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장 오선숙

출근하던 선숙은 사람들의 시선이 연달아 자신에게 꽂히고 나서야 마스크를 안 쓴 걸 깨달았다.

불편한 편의점 2 | 김호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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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진미 도시락

염영숙 여사가 가방 안에 파우치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기차는 평택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저

많이도 배고픈 걸 보니 그의 정체는 서울역의 맹주, 비둘기의 친구, 노숙자가 확실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GS 박찬호 투 머치 찬 많은 도시락 4,900원’이라 떠 있었다. ‘음료수는 안 사 먹은 거 보니 염치는 있나 보군.’

"박찬호…… 도시락…… 없어요……."

"여긴 GS편의점이 아니에요. 박찬호 도시락은 GS에서만 팔거든요. 여기도 맛있는 거 많아요. 한번 골라봐요."

"……박찬호가, 도시락도 잘해요……."

"두 놈이면…… 나 이겨요. 셋은…… 힘들어. 걔들…… 다음에 따로 나한테 혼나요."

"분하지만 그 사람 말이 맞네."
"예?"
"경우가 있어. 시현이 넌 배려가 있고."

"제가 보기엔 작정한 거라니까요. 어떻게 귀신같이 알았는지 도시락 폐기 시간 딱 맞춰 오더라니까요."

"……경우가 있어. 역시."

"역사 교사로 정년을 보낸 내가 한마디 하자면, 국가고 사람이고 다 지난 일을 가지고 평가받는 거란다. 네가 그동안 한 짓들을 떠올려봐라. 너는 너 자신을 믿을 수 있니?"

인정하기 싫지만 아들은 못난이에 준사기꾼이다. 며느리 역시 그걸 알게 되었는지 결혼 후 2년이 되어갈 즈음 부랴부랴 이혼했고, 그때는 며느리의 야멸찬 결정에 분노했지만…… 결국 잘못은 대부분 아들에게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 누군지…… 모르잖아요."
"뭘 몰라. 나 도와주는 사람이죠."
"나를 나도 모르는데…… 믿을 수 있어요?"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

시현의 수많은 알바 인생의 종착점이 편의점이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여대생들이 수다를 떨며 들어와 편의점의 공기를 화사하게 만들어주었다. 좋을 때다. 근데 너희들도 얼마 안 남았어. 대학을 벗어나는 대로 나처럼 최저시급을 받으며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올 거란다.

삼각김밥의 용도
오선숙, 그녀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남자가 셋 있다.

첫째는 남편. 30년을 같이 살아오면서도 이 남자의 내일은 전혀 예측을 할 수 없었다.

두 번째는 아들. 외아들에 홀로 키우느라 애지중지했건만 피는 못 속이는지 나이가 들수록 남편같이 이해할 수 없는 꼴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한 달 전부터 편의점 야간 알바라며 등장한 미련 곰탱이, 독고 씨였다. 그가 노숙자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기겁하긴 했지만 그때는 사장 언니가 야간 업무를 보느라 힘들 때였고 자신 역시 그녀를 도울 수 없었기에 별 도리가 없었다. 편의점을 유지하려면 햄스터 손이라도 빌려야 할 때였기에 반대할 여지가 없었다.

독고 씨는 선숙에게 남편과 아들에 이어 이해 못 할 세 번째 남자였지만, 변하지 않는 실망을 주어 이해할 수 없게 만든 두 사람과 달리 이번엔 변신에 가까운 변화를 보여 이해할 수 없게 만든 경우였다.

물론 곰 역시 개가 아니므로 그녀에게는 믿을 수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죠? 너무 힘들어서……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독고 씨가 들어줘서 좀 풀린 거 같아요. 고마워요."
"그거예요."
"뭐가요?"
"들어주면 풀려요."

원 플러스 원

경만은 마음속으로 그 편의점을 ‘참새방앗간’이라 부르곤 했다. 그래, 오늘도 방앗간이지. 참새는 경만 자신이다.

오늘 밤은 ‘참참참’이다. 지난 몇 개월간 선택해온 경만의 최적의 조합이 바로 이것이었다. 참깨라면과 참치김밥에 참이슬. 이것이 경만의 1선발이자 절대 후회하지 않을 하루의 마감이고 빈자의 혼술상 최고 가성비가 아닐 수 없었다.

"아저씨, 이런 데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

마치 경만을 노숙자 취급하는 듯한 말이었다.

