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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 세계적 지성이 전하는 나이듦의 새로운 태도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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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는 일은 내가 진짜라고 여겼던 것들, 내가 차곡차곡 쌓았던 것들을 허무는 일이다. 아직 나에게는 시험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교보문고를 가던 중고등학생의 내 모습이 더 친근하게 여겨지는데 어느덧 그 나이 또래의 딸아이가 나를 기성세대라 지칭하는 걸 경험하는 일이다. 매일매일이 낯선 지대로의 탐험이다. 이런 중년의 모습을 나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미래로 타임슬립이라도 한 느낌이다. 늙는다는 일은 생각보다 더 훨씬 품이 드는 일이다. 난데없는 비보들을 견디는 일이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는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저자 파스칼 브뤼크네르가 포기, 자리, 루틴, 시간, 욕망, 사랑, 기회, 한계, 죽음, 영원이라는 테마로 "인생의 기나긴 시간"이라는 문제를 다룬다. 영화 <비터문>의 원작자이기도 한 저자의 문장이 대단히 아름답고 가독성이 좋다. 딱딱한 철학적 성찰이라기보다는 저자 자신이 나이 들어가며 느끼는 소회, 단상을 철학적 사유와 잘 접목시킨 에세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여느 철학서 못지 않게 심오해서 그 사유의 깊이와 넓이가 경이로울 정도다. 노화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면서도 삶에 대한 긍정과 사랑을 잃지 않는 보기 드문 책이다. 길어진 수명으로 인해 근본적으로 삶과 우리가 맺는 관계가 달라졌다는 통찰로 출발하는 책은 모호하게만 느꼈던 나이듦으로 느꼈던 우울감을 잘 제련하여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조심스럽게 제언해 준다. 저자는 오십 이후의 이야기를 한다고는 하지만 삼사십대가 읽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비로소 발견하는 시간부터 우리 자신을 잃어간다는 그 놀라운 비애를 지적한 대목에서 비로소 중년의 우울함의 근원을 확인했다. 더 이상 세상 바깥으로 보이는 나를 연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시점부터 우리는 노화의 늪에 사로잡혀 하루하루 시간의 무자비함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을 저자는 경계한다. 우리가 생에 대하여 가져야 하는 통찰의 핵심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행복한 인생이었든 고통스러운 인생이었든,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의 크기가 가늠된다. 우리는 상처받았지만 충만함을 얻었다.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가 참 많다. 그렇지만 우리가 올리지도 않았던 기도가 100배로 성취되기도 했다. 우리는 악몽을 관통했고 보물을 받았다. 삶은 참 잔인하거나 지독할 수도 있고 풍성할 수도 있었다. 

-pp.304


정말 그렇다. 내가 했던 응답 받지 못한 기도들, 성취하지 못했던 소망들에 강렬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라지 않았고 기도하지 않았는데 이루어진 일에는 미처 시선을 주지 못했다. 악몽을 관통한 그 사실에만 집중했지 그 이후로 받은 것들을 헤아려본 기억이 없다.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 생을 받았다기보다는 잠시 빌려 사는 사람들"이라는 통찰은 수시로 잊었다. 유한한 존재로서 죽음에만 집중한 나머지 우리가 어떤 연결자, 관통자, 임시 거주자임을 잊었다. 이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세상에 태어나 엄청난 의미를 실현하고 많은 것들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이 후손과 내가 떠나고 남을 이 지구에 남길 것들로 변환되어 보인다. 받은 것들을 누군가에게 반드시 베풀어야 한다. "삶은 증여인 동시에 채무다."라는 문장의 울림이 크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지금 여기에서 나의 존재가 가지는 책임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본질적이고 고정적인 나를 주변부로 밀어놓은 채 나날이 재깍거리며 가는 시계의 초침 소리에 놀란 모두에게 권하는 책이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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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09 16: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더욱 열쉼히 열독!하며
노안 물리치귀^ㅅ^

그레이스 2021-12-09 21:46   좋아요 3 | URL
저도 축하드려요~~
메리골드 차 추천합니다~

blanca 2021-12-09 21:44   좋아요 3 | URL
두 분의 댓글에 빵 터집니다. 감사해요. 메리골드차 찾아봐야겠네요.

