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의 일생 - 오늘이 소중한 이야기 (양장본), 2024년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단편상 수상작 오늘을 산다 1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새의노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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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멀스멀 올라오는 물욕을 잠재우기 위해 정리 동영상을 보는 주말이었다. 물론 물욕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심도 있게 고찰해 놓은 책도 사 놓았다. 이불 빨래와 청소를 한바탕하고 책을 읽어 나갔다. 왜 우리는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가. 비슷한 물건을 사고 또 사는 이유에 대해 연구와 논문, 사례로 설명해 놓았다. 나의 문제이겠지. 책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이런. 신간인데. 끝까지 읽어야 하는데.


과감하게 책을 덮고 마스다 미리의 신간 만화 『누구나의 일생』을 펼쳐 들었다. 아마 마스다 미리의 책 중에서 가장 두껍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두께였다. 기분 좋은 두꺼움이었다. 이런 두께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나 지금 지쳤거든.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들었고 넷플릭스에 올라온 신작 드라마 《닭강정》에 빠져들었다. (근래 들어 드라마 보다가 이렇게 웃은 적이 있던가. 내내 웃었다. 연극톤의 대사와 자칫 가벼운 유머 같은데 다시 생각하면 철학적인 사색이 담겨 있는 명언이 가득하다. 꼭 보시라.)


어제 청소했다고 오늘 안 하는 건 주말을 보내는 자의 도리가 아닌 듯하여 이틀 연속으로 대청소를 했다. 도대체 먼지와 머리카락은 어디에 있다가 나타나는지. 또 지쳐 누워서 묵직한 『누구나의 일생』을 읽었다. 세상에. 마스다 미리는 왜 나를 또 울리고야 마는지. "기대도 없이 절망도 없이, 오늘을 산다."라는 책의 문구는 오늘을 소중히 여기자는 마스다 미리 세계관의 일부이겠거니 했다. 이야기의 강력한 복선이었다.


그렇듯 일을 하고 돌아와 가족과 저녁을 먹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의 일상이 심심한 그림체로 책에 가득했다. 도넛 가게에서 일을 하는 만화가 쓰유쿠사 나쓰코의 이야기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척 연기하는 나의 마음을 때리고야 말았다. 지난주는 얼마나 고되었던가. 나의 문제. 그러니까 무턱대고 죄송하다고 말하고 상대가 거친 말로 몰아가도 죄송하다고 하는 나의 잘못이 아님에도 죄송하다고 말하는 죄송무새의 한 주였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흘러가는 건 아쉬운 듯해서 아침에 눈을 뜨면 피곤하다고 누워 있기보다(이때 부정적인 생각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일어나서 영어 문장 공부를 하고 계간지를 조금씩 읽고 있다. 소중한 하루라고 여기기 위해서. 『누구나의 일생』의 나쓰코는 일을 하고 돌아와 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자기 방으로 올라간다. 창가 쪽에 놓인 책상에는 그려야 할 원고가 놓여 있다. 피곤한 하루여도 나쓰코는 만화를 그리고 잔다. 


나쓰코가 그리는 만화에는 화과자 가게를 운영하는 하루코가 주인공이다. 나쓰코가 하루를 보내면서 느끼는 단상은 하루코의 세계로 옮겨간다.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나쓰코이지만 하루코의 시간에는 마스크가 없다. 마스크를 쓰고 일하느라 동료의 얼굴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나쓰코는 그이와의 헤어짐에서 마스크를 벗은 자신의 얼굴을 보여준다. 


