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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알았어야 할 일
진 한프 코렐리츠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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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티비 프로그램에서 연애상담을 해주는 코너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그 날 여성 출연자의 상담 내용은 이미 결혼식 날짜도 다 잡아 놓고 지인들에게 청첩장까지 다 돌린 상황인데, 예비 신랑에게서 자꾸 눈에 거슬리는 면들을 발견하게 돼서 결혼을 물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된다는 것이었다.

폭력을 휘두른다던가 바람을 핀다던가 하는 극단적인 것들은 아니었지만 평소에도 뭔가 정서가 불안정하고, 부정적인 말들을 자주 하는데다가 신부 입장에서 봤을 때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종종 한다는 것이었다. 서로 죽고 못 살 때야 그런 것들이 그저 별거 아닌 성격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고 좀 더 주의깊게 보게되니 뭔가 마음 한구석이 걸렸다고 했다. 마치 목에 작은 생선 가시가 걸린 것 마냥.

 


그 때 출연했던 한 패널이 말하길 그럴 땐 결혼식장 문 앞이라도 당장 거기서 그만두라고 얘기했다.

결혼 전 사소하게 위화감이 느껴졌던 행동들이 막상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인데, 사실은 결혼전부터 배우자의 행동들이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본인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현실을 애써 외면함으로써 실제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됐을 때 더 큰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때 그 패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티비를 본 기억이 있는데 ,『진작 알았어야 할 일 』의 주인공인 심리 상담사 "그레이스" 의 입장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레이스는 뉴욕에서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는 심리상담사로 주로 부부문제를 다루고 있다.

최근에는『진작 알았어야 할 일 : 왜 여자들은 자기 인생의 남자들이 하고 있는 말을 제대로 못 듣는가 』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자신의 저서가 "절대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을 남자들과 결혼할 뻔한 수많은 여자들을 구원"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의 주된 골자는 "애초에 일을 망치지 마라. 그러면 나중에 이런 수많은 문제들이 생기지 않을테니까." 라는 것이다.

여자를 불행하게 만드는 남자를 만난 것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불행이 아니라 애초에 위험을 감지하고도 그것을 무시하고 결혼을 감행한 여자들의 "선택의 실패" 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선택을 잘못하는 실수를 저질러서 인생을 그르치지 않도록 사전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당부한다.

그레이스의 이런 생각은 추후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어떤 사건과도 연관성이 있으며, 결국엔 자기가 내뱉은 말이 자신의 뒷통수를 치는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된다.

(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만 잘못하다가는 스포가 될 수 있어 여기까지만 ㅠㅜ)​

 

 

 

​" 그레이스는 인간의 삶이란 모든 걸 바꿔 놓을 만큼 중요한 결단의 연속으로 보았고, 관대하게도 두 번째 기회를 베풀어 주는 것들도 있겠지만 대다수가 결코 돌이킬 수 없다고 여겼다. 그녀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이미 <대실수>를 움켜쥐고 있었으며, 대체로는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    (p499)

 


그레이스는 성공적으로 뉴욕에 정착한 중산층 신분으로 자식과 남편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엄청난 인물이다.

그녀의 남편인 "조너선" 은 소아 암 전문의로 환자인 아이들에 대해 정성과 헌신을 다하는 모범적인 의사이며, 동시에 성실한 가장이다. 물론 환자들을 우선시하다보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병원에 가느라 자주 집을 비운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레이스에게는 더 없이 자랑스러운 남편이고, 아들인 "헨리" 에게는 다정한 아버지다.

그레이스는 시종일관 이런 남편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하지만 이렇게 안정적이고 견고하다고 여겼던 삶이 얼마나 수많은 거짓 위에 쌓여진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쉽게 해체되는지 그레이스가 진작 알았더라면.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주변의 사람들을 좀 더 깊게 헤아리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고 가족을 제외한 타인으로부터 고립되고 있는 자신의 상황을 좀 더 일찍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실을 알았을 때 이미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 엄청난 두께에 한 번 놀라고 숨 쉴틈 없이 빽빽하게 이어져 있는 텍스트에 또 한 번 놀랐다.

( 거의 책 2권 분량에 달하는 600페이지가 넘는 양이었다ㅎㅎ )

하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니 이런 구조가 단순히 문단이 제대로 나눠져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마치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그레이스의 머리속을 그대로 옮겨와 활자로 적어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나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뿐이지 사실 하루종일 엄청나게 많은 생각들을 한다. 심지어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또 다시 생각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오죽하면 생각버리기 연습이라는 책까지 나오겠는가.

여튼 그렇게 사람들은 꼬리에 꼬리가 무는 생각들을 끊이지 않고 잠 들 때까지 하곤 하는데, 이 책에서 그레이스의 쉴세 없이 이어지는 생각들을 옮겨놓은 텍스트들을 보자면 마치 내가 그레이스의 뇌세포 중 일부가 된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그레이스가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독자들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다른 분이 올리신 서평을 보고 애초에 기존의 스릴러나 미스터리 장르와는 차별성을 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혹은 어떤 동기를 가지고 살인을 저지르게 됐는지 등 "사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는데 중점을 맞춰서 보게 됐다.

사실 책의 주인공은 살인범도, 피해자도 아닌 그 주변 인물들이며, 그들의 변화되는 삶과 심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스릴러나 미스터리 장르를 기대한 독자라면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자극적인 사건 위주의 구성이 아니라도 그레이스의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그녀가 처한 상황에 백프로 공감하게 되면서 다음에는 또 얼마나 충격적인 사실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없었지만 주인공이 느끼는 세세한 감정과 생각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송두리째 알 수 있어서 다른 어떤 이야기 속 주인공보다 몰입할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기대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혹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과 치밀하게 펼쳐지는 두뇌 싸움을 기대한다면 비추, 평온한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공포를 세밀하게 묘사한 "심리" 스릴러를 기대한다면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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