쎄인트saint 2021-12-09 17: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blanca 2021-12-09 21:45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책 주문을 합리화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겨 기분이 좋네요.

mini74 2021-12-09 17: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립니다 *^^*

blanca 2021-12-09 21:45   좋아요 3 | URL
감사해요. ^^

thkang1001 2021-12-09 17: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이달의 리뷰에 선정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blanca 2021-12-09 21:45   좋아요 2 | URL
진심어린 댓글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12-09 21: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축하드립니다~!!

blanca 2021-12-09 21:46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12-09 21: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blanca 2021-12-09 21:46   좋아요 2 | URL
잊지 않고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서니데이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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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계마다 필요한 열네 명의 철학자의 지혜의 기차는 언뜻 가벼워 보일 수 있는 구성이다. 이런 유의 책은 지금까지 충분히 많았고 철학 측면에서도 삶 쪽에서도 그리 깊이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 경우는 많지 않았으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충분히 시간을 내어 탑승할 만한 가치를 지닌 열차다. 저자 에릭 와이너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스스로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반향은 우리 모두에게로 향해 있다. 동승인인 그가 입양한 열세 살의 딸 소냐의 지극히 십대다운 발언들은 자칫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는 철학을 현실로 끌어오는 효과와 이야기 자체의 재미에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진지하고 통찰력 있는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드디어 지상으로 내려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의 괴로움에 대한 이야기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맨발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지저분한 거리에서 던진 질문들은 답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질문 자체를 경험하고 사는 삶의 여정으로 확대된다. 은둔의 성자처럼 미화된 소로가 얼마나 삶에 열정과 에너지를 가지고 제대로 모든 것을 경험하고 보는 것에 열중했는지 간디가 겉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과정에 집중하여 마침내 이루어 낸 성과가 무엇인지 공자가 실용적인 친절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타인에 대한 사랑을 통해 추구한 바가 무엇이었는지와 더불어 우리가 늙어가며 결국 건설적으로 물어남을 어떻게 체득해야 하는지를 거쳐 마침내 몽테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의 종착점으로 향햐는 저자의 여정은 삶 그 자체의 패러디처럼 보인다. 저자 자신의 에피소드들과 철학자들의 삶 속의 은근히 숙성된 그것들이 어우러져 지금까지 멀리서 모호하게만 보였던 철학이 우리의 삶 속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문제들의 답을 찾아나가는데 하나의 안내서이자 지도로 치환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역시 에릭 와이너의 성취는 대미의 몽테뉴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서 빛을 발한다. 그가 가장 실제로 만나 맥주 한 잔을 나누고 싶은 철학자인 16세기의 철학자 몽테뉴가 이야기하는 죽음은 결국 우리가 이 열차에 올라탄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의 연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에릭 와이너와 함께 한 것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추구하는 이 모든 것이 결국 무로 돌아갈 것임에도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삶은 여전히 유의미한가. 이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한 여정이었던 것이다. 물론 딱 떨어지는 답은 있을 수 없다.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거창한 진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 와이너가 생테밀리옹의 몽테뉴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가로질러 읽는 이들에게 꽂히는 불의 화살이다.


그에게 죽음은 마치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재앙이 아닌 아름답고 불가피한 것"이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른다 해도 걱정하지 마라. 때가 되면 자연이 전부 다 제대로 알려줄 것이다. 자연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놓을 것이다. 괜히 걱정하지 마라."