암, 능률 올라가고 월급도 올라가고 직급도 올라가서 대박나지. 그걸 누가 몰라서 묻나. 옥수수수염차로 목욕하고 처자빠져 자는 소리 하고 있네.

불편한 편의점

인생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인경은 트렁크를 끌기엔 너무 낡은 보도를 힘겹게 나아갔다.

인경은 지난가을을 원주 박경리 토지문화관에서 보냈다. 『토지』를 집필하신 故 박경리 선생님이 후배 작가들을 위해 지은 그곳은 문인들과 예술가들에게 집필실과 삼시 세끼를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었는데, 그녀는 작가가 되고 처음으로 그곳에 입주하게 되었다. 큰맘 먹고 입주한 토지문화관에서 그녀는 자신의 작가 생활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짜증이 난 인경은 어찌 해야 할지 두리번대던 중 계산대에 놓인 A4 용지를 발견했다. 거기엔 검정 매직으로 크게 휘갈긴 글씨가 적혀 있었다.

급똥! 잠시만요.

허!

그러니까 똥을 지려 빨리 화장실 가느라고 문을 못 잠갔다는 건데, 비위가 상해 당최 들어줄 수가 없었다. 듣다 보니 사내의 몸에서 똥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고, 정말이지 더럽고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오늘 급똥이라…… 죄송했어요."

"아이 참! 밥 사 가는데 똥 얘기 좀 그만해요!"

넌 급똥이냐? 난 급분노다! 출입문을 밀던 인경은 사내를 돌아보고 꽥 소리 질렀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나, 대학로 버럭대장 정인경이거든!

게다가 참참참은 또 뭔가? 패키지 상품으로 팔아도 좋을 것 같았다. 인경은 독특한 사고를 가진 이 골 때리는 사내에게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저씨, 원래 조폭 뭐 그런 거였어요?"

"아, 아뇨."

"그럼 교도소 같은 데 다녀와 갱생하는 중이에요?"

"그런 사람…… 아닌데요."

"아니면, 기러기아빠?"

네 캔에 만 원

민식은 자신의 불운에 대해서 생각했다. 대체로 불운했던 그의 인생이지만 언제부터 그 불운이 그의 삶에 멱살잡이를 해왔는지를 되짚어보았다.

"내가 그렇게 꽉 막힌 줄 아니? 예수님이 처음 행한 기적이 잔칫집에서 포도주 모자라니까 물로 포도주를 만든 거였어. 술을 마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술 마시고 실수하는 게 문제인 거지."

폐기 상품이지만 아직 괜찮아

이럴 거면 차라리 편의점 알바를 하는 게 낫겠네.

ALWAYS

하루 24시간씩 일주일 아니, 언제나 한 가지 생각에만 빠져 있다면? 그 한 가지 생각이 고통으로 점철된 기억이라면? 고통에 흠뻑 잠긴 뇌는 점점 무거워지는데 떨쳐버리지 못한 채 그대로 망망대해에 빠지게 된다면, 뇌는 커다란 추가 되어 거대한 심연 속으로 당신을 끌고 들어갈 것이다.

왜 옥수수수염차냐고? 술 대신 마실 음료를 찾아야 했을 때 그것이 원 플러스 원 메뉴였기 때문이다. 플라세보 효과인지 몰라도 옥수수수염차를 마시면 한결 갈증이 풀렸고 음주 욕구를 조금이라도 눌러놓을 수 있었다.

역지사지. 나 역시 궤도에서 이탈하고 나서야 깨우치게 된 단어다. 내 삶은 대체로 일방통행이었다. 내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이 널려 있었고, 남의 감정보다는 내 감정이 우선이었으며,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내치면 그만이었다.

오랜 시간. 나는 아내가 내 말에 수긍하는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라 아내는 나를 견뎌주었을 뿐이었다.

가족의 해체, 내 인생의 불행, 아내와 딸을 잃어야 했던 것은 내 무심함과 오만함 때문이었다.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따지고 보면 가족도 인생이란 여정에서 만난 서로의 손님 아닌가? 귀빈이건 불청객이건 손님으로만 대해도 서로 상처 주는 일은 없을 터였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이 세계에서 신성을 얻은 자는 의느님이 아니다. 사장님같이 남에 대한 헤아림이 있는 사람이 그러한 자일 것이다.

"죽어야 될 놈을…… 살려……주셨어요. 부끄럽지만…… 살아보겠습니다."