소중하고 아까운 하루. 라고 생각하면 그 어떤 수모도 모욕도 괜찮지 않을까. 『누구나의 일생』은 말해준다. 말이 쉽지 그런 상황에 처하면 소중하고 아까운 나의 하루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반박할 수 있겠지. 반박하는 건 나 자신이다. 그렇기에 너의 하루는 온전한 행복을 느껴야만 한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주사 같은 책이 필요하다. 『누구나의 일생』이 그런 역할을 해주었다. 나의 시간에.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어떻게 죽을지는 안다. 슬프기도 기쁘기도 하다. 신간이 나오면 잠깐 망설였다가 주문할 수 있어서. 이제는 재미없다고 생각이 드는 책은 과감히 읽지 않을 수 있게 되어서. 기대와 절망을 숨겨 놓고 내일도 아닌 오늘에만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할 수 있게 해주어서. 『누구나의 일생』이 애틋하다. 울어도 괜찮아. 뭘해도 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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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러네이 엥겔른 지음, 김문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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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여 화장을 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화장을 하고 밥을 챙겨 먹고 필요 물품들을 챙겨서 출근을 한다는 것이니까. 나는 시도도 하지 못할 눈 위에 아이라인의 각도까지도 완벽하다. 그에 반해 나는 어떤가. 겨우 눈을 뜨고 씻고 스킨, 로션, 크림, 선크림까지가 얼굴 치장의 전부이다. 머리도 물기만 털어낼 뿐 제대로 말리지 않는다. 빗질도 하지 않는다. 


겉옷은 검은색 롱패딩과, 카키색 야상 점퍼를 돌려 입는다. 출근을 하면 나만의 유니폼 몇 년 전에 만 오천 원을 주고 산 바람막이를 몸에 장착한다. 검은색은 얼마나 관대한 색인가. 온갖 이물질이 묻어도 다정하게 품어준다. 괜찮아 모두 내게로 오라 하는 듯이. 아무도 내게 옷과 얼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지금, 행복한가.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대신 내가 나를 검열하고 다그친다. 


사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 일. 숫자를 보면서 우울해지고 화가 나지만 이 짓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체중계 중독에 걸린 것일까. 근 10년 넘게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데, 괜찮은 걸까. 냉정하게 말하면 몸무게 강박이다. 운동은 하지 않고 먹는 것만 약간 조절할 뿐이다. 밥을 많이 안 먹는 대신 간식은 엄청 때려 먹는데 다이어트 맞나 싶을 정도이다. 


다시 냉정하고 사실에 입각해 말하자면 나는 못생겼다. 키가 작고 팔다리는 짧고 허벅지는 굵고 배가 나왔다. 다이어트와 요요 사이에서 방황 중인 한심한 중생이다. 과체중에서 정상 몸무게로 진입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다시 뚱뚱이 시절로 돌아갈까 무섭다. 그때의 기억이 박혀 있어서인지 옷을 크게 입는다. 배와 허벅지를 가리기 위해. 남성복의 크고 넉넉한 사이즈가 좋다. 운동복을 사러 갔는데 크롭 티를 추천받아서 기겁하고 나왔다. 


러네이 엥겔른의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나처럼 외모 강박, 신체 혐오를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사례로 다룬다. 책 표지에 쓰인 '오늘 거울 속 내가 별로여서 약속을 취소했습니다.'라는 문장은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현시대의 여성의 일상을 대변한다. 늘 내가 별로이기 때문에 약속 자체를 잡지 않지만 가끔은 오늘 무얼 입고 갈까 고민은 한다. 어차피 검은색 유니폼으로 무장하겠지만. 


꾸밈 노동을 하지 않는 대신 몸을 작게 만들고 싶은 강박에 지치는 요즘이다. 예전에는 먹지 않아도 살이 빠졌지만 이제는 먹지 않는데도 몸무게가 늘고 있다. 왜 이럴까, 나는.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사례를 통해서 말이다. 그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었다. 


말라야 하고 예뻐야 한다. 특별한 자리가 있으면 남성에게는 요구하지 않는 옷차림을 강요받는다. 완전 뚱뚱이는 아니었는데도 나는 누구에 비해 살이 쪘다는 소리를 계속 들었다. 딱 맞는 옷을 입지 못한 이유는 그 시절의 기억 때문이리라.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말한다. 우리의 몸을 심미적인 것보다 기능적인 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손이 있어서 글을 쓸 수 있고 다리가 있어서 뛸 수 있다. 


