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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교사 안광복의 키워드 인문학
안광복 지음 / 한겨레에듀 / 2011년 3월
평점 :
철학교사 안광복
안광복 선생님의 책을 접한 것은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였다.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저술한 철학서적인지라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된 것이었는데 서양 철학에 서툰 나에게 그동안 접해본 그 어느 철학 안내서보다 매력적인 책이었다. 우선 글 솜씨가 아주 맛깔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책을 써주었다. 서양 철학을 이토록 쉽고 재미있게 쓸 수도 있구나...싶을 만큼 읽는 내내 독서의 즐거움을 내게 주었다. 그리하여 안광복님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키워드 인문학>은 그렇게하여 읽게 된 것이다. 더구나 ‘철학교사’ 라는 용어가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철학교사 안광복’이라는 표현은 새로우면서도 내게는 아름다움마저 느끼도록 해준다.
우리에게는 철학교사라는 말은 사실 낮선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광복님의 책을 읽은 후 에는 이 표현이 전혀 낮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느껴져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어쩌면 정말 잘 어울리는 말이로구나 생각되며 ‘철학교사’라는 표현이주는 정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나에게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독서를 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배가 고파지는 나를 발견한다’. 특히, 안광복님이 써준 이 책은 그러하다. 독서를 부채질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고, 독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힘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키워드 인문학>을 읽으며 열심히 밑줄을 긋기도 하고 소개해준 책의 제목을 알라딘의 검색창에 올려놓고 엔터키를 누른다.
행여 이미 읽은 독서의 목록을 발견하기라도 할 때는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안광복님도 이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구나하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책은 우리에게 사고를 유도한다. 단지 읽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닌 사고를 하도록 권고하기 때문인데, 이는 우리가 인간이기에 발생하는 독서의 자연스러운 파급효과이다.
<키워드 인문학>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 안에는 키워드들이 들어있다. 2권의 책을 읽은 후 철학교사인 저자가 자신의 시선을 담은 키워드를 추출해냈다. 저자가 읽은 책을 모두 합하면 100권에 달하며 모두 50개의 키워드가 들어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1장 안에는 모두 18권의 책을 9개의 파트로 나누어 keyword의 번호를 매겨가며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이다.
이리하여 독서와 키워드와의 관계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진지하게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 것이다. 저술의 방식은 많은 독서와의 연계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발상이며 구성이 아주 좋다. 이는 기존의 철학서들에서 보여주는 철학자의 사상을 소개하는 방식이 주는 일방적인 독서의 형태를 탈피하여 사고의 확장을 유도한다. 즉, 독자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진정한 독서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매우 유익한 책인 것이다.
독자가 저자와 함께 책을 읽어가면서 능동적으로 고민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각 장의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1장 생활 속의 ‘ism'
이곳에서는 파시즘, 유토피아니즘, 경제 프랜들리, 토지 공개념, 자본주의 정신, 자유주의, 유러피언 드림, 마키아벨리즘, 똘레랑스 등의 키워드가 들어있다. 이제 왜 키워드 인문학인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이는 세계를 400여년 동안 영향력을 미쳐왔던 마키 아벨리의 군주론으로부터 파시즘과 자유 그리고 똘레랑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관용과 폭력, 그리고 민주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에 대한 키워드의 성찰들이다.
이상의 키워드들은 그 어떤 키워드들보다 현대의 우리들에게 매우 민감한 사안들이다. 자본주의 세계는 첨단 과학을 등에 업고 점점 더 발전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굶주림과 질명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더 늘어만 가는 인류의 딜레마와 현대인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과거 나치즘과 파시즘이 전 세계를 공포의 도나니 속으로 몰아넣었던 적이 있었다. 대령 학살을 의미하는 홀로코스트라는 명칭은 나치즘의 산물이다.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견해가 다를 때 상대방을 국수주의니 파시즘이니 하는 과격한 언어들을 무기로 휘두르기 일쑤이지만,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히틀러의 국민은 알코올에 중독되기라도 하듯이 히틀러의 광기어린 통제와 배후 조종에 취해갔다. 그리고 당시 독일의 국민들은 자신들이 무슨 짖을 저지르고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할에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를 나치 당원으로서 인정받고 있는 엘리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일제는 조선을 침략하고 약탈하면서 조선의 국민과 문화 그리고 조선의 재산을 말살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조국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 들은 그렇게 조선을 죽여가면서 스스로 엘리트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조선의 비극이자 인류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경제라는 이름으로, 자유주의 정신의 이름으로, 국수주의라는 이름으로 그 누군가를 현혹시키려했거나 현혹당한 적은 없는지, 아니 그 어느 국가가 또 다른 국가를 상대로 그 ism들을 앞세워 상대방의 국가야 어떻게 되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데 몰두하지는 않았는지 깊이 성찰할 일이다. 대항해 시대의 그 참혹하고도 혹독했으며 잔인했던 식민지 정책처럼 말이다.