-p.495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로 도착한 순간부터 그것이 비존재로 다시 돌아가는 그날까지 기꺼이 기억해 둘만한 이야기들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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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7 11: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침과 죽음에 대한 철인들과의 성찰 아주 좋았습니다 ㅎㅎ

blanca 2021-06-07 14:07   좋아요 2 | URL
사실 그렇고 그런 책인줄 알아서 책을 차례대로 안 읽고 읽고 싶은 대목만 읽으려 했었거든요. 어느새 처음부터 다시 제대로 읽게 될 정도로 좋았어요. 그리고 사지 않고 빌린 걸 후회했죠. ^^;;;

2021-06-08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랙 스완 - 위험 가득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 최신 개정증보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김현구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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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상품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 직원의 권유로 가입한 상품은 공격형 투자에 적합한 파생투자상품 위탁 판매를 통한 것이었다. 소액이라면 소액이라지만 최근 독일 국채 관련 파생 상품이 급격한 원금 손실을 보면서 은퇴자금 전부를 그 관련 상품에 넣은 노년층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들으면서 어안이 벙벙했다. 아직 손실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찬찬히 상품 설명서를 들여다 보면 원금 손실이 나기 쉬운 설계였다. 다섯 장도 넘는 상품 설명서를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전문가의 설명에 건성으로 응수하며 힘들게 번 돈을 공격적인 투자 상품에 넣은 것이다. 헛똑똑이는 '블랙 스완'에 먹혔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나는 결단코 그 상품에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신이 월가의 파생상품 투자 전문가로 일한 경력이 있다. 1987년 '블랙 먼데이'는 그가 '블랙 스완'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이 세계의 불확실성과 비예측성을 얘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백조라면 응당 흰색일 거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까만 백조는 이 세계에 대한 이론의 틀, 플라톤적 관념 체계 자체를 전복시키는 혁명이었다. 나심은 이 '예측 불가능성'과 '우리가 모르는 것'에 집중한다. 


이야기 짓기의 오류


나심은 인간의 본성으로서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하는 특성을 지적한다. 우리는 그럴듯한 스토리에 쉽게 현혹된다. 낱개의 사실들은 연결 고리로 뭉클한 이야기로 거듭난다. 그 행간에는 거짓과 과장, 온갖 곡해가 개입한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한 오류다. 그럼에도 환원주의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우리는 모두 두서없는 날것의 진실보다 매끈한 거짓 이야기를 더 믿으려 한다. 그리고 이것은 지적 세계에서 소수의 엘리트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기반이 된다. 


이야기 짓기의 세계를 벗어나야 한다. 텔레비전을 끄고, 신문 읽는 시간을 줄이고, 인터넷을 무시하라. 결정을 내리는 이성적 능력을 훈련하라. 감각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을 구분하도록 스스로를 훈련하라.

p,233

상당히 도발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선정적인 뒷이야기, 감동적인 스토리로 왜곡된 진실이 뒤늦게 드러나는 경우를 우리는 이미 충분히 봐 온 점을 감안한다면 나심의 도발은 타당하다. 건조한 진실의 입에 기꺼이 손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세계화, 지구화에 대한 우려


세계화가 취약성이 서로 얽혀 오히려 파괴적인 검은 백조를 양산한다는 나심의 의견은 예리하다. 금융 전문가 및 경제학자 등을 대놓고 저격하고 그들의 통계 수치를 허무한 것으로 전락시킨 이 책은  수많은 논쟁에 불을 지피고 적을 양산했다. 하지만 그의 책은 뒤이어 일어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하나의 예언서로 격상되는 이변을 맞는다. 그는 이미 금융기관들이 합병되어 비대화되고 현실과 맞지 않는 확률에 기댄 예측치로 복합 상품을 설계하여 대중들을 끌어들이는 일이 엄청난 파국을 맞을 것이라 예고한 바 있다. 작금의 현실을 예감한 듯 나라 간 이동이 용이해지며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급속하게 확산될 위험이 크다는 우려도 있다. 이 세계의 복잡성은 그 실체를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상호 의존적으로 얽혀 예측 자체가 무의미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레바논인인 그는 자신의 고향에서 처음 전쟁이 발발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낙관적 희망을 가졌던 것이 어떻게 좌절되었는지 목도하게 되며 회의주의적 경험론자로 거듭난다. 우리의 인식론적 한계는 낙관에서도 비관에서도 여지없이 노출된다. 이러한 인간의 불완전성과 비정형성, 비선형성을 이제는 감내해야 할 시간이 왔다.



