셀레네를 달빛으로 매혹시키다니... 겁 상실...)
처음에 셀레네는 “에이, 대리석 조각상 이겠구만...” 하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분명 숨을 들이쉬고 내 뱉는 모습에서 호흡이 느껴지고 있었다. 대리석상이 숨을 쉴리는 없고....
이는 분명 사람의 형상이 아니던가!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어느 양치기 녀석이 태만의 극치를 달리며 자신의 소유지에서 허락도 없이 잠들어 있던 것이다...
그런데... 겁 상실한 이 양치기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양들은 방치한 상태로 돌보지 않아 이러저리 흩어져 있고, 언제 어디서 들짐승들에게 잡혀 먹힐지 모르는 상황이다...
저런 저런.... 그렇게 걱정을 하며 좀 더 다가가 그녀는 엔디미온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본다.
순간 그녀는 차가웠던 자신의 심장에서는 따듯한 온기가 돌시 시작했으며, 가슴 또한 점점 세차게 뛰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밤만 아니었어도 그녀의 양 볼은 붉은 홍조로 가득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분명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이라는 것이었다. 인간적 감정에 면역되지 않아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그녀는 엔디미온의 눈부신 모습을 보고는 첫 눈에 반해버린다.
달의 여신이 다가와 자신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있는데도 이 녀석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다.
이상스런 느낌에 양치기가 가만히 눈을 떠보니,
세상에나....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또 어디에 있을까.... 눈만 껌벅거리다가 그대는 누구시냐고 한 마디 말을 건네기도 전에 양치기는 사랑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그녀도 양치기도 순식간에 서로를 알아보고는 깊은 사람에 빠져버렸던 것이었다.
양치기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늙지 않고 영원히 그녀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양치기는 달의 신에게 영원히 존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그녀 역시 바라는 바 이므로 그 부탁대로 죽지 않는 영원의 잠을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
소년은 그 날부터 내내 잠만 잤다. 그리고 밤이 되면 여신은 내려와 엔디미온의 옆에서 누워 또한 잠을 잤다고 하는 그런 전설이다.
물론 그녀는 사냥, 동물 등의 神이기도 했기 때문에 소년의 양들을 잘 보살폈다고도 한다.
4) 그림의 미스터리
(이 대목은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을 적은 것 뿐이니 그림과 관련한 다른 진실을 알고 계시거나 저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으시다면 널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야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보고 있노라면 트리오종의 이 그림은 납득하기 어려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신화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분명 그린 그림인데...이야기와 일치하지 않는 요인을가진 그림이라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그림과 신화의 이야기가 일치하지 않는 점이 쉽게 눈에 띄기 때문인데, 그 어디에도 그림의 주인공인 女神 셀레네는 정작 그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 그것이다. 널부러져 잠든 양치기의 오른 편에서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양치기의 몸을 가리고 있어야 할 나뭇잎들을 옆으로 걷어 치우고 있는 이는 날개가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큐피드’일 것이다.
지로데 트리오종은 청소년 쯤 되어 보이는 에로스를 그려 넣지만 주인공을 넣지 않은 그림으로 완성하고 만다. 물론 미완의 그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림의 완성도로 볼 때 미완일리가 없다는 해석을 더 강하게 만드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지로데 트리오종은 청소년 쯤 되어 보이는 에로스를 그려 넣지만 주인공을 넣지 않은 그림으로 완성하고 만다. 물론 미완의 그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림의 완성도로 볼 때 미완일리가 없다는 해석을 더 강하게 만드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두 가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던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다.
궁금증 한 가지는 큐피드를 그려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신화에 따른 등장 인물일수 있다는 것이고, 더불어 큐피드에게 한 가지 임무를 부여하기 위해서 인데, 셀레네가 양치기의 잠든 모습을 처음 바라보게 되는 순간,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황홀했던 장면을 우리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이 그 임무인 것이다. 그 감동의 순간을 느껴야 하는 것은 셀레네가 아니라 관객인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감동의 전달 매개체로 큐피드는 완벽한 캐릭터였을 것이다.
큐피드의 캐릭터는 짖궂을 뿐아니라, 장난 꾸러기에 호기심 덩어리이다. 마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할 나이인 청소년으로 자란 큐피드야 말로 이 그림에서 해야 할 역할로는 제격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큐피드의 등장은 그림의 주제가 ‘사랑’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꾸러기 큐피드로 하여금 나뭇잎을 걷어 내도록 그린 것은 양치기의 눈부신 몸매가 그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우리(감상자)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 일 것이다. 큐피드의 짖궂은 행동이 없었다면 나뭇잎에 가려진 양치기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감상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눈부신 누드를 과감하게 보여줄 마땅한 당사자가 바로 큐피드이니 어느 누가 트리오종을 탓 할 수 있겠는가..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정작 주인 공 중의 하나인 달의 여신 셀레네를 그려 넣지 않은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이 그림은 셀레네가 양치기에게 흠뻑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아니던가. 그런데 정작 그 주인공인 셀레네가 등장하지 않다니...
오해할 수 있는 여지는 그 옆의 인물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인데, 그럴리는 없다. 분명 그 옆의 등장 인물은 큐피드이며, 큐피드가 평생 사랑한 대상은 프시케였다. 그 둘 사이에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는 것이 신화의 스토리이다.
그렇다면 큐피드를 등장시켜 엔디미온의 아름다움을 관객에게 전달해주는 데는 성공 했지만 정작 아름다운 달의 여신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는 실패한 것인가....
트리오종이 그 정도를 염두에 두지 않고 그림을 그렸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토록 아름다운 달의 여신을 왜 그려 넣지 않아 마치 김빠지는 그림으로 전락시키고 만 것인가...
그리하여 나는 같은 주제의 다른 그림들을 찾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