이러한 연유로 독자인 우리들은 그 -ism 이라는 껍질 속에 포장되어있는 그 유혹과 알맹이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인문학을 필요로 하는 매우 중요한 첫 번째 이유이다.
2장 선전, 선동 그리고 진실
2장의 키워드는 넛지, 프로파간다, 스토리텔링, 레토릭, 인지오류, 스티커이미지, 쿼터비즘이다. 모두 인지의 오류를 유발시키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용어들이다. 넛지는 타자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기술이다. 그 타자들은 절대로 억지로 이끌려가는 것이 아니다. 타자들 스스로 원해서 이끌리는 것이다. 이것은 프로파간다나 레토릭(수사학)과 별반 다른 성질이 아니다. 결국 여론은 이러한 넛지의 기술이나 프로파간다 혹은 수사학으로인하여 특정한 방향으로 발전해가게 된다. 물론 대중들은 스스로가 어느 한 쪽 방향으로 유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는 파시즘이 독일의 국민들을 이용한 방법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대중들은 그렇게 타자의 힘에 이끌려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마치 스스로의 의지대로 움직여가고 있다는 지기 오류를 범하게 만는다.
이러한 대표적 사례로 저자는 드레퓌시 사건을 들고 있다. 드레퓌시 사건의 전말을 알고있는 독자라면 매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키워드들을 우리의 생활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TV의 광고는 넛지 혹은 프로파간다와 레토릭 또는 스티커이미지를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대상이 될 것이다. 어느 유명 연예인을 등장시킨 광고는 그 효과가 대단히 크다. 여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집단의 각본과 사실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차이점이라면 상업성을 띈 광고라는 점 뿐이다. 그러나 대중의 대변인을 내세워 그 영향력을 행사하여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넛지나 프로파간다에서 여론 몰이를 위해서 유명인사의 대중 장악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결국 선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지력보다는 감정 호소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그 감정적 몰입은 유명인이라는 매개체를 통하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으로 먹혀든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판단을 스스로 잘 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키워드 넛지, 프로파간다, 레토릭등에 의하여 중심을 잃고 말 것이다. 저자는 말하고 있다. 말재주가 정신보다 화려해질 때 인간의 영혼은 썩어가기 시작한다고.... 우리가 곰곰이 사고하고 그 이면을 잘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인문학을 해야하는 두 번 째 이유이다.
3장 의식주
키워드는 옷의 철학, 한식의 세계화, 공장식 농장, 행정 복합도시, 가족 해체, 소셜 네크워크, 아파트이다. 의식주는 인간 생활의 근간이다. 그러므로 이 키워드들은 인간 생활에서 그 어나 하나라도 제외될 수 없는 것들이다. 패션은 국가의 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먹거리는 세계를 돌도 돌아 새로운 먹거리로 변모한다. 패션은 옷을 입는 사람의 생각을 좌우할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개성을 드러내고 자신의 사고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값싸고 대량 생산 공장 체제에서 만들어지는 음식물들을 매우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우리가 매일 입고 매일 먹는 의식의 이면에 감추어진 사고들을 이 책을 통해서 고찰 해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아파트의 천국이다. 대한민국의 성인들은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서 평생 일을 해야 한다. 좋은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이 대한민국 다수의 꿈이 되어버렸다. 아파트를 가지고 있어야 결혼을 하기에도 유리하다. 어느 동네에 어떤 아파트를 가지고 사느냐가 개인의 성공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어버렸다. 아파트는 그렇게 대한밈국 국민들의 꿈이자 보금자리이다.