거울 앞에서 시선을 돌려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거울 속 나 자신이 아닌 세상 속에서 살아갈 나의 건강한 몸을 응시해야 한다. 어떻게 생긴 게 문제가 아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한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해서 그동안 내가 가져온 생각을 단숨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몸무게를 재고 우울해하면서 지낼 것이다. 그래도 알아냈다. 더 말라야 한다는 강박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했는지를. 울퉁불퉁한 허벅지를 꼬집는 대신 걸을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하다고 쓰다듬어 줄 것이다. 이제는. 


인상적인 부분. 


이런 문화 속에서 여성은 신체 자신감에 대해 우스꽝스러운 메세지를 받는다. 네 몸을 사랑해! 하지만 너무 사랑해선 안 돼. 자신감을 가져! 하지만 겸손해야 해. 마음속으로 편안함을 느껴!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그걸 드러내서는 안 돼. 우리는 신체 자신감을 설파하면서도 자신의 외모를 좋아하는 여성을 거만하고 심지어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취급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런 모순적인 기준 탓에 여성은 칭찬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색하게 여긴다. 이는 외모 강박의 대책으로써 여성에게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이런 이중 잣대로 인해 여성은 외모에 대한 칭찬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다른 여성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자신의 외모를 비하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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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맛
최유안 지음 / 민음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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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학교를 졸업했다는 새로운 후배는 열의에 넘쳤다. 가끔 퇴근을 할 때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하거나, 회사 앞에서 맥주를 한잔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의 제안을 대부분 거절했다. 회사 안에서도 업무 얘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와 말을 거의 섞지 않았다. 원칙을 지키라는 말도, 지키지 말란 말도 하지 않았다. 지각을 해도, 일찍 와도, 늦게 가도,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더 무기력해졌고, 가끔 실없이 웃었다. 

(최유안, 「보통맛」中에서, 『보통맛』)



최유안의 단편소설 「보통맛」의 나온 저 문단을 읽고 정확히 마지막 문장을 읽고 '웃었다.' 웃으라고 쓴 문장이 아님에도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웃었다.' 요즘엔 그렇다. 그냥 웃는다. 웃음 기계가 된 것처럼.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실수를 하거나 어이가 없거나, 그런 상황에 웃는다. 죄송하고 민망한데도 웃는다. 상대는 나의 웃음으로 열받을 수도 있지만 웃는다. 웃음으로 때운다. 


하하하, 크크크. 또는 크하하하.


「보통맛」을 두 번 읽었다. 요즘 같이 바쁜 시대에 집중력 부족과 도파민 중독 시대에 한 소설을 두 번이나 읽는 일이 흔할까. 한 번은 일하러 가기 전에 조금씩. 다른 한 번은 일 마치고 한 번에. 읽을 때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과몰입하는 나를 발견한다. 고은양이 아닌 「보통맛」의 '나'에게 애틋하고 서글픈 감정을 느끼는 나는 나이를 꽤나 먹어 버렸다. 그러니까 꼰대가 되어 버린 것이었던 것이다. 


말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말하지 않는 쪽으로. 알려줄까 말까 할 때는 알려주지 않는 쪽으로. 지적해야 될까 말까 할 때는 지적하지 않는 쪽으로. 결국은 꾹 참고 있는 것으로 나를 지켜내야 한다. 차분하고 단아한 사극에 나오는 강단 있는 여인상의 모습으로 말이다. 꿀팁 하나 공유 하자면 심호흡을 하고 집에 가서 먹을 간식을 떠올려 보시라. 


