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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절세미인, 작약화 芍藥花

好箇嬌饒百媚姿 호개교요백미자

人言此是醉西施 인언차시취서시

露葩攲倒風擡擧 노파기도풍대거

恰似吳官起舞時 흡사오공궁기무시

아양 떠는 고운 자태 너무도 아리따워

사람들은 이를 두고 취서시(醉西施)라 한다네.

이슬 젖은 꽃 기울면 바람이 들어주니

오나라 궁궐에서 춤추던 때 비슷해라.

*중국에서는 모란을 '꽃의 왕'이라 부르며 꽃 중 제일로 꼽았고, 작약은 '꽃의 재상'이라 해 모란 다음으로 여겼다. “작약이 꽃나라의 재상이라고는 하나 남성적이기보다는 여성적이다. 작약의 품종 가운데 예전 중국 오나라의 절세미인 서시(西施)가 술에 취한 모습 같다 해서 붙인 취서시(醉西施)란 것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규보(李奎報)는 〈취서시작약시(醉西施芍藥詩)〉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작약은 꽃의 모습이 작약(綽約), 가냘프고 맵씨가 있다 해서 작약(芍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말한다. 이는 억지로 가져다 붙인 말에 지나지 않는 듯하니, 나원(羅願)이 지은 《이아익(爾雅翼)》에는, “음식의 독을 푸는 데 이것보다 나은 것이 없어서 ‘약(藥)’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誰道花無主 수도화무주

龍顔日賜親 용안일사친

宮娥莫相妬 궁아막상투

雖似竟非眞 수사경비진

꽃은 주인 없다고 누가 말했나

임금께서 날마다 친애하시네.

궁궐의 아가씨들 질투 말게나

비슷해도 마침내 진짜 아니니.

“작약이 우리나라 역사에 보이는 것은 지금부터 770년 전인 고려 의종(毅宗) 때 일이다. 의종은 정치보다 놀이를 좋아하여, 하루는 대궐 정원에서 꽃구경을 할 때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작약시를 지어 바치게 했다. 이때 지어 바친 시 가운데 현량(賢良) 황보탁(皇甫倬)의 〈작약〉시가 제일이었다.”

재배하는 작약의 종류는 우선 색깔로만 봐도 붉은색, 분홍색, 흰색 등이 있으며 많게는 4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 산야에 자생하는 작약이라는 이름 붙은 것으로는 주로 깊은 산골에 서식하는 산작약, 백작약, 참작약 등이 있다. 접하기 귀한 꽃으로 겨우 흰색으로 피는 백작약만 보았을 뿐이다.

옛 어른들은 함박꽃으로도 불렀다는 작약을 고향 집에서 얻어와 뜰에도 작약을 심었다. 다양한 색으로 크고 화려하게 피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아서다. 모란이 지고나면 작약이 핀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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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사랑이 데굴데굴, 앵도화櫻桃花

絳葩春艶艶 강파춘염염

朱實夏團團 주실하단단

붉은 꽃 봄날에 곱디 곱더니

빨간 열매 여름날 동글동글해

고려사람 이규보(李奎報)가 앵두를 노래한 시의 첫 두 구절이다. 꽃과 열매가 눈앞에서 보는 듯 생생하게 그려졌다. 옛사람들은 빨갛고 이쁜 앵두를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이” 의 모습을 비유하는 많은 시를 남겼다.

一雙玉手千人枕 일쌍옥수천인침

半點櫻脣萬客嘗 반점앵순만객상

한 쌍의 옥 같은 손 천 사람이 베개 베고

반 점의 앵두 입술 만 사람이 맛 보네

판소리 춘향가에 나오는 대목이다. 앵순(櫻脣)은 즉 앵두 입술이다. 여인의 입술에 대한 비유가 여기에 이르러 최고봉에 오른 것이 아닌가 싶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세종과 문종 사이에 앵두를 두고 벌어진 일화가 전해진다. 앵두를 좋아한 아버지 세종을 위해 아들 문종이 궁궐에 앵두나무를 심어 궁궐에 온통 앵두나무뿐이었다고 한다.

*꽃 보기를 즐겨하여 여러 가지 과실수를 심었다. 덤으로 열매까지 얻을 수 있다면 좋은 일거양득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심은 나무 중에서 꽃보다 열매에 주목한 것이 이 앵두나무다. 혹여 때맞춰 손님이라고 온다면 인심을 크게 써도 좋은 것이라 의도가 컷다.

크지 않은 나무가 가지마다 수없이 많은 꽃을 피운다. 그것을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데 빨갛게 익은 열매를 보면 그 꽃이 다 열매로 맺힌 것 아닐까 싶게 넉넉한 품을 풀어 놓는다. 감당 못하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의도를 가진 주인이다. 수시로 따먹기도 하지만 마침 외출이라도 할양이면 한 봉지 가득 들고 나가고 그래도 남는 것이 많기에 담장을 사이에 둔 할머니들에게 나무를 통째로 내맡기기도 한다. 할머니들의 입가에 번지는 달콤한 미소는 앵두보다 이쁘고도 달았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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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기는 연꽃 같은 목련화木蓮花

잎사귀는 감잎 같고, 꽃은 백련 같다. 씨방은 도꼬마리 같은데 씨는 붉다. 산 사람들이 목련이라 부른다.