그러나 아파트라는 공동체는 지극히 단절적이다. 표면적으로는 그 어느 대보다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듯 보이지만 우리는 더더욱 고독하고 이웃과 단절하여 살고 있다. 범죄율은 더욱 늘었고,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누군가와 소통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단절을 경험하는 사회는 인터넷으로 소통하기 시작한다. 이름도 모르는 아이디와의 소통이 시작된 것이다. 인간적 신뢰의 바탕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의 온라인 소통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일쑤이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사회는 상처 투성이다. 이제 온라인 소통의 방식에도 변질이 오고 있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신상털이는 부정적 측면의 좋은 예이다. 아는 아파트라는 단절된 주거형태가 큰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의 사회는 건전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건전하게 만들어가기 위해서 먼저 깨달아야 할 것들이 있다. 올바른 문제 인식이 그것이다. 정크 푸드에 를 먹고 단절된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의식주에 대한 올바른 문제의식, 이것은 우리가 또 인문학을 해야하는 세 번 째 이유이다.
4장 과학 종교 교육
키워드는 사회진화론, 통섭, 시민종교, 자유, 학교붕괴, 교정, 입시지옥, 1만시간의 법칙이다. 과학에 대한 오해는 때론 엉뚱한 괴물을 낳기도한다. 다윈의 이론 ‘진화’를 ‘진보’ 하는 말로 왜곡하면서 다윈의 의도는 사라지고 ‘경쟁과 진보’라는 엉뚱한 해석으로 재탄생한다. 정치가들은 그렇게하여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을 만들어 냈다. 결과물은 히틀러였다.
이에 인문학이 해야 할 일은 통섭이다. 과학, 정치, 경제, 사회를 통섭론으로 접근하는 것을 요구하는 시대인 것이다. 학문을 어느 특정 분야로 분금시킬 때 발생할 수 있는 학문의 ‘왜곡’은 원래의 의도가 변질되어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복잡한 세상의 이치들을 특정 학문이라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설명은 되려 위험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붉은 악마는 과연 종교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독일인들은 나치 전당대회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올바르지 않은 열정은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올바른 시민 종교를 잃어버린 열정의 위험함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의 ‘대한민국’이 진정 올바른 시민 정신이 되기위해서 정체성이 올바르게 정립되어야하며 건전한 국가관을 바탕으로 올바른 ‘대한민국’을 외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학교의 붕괴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 듯하다. 통섭의 이유가 분명한 것 처럼 교육에서도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고의 균형을 요구하고 있다. 단편 일률적은 교육의 방식은 참다운 스승을 양산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악순환은 반복되고 새로이 커가는 시민들은 참다운 스승이 되어주지 못한다. 결과는 인간 소외이다. 과학 기술만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은 아니다. 학교 군대, 교도소는 공통점이 있다. 규칙은 정해져있고,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진다. 인간의 개성은 무시되고, 오로지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존재하게 된다. 특히 학교는 입시 지옥과 가름이 없다. 경쟁만 부추기는 사회 집단이 학교인 셈이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그에 필요한 인제의 다양성도 함께 필요한 사회이다. 이제 교육은 경쟁과 성과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목적을 잃은 인간의 자화상이 아닌 인간과 사회를 위한 진정한 교육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우리가 인문학을 해야하는 4번째 이유이다.
5장 왕따, 갈등 그리고 전쟁
키워드는 상무정신, 전략 전술, 십자군 전쟁, 아힘사, 왕따, 우분투, 지정학이다. 크고 작은 전쟁은 늘 인류와 함께했다. 갈등은 인류의 키워드이다. 문제는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상무정신에서 독자들은 전쟁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군인은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군인은 절대로 전쟁 범죄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병법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십자군 전쟁은 이런 점에서 되돌아보고 반성을 해야하는 전쟁이다. 살생을 최대한 줄이는 전쟁, 전쟁을 하기보다는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전쟁, 간디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전쟁에서 승리를 일궈냈다. 그래야 국가간 서로를 용서할 수 있는 관계로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갈등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왕따가 존재한다. 서로 연결 고리를 찾아내면 그 고리에 속하지 않는 타자는 왕따가 된다. 올바르지 않은 의식이 자리 잡은 지역이기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아프리카에는 ‘우분투’라는 사상이 있다. ‘우분투’란 ‘인간은 다른 사람 덕분에 인간이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국가간에도, 지역 사회간에도, 개인간에도 상대방이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우분투 사상을 본받을 때이다. 인문학을 해야하는 5번째 이유이다.
