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석사냥꾼 케이스릴러
김용태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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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건의 시작은 바로 이 곳, 구와로 돌아오면서부터였다.

'희령'은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고향인 구와면을 떠나 수도권에 있는 사립 명문고로 전학을 하게 된다. 그 후 이혼의 아픔을 겪고 딸 별이를 데리고 재혼한 후에도 쭉 서울에서 살았지만 기자인 남편의 실직과 생활고로 결국 구와로 돌아오게 된다. 희령이 구와에 정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와면에 운석이 떨어지게 되고, 그 날 희령의 딸인 '별이'가 실종된다.

희령과 남편 '면수'는 이상하게 딸을 찾는데 소극적인 경찰을 믿을 수 없어 직접 나서게 되고, 전직 기자였던 면수는 의심가는 동네 사람들을 조사하던 중 모든 사람들이 한 인물과 어떤 사건에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람은 바로 구와 토박이이자 교감으로 퇴직한 후 지금은 교회의 장로인 전장로, '전종만'이었다. 그리고 전장로와 아내 희령이 얽혀있던 그 날의 사건이 딸의 실종과도 연관돼 있을 거라고 예감한다.

16년 전, 전장로와 희령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이번에 떨어진 운석과 딸의 실종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파고들면 들수록 진실은 미궁에 빠지고 결국 범인으로 의심되는 인물들 중 두 사람이 사망하게 되는데...

 

이야기는 일반적인 장편 소설에 비해 초반 스타트가 빠른 편인데 거의 몇 페이지가 넘어가자마자 구와에 운석이 떨어지고 연이어 딸이 실종된다. 그 이후부터는 면수와 희령이 딸을 찾아 주변을 탐문하는 것이 주된 이야기를 이루면서 장거리 레이스로 돌입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는 초반의 빠른 전개에 비해 진전이 더딘 편이었다. 본격적으로 딸을 찾아나서기까지 부부 간의 갈등이나 주변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범인인 듯 시종일관 의심스러운 분위기를 계속해서 풍길 뿐 별다른 진행이 없어 약간 느슨했다.

스토리만 보자면 희령이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 범인을 찾아나가는 스토리가 진행될 거라고 예상되지만 의외로 의붓아버지인 면수의 추적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 동안 별이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한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보며 이번에야말로 진짜 아빠로서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내인 희령이 구와를 떠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에 대해서도 깊이 추적하면서 16년 전의 그 날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나간다.

그리고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자 주인공이기도한 희령은 예민하고 약간은 히스테릭한 면이 있으면서 동시에 딸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남다른 인물로 나오는데 솔직히 한숨이 나올 정도로 한심한 캐릭터였다.

사실 희령은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일지 짐작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저질렀던 그 날의 일에 대해 의식적으로 회피하면서 딸의 실종이 자신과는 무관할 것이라는 바람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희령이 무능력하다고 비판했던 남편 면수의 책임감과 기자로서의 탁월한 감이 딸을 찾는데 더 큰 공헌을 했고, 희령은 진실을 숨기는데 급급해 딸을 찾는게 방해만 됐다.

 

 

이 책에는 엄청난 반전이 있지는 않다. 처음부터 의심스러운 인물이 결국 범인이었는데 요즘같이 반전에 대한 강박이 많은 책들 사이에서 오히려 반전이 없는 것이 신선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토리 자체는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지나치게 16년 전의 그 사건에 대해서만 집중하면서 막판에는 그 사건이 뭔지에 대해서 궁금증이 증폭되기 보다는 오히려 식상해진다는 느낌이 있었다.


『 운석사냥꾼』은 어느날 갑자기 떨어진 운석과 딸의 실종이라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결국엔 인간의 탐욕과 죄책감, 그리고 속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희령은 처음부터 모든 문제의 답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과 이기심으로 끝까지 자신의 죄를 외면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그토록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죄의 십자가는 결국엔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가족까지 위험하게 만들었고, 숨기고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자신을 옥죄어 왔다. 나중에야 진정한 반성과 사죄 없이는 죽는 날까지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란 걸 깨닫지만 그 땐 이미 너무나 멀리 와버린 상황이었다.


만일 희령이 조금 더 일찍 용기를 냈더라면, 그 날의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뒤돌아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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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 오만과 편견
이한월 지음 / 청어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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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굳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알만큼 유명한 고전이다.

그만큼 영화나 책 등 수도 없이 많이 리메이크되거나 혹은 패러디됐다. 심지어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라는 영화까지 나올 정도이니 그 유명세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원작인 오만과 편견은 지체높은 가문의 오만한 남자 다아시와 편견에 사로잡힌 여자 엘리자베스가 만나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런 두 사람이 시대를 옮겨 조선시대에서 태어났으니 "심도헌"과 "이연리" 이다.