그래서 그렇다면 어떻게


나심은 자신의 책이 경제서가 아니라고 계속해서 주장한다. 실제 확률에 관련된 장은 일반 독자들은 건너 뛰어도 좋다고 덧붙인다. 몽테뉴와 세네카에 대한 경의는 시종일관 그의 아름다운 문장과 만난다. 이 책은 그의 주장처럼 경제서가 아닌 것도 아아니고 그가 어쩌면 기대했을 철학서라고 보기에도 그 모든 요소를 건너지르고 아우르는 방대함이 있다. 세계에 대한 사람들이 흔히 주목했던 전문가 집단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 뒤에 그는 쉽게 허무주의로 전락하지 않는다. 마지막 장은 세네카에 대한 얘기다. 철학자 세네카의 서한집에 나오는 아이들과 부인을 잃은 스틸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고전의 마지막 장을 장식해도 좋을 정도로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스틸보의 대답은 '니힐 페르디티, 옴니아 메아 메쿰 숨트' 였다.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나의 재산은 모두 내 안에 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회의주의는 삶 자체를 방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진지한 비판 의식을 가져야 하고 누군가 지나치게 그럴 듯한 논리를 펼 때 의심의 촉수를 뻗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가졌다고 자만할 때 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음을, 그럼에도 나는 무너지지 않을 것임을 믿어야 한다. 


마지막 인사는 세네카의 'vale'라는 인사로 갈음했다. '강인하기를'  우리 모두가 극한 확률을 뚫고 태어난 거대한 검은 백조라는 그의 시어 같은 이야기에 맞춤한 작별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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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광인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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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전을 다 씹어 먹으면 그 단어들을 다 외울 수 있어. 그 사람은 정말 다 씹어먹었다니까.

 

정말 한번 한 장만 먹어볼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도 하고 어쩌다가 종이를 장난으로 가끔 먹어보기도 했지만 사전의 그 얇은 지질의 종이를 몇 백장을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럴 수는 없으니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친구와 맞바꾼 영어 사전을 부지런히 찾았다. 그러면서 사전은 내 손에 길이 들어 모르는 단어를 어느날 한번에 펼쳐 찾는 그 사소한 행운에 놀라기도 했다. 이제 모르는 영어 단어가 나오면 대신 인터넷 검색을 한다. 편리하기도 하지만 그 손으로 내가 찾던 단어를 지목하며 그 주변부의 숱한 단어들을 우연히 맞닥뜨리는 그런 묘한 경험은 과거가 되었다. 딱 내가 궁금한 그 단어만 만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세계는 점점 더 내 본위로 좁아져 간다.

 

사전을 만든 사람들. 듣기만 해도 설명하기 힘든 묘한 친근감, 경외감이 든다. 이야기를 만든 사람들과는 또 다른 지점에서 끌어당긴다.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지만 모든 어휘를 다 설명하려 했던 그 지난한 시도와 여정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하나 하나 정복해 나가며 가능한 최대치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과정이었다. 19세기 중반 시작된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편찬은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보낸 작가들이 문학 작품에서 사용한 어휘의 인용문 수집 과정을 통한 것이었다는 것이 놀랍다. 돈을 받거나 어떤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닌데도 수많은 지원자들이 속출했고 물론 중간에 그만둬 버리거나 책임감 없이 행동한 이들도 있었지만 끝까지 그 지난한 편찬 과정에 무보수로 동행한 많은 이들이 있었고 언어학자보다 더 심도 있고 적확하게 그 어휘가 최초로 쓰인 문학 작품을 찾아 인용하여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완성에 혁혁한 공을 세운 자원봉사자 닥터 마이너와 사전의 편찬 작업을 전두 지휘했던 편집인 제임스 머리의 우정이 있었다. 그 둘은 닮은 외모, 비슷한 연배였지만 국적도 성격도 삶의 여정도 천양지차여서 사전 편찬이라는 공통된 화두가 없었다면 결코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사전의 자원봉사자와 편집인으로 만난 둘은 서신 교환으로만 접촉하다 거의 이십 년이 지나서야 서로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찬의날실과 씨실에 파고든 공적인 역사보다 더 끈질기고 드라마틱하고 비참하고 그럼에도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적인 연대기가 얽혀 있다.

