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 죽을 만큼, 죽일 만큼 서로를 사랑했던 엄마와 딸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진환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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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릅니다. 거의 책에서 보고 그런가 보다 합니다. 아이한테 잘해주지 않는 부모를 보면 어떻게 엄마가 아빠가 그럴까 하는군요. 이건 부모는 다 아이를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거겠습니다. 이런저런 책을 보면서 세상 모든 부모가 자기 아이를 사랑하는 것만은 아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부모가 된다고 어른이 되지도 않습니다. 저도 나이를 먹었지만, 아이보다 아이 같은 면도 있습니다.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을 바라기도 하네요. 그건 부모는 아닌 듯해요. 제가 어릴 때 부모 사랑을 듬뿍 받았다면 달랐을지. 그랬다면 그저 저 자신만으로 괜찮았을지도 모르겠군요. 이 책 미나토 가나에 소설 《모성》을 보니 꼭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책 제목이 ‘모성’이지만, 저는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도 생각했어요. 식구도. 여기 나온 ‘나(어머니)’는 부모한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인데도, 언제나 어머니 사랑을 바라더군요. ‘나’는 뭐든 자기 엄마 마음에 들려고 했어요. 그건 어릴 때 하는 걸지도 모를 텐데. ‘나’는 나이는 들었지만, 정신은 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니었을지. ‘나’는 자신이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하는 것도 엄마가 좋아해서 했어요. 아이를 낳는 것도. 그렇게 엄마만을 기쁘게 해주려고 하다니. ‘나’의 엄마는 왜 그런 ‘나’를 그대로 두었을지. ‘나’의 엄마는 ‘나’가 어떤지 알았을 것 같은데. 잘 몰랐을까요. 엄마가 딸을 잘 몰라서 태풍이 오고 산사태가 나고 집에 불이 났을 때 그런 결정을 한 거겠지요. 자기 딸도 어머니일 거다 믿었던 걸지도.


 소설이니 여기에서 일어난 일을 바꾸지 못하겠지만, 어떻게든 살려고 했다면 더 나았을 텐데 싶기도 해요. 그런 이야기를 쓰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여기에서 일어난 것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할 수 없겠습니다. 사람은 자신은 죽더라도 다른 사람을 살리기도 하니. 미나토 가나에 다른 소설에 그런 거 있었군요. 선생님이었는지 누군가 아이를 살리고 죽었어요. ‘나’의 남편 타도코로 사토시는 어릴 때 아버지한테 많이 맞았다고 합니다. 나이를 먹고는 아버지가 때리지 않았지만, 왜 아버지는 아들을 그렇게 때린 건지. 자신은 사랑받고 자란 것 같은데. 사랑받고 자라면 다른 사람 때리지 않을 것 같은데. 맞지는 않았다 해도 아버지는 어릴 때 어떤 상처를 받았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타도로코 사토시는 폭력은 쓰지 않았어요.


 ‘나’의 엄마가 죽고 ‘나’와 타도코로와 딸은 시집에 들어가 살아요. 남편은 ‘나’가 시어머니한테 혼나고 힘든 일을 해도 별 말 안 해요. 딸은 엄마인 ‘나’한테 사랑받으려고 합니다. 외할머니가 죽고 딸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꼈어요.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언덕 위 집에서 네식구는 즐겁게 살았을지도 모를 텐데. 그건 받아들여야겠지요. ‘나’와 딸은 마음이 엇갈린 것 같기도 해요. ‘나’가 엄마이기보다 딸이기를 바라기는 했지만, 딸을 아주 싫어하지는 않았어요. ‘나’는 나름대로 딸을 생각했는데, 딸은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남편이고 아빠인 타도코로 사토시가 두 사람을 이어주려 했다면 좋았을 텐데, 타도코로는 자기 상처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안 봤습니다. ‘나’가 제대로 말을 안 하면 딸이라도 말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않았군요. 말하기 쉬운 건 아니네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나’가 엄마가 되지 않은 건 아니었어요. 딸은 예전에 외할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게 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어요. ‘나’는 딸을 꽉 안은 거였는데, 딸은 ‘나’가 자기 목을 졸랐다고 여겼더군요. 그렇게 다르게 여기다니. 딸이 죽으려는 걸 친할머니가 막았어요. ‘나’는 그제서야 딸 이름을 부릅니다. ‘나’도 그렇고 딸 이름도 앞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나’가 딸 이름을 부른 건 ‘나’가 자신을 한 아이 엄마로 받아들인 게 아닌가 싶어요. ‘나’가 그렇게 나쁜 엄마는 아닌 것 같은데, 딸은 조금 쓸쓸했을지도. ‘나’와 딸은 자기들은 조건없이 사랑해준 사람을 잃었는데 그건 별로 말하지 않았어요. 그 슬픔을 함께 나눴다면 좋았을걸. ‘나’는 아픈 시어머니를 돌봤어요. 치매로 ‘나’를 며느리가 아닌 딸로 여겼어요. 딸이 목숨을 끊으려고 한 날 사라졌던, ‘나’의 남편은 열다섯해가 지나고 돌아왔습니다.