「보통맛」이 실린 소설집 『보통맛』에서 최유안은 타인을 향한 미안한 마음들을 풀어 놓는다. 곤경에 처한 그 사람에게 내가 좀 더 다가갔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소설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일어날 일은 결국에 일어난다. 삶은 잘 짜인 구성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소설, 영화, 드라마처럼 납득할 만한 인과 관계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자책하겠지만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월요일 오전에 회사에서 예능 클립 영상을 보는 후배와 일을 하는 것도 난민 수용소에서 만난 소녀를 데려오지 못한 것도 불법 영상에 나온 인턴을 도와주지 못한 것도 나의 잘못이라고 탓을 해야 안심이 되겠지만 『보통맛』의 세계에서는 그럴 필요 없다고 어깨를 다독인다. 무조건적인 지지를 이 세계에서는 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 『보통맛』의 세계로 가볼 것을 추천한다. 


안전하지는 않지만 묘하게 안심이 된다. 치사하게 생각하는 내가 정의롭지 못한 내가 『보통맛』에서라면 밉지 않을 수 있다. 현실에서 나는 내가 미운데 『보통맛』에서 나는 나를 좋아해 줄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래서 「보통맛」을 두 번 읽었다. 실패와 좌절의 정서가 난무하는 『보통맛』인데 변태인 건지 나는 용기를 받았다. 넌 너를 믿고 내일이 아닌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해. 하는. 


가끔 실없이 웃게 되어도 앞 집 여자의 오지랖에 진절머리가 나도 내가 나이게 살아야 한다. 인사 잘하고 상냥하게 말하고 글로 배워서 익힌 사회성을 발휘하고 월급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매운맛, 쓴맛의 꾸지람을 들어도 보통맛으로 치환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는 그날까지 당신과 나의 근로 생활을 응원한다. 언제 어디서든 냥냥 펀치를 꺼낼 수 있는 우리들이다, 조심해. 맞으면 멍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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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
김경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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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이 되면 시무룩해진다. 시무룩하지 않은 날이 없지만 월요일이 되면 더더욱 그렇게 된다. 선크림을 많이 바른 것도 아닌데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고 누구라도 다 덤벼 하는 식의 막무가내의 심정이 된다. 그렇게 월요일이 되면 주말 잘 보냈냐는 인사를 하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인사를 받으면 예예예 하면서 어색하게 웃는다. 속으로는 잘 보냈으니까 여기 와 있지 한다. 한 번은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주말 잘 보냈냐는 인사는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 주말 잘 지냈으니 여기 와 있겠죠. (인성 쓰레기라고 생각했겠지.)


지금도 그렇지만 한동안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전전긍긍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나의 말투, 행동, 옷차림, 배경 등을 놓고 떠들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니 사람들은 의외로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관대하고 정보를 알려주길 좋아한다. 이런 식이다. 문제가 생겨서 해결책 까지는 아니고 의견을 구하고자 하면 나 화법으로 화제가 전환된다. 나 같은 경우는, 내가 예전에는 식으로 논점이 바뀐다.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 상대의 말을 듣고 있으면 기가 빨리면서 없던 집중력마저 사라진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1분 정도 생각을 하고 2분은 심호흡을 하고 집에 와 드러누워 《세계테마기행》을 보거나 《한국기행》을 보면 된다. 텔레비전 속의 사람들이 더 정직해 보이면서 어지러운 마음이 수그러진다. 김경욱의 소설집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에는 관계에서 오는 불안함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표제작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의 시작은 소설을 읽어 나가기에 거부감이 없는 정서를 드러낸다. '코로나19가 영원히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 집까지 찾아오는 사람도 집에만 틀어박혀 지낸다고 뭐라는 사람도 없다'로 자발적 고립을 좋아하는 이가 주인공이다. 가족이 있지만 절해고도에 사는 것 같은 나, 김중근은 무사히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홉 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나와 나를 둘러싼 주변부의 세계이다. 나를 중심에 놓았지만 나마저도 나를 어색해 하는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 태어나서 살아가는 일은 소중하고 감사해야 한다. 일상을 유지하는 힘을 길러가면서. 때때로 그럴 수 없다는 게 서글프다. 세계는 나와 무관하게 흘러가고 분노와 상처는 배고픔처럼 자주 밀려온다. 