*매월당 김시습이 목련에 대해 언급한 문장이다. 본초강목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이 꽃은 곱기가 연꽃 같아서 목부용이니 목련이니 하는 명칭이 있다."

"이 꽃은 정원에서도 기르지만 깊은 산 속에 흔히 자생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보면 개성의 천마산(天摩山) 대흥동(大興洞)에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진 속에 목련화가 활짝 피어 맑은 향기가 코를 찌른다고 했다. 성해응(成海應)의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를 보면 금강산의 혈망봉(穴望峰)에는 목련과 적목(赤木), 동청(冬靑)과 측백(側柏) 및 해송의 종류가 많다고 했다. 금강산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명산에는 대개 이 목련이 있는 모양인데, 특히 절 같은 데는 이 꽃을 아주 즐겨 심는 경향이 있다. 순천 송광사는 목련이 많기로 이름 높은 곳 가운데 하나다. 서울 안에도 산속 정자나 별장 같은 곳에 간혹 심는 경우가 있다."

시골에 집을 마련하고 나무를 심었다. 대문 바로 옆에 백목련을 심고 훗날 꽃 필 정경을 그려보았는데 10여 년이 흐르고 나니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다. 다만 아쉬운 것은 꽃 피면 간혹 서리가 내려 망처놓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앞산에 야생 목련이 제법 많다. 하얗게 핀 꽃을 멀리서 바라보는 봄날의 한때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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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그러운 꽃지짐, 진달래

牕外彼啼鳥 창외피제조
何山宿更來 하산숙경래
應識山中事 응식산중사
杜鵑開未開 두견개미개

창밖에서 우짖는 저 새야
어느 산서 잠자고 다시 왔느냐.
산 중의 일을 응당 알겠지
진달래꽃이 피었든 안 피었든?

*조선사람 서기보(徐箕輔)의 부실(副室)인 죽서박씨(竹西朴氏)가 10살에 지었다고 전하는 시다. 산에 진달래가 피었던가, 피지 않았던가를 물어본다. 그 마음을 알듯도 하다.

두견화(杜鵑花)는 속명(俗名)인 진달래로 부르는 편이 오히려 다정스러운 느낌을 준다. 꽃놀이로 대표댸는 화전놀이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시인묵객에게 사랑받던 꽃이다.

강원도 산길 어딘가를 가다 햇빛에 덩달아 눈부신 꽃을 보았다. 반가움이 앞서 기어코 차를 돌려 눈맞춤 하고서 가던 길을 갔다. 무슨 힘이 있어 눈맞춤하게 했을까.

진달래를 떠올리면 4월의 볕 아래 모인 청춘들이 먼저다. 대의를 위해 청춘을기꺼이 불살랐던 그때 그시절과 동치할 수 있는 우리 산천의 대표적인 꽃으로 각인되어 있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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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염하고 가녀린 미인, 살구꽃

五更燈燭照殘粧 오경등촉조잔장

欲話別離先斷腸 욕화별리선단장

落月半庭推戶出 낙월반정추호월

杏花疎影滿衣裳 행화소영만의상

오경의 등불은 남은 화장 비추고

이별을 말하려니 애가 먼저 끊어진다.

반 뜰 지는 달에 문 밀고 나서자니

살구꽃 성근 그림자 옷 위로 가득해라.

고려사람 정포鄭誧의 시 '별정인別情人'이란 시다. 어느 으슥한 곳에 사랑하는 여인이 있어 거기로 가끔 가서 놀았다. 때로 밤을 새우는 일도 있었다. 하루는 밤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새벽에 사랑하는 여인과 작별하고 돌아오려 할 때, 그 순간의 광경을 그려낸 것이다. 살구꽃에 얽힌 로맨스를 담았다.

"살구꽃이 비록 곱고 어여쁜 것은 복사꽃만 못하고, 밝고 화려하기로는 해당화에 못 미치며, 아름다운 것은 장미에 미치지 못하나, 요염한 것은 도화 해당 장미가 또한 행화에 한 걸음 양보해야 할 지도 모른다."

살구꽃에 대한 묘사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문장이다. 매년 때가 되면 살구나무를 찾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족한듯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볼 여유로움이 있다면 빼놓을 수 없는 꽃이다.

최근 내가 사는 마을 한쪽에 있던 살구나무가 사라졌다. 이사온 사람이 집을 새로 지으면서 잘려나간 것이다. 어찌나 아쉽던지 그쪽 방향으로 출입하는 것을 피할 정도였다.

살구나무는 친근한 나무다. 마을마다 여러그루가 있어 살구가 익을 무렵이면 나무 아래에서 서성이며 살구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던 어린시절 추억이 있다.

꽃도 이쁘고 열매에 대한 추억도 있기에 들고나는 대문 가에 살구나무를 심었다. 올해는 꽃을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한해를 더 기다려야하나 보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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