 어떤 사람도 아이를 낳는다고 저절로 부모가 되지는 않겠네요. 부모가 되려고 하고 아이와 함께 자라야겠습니다. 그거 쉽지 않겠군요. 부모여도 마음속엔 어린이가 있기도 하겠습니다. 그 아이는 부모 자신이 달래줘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희선





☆―


 “아이를 낳은 여자들이 모두 어머니가 되는 건 아니예요. 모성이란 게 모든 여자한테 있는 건 아니고, 그것 없이도 아이는 낳을 수 있죠. 아이가 태어난 다음부터 모성이 생겨나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반대로 모성을 갖고 있었는데도 누군가의 딸로 남고 싶다, 보호받는 처지로 남고 싶다고 크게 바라고 무의식으로 내면의 모성을 없애는 여자도 있는 거죠.”  (247쪽)



 시간은 흘러간다. 흘러가서 엄마한테 가진 마음도 바뀌어 간다. 그래도 사랑을 바라는 게 딸이고, 자신이 바라던 것을 자식한테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바로 모성 아닐까.  (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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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05-14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나토 가나에 신작이군요. 저는 이 분 작품 진짜 뭐랄까? 깊은 곳에서 배어나오는 섬뜻함. 그런게 좀 있더라구요. 훌륭한 작가라는거겠죠 희선님 리뷰 읽으니 이번 책도 좀 그런 느낌일 것 같네요. 쟁여놨다 읽어야겠어요.
 
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시선 461
김선우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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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20년엔 코로나19로 세계가 멈추었지. 그렇게 멈추었을 때 괜찮았던 것도 있었지만, 문제도 많이 있었어. 어떻게 하면 나을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공장이 멈추고 하늘 길이 막혔을 때 자연이 돌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몇해 지나고는 기후변화를 더 많이 느끼게 됐어. 한해 한해 다르군. 인류는 망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인류가 망해가는 가운데 살아 남는 사람도 있을까. 어떤 사람이 살아 남을지. 어린이가 살아 남길. 그나마 세상 때가 덜 묻었잖아. 무슨 일이 일어나면 세상 때가 덜 묻은 아이가 더 일찍 죽기도 하는군. 어쩐지 슬픈 일이야. 코로나19 때도 아이들이 더 힘들었겠어.


 오랜만에 시집을 만났어. 김선우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이야. 김선우 시인은 2020년 봄에 몸이 아팠던가 봐. 몸이 나아지기까지 한해나 걸리다니. 나아진 게 다행이군. 2020년은 코로나19로 세상이 어두웠던 때군. 어두웠다고 하다니. 그때 처음엔 마스크가 답답했지만, 끼다보니 익숙해졌지. 마스크는 자신뿐 아니라 남을 위한 거기도 했군. 이 시집 3부엔 <마스크에 쓴 시 1>에서 <마스크에 쓴 시 14>까지 담겨있어. 이 시 앞에도 지구를 망친 인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군. 인류가 망하지 않으려면 겨울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 겨울의 시간은 추운 것만 말하는 게 아니겠지. 덜 움직이는 거 아닐지. 이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지만.




쓸모없는 것들을


목숨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영혼의 강인함을


내가 원하나이다


-<무신론의 기도>, (34쪽)




구름 많은 날 당신의 울음이 가깝다


울다 깬 눈으로 구름을 만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구 어디선가

죄 없이 아이들이 죽고

죄 없이 동물들이 사라지고

죄 없이 숲이 벌목되고

죄 없이 작은 것들의 노래가 짓이겨져 파묻힌다


착취한 것들은 만들어진 자본의 폭식성─

멈출 줄 모른다 착취가 동력이므로


한때 아름다웠던 별

어디에 무릎을 꿇어야 죄를 덜 수 있나?