소설가는 직업이 되었기에 청탁을 해주지 않아도 소설을 쓴다. 혹은 쓰는 척만 할 뿐. 그래도 그는 소설가다. '그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에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할 운명. 소설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 말해주길 기다리는이다. 면전에 대고 그따위로 소설 쓸 거면 집어치워. 나무가 아깝지도 않냐고 독설을 날려도 나의 소설을 읽어주었구나 고마워하는이다.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 건 욕심이고 허세이다. 이제는 사람 정도로만 인식돼도 고마울 지경이다. 즐거운 시간 보다 아무 일 없는 하루가 되기를. 등이 아파서 주말 내내 누워 보낸 나를 게으름뱅이라고 생각해도 괜찮다. 나는 나를 조금은 좋아해도 되지 않을까. 무얼 못하고 한심하고 부정적인 사람으로 나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을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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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인생샷 뒤의 여자들 - 피드 안팎에서 마주한 얼굴
김지효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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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가다 뒷자리에 아무도 없는걸 확인하고 핸드폰을 꺼냈다. 셀카를 찍기 위해서다. 지쳤고 심심했고 몰골이 어떤지 궁금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있다는 그 앱, 스노우카메라를 켰다. 다양한 모드의 필터가 있어서 잠시 고민했다. 인기 필터로 찍어보았다. 결과는 대실패. 보정이 심각하게 들어간 얼굴은 수상하고 무서웠다. 


카카오톡 프로필에도 나는 내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내 사진은커녕 사람이 나오는 사진 자체를 올리지 않는다. 그건 뭐랄까. 나를 비롯하여 사람을 싫어하는 인류애 없는 소심하고 고독한 현대인의 표상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겠지. 버스에서 찍은 셀카를 지우지는 않고 몇 년 전에 찍은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못생김을 자랑하고 있구나. 


외모도 경쟁력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한 번 기억을 더듬어보자. 못생긴 얼굴 때문에 피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있는지. 있다, 있어. 일자리를 구하러 갔을 때나. 같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묘하게 나만 혼이 났던 적이(기분 탓이려니. 자격지심이려니 여기라고 하겠지만 쎄함은 과학이라고 못생겨서 더 혼난 거 맞는 것 같다.)


김지효는 자신이 쓴 논문을 보충하여 『인생샷 뒤의 여자들』이라는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인생샷이라는 용어를 자각하게 된 건 핑크 뮬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인생샷을 위해 갈대밭 한가운데로 직진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 어느 근처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인생샷이 대체 무엇이길래. 


인스타를 하지 않은 나로서는(한 번 해볼까 했지만 피곤했다. 해킹도 당했고.)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신기방기 동방신기 하다. 피드가 스토리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인생샷 뒤의 여자들』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왜 여성들이 인생샷에 그토록 진심인지. 인스타를 큰 틀로 여성, 인생샷, 탈코르셋, 페미니즘을 핵심어로 놓고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현상을 응시한다. 


한 장의 인생샷을 찍기 위해 드는 수고는 어마어마했다. 셀카는 본인이 찍지만 인생샷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여기에서 사회적인 관계성이 주목된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인생샷 찍기는 노동이었다. 그 중심에 여성이 있다. 외모 가꾸기, 꾸밈 노동은 유독 여성에게만 부여되는 것인지 『인생샷 뒤의 여자들』은 고민한다. 


인스타의 막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치열한 생존기였다. 외모도 경쟁력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셀카와 인생샷을 찍는다. 김지효는 책의 시작에 '사진첩에 비슷한 사진이 수십 장씩 담겨 있는 여자들에게'라고 쓴다. 스노우앱의 필터를 지우면 푸석하고 주름 많고 대칭이 맞지 않아 비뚤어진 얼굴이 두둥 등장한다. 그냥 보통 오늘의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된 건 나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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