제인 오스틴의 열렬한 팬이자 영화 오만과 편견을 보며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는 작가의 후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판 오만과 편견』은 말 그대로 오만과 편견을 조선시대 버젼으로 리메이크해 놓았다.

단순히 제목이나 모티브만 빌려온 것이 아니라 ​내용을 그대로 가져오되 조선시대라는 배경에 맞게 각색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전의 조카이자 세도가 집안의 자제인 '도헌'은 원리원칙 주의자로 잘 모르는 사람과 말을 섞는것 조차 좋아하지 않는 무뚝뚝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이었고, '연리'는 가난하기는 하지만 청렴하고 올곧은 종친의 자제로 영리하고 당찬 성격이었다. 연리는 당시 여성들이 글을 배우지 않았던 조선시대라는 상황에 맞지 않게 논어와 공자를 읽으며 군자의 도리를 논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여성이었다.


" 재산깨나 있는 사내에게 부인이 꼭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였다. 그래서 그런 남자가 고을에 들어오게 되면, 혼기가 찬 딸을 가진 집에서는 마음대로 그 남자를 자기 딸에게 적당한 배필로 점찍었다. 물론 그 부모들은 딸이나 사내의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건 장연에 사는 혜인 홍씨도 마찬가지였다. " (p21)


원작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조선판 오만과 편견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한다.

홍씨가 재산이 많은 자에게 자식들을 시집보내고 싶어한다는 속물적인 성격을 잘 드러내는 동시에 연리의 어머니가 두 사람이 만나게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예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홍씨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지체높은 집안의 사윗감 후보들에게 딸들을 선보이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연리는 처음 만난 도헌의 무뚝뚝하고 말수 없는 모습에 거만하다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고, 도헌은 처음 본 사이에 대놓고 혼인을 이야기하는 홍씨의 허영 가득한 말과 행동, 그리고 그들의 허름한 집안형편에 자신과는 격이 다르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첫인상만으로 서로를 오해해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는 사이가 된다.

그 후 두 사람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오해를 풀게되고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다.

 

『조선판 오만과 편견』에서는 일반적인 로맨스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격정적이고 애틋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두 사람의 사이는 예상보다 좀 밍밍한 편이다. 서로 조아하면서도 흔하디 흔한 키스신 하나 없이 결혼에 이르게 되니 말이다.^^;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충실하게 반영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다양한 심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선입견과 편견으로 인해 타인을 얼마나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속물적 근성과 진정한 사랑사이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등 여러가지 감정들을 다루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은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스토리에 조선시대라는 배경을 반영하여 탄생한 작품이다. 그렇기에 원작과 크게 다른 스토리나 열정적인 로맨스를 기대한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첫 눈에 반해 불타오르는 사랑보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배경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가까워져 가는 두 사람의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랑에 공감하거나, 혹은 원작에 충실한 이야기를 기대한 독자라면 만족할만한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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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낭만 취미살이 - 직업 유목민 12인의 나답게 사는 법
정원 지음 / 피그말리온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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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흔히 기빨리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회사원들에게는 꿈이 있다.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하는 일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

직장인들은 하루 24시간 중 절반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면서도 대부분 자신의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인생의 절반을 괴롭게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고통의 시간을 진짜로 내가 원하는 일, 좋아서 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실용낭만 취미살이』에서는 ​그런 꿈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12명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중에는 카페와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고, 도예가도 있고, 출판가도 있고 바리스타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 고정된 일에 얽매이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직업을 바꿔 가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본의아니게 '직업 유목민' 이라는 애칭 아닌 애칭이 붙기도 한다. ​


​첫 번째로 소개된 사람들은 부부였다. 두 사람 모두 여행을 좋아해서 결코 한 군데 정착해서 가정을 이루지 않을 것 같은 보헤미안 이었지만 여행 중 우연히 만나 현재는 제주도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현재의 삶이 결코 정착은 아니라고 한다.  정착이 아니라 '생존 여행'. 두 사람은 현재가 생존을 위한 여행 중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부부는 현재 게스트하우스와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밖에도 문화센터에서 수업을 하거나 가구를 만들거나 집수리를 하며 밥벌이를 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에 사람들은 뭘 해서 먹고 사냐며 자주 물어본다고 한다. 그러면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고 대답한다. 이것이 현재 부부의 삶이다. ​

​남들이 흔히 말하는 안정적인 생활이 아니라 바람처럼 발길 닿는 곳이 집이고,  좋아서 하는 일이 생계가 되는 그런 삶.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인생이다.

