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기 에반게리온 리뉴얼판 박스세트 (8disc) - TV판 26부작
Various / 뉴타입DVD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신세기 에반게리온
아직도 말이 많고 많아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 중에서 가장 담론이 많은 작품 중의 하나이다. 이른바 오타쿠라고 하는 서브컬쳐 매니아들 중의 매니아들이 이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하나의 새로운 가치관을 일어낸 것이다.

애초부터 이 작품의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는 일본 오타쿠 제1세대인 건담, 우주전함야마토를 즐겨보던 SF애니메이션 오타쿠이었다. 그런 그가 오타쿠로서 살아오면서 자신이 처한 오타쿠적인 현황을 이 작품으로 새롭게 바꾸어 놓았다.

그런다고 해서 오타쿠가 모두 긍정적이고 좋다는 것만은 아니다. 단지 오타쿠란 존재를 다르게 볼 수 있게 하나의 계기였다. 그럼 이 작품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이 작품에서 보는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암울한 오늘날의 어른과 아이들이여 이것을 보고 각성하고 거기서 헤어 나와라이다. 그리고 그 암울함은 어른이란 당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이며, 그 어두운 세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어두운 세계를 만들 수밖에 없는 당신의 지난 과거라고 말이다.

실제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는 그런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현실에서 억지로 자신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야 한다. 선택권은 딱히 주어지지 않으며, 선택하지 않을 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고통받는다. 그것을 방관하기에는 어린 청소년인 이카리 신지에게 과도한 상처였다.

인간은 왜 인간 스스로 또는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가? 왜 인간은 서로에게 교감과 대화로 통해 풀어가기 보다는 자신의 관념만으로 보고 해결하려고 할까?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과거 전쟁이후 아버지란 존재가 사라져간 일본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부모가 부모로서 역할하지 못함에 대한 일종의 오류현상을 보여 준 것이라고 본다.

그런 오류적인 현상을 그저 방관하고 받아들이고 머물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꾸며갈 것인가? 기존에 만들어진 세계에 모든 것을 뒤엎고 만들기란 사실 무리다. 그러면 방법은 무엇인가? 이 작품에서는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슬픈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란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보단 자신만의 혹은 그들만의 도그마에 젖어 살아가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키라 (2disc)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 / Pioneer Entertainment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오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이 제작한 아키라는 1988년에 제작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은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와 안노 히데아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더불어 일본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 3대 명작으로 뽑힌다.

사이버펑크(Cyber Punk)의 단어를 줄이면 SF라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단어인 공상과학영화(science fiction film)가 아니라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펑크(Punk)의 합성어이다. 사이버네틱스란 생물 및 기계를 포함하는 계(系)에서 제어와 통신 문제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고, 펑크는 1970년대 락뮤직 흐름에서 이른바 펑크락이 등장했는데, 이 펑크는 젊은이들이 기존의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정신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이버로 통한 인간 및 생물과 기계의 조합에서 반항의식을 표출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사이버네틱스가 나오는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펑크라는 저항의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작품들을 이른바 사이비펑크라고 명명한다.

이런 작품 내의 저항적인 정신을 반영하여 아키라는 기존 관념과 그 관념으로 인해 미래가 암울한 초상이 될 것이라는 다소 비관적인 요소를 담재하고 있다. 물론 아키라가 나올 때의  일본 경제는 그렇게 밝지 못한 상황이었다.

가속되는 경기불황과 젊은 계층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 그리고 사회적으로 나오는 모순 등 이 모든 것이 아키라에서 비추어지는 하나의 불안요소였다. 그래서인지 아키라의 주된 배경인 2018년 도쿄는 그저 암울하고 폭력적이고 반정부적인 시위가 끊임없이 이루어져 있었다.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은 착실하게 수업 받는 것이 아니라 패거리를 몰려다니며 서로 패싸움을 일삼고, 오토바이로 경기하며, 학교라는 곳은 배움의 터가 아닌 그저 불량배들의 소굴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의 압력과 언론통제는 현실의 근본적인 원인을 풀어가기 보단 뭐든 공권력으로 행사했고, 거기서 주인공인 테츠오는 정부의 실험체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군연구소로 끌려 간다.