대답 대신 그녀는 마주 안은 채 작은 손으로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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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이 죽자, 지위를 물려받고 싶지 않았던 헤이시로는 아버지가 배다른 형제를 어디다 숨겨 두지 않았을까 하고 찾아다닌 적이 있다. 부친은 그 정도로 색을 밝혔다. 얼굴 모르는 형제가 한 명쯤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아니, 틀림없이 있다고 확신했다.

"아무것도 결단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거절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저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버지에 맞서지도 못하고, 뭐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저는 얼간이입니다."

무너진 자존심을, 분한 심정을, 억울함을 자기 내부에서 어떻게든 소화하고 앞으로 어떻게 풀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은 하나이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 히코이치가 대신해 줄 수는 더더욱 없다.

"너는 이걸 간과하고 있다. 하나이치는 하나이치고 너는 너야. 이사와야의 주인과 안주인은 그걸 안다. 그러니까 너를 선택했겠지. 주인과 안주인은 하나이치에게 조리사로서 그런 자세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아니까 주방장 자리에 올리지 않은 게 아니냐."

"그렇게까지 사람을 충동질해서 앞뒤 가리지 못하게 만든 것, 그것은 과거의 죄. 은폐되고 잊혔지만 그 일을 저지른 본인은 평생 떨칠 수도 없는 무거운 죄. 저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어요."

헤이시로는 더욱 어리둥절했다. 좋아하는 남녀가 사소한 일로 다퉜다. 화가 나서 눈물을 흘리던 여자가 벽장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말았다. 남자가, 이걸 어쩌나, 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여자를 달래고 기분을 맞춰 주며 여자가 마지못한 척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화해하기 위해서.

마귀는 물러나고 만복은 들어와라!

: 입춘 전날 액막이로 콩을 뿌리면서 외는 주문.

기모노는 아오이 역을 맡은 환술사 여배우의 제안이었다.

―여자가 여자를 죽였는데 그 자리에 기모노가 있었다는 말이잖아요? 그렇다면 어떤 무늬든 그 기모노에 의미가 없을 리가 없어요. 한번 입어 보기로 합시다.

―이모부. 환영은 환영일 뿐이에요. 아무리 꼭 닮아도 그건 진짜 아오이 씨가 아니잖아요. 여태까지 속아 온 사키치 씨인데 마지막 순간까지 환영을 내세워서 속일 수는 없어요. ―아오이 씨를 용서하고 말고는 사키치 씨 마음에 달렸어요. 지금은 더더욱 아오이 씨의 환영으로 사키치 씨를 속여서는 안 돼요.

어쨌든 기분이 좋다. 침상 가마를 타 보니 버릇이 들 것 같다. 벌렁 드러누워서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어디든 느긋하게 실려 갈 수 있으니 말이다.

모든 사람이 매일을 이렇게 편하게 살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아올리듯이 차근차근.

제 발로 걸어가야 한다. 밥벌이를 찾아서.

모두들 그렇게 하루살이로 산다.

아내가 또 놀란다.
"짱구 이마, 백분이 많이 필요했겠네요."
"시댁이 연지 가게야. 백분이라면 넘칠 정도로 많지."
헤이시로는 겨우 그 말만 했다.

이 소설의 원제 ‘히구라시日暮らし’에는 쓰르라미라는 뜻이 있습니다. 쓰르라미는 늦여름부터 초가을에 나타나서 운다고 하여 일본의 전통 문학에서는 가을을 상징하는 시어로 통합니다. 그런데 그 말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팍팍한 생활을 뜻하는 ‘소노히구라시其の日暮らし’라는 말도 떠올리게 합니다. ‘히구라시’는 그런 중의를 가진 말입니다. 그것을 ‘쓰르라미’로 옮겨서는 그 중의를 제대로 살릴 수 없어 부득이 ‘하루살이’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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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해 보면 이것과 저것의 거리를 알 수 있고, 거리를 알면 만물의 생김새를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이치가 측량이 가능한 사물로만 드러나지는 않으니까요. 사사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너는 이제 사물을 측량하는 기술은 익혔으니 앞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것을 잘 보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이제 측량은 적당껏 해라, 라고 하셨어요.”

하루살이 (하) | 미야베 미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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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해 보면 이것과 저것의 거리를 알 수 있고, 거리를 알면 만물의 생김새를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도매상 주인 내외처럼 어긋나지 말고 온전한 부부의 연을 맺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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