세 번 째 이야기에서는 핸드메이드 도예가인 미코 의 사연이 등장한다. 원래는 디자이너이자 의류사업을 하던 사업가였는데 너무 일만하다 자신이 다 소진돼버려 어떤 것도 할 기운이 없는 상태였다. 그 때 만난것이 흙, 도자기였다.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온갖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 질 수 있는 일, 그녀에게는 그것이 바로 도자였다.  흙을 만지면서 잡념들을 떨쳐버리고, 1,000도가 넘는  불길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고요해지고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도예가라는 직업은 바쁘고 화려했던 예전과 같은 생활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지만 지친 영혼을 치유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실용낭만 취미살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일을 통해 떼돈을 버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생계 유지가 될 정도지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느끼는 행복과 편안함은 그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진짜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쓸데없이 많은 금전에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 마음이 공허한 사람들은 그 구멍을 돈으로 메꾸려할 지 몰라도 여기에 나온 12인은 그 공간에 행복이 가득차 돈에 대한 욕심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 보였다.

 

누군가는 이들의 이런 자유로운 삶을 보며 무책임 하다거나 혹은 배부른 소리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을 통해 돈을 버는 이유는 결국엔 행복해지기 위함이 아닌가. 안정적인 직업이나 좋은 집, 좋은 차도 결국엔 나의 만족을 위해,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인생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70년 혹은 100년의 시간동안 돈이 주는 만족감을 쫓기보다는 진정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즐거운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삶은 부러워는 할 수는 있으나 아무나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손에 쥔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앞이 뻔히 예상되는 평탄한 미래를 버린다는 건 어지간한 용기와 결심으로는 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내가 가지 못한 길을 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대리만족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내가 가지 못한, 혹은 가지 않은 길을 상상하며 오늘도 꿈을 꾼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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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맨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3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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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립맨』의 부제는 범인에게 고한다2 이다.  '범인에게 고한다' 와 중복되는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전작에 나오는 사건이 대화 중에 언급되기는 하지만 전작을 보지 않았어도 립맨을 읽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그러니 혹시나 범인에게 고한다를 보지 못해서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중이라면 주저없이 읽어보길 권한다.

일단 600 페이지에 달하는 많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나 흡입력이 상당히 좋은 작품이다. 그래서 딱히 길어서 지겹다던가 스토리가 늘어진다던가 하는 느낌없이 마지막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소재가 우리 생활과 상당히 밀접한 보이스피싱과 유괴이기 때문에 더 피부에 와닿아 실감나기도 했고 흥미로웠다.

​립맨의 주인공은 도모키와 다케하루 형제다. 어릴 때부터 공부와는 담쌓고 지낸 동생 다케하루와 달리 형인 도모키는 대학교 진학까지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아 간다. 하지만 갑작스런 부모님의 교통사고와 더불어 취직이 힘들던 시기, 어렵게 취직한 회사 미나토당이 유통기한 위조로 거의 경영파탄 상태가 된다. 그러자 회사에서는 입사 예정자들에게 강제로 입사포기를 권유했고, 이 일은 결국 도모키의 인생을 크게 엇나가게 만들게 된다.
그 후 생계가 곤란해진 형제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보이스피싱 업체에 발을 들이게 되고, 그것이 훗날 유괴사업까지 함께한 천재 범죄자 이와노와 만나는 계기가 된다.


​립맨의 초입부는 도모키의 시선에서 진행되지만 결국 사건의 큰 축에는 '이와노'와 '마키시마'가 등장한다. 이와노가 예측 불가하고 기발한 범죄를 설계하는 천재 범죄자라면, 그 반대편에는 뛰어난 직관력과 추리력으로 범인을 쫓는 마키시마 형사가 있다.

​일반적으로 영미 소설에는 뛰어난 인물 한 명의 활약으로 사건이 해결되는데 반해 립맨에서는 팀장인 마키시마를 비롯해 특별수사대라는 조직에 속한 여러명의 형사들이 함께 사건을 해결한다. 일본 특유의 집단문화의 영향인지 몰라도 일본 소설에서는 경찰 조직내 위계질서나 팀워크에 대해 그려낸 작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는 립맨에서도 예외가 아닌지라 마키시마의 탁월한 리더쉽과 수사능력도 빛을 발하지만 마키시마를 보좌하는 형사들 또한 각각 개인의 능력과 개성이 두드러진다. 

이런 특별수사대 형사들의 각기 다른 매력을 보는 것도 립맨에서 느낄 수 있는 잔재미 중 하나다. 그 중 오가와와 아유미 콤비는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로 마지막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무래도 이야기의 소재가 보이스피싱과 유괴이니만큼 그 수법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와있는데 혹시나 이 책을 보고 실제로 따라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로 치밀하고 정교한 플랜이었다. 그리고 보이스피싱에 대해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법 외에도 다양한 기법들이 나와있어 미리 알고 있다면 실제 보이스피싱 예방에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사실감 넘치는 묘사들은 백프로 작가의 상상력으로만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실제로 이뤄지는 범죄를 참고한 듯 마지막 장에는 참고 문헌에 관한 정보가 나와있었다. 그만큼 사건 묘사들은 현실감 넘쳤고 크게 잔인하거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계속해서 긴장감을 잃지 않게 만들었다.