군에 가서 테츠오는 생체실험을 당하여 그는 이른바 아키라라고 불리는 하나의 새로운 객체로 등장했다. 당시 일본 사회는 매우 혼란스럽고 암울했다. 사회적인 불안감이 군중심리를 자극하여 반정부 테러와 시위, 게다가 불명확한 아키라에 대한 메시아적 신념으로 마치 성난 이리들처럼 군중들은 들고 일어섰다.

이때 테츠오는 군연구소에서 실험당한 결과로 자신의 몸을 아주 강력하게 되자 자신 안에 움트고 있던 반항의식을 물리적으로 표출했다. 그런데 테츠오는 그저 자신의 불만을 돌출했지 자신의 이성적인 가치관에서 표출한 것이 아니었다. 테츠오의 불만은 기존 사회고 그 사회는 군부대가 주도한 정부기관이었다. 자신을 강제로 실험한 것과 그저 목표 없는 불만을 정부 군부대에 도전하자, 방향 잃은 군중들은 테츠오를 하나의 영웅으로 섬기게 되었다.

사회의 불안이 어느 한 불량배를 영웅으로 신격화 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 영웅은 진정한 영웅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불만과 폭력욕구를 겉으로 폭발시킨 것이다. 자신의 폭력욕구가 지나치다 못해 테츠오는 그 욕구 안에 잡혀 버려 결국 자신마저 버리게 된 것이다.

몸은 너무 비대해져서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갉아먹고,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해버린다. 게다가 자신을 아키라라며 테츠오를 신격화하던 미치광이 광신도마저 죽음의 세계로 삼켜 버린다. 이것이 인간의 광기라는 것일까? 아니면 억지로 억압하여 분출된 인간 자체의 어둠일까? 끝에 보면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본래 아키라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사실 아키라의 정체는 어린 아이들의 뇌척수가 어느 표본 통에 보관되어 있을 뿐이다. 어린 생명들을 억지로 개조하여 그들을 하나로 도구로 삼은 정부조직 즉 기존 사회의 비인간화를 그렇게 비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인간의 가치가 그렇게 도구화되어 혹은 광기화 되어 자신의 존재마저 삼키는 그런 사회상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가를 보여주었다. 그런다고 아키라에서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테츠오는 자신의 친구면서 라이벌인 가네다를 애증의 대상으로 여겼지만, 최후에 테츠오는 자신의 소멸과 더불어 가네다의 우정을 다시금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테츠오는 가네다와 고아원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로 테츠오가 어려울 때마다 가네다가 옆에서 도와주었고, 사실 가네다는 테츠오가 속한 폭주족의 리더였다. 그에게 언제나 도움을 받아 고마움을 알았지만, 가네다의 그늘 아래 있던 울분이 하나의 모순적인 감정으로 이어졌다. 물론 사회적으로 버려진 존재라는 것과 암울한 청춘, 그리고 정부의 강압이 테츠오라는 한 청소년을 괴물로 만든 것이다.