6장 자본주의 생존학
키워드는 공짜, 과시적 소비, 쇼핑 중독, 욕망, 감정 노동, 일중독, 사추기, 노예노동이다. 인간은 욕망한다. 물질에 대한 욕구는 자기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모습을 반영하는 듯 하다. 나아가 스스로 타자와 구별되고 싶은 욕망이 일조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과소비가 생겨나고 흔히 말하는 된장녀도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라캉의 말처럼 인간은 인간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는 것인가. 사회는 이를 더욱 부추기기라도 하듯이 차별화를 외치며 상품을 쏟아 낸다. 소비자는 그 차별화를 구가하고자하는 욕구를 떨쳐버리지 못한다. 지본주의에 매우 부합하는 인간의 한 면모이다. 기계 문명을 발달하고 첨단 과학이 이를 뒷받침한다. 차별화되고 물질을 더욱 많이 소유하면서 사회는 행복을 느낀다. 인간의 행복을 물질에서 찾을 수 밖에 없는 사회에 다다랐는가...
인간의 수명은 점점 늘어만 간다. 나이가 들수록 연륜은 높아지고 가능한 일들은 줄어들기보다는 실제로 더 많아진다. 그러나 인간이 이러한 욕구에 굴복하는 한 한평생 노동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노동의 노예는 인간을 소외시킨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 늙어서도 욕망에 사로잡힌채 철저히 소외감을 느끼며 고뇌할 수 밖에 없는가.... 우리의 욕망을 되돌아 볼 때이다...이것이 인문학을 해야하는 6번째 이유이다.
7장 기타 생각거리들
키워드는 호모 루덴스, 시뮬라르크, 괴물, 영어 공용화등이다. 이 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키워드는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다. 우리는 스포츠에 열광하고, 음악에 열광하며 온갖 놀이를 즐기고 싶어하는 인간이다. 공정한 스포츠는 종교와 인종, 그리고 이즘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러나 생존하기 위해 인간인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자신들이 가진 진짜 모습을 위장하거나 보여주기 위해 시뮬라르크를 사용한다. 시뮬라르크는 실제의 이미지보다 훨씬 더 좋은 이미지로 변모한 것이다. 그리하여 타자들에게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다. 오히려 진짜보다 복제가 더 훌륭해 보이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대중들은 이러한 시뮬라르크에 너무 익숙해있다. 진짜가 아닌 가짜에 더 높은 평가를 내리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서양의 어떤 예술가는 복제와 오리지날 중 어느 것이 진짜냐하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복제 작품으로 서울에서 전시를 한 적이 있다. 수많은 인파들이 그 전시회에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 예술가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 시뮬라르크와 오리지날은 구별되어야 한다. 자신의 시뮬라르크를 진정한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할 것이다. 과연 정녕 나는 누구인가... 나 자신인가 나의 시뮬라르크인가... 그렇다면 자신의 진짜 모습과 위장된 이미지 중 어느 것이 진짜냐를 가릴 필요는 없어질 것이다. 진정한 자아는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것으로부터 정체성을 지켜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한다. 영어의 공용화를 주장하는 사태에 이르른 시점이다. 과연 진정한 자신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면서 우리의 말과 글을 잊고 사는 존재인가, 아니면 우리의 언어가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인문학을 해야하는 7번째 이유이다. 이렇게 키워드 인문학은 인문학 존재의 이유를 깨닫게 해준다.
<키워드 인문학>은 이렇게 다양한 키워드들을 독서를 통하여 발견하게 해준다. 또한 다양한 책들과 함께 살아가도록 한다. 인간과 여타의 동물을 구별 짖는 것으로 다양한 것들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인간적 감정, 인간의 이성, 도구의 사용, 과학의 발견과 진보, 직립 보행, 술을 마시는 인간, 넥타이를 맨 인간 등등...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유들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정녕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독서이다. 왜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독서가 존재하는가...우리가 여타의 동물들과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짖는 가장 분명한 이유이다.
독서는 인간에게 끊임없는 사고를 권고한다. 우리가 독서를 하는 한 우리는 사고의 동물일 것이다. 사고는 우리에게 보다 합리적이고 보다 도덕적이며 보다 타자를 이해하도록 하는 매체가 되어 준다. 타자에 대한 이해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 우리가 독서를 해야하는 이유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인문학을 해야하는 이유이며 인류를 위해 보다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