인간은 아주 사소한 계기로도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도모키 또한 원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잇따른 불운이 겹치면서 순간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게되고,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은 그의 인생을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도모키와 다케하루 형제들같이 평범한 인물들도 순간의 판단착오, 혹은 지나친 욕심으로 범죄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것이다. 

운전 중 잠깐 몇 초의 졸음은 사망사고를 일으키는 위험한 행동이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이번 한 번만 딱 눈감고 저지른 그 행동이, 나중에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잠시 외면한 그 한순간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도 있으니 눈을 크게 뜨고 현혹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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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혼
황희 지음 / 해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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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는 "떠난 것들은 무엇으로든,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돌아온다고 믿는다."  고 했다.


이 책은 이런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이야기로 세상을 떠났던 자들이 다시 살아 있는 자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과 사연들에 관해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꽤 많은 편인데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인물들이 각자 나름의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따로 진행되다보니 처음에는 그들이 서로 어떤 사연으로 얽혀있는지 알 수 없다.  심지어 국적 조차 같지 않다.
하지만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각 인물들간의 연결고리가 하나씩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얽히고 설킨 그들의 인연이 한데로 뭉쳐진다.

 

"란코"는 도쿄에 있는 라멘집에서 일하고 있다. 시어머니의 엄청난 시집살이로 고생하고 있고, 남편은 병 때문에 제대로 일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지낸다.
그런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어린 아들 히카루와 글 쓰기다. 때때로 공모전에 소설을 내지만 매번 떨어지고 만다.

 

"양희주"는 치매노모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싱글 여성이다. 그녀는 표지 일러스트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엄마를 편안히 모시기 위해 차를 사고 싶지만 남자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이번에는 꼭 받아내고야 말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강주미"와 "강나영"은 자매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곽새기"라는 인물로부터 쫓기면서 그녀들의 일상은 망가졌다.
부모님은 실종되고 두 사람은 허름한 여관을 전전하며 도망다니고 있다.

 

"이시현"은 약사다. 사고로 다쳐 다리 한 쪽을 절게 되었고, 다리를 고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면서 여자친구를 외면해 버렸다.
다시 한국으로 귀국해 약국을 운영하며 전 여자친구를 애타게 찾고 있다.

 

"상원"은 아버지의 기사식당을 도와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남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
열다섯 살 눈길에 미끄러져 의식을 잃었을 때 저쪽 세계의 "동욱"이 상원의 몸에 숨어 들어 그날 이후 쭉 함께 살고 있다.

 

 

『부유하는 혼』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람의 '혼' 이 자리잡고 있다.
자살하는 사람, 혹은 사고로 의식불명이 되는 사람 등 여러가지 사연으로 원래 몸의 주인인 자의 혼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그 때를 틈타 다른 혼이 그 몸을 차지할 수 있다. 
겉은 내가 어제까지 내가 알던 그 사람이지만 속은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을 빌어 살고 있는 것. 모두 생각만으로도 섬뜩한 일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주로 희주와 노모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희주는 이야기의 비중이 큰 만큼 나름 주인공 격인 인물인데 거의 초반에 죽음을 맞이해서 놀랐다.  초반부터 죽는 주인공이라니...
하지만 혼을 다루는 내용답게 죽는다고해서 그걸로 끝은 아니다. 희주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깜짝 놀랄만한 반전이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희주는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죽게 된 후 혼자 남게 될 치매 노모를 걱정하며 죽어서도 엄마의 곁을 맴돌게 되고,  노모는 온전하지 않은 정신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딸이 곁에 있는 것을 느끼며 희주를 찾아 헤맨다. 이 모녀의 사연이 비록 소설일지라도 안타깝기도 하고 짠해서 감정이입을 하며 읽게 됐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에 대해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필력 때문이기도 했는데 흡입력이 엄청나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끊을 수가 없었다.
각각의 인물들이 어떤 사연으로 맺어져 있는지, 세상을 떠난 이들이 어떻게 산 자의 몸에 들어가 대신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 어떤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지 하나둘씩 궁금증이 해결되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쉬지 않고 달리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시작과 끝에 예상치 못한 어떤 인물이 숨어있으니 별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이야기도 놓치지 않는다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사소해보이는 모든 사건에도 다 이유가 있다. 프롤로그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말것.

 

『부유하는 혼』은 단순히 죽은 자의 혼이 다른 이에게 들어가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떠난 것들은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든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것이 악이든 선이든 내게서 실행된 것은 어떤 식으로든 돌아와 그 대가를 치르게 한다. 그러니 그 대가가 두렵다면 똑바로 살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자살률 1위 국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내가 버리려한 이 생애서의 삶이 다른 누군가는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삶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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