사실 비행을 하고 잘못을 뉘우치지 않은 현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왜 그들이 그렇게 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우리는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면 단지 그들이 잘못하면 그들에게 책임을 떠맡기면 편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만약 알고 있다면 기성세대들이 가진 어긋난 가치관을 바꾸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이 맞다고 하며, 다시 기성세대로 접어드는 젊은 계층에게 강요하고 그들 역시 그렇게 자신들로 만든다. 그래서 이런 모순들은 버리기가 어려운 것일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각기동대 - [할인행사]
오시이 마모루 감독 / SRE (새롬 엔터테인먼트)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공각기동대는 2가지 버전이 있다. 한가지는 카미야마 켄지가 만든 TV판 공각기동대와 다른 하나는 오시이 마모루가 만든 극장용 공각기동대가 있다. 공각기동대는 다른 애니메이션과 달리 2감독의 프로듀싱으로 통하여 각기 다른 소재와 스토리전개로 재미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2가지의 공각기동대 중에서 한가지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이다. 그의 공각기동대는  TV판처럼 1쿨당 26편이나 되는 중장편이 아니나 스크린 위의 80분으로 통해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만큼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를 본다는 것은  TV판 공각기동대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느낌이 있다는 뜻이다. 우선 이 공각기동대의 주요 스토리는 공안9과의 현장 작전지휘를 맡는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으로 통해  숨막히는 첩보공작활동과 그리고 거기서 등장하는 인형사로 먼 미래의 인간과 기계 그리고 영혼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인 쿠사니가 모토코는 기존 현대사회로 본다면 상당히 이질적인 존재다. 왜냐하면 소령은 우선 여성이란 점과, 신체가 세포로 구성된 것이 아닌 기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생각하고 사고하는 능력이 인간의 생뇌가 아닌 전뇌로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간-기계, 남성-여성이라는 이원화된 구조에서 탈피한 존재이다. 사실 쿠사나기 모토코는 여성 사이보그로 나오나 그녀의 작전 중에는 남자로도 혹은 계속 여자로도 활동했다는 것처럼 보통인간과 다른 새로운 존재이다.

쿠사나기 모토코는 본래 인간이었으나 어느 계기로 인해 기계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기계인간은 인간의 기억을 지닌 뇌를 이식하여 전뇌화하여 그 전뇌로 통해 모든 것을 판단하고 느낀다. 분명히 기계의 몸에 전뇌까지 가지고 있으니 쿠사나기 모토코는 인간이라기 보다는 기계에 가깝다.

자신의 기계적인 신체를 보며 인간으로 살아가는 쿠사나기 모토코는 뭔가 조금 이질적인 존재로 비추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조금 다른 곳에서 전환되어 버린다. 국가 스파이로 지명수배된 인형사가 공안9과 사무실로 들어오자 인간과 기계의 차이점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공안9과로 잡혀온 인형사는 자신이 기계임은 맞고 인간이 만들어준 전뇌로서 판단하나 자신도 생명을 가진 하나의 생명이란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영혼을 지닌 인간조차도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는 점에서 인형사 자신과 무엇과 다르냐고 말한다. 그런 인형사의 도발적인 말에 쿠사나기 모토코는 인형사에 상당한 관심을 가진다.

그런 와중에 공안6과의 첩보작전으로 인형사는 납치당하고 폐기처분당하려 한다. 사실 인형사는 공안6과에서 만들어낸 프로그램인데, 그 프로그램 자신이 기계신체를 가진 후에 하나의 생명체로 자각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프로그램으로 되버린 인형사 역시 자신의 생명의 위험을 받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그것은 바로 쿠사나기 모토코와 결합하여 새로운 전자생명으로 태어나어 자신도 인간과 같이 죽음을 맞이하여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를 바꾸어 진화하는 생명이 되고자 했다. 그런 의지를 가진 인형사와 인형사의 의지를 받은 쿠사나기 모토코는 결국 데이타결합으로 통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

하지만 그것을 원하지 않은 공안6과는 두 사이보그를 무참하게 박살내 버리고, 겨우 쿠사나기 모토코의 전뇌만이 무사했다. 다행히 쿠사나기 모토코는 같은 공안9과 동료인 바트에 의해 구출되고 의수를 제대로 구하지 못해 어린 소녀의 의수에 자신의 정신을 담게 된다. 비록 육체는 성인여성에서 어린 소녀로 변해도 그녀의 정신은 그녀였다.

육체적인 겁데기가 어느 것이라도 상관없다는 듯이 쿠사나기 모토코는 인형사와 새롭게 결합하여 네트라는 넓고 넓은 세계로 들어가며 작품은 막을 내린다. 이런 공각기동대는 기존 인간과 기계의 이원화적인 것을 함열시킴으로써 수동적인 기계와 여성을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만들려 했다. 물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자신을 가두고 있는 육체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의 영혼이 끝없이 진화함은 매우 신선한 작품임은 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