불과 이백년 만에 이토록 뜨거워진

인간이 만든 쓰레기고 가득해져버린 여기 어디에


지구라는 크라잉 룸

당신 안에서 우느라 당신의 울음을 미처 듣지 못했다


-<지구라는 크라잉 룸>, (37쪽)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되지 않으면 쓸모없다고 하지. 난 쓸모없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그러면서 나도 쓸모없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텐데. 김선우 시인이 쓴 것처럼 목숨을 다해 쓸모없는 걸 좋아하지는 못할 것 같아. 세상에 쓸모없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 ‘자본교’ 라는 말도 봤어. 이 말 어쩐지 웃기면서도 슬프네. 그것 때문에 지구는 더 안 좋아졌잖아. 지구가 울어도 그걸 제대로 듣지 않는 것 같아. 이젠 좀 귀 기울여 들었으면 해. 지구가 우는 소리.




 도끼도 톱도 필요 없다. 나무를 살해하는 간단한 방법은 봄여름에 나뭇잎을 모두 따버리는 것. 나뭇잎들의 노동이 멈추면 나무는 죽는다. 대대손손 뿌리만 파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뿌리 숭배자들이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한 계절만 겪어보면 알게 된다. 햇빛과 바람 속에 온몸으로 나부끼는 나뭇잎들의 역동, 한잎 한잎 저마다 분투해 만들어낸 양분을 기꺼이 모아준 나뭇잎들이 나무를 살린다는 것. 나뭇잎들의 코뮌이 즐거운 노동으로 생기 넘칠 때 나무가 건강해진다는 것. 안녕, 안녕, 인사하는 나뭇잎들의 독자적인 팔랑거림, 한 방향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할 때조차 저마다 다른 자세와 기술, 햇빛과 물만으로 양분을 만들어내는 천지창조의 노동자들, 함께 사는 동안 자신이 만든 것을 아낌 없이 나누고 때가 오면 미련 없이 가지를 떠나는 여유와 자유. 뿌리 깊은 나무의 뿌리를 지키려고 태어나는 나뭇잎은 없다. 가계(家系)의 문장(紋章)에 집착 없는 나뭇잎들이야말로 한그루의 세계를 유지하는 진짜 힘이라는 것.


-<이제 나뭇잎 숭배자가 되어볼까?>, (57쪽)




 앞에 옮긴 시를 보니 나무에 나뭇잎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무가 뿌리를 잘 내려야 줄기도 뻗고 나뭇잎을 틔우기는 하겠지만. 나무를 죽이는 쉬운 방법 생각하니 잔인하네. 봄여름에 그 많은 나뭇잎을 모두 따버리면 나무는 얼마나 아플까. 아프기만 하지 않고 시름시름 앓다 말라버리겠지. 이 나뭇잎이 세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 같은 느낌도 들었어. 시인은 그런 거 생각했을지. 그저 나무만 생각해도 괜찮기는 할 거야.




 멈춤, 지금 멈춤, 더 오래 멈춤, 그렇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혹독한 전염병의 시대가 온다, 곧 다시 온다고 했다.  (<마스크에 쓴 시 7, 거울이 말하기를>에서, 69쪽)




 세상이 잠시 멈췄던 때도 있었지만, 다시 달려가려는 것 같아. 코로나19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어. 남극 북극 빙하나 얼음이 녹고 오래전 바이러스가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 그런 거 생각하면 걱정스러워. 인류는 전쟁 아니면 바이러스로 사라질지도 몰라. 이런 생각해도 지금 뭘 해야 할지 모르기도 하는군. 많이 만들고 많이 쓰던 것에서 덜 만들고 덜 쓰는 걸로 바꿔가면 나을지. 사람이 사는 데 있어야 할 건 그리 많지 않은데. 지구를 생각하고 뭘 해야 할지보다 뭘 안 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게 더 나을지도.