 

충실하게 사전의 편찬 역사에 동행했던 자원 봉사자 닥터 사이먼에게는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었다. 그는 상류층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 미국의 남북전쟁 시기 북군의 군의관으로 참전했다 후에 정신병이 발병하여 전역한 후 건너간  런던에서 망상에 사로잡혀 가난한 한 집안의 가장을 살해하게 된다. 그 후로 그는 사회와 격리되어 정신 병원의 수용소에서 여생을 보내게 되고 여기에서 그의 재력과 사회적 위치로 얻은 독특한 자유와 장서로 영국의 영어 사전 편찬에 성실히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장서를 동원하여 성실하게 본인이 직접 만든 작은 어휘집에 제임스 머리가 요청한 어휘들의 용례를 충실히 수집해 주옥 같은 자료를 정기적으로 꾸준히 보내게 된다. 끊임없이 성적 망상에 사로잡히면서도 그의 성실함, 언어에 대한 깊은 애정과 천착의 깊이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완성하는 데에 혁혁한 역할을 하게 된다. 편집인 제임스 머리는 이 성실하고 명민한 자원 봉사자에 대한 깊은 경탄과 호기심을 떨치지 못하고 마침내 그를 만나게 되고 그가 정신병자에 살인까지 저질러 감금되다시피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면회와 서신 교환을 중단하지 않고 심지어 노년기에 접어든 닥터 사이먼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는데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죽음이 그들을 갈라 놓을 때까지 충실한 친구의 역할을 저버리지 않게 된다.

 

70년도 넘는 세월에 걸쳐 50만 개가 넘는 어휘의 정의와 역사, 용례를 담아 내어 '영어'의 위상을 재정립한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이런 두 사내의 우정과 상호존중, 신뢰가 있었기게 가능한 것이었다. 저자는 더불어 닥터 마이어가 죽인 젊은 아버지 조지 메리트의 잊혀진 삶을 추적하고 이 책의 제사를 그에게 바침으로써 이 익명의 희생자가 될 뻔한 사전 편찬의 사연에 숨어 든 한 남자를 살려낸다.

 

일어났던 모든 일.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일들. 윌리엄이 런던에 건너가 살인을 저지르고 수용소에 감금되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우리 앞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편지를 제임스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사전 작업에 활용하지 않았다면, 혹은 후에 그의 무서운 배경을 알아차리고 그와의 접촉을 끊었더라면, 그 작은 하나의 가정들이 모여 다른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슬 고리마다 저자의 사려 깊고 세심한 시선은 가 닿아 그 모든 퍼즐 조각들이 맞춤하게 맞아 떨어져 그려 낸 그림을 그려낸다. 한 가여운 남자의 죽음, 그리고 두 남자의 편견과 계급을 뛰어 넘은 우정을 가로질러 마침내 그 모든 언어들의 태어나 자라 살고 죽은 그 유장한 역사가 남게 된 것이다.

 

사전을 다 먹어버리고 마침내 그 모든 언어를 다 머릿속에 넣어버렸다는 그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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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6-27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다시 새로 나왔나 봐요. 예전에 나왔었는데...
블랑카님 <행복한 사전>이란 영화 보셨나요?
혹시 안 봤으면 한번 보세요.
진짜 사전 만드는 사람 보면 존경스러워요.
줄리언 반즈도 사전 만드는 일에 참여한 적이 있다잖아요.^^

blanca 2016-06-27 18:10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안 그래도 그 영화 좋다 해서 봐야겠다,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이 참에 봐야겠어요. 안 그래도 이 책이 개정판이더라고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테리 이글턴의 아주 특별한 문학 강의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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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전부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책은 당신을 깨운다. 그것만으로도 그 책은 전부가 아니어도 된다. 이 책은 나에게 그랬다. 유명한 문학 작품들을 인용하고 거기에 대한 해석, 자신의 개인적 감상, 경험을 덧붙인 부드러운 책들이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한 면이라면 이 책은 닮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도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토머스 하디의 <무명의 주드>,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같은 자주 그런 류의 책들에서 회자되는 대목들이 언급된다. 하지만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덧붙여진다.

