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6월에 읽은 책 '스피박 넘기'로부터


Gayatri Spivak speaking on Subversive Festival 2012 in Zagreb. By Robert Crc - Subversive festival media, FAL, 위키미디어커먼즈











스피박은 뤼스 이리가라이와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작업이 서구 페미니즘 사상의 용어를 재규정하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본다.

스피박이 이 시대 페미니즘 사상에 기여한 바는, 분명 뤼스 이리가라이와 엘렌느 식수 등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의 선행 연구에 빚진 것이다. 그러나 스피박은 본질주의 논쟁의 초점을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에 대한 관심에서, ‘제3세계’ 여성과 ‘제1세계’ 여성 사이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관심으로 이동시켰다.

스피박이 이 시대 페미니즘 사상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바는, 억압받는 여성들의 투쟁을 말할 때 ‘제3세계’ 여성들의 물질적 역사와 삶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요구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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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친절한 미술이야기'(원제 Who's Afraid of Contemporary)로부터




Infinity Mirror Room, 1965 - Yayoi Kusama - WikiArt.org








완벽하게 하얀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고 상상해보자. 부엌 조리대, 소파, TV, 가스레인지 위의 주전자까지 모두 하얗다. 음, 그렇다고 정신병원에 막 들어섰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곳은 일본인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의 인터랙티브 설치작품 <소멸의 방The Obliteration Room>(2002~현재)이다. 그런데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느냐고? 작가는 선명한 색상의 크기가 다른 점 모양 스티커를 한 세트씩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방 안 어느 곳이든 마음대로 붙이게 한다.

그녀는 1960년대에 처음 ‘소멸’이라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스스로 소멸하기 위해 점으로 자신과 타인을 완전히 뒤덮기 시작했다. <소멸의 방>에 참여한 사람들은 작가와 협업할 뿐 아니라 관객들끼리도 서로 도와 무한한 빨강, 노랑, 초록의 몽롱한 점들로 공간을 변화, 즉 소멸시킨다.

이 작품만큼 유명한 또 다른 설치작업 <무한한 거울의 방Infinity Mirror Room> 역시 관객에게 유사한 경험을 선사한다. 벽과 벽, 천장과 바닥을 모두 거울로 덮어 만든 차분한 공간에 홀로 들어서면, 천천히 흔들리며 깜빡거리는 불빛이 거울에 무한히 반사되어 마치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리고 무한한 불빛 속에 잠긴 관객은 수백만 개의 별 가운데 오직 하나뿐인 별로서 자신의 존재를 느끼는 미적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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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칼리제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97XXXXXX1441






문제를 자초하는 성난 어조로 독자가 완전히 귀를 닫아버리게 만들거나, 주저주저하며 예절 바르고 안개 낀 듯 뿌연 글을 쓰면서 스스로 지루해하거나.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구절이 가장 진정한 목소리를 담고 있을 때가 많다.

어떤 작가는 순전한 공상, 거짓말, 전혀 다른 작가의 모방, 자동기록으로도 진짜 목소리를 낸다.

자신의 관심과 관점을 벗어버리는 것도 진짜 목소리를 얻는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훌륭한 문인들 중에 자기 생각을 말할 때는 전혀 설득력 없게 들리는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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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의 포스트를 정리하며.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 '어떤 연구회'로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침실에 놓여 있던 셰익스피어 전집 By Ian Alexander - Own work, CC BY-SA 4.0, 위키미디어커먼즈






"우리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책들을 만들어내는 게 삶의 목적이라는 데 합의한다."

"좋은 남자란 정직하고 열정적이고 순박한 사람을 말한다." "여자들이 쓰는 말이란!" "어쩜!"

"남자들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보지 않겠니? 방법은 이것뿐이야. 남자들한테 순수한 일을 시키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사람들이나 좋은 책들이 나올 수 없어. 우리는 그들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파멸하고 말 거야. 세상에 셰익스피어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걸 기억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란 말이야!" - 어떤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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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박완서) 수록작 '카메라와 워커'(1975)로부터


사진: UnsplashRach Pradhan


올해 초에 '카메라와 워커'가 그림이 있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고모, 난 카메라라면 지긋지긋해. 이가 갈려. 생전 그런 거 안 가질 거야.

드디어 버스가 오고 나는 그것을 혼자서 탔다. 나는 훈이에게 몇 번이나 돌아가라고 손짓했으나 훈이는 시골 버스가 떠나기까지의 그 지루한 동안을 워커에 뿌리라도 내린 듯이 꼼짝 않고 서 있었다.

훈이가 젖먹이일 적, 그때 그 지랄 같은 전쟁이 지나가면서 이 나라 온 땅이 불모화해 사람들의 삶이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던져지는 걸 본 나이기에, 지레 겁을 먹고 훈이를 이 땅에 뿌리내리기 쉬운 가장 무난한 품종으로 키우는 데까지 신경을 써가며 키웠다. 그런데 그게 빗나가고 만 것을 나는 자인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 카메라와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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