 난 이번에 김선우 시인 시집 처음 봤어. 이름은 알았는데 시집은 못 봤어. 소설 봤지만, 그거 읽고 잘 못 썼던 것 같아. 여긴 담긴 시 다 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따듯한 마음이 느껴져. 제목이 ‘내 따스한 유령들’이어선가. 이건 단순한 생각일지도 모르겠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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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5-11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 가장 최근에 중고로 구입한 책이 이 시집인데 반갑네요!!!! ㅋㅋㅋㅋ이거랑 오세영 시선집이랑 이거저거요거저거(적고 보니 많아서 하나 겹칠 확률이 높아졌겠네요 ㅋㅋㅋ)

희선 2024-05-14 00:52   좋아요 1 | URL
이 시집을 사셨군요 김선우 책은 예전에 소설 하나만 봤군요 시집은 이게 처음이고... 시와 소설 다 쓰다니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는 하네요 어쩐지 그런 사람 부럽네요


희선

서니데이 2024-05-11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아침부터 날씨가 많이 흐리더니 비가 꽤 많이 올 것 같아요.
바람도 불고요.
계속 따뜻한 날만 계속 되어서인지, 오늘은 조금 더 서늘한 느낌이 듭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희선 2024-05-14 00:55   좋아요 1 | URL
토요일 저녁에 비 오고 조금 시원해졌군요 그저께보다 어제 좀 더 더웠어요 오늘도 그럴 것 같네요 비가 온다고 하는데, 또 비라니... 이번엔 그렇게 많이 오지 않고 위쪽에 올 듯합니다

이번주는 또 쉬는 날이 있네요 스승의 날이면서 부처님오신날이네요 오늘만 지나면... 서니데이 님 오늘 즐겁게 지내세요


희선
 
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시선 461
김선우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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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세상이 조금 멈췄지만, 이제는 다시 움직인다. 지구를 더 나빠지게 하면 안 될 텐데, 천천히 가면 안 될까. 세상은 망해가는데 그게 빨리 오지 않게 하려고 해야지. 지구가 괜찮아야 사람도 살 텐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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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5-12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 시국때는 그 시기가 언제 끝날지 암담했었는데 이제는 또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게 되네요.
어쨌든 모두가 다 잘 견뎌 다행이었어요^^

희선 2024-05-14 00:42   좋아요 1 | URL
그때는 정말 그 시간이 지나가기는 할까 했는데, 이제는 많이 생각하지 않는군요 그래도 조심해야 합니다 아주 없어진 건 아니니...


희선
 
사실은, 단 한 사람이면 되었다 텔레포터
정해연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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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 《사실은, 단 한 사람이면 되었다》 맞는 말이야. 사람한테는 여러 사람이 아닌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알아주는 사람. 그건 남이어야 할지 자기 자신이어야 할지. 단 한 사람이 자신이기만 해도 괜찮겠지만, 난 남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이건 욕심 많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 단 한 사람 얻기는 쉽지 않아. 살았을 때 만날지 못 만날지. 많은 사람이 만나지 못하고 살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보기엔 한 사람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 나만 없는. 없으면 어떤가 하면서도 여전히 바라는군. 이러면 나도 나를 구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어.


 여기 나오는 은아를 보니 내가 생각나기도 했어. 나도 어릴 때 친구 잘 사귀지 못했어. 다행이라면 은아처럼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하지는 않았어. 내가 다닌 학교 아이들은 남을 괴롭히고 즐거워하지 않았던가 봐. 정말 다행이지. 은아한테는 언니 은진이 있었어. 은진이 유튜버로 돈을 벌자 엄마 아빠가 은진이한테 더 잘해주는 것 같았지만. 그건 은아가 바라본 거였군. 은아 친구는 은진이기도 했어. 어릴 때는 함께 해도 학교에 다니게 되면 다르게 살겠지. 자기 생활을 해야 하니. 식구도 그런데 친구라고 다르지 않겠어. 친구여도 뭐든 같이 해야 하는 건 아니지.


 학교에 교생 선생님이 오고 이름이 은아와 같은 이은아였어. 은아는 교생 선생님이 멋지게 보이기는 해도 그뿐이었는데, 교생 선생님은 은아한테 잘해주는 거야. 그런 거 아이들이 보면 안 좋아할 텐데. 실제 교생 선생님 때문에 은아는 다른 아이들한테 맞기도 했어. 교생 선생님은 은아한테 자신은 앞날에서 온 은아다 말해. 시간여행 같은 데서는 자신이 자신을 만나면 안 된다고도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나 하면서 봤어. 교생 선생님은 은아가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을 생각하기를 바랐어.