 

저자 테리 이글턴은 실제 영문학과 교수다. 그리고 이 책은 숱한 문학에 덧씌워져 있는 거대한 환상의 장막을 가차없이 벗긴다. 그 자신은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로 이야기되지만 그 어떤 '~주의'도 문학을 과장하거나 미화하는 데에 이용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주의도 낭만주의도 심지어 포스트모더니즘도 한계는 명료하다. 문학 자체가 아이러니다. 그것은 객관적이거나 공정하거나 거대한 진실이 아니다. 애초에 그러한 기대를 버리고 독자는 자신의 한계 안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지만 읽는 이가 다가와야만 부활하는 이야기에 발을 들여 놓는다.

 

스토리는 타래처럼 뒤얽힌 이 세계에 억지로 일종의 도안을 새겨 넣으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세계를 단순화하고 빈약하게 만들 뿐입니다. 서술한다는 것은 변조하는 것입니다. <중략>

이 말은 곧 모든 서사가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서사는 그 자체의 한계를 끊임없이 염두에 두면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합니다.

-p.202~203

 

"하나의 총체적 서사는 없다"는 그의 이야기는 일견 문학의 한계를 지적하는 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에 대하여 가지는 시선과도 연결되어 있는 깊이 있는 자인이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그것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조언은 그 앞에서 어불성설이다. 그에게 인생은 목적이 없더라도 꼭 이야기가 아니어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이 부분이 깊이 와닿았다. 삶은 통합된 잘 직조된 패턴으로 설명 가능한 서사가 아니라는 것을 나이 들며 느끼게 된다. 중구난방으로 일어나는 일들, 맥락에 닿지 않는 반응들도 삶의 통로로 예고없이 기어 들어온다. 거기에서 혼란을 느끼기 시작하면 어지러워진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왜 이런 이야기를? 질문은 난무하고 그것은 마치 원래 그래야 하는 경로를 벗어나 소외된 고독한 이방인이 암흑을 대변해야 할 때 느끼는 심정과도 닿아있다. 하지만 원래 서사란 환상이고 심지어 그 환상을 토대로 쌓아올리는 문학마저 스스로 그것을 배반하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는 것을 수긍하게 되면 당연히 살아 숨쉬는 인간의 삶이 잘 짜여진 이야기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우리는 한 문학 작품이 세상을 보는 방식에 찬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p.308

 

문학에 대한 한계와 아이러니는 그것이 바탕으로 하는 삶이 가지지 못한 것들에서도 연유하지만 그것을 언어로 옮길 때 따라오는 그 공백과도 겹친다. 따라서 이것이 바로 절망이나 무용함과 만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지점에서 이야기는 계속 되어야 한다. 완전하지 못하고 완전할 수 없기에 그것을 향해 끊임없는 언어의 순례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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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6-02-15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깔끔한 문장입니다^^
여러 고전문학 읽기를 통해 다양한 사고와 간접 경험을 하는, 제 안의 감성을 깨우는....
덕분에 유연한 사고도 가능하겠지요. 나에게만 생긴 일이 아니라는 위안도 갖게 되고요.

blanca 2016-02-15 14:44   좋아요 0 | URL
한동안은 소설을 안 읽기도 했어요. 어차피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허무감이 좀 들어서요. 그런데 요새 소설을 읽다 보면 그 안에 불완전하거나 상충되더라도 제가 느끼거나 생각하거나 경험한 것들의 조각들이 있어서 반가워요.

마녀고양이 2016-02-15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하이
전 책서평을 담은 책은 거의 안 읽지만, 블랑카님의 말씀대로 이 책에 담긴 메시지가 참 마음에 드는군요~~~

오늘 추워요

blanca 2016-02-15 14:45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도 잘 지내셨죠? 며칠 전만 해도 봄날이 온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후진이에요--;; 오늘은 여느 겨울처럼 참 춥네요. 빨리 봄도 오고 꽃도 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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