 앞날에서 온 자신이 지금보다 멋지면 기분 좋겠어. 은아는 자신을 바꾸려 해. 은아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나타난 일도 한 몫했어. 그 친구를 만나고 은아는 다른 아이하고도 자연스럽게 말해. 그렇게 좋은 일만 이어지면 좋을 텐데 삶은 그러지 않지. 안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건 교생 선생님이 슬픈 얼굴일 때 알기는 했어. 은아가 슬픈 일을 겪지만 그때를 잘 견뎌. 시간이 흐르고 아주 중요한 순간에 은아는 자신을 구하고 언니 은진도 구해. 이런 이야기 진짜 일어나기도 하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내가 앞에서 나도 어릴 때 친구 잘 사귀지 못했다고 했지. 그건 늘 그랬어. 아는 사람도 처음엔 모르는 사람이지만, 난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먼저 말하지 못했어.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아. 누군가 나한테 길을 물어보면 알려주기는 하지만, 내가 길을 모를 땐 남한테 물어보지 못해. 물어보지 못하고 헤매다 시간이 걸려서 찾아내기도 하는군. 나라고 말 잘 못하는 내가 답답하지 않았겠어. 잠깐 바뀌려 한 적도 있어. 그건 잠시였고 그렇게 좋지도 않았어. 난 그냥 이대로 살래가 됐어. 사람은 꼭 바뀌어야 할까.


 자신을 바꾸고 싶은 사람은 바꾸고 그대로 살고 싶은 사람은 그래도 괜찮겠지. 마음은 바꾸는 게 좋겠지. 자신을 조금 좋아하고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받아들이기.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는 것도 중요해. 난 여전히 눈치 보는 것 같기도 해. 다른 사람이 날 싫어하면 어쩌지 하거든. 내가 바로 바뀌지 않겠지만, 나도 나를 좋아하려고 해. 좀 어렵지만.




희선





☆―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겠다고 너를 힘들게 하지 마. 너를 지켜줄 가장 첫번째 사람은 너야. 네가 힘든 건 힘들다고 하고 화가 나는 건 화가 난다고 말해. 그래도 돼. 모든 걸 널 위주로 생각해. 너만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야. 네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넌 뭘 하고 싶은지 늘 너한테 묻고 널 위주로 행동해. 넌 당당한 한 사람이야. 한 존재야.”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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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5-06 17: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네이버 블로그 소개 문구가 구원은 셀프. 였는데요. 어느덧 내가 나를 구하지 못할 것 같을 때는 정말 누가 내 대신 나좀 구해줬으면…저도 그런 날이 오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책 못 읽고 공부하다 미쳐가는 반놈 올림.

희선 2024-05-11 03:47   좋아요 1 | URL
자신이 구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생각하면서도 그게 쉽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른 사람도 조금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잘 모르겠어요 자신이 자신을 먼저 좋아해야 할 텐데, 이것도 어려운 일이고...


희선

반유행열반인 2024-05-11 08:09   좋아요 1 | URL
제가 생각하기에도 제게는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에요. 남들은 잘 좋아하던데 왜 ㅋㅋㅋ

희선 2024-05-14 00:40   좋아요 1 | URL
저도 다르지 않아요 다른 사람은 잘 하는 것처럼 보여도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닐지도 모르죠 나름대로 이런저런 생각할 것 같아요


희선
 
백일청춘
정해연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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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바뀌는 걸지, 영혼이 바뀌는 걸지. 두 사람 영혼이 서로 바뀌면 처음엔 혼란스러워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야기가 늘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엄마와 딸, 아버지와 딸은 서로를 조금 알게 됐던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은 어떨지. 신카이 마코토 영화 <네 이름은>에서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바뀌고 서로의 삶을 살아 보는군요(소설을 봤는데 영화를 말하다니, 지금 생각하니 영화 보기는 했네요). 둘은 서로한테 관심을 가지게 됐네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습니다. 서로 몸이 바뀌고 본래대로 돌아오면 전과 달라지기도 하겠습니다. 저는 누군가와 바뀌고 싶지 않군요. 이 소설 《백일청춘》을 조금 보니 아사다 지로 소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이 생각났습니다. 거기에서도 영혼이 바뀌는데 죽은 사람이 바뀐 거였어요. 책 본 지 오래돼서 다른 건 생각나지 않네요.


 앞에서 두 사람 영혼이 바뀌는 이야기를 한 건 여기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서예요. SH물류 회장 주석호는 폐암 4기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날 죽음이 찾아왔어요. 석호는 쓸쓸하게 혼자 죽음을 맞는구나 했는데, 잠에서 깨니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거예요. 고등학생 김유식으로. 그때는 바로 자신과 다른 사람이 바뀌었다 생각하지 못했는데, 곧 석호와 유식은 서로가 바뀌었다는 걸 알게 돼요. 석호는 말기암을 알게 되고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일만 한 게 억울했어요. 고등학생 김유식도 엄마와 살고 돈이 없는 게 억울했던가 봐요. 두 사람이 바뀌었을 때 좋은 건 석호겠습니다. 늙고 병든 몸이 아닌 젊고 건강한 몸이니. 유식도 석호한테 돈이 많아도 늙고 병든 몸은 좋아하지 않았어요.


 두 사람 몸에는 숫자가 나타났어요. 100부터 줄어드는. 그러니 두 사람은 백일 동안 바뀐 채 살아야 하는 거죠. 백일이 지나면 석호는 죽겠지요. 말기암이니. 아무 일 없이 앞으로 살 날이 백일 남았다면 그날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겠습니다. 백일이 지나면 죽는 건 석호일지, 유식일지. 그런 것도 모르니 무섭겠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저절로 깨닫는 것도 있겠지요. 석호는 백일이 지나면 자신은 죽어도 유식은 죽지 않을 거다 여겼습니다. 유식은 이제 열여덟살이니. 죽으면 억울하겠네요. 석호는 한 회사 회장이니 자신이 죽기 전에 정리를 해야 하는군요.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기도 해서 안 할 수 없었네요. 석호는 자신이 유식이 모습이어서 바로 나서지는 않고 유식이한테 그 일을 하게 합니다. 유식이가 석호 모습이 아니었다면 경험하지 못할 일이군요. 유식이가 석호 몸이 되어 아주 안 좋은 것만은 아니었군요.


 영혼이 바뀌는 건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거기도 하겠습니다. 사람 마음을 알기는 쉽지 않지요. 그 사람이 되어 생각해 보라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겠습니다. 모습이 달라지면 조금 쉬울지도. 이 책 제목은 ‘백일청춘’이에요. 석호는 지금까지 열심히 일만 한 자기 청춘이 안됐다 여겼군요. 유식이 모습이 되고 젊은이처럼 놀아볼까 했는데, 그런 일은 하루면 지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식이는 돈을 펑펑 써 보았군요. 그것도 언제나 좋지는 않을 것 같아요. 유식이는 공부는 잘 안 했지만, 엄마를 아주 많이 생각했어요. 유식이는 돈이 있으면 엄마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했군요. 그 생각이 아주 틀린 건 아닐지라도 돈을 석호한테 받거나 석호 아파트를 엄마한테 준다고 엄마가 기뻐할 것 같지는 않았어요. 고등학생 때는 단순하게 생각할까요.


 자신이 자신을 부정하면 슬프겠습니다. 석호는 유식이와 함께 지내면서 하나 깨달았어요. 자기 청춘이 일만 하느라 불쌍한 건 아니었다는 걸. 자기 청춘은 자신이 세운 회사 SH물류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석호가 늘 최선을 다해서 SH물류가 있는 거기는 하죠. 식구가 있다 해도 죽음은 혼자 맞는 거겠지요. 그래도 석호는 백일 동안 그리 쓸쓸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유식이도 마찬가지였어요. 유식이는 백일이 지나고 자기 몸으로 돌아오고 열심히 삽니다. 다 잘 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사는 게 어디예요. 한번뿐인 삶 아쉬움 없이 사는 게 좋겠지요. 이렇게 말하지만 저는 게으르게 살겠습니다. 저는 석호처럼 살고 싶지도 않고 유식이처럼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저죠. 제가 살고 싶은대로 살 거예요. 책을 보고 글을 쓰면서 즐겁게.




희선





☆―


 무조건 놀기만 하는 게 청춘인 건 아니었다. 닥친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석호의 청춘이었다. 석호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키워낸 회사가 곧 자신의 청춘이었다. 지금까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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