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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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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상실’, 그것도 회복될 수 없는 크나큰 '상실' 그리고 '상실 이후의 삶'을 말하는 이야기들을 꾸준히 읽었다. 아무래도 중년에 접어들어 이제는 잃어갈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인 듯하다. 사회적으로도 세월호 이후 상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최근에 읽은 <오직 두 사람>,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도 그랬다.

 

“나는 상실에 대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상실을 상상하게 하는 이야기가 더 좋다.”(김중혁, <바디무빙>, 41쪽).

<바깥은 여름>의 각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 역시 ‘상실’이었다. 김애란은 독자가 상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담담하게 짐작하고 헤아리게 만든다.

 

<입동>에서 부부는 대출을 끼고 정착하려 마련한 집 앞에서 아이를 잃는다. 연식은 있지만 단지 근처에 어린이집이 있고 적당히 리폼만 하면 북유럽풍(?)으로 변신 가능한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그들은 행복했다. 적어도 아들의 차량 사고가 있기 전까지는. 어린이집에서 사고 이후 무심하게 발송한 복분자병을 시어머니가 열어보다 병이 폭발해 올리브색 벽지에 흉하게 시뻘건 얼룩이 번진다. 부부는 이 얼룩을 감추려 도배를 새로 하다가 아이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제 막 말을 배우고 손힘을 길러 이름자를 쓰려 애쓰던 그 아이를 다시는 볼 수 없다.

아내는 한 손으로 영우가 직접 쓴, 아니 쓰다 만 이름을 어루만졌다. 순간 어디선가 영우가 다다다다 뛰어와 두 팔로 내 다리를 감싸안을 것 같았다. p.37

 

도배지를 든 채로 벌서듯 서서 두 팔을 바들바들 떠는 주인공을 떠올리며 가을방학의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를 듣는다.

넌 날 아프게 하는 사람이 아냐/수없이 많은 나날들 속을/반짝이고 있어 항상 고마웠어/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얘기겠지만/그렇지만 가끔 미치도록 네가/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너 같은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마음 둘 곳이라곤 없는 이 세상 속에.

 

<노찬성과 에반>은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와 외롭게 살아가는 소년이 유기견 에반마저 잃게 되는 이야기이다. 일단 아무도 찬성하지 않은 듯한 존재라는 소년의 이름과 소년이 귀하게 여기는 유기견 ‘에반’(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끈 변신미니카 중 최고 인기템. 최근에는 인기 급하락)의 명명에 실망해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유일하게 마음을 준, 유기견의 고통을 알고 소년은 안락사를 시키려 전단지 알바까지 한다. 그러나 결국 아이다운 욕망에 굴복해 돈도 다 쓰고 에반은 고통만 받다 허망하게 간다. 이남호의 <서사문학의 이해>에 따르면 개연성이 주로 플롯상의 그럴듯함을 가리킨다면, 핍진성(逼眞性)은 서사의 여러 측면에서 그 서사가 실제 현실과 흡사한 느낌을 주는 것을 뜻한다. 이런 정의에 따를 때 <노찬성과 에반>은 개연성은 있으나 하층 소년의 심리 묘사나 상황 면에서 볼 때 핍진성이 결핍되어 있어 아쉬웠다.

 

 

<건너편>은 노량진에서 수험생활을 하며 만났던 커플이 헤어지는 지지부진한 과정을 담았다. 도화는 힘든 수험생활에 결실을 맺어 실패한 이수가 답답하기만 하다. 이수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기회를 주려 같이 살던 집의 전세금까지 빼돌려 몰래 시험을 준비하지만 둘의 관계는 끝나고 만다.

그때서야 도화는 어제 오후, 주인아주머니를 만난 뒤 자신이 느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오래 전부터 이수 쪽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길 바라왔던 것마냥. 이수는 이제 ......어디로 갈까? p. 119   

 

<침묵의 미래>는 외부와 접촉이 제한된 ‘소수언어박물관’에서 천여 명의 화자가 천여 개의 언어를 지키며 산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언어를 잃어간다는 건 존재를 잃는 것이다. 그나마 자신의 언어로 소통할 만한 다른 화자가 있는 사람들은 버티어가겠지만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홀로 쓰는 사람은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나날이 닳아갈 것이다.

 

다 죽고 살아남은 건, 오직 자기 자신과 엄청나게 아름답고 어마어마하게 정교해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그 ‘말’뿐이라는 걸......결국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이들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과 침묵 속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 애썼다. p.128

종군위안부, 게이, 조현병 환자의 언어를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같은 한국어를 쓴다고 해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의 언어 체계에서 같은 것을 보고 겪은 이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소수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쓸쓸하고 무섭고 외롭고 아름다운 것일까. 우주공간에 버려져 지구를 바라보는 ‘악몽 같은 아름다움’일지도 모르겠다.

 

 

<풍경의 쓸모>에서 시간강사 정우는 오래전에 여자와 바람이 나서 가정을 버린 아버지와 연락이 닿게 된다. 아버지와 연락을 피해가며 살아가던 중 같은 대학 정규직교수가 일으킨 교통사고를 자기 것으로 떠맡고도 자리를 얻지 못한다. 새여자를 살리게 돈을 달라던 아버지 부탁을 외면했고 결국 새여자의 부음을 듣게 된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p.173

'전형적인’ 불륜인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자신도 살아가며 ‘불륜’을 저지르고 인상이 미묘하게 변하며 그렇게 나이 들어간다.

 

 

<가리는 손>은 다문화가정의 아이가 묻지마 폭행에 가담하여 노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을 그렸다.

 

불현듯 저 손, 동영상에 나온 손, 뼈마디가 굵어진 손으로 재이가 황급히 가린 게 비명이 아니라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재이에게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p.220

엄마는 재이에게 외국인 아버지가 여기 일하러 온 게 아니라 공부하러 온 거고 고향집에 하인도 있었다고 가르쳤다. 우리는 차별을 반대한다지만 차별을 내면화하고 있고 약자를 배제하고 무시한다. 이것에 가장 취약한 것이 자라나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쉽게 ‘혐오 발언’에 동화된다. 재이와 그 무리들은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하층 노인을 ‘틀딱’이라 비하하고 폭력을 가한다. 짧은 생애 동안 차별로 인해 가장 상처받았을 재이는 그 순간 정말 웃었을까. 아니면 경악한 것일까?

 

언젠가 티비를 트니 아일랜드 슬래인캐슬에서 이소라가 <바람이 분다>를 부르고 있었다. 언제 들어도 먹먹하고 힘든 노래. 유희열은 앞에 잡음이 들어가 다시 불렀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이소라는 다시 부르기 힘들다고 거절한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전에 <바람이 분다>를 듣다보면 혈관 아래 진토닉이 흐르는 듯하다고 했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읽는 내내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스며드는 단편이었다.

남편은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다 순직한다. 남겨진 부인은 사촌언니 초청으로 스코틀랜드로 떠나 ‘장미색 비강진’이라는 피부병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고여간다. 에든버러에서 유학중인 친구를 만나지만 남편의 부고를 알릴 수도 없었고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온다. 착한 사람인 김애란 작가는 역시나 이 착한 사모님이 안쓰러워 사망한 아이의 누이가 보내는 편지를 굳이 말미에 덧붙였다. 나라면 쓸쓸하게 휴대폰에 이런저런 얘기를 묻고 죽은아이 누나한테 편지를 받게 하느니 옛 썸남이 있는 외국으로 돌려보내련다. 가버린 사람은 무심하게도 기억 속 그대로인데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들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패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작가의 말>까지 공들여 읽는데 기차 차창 밖으로 여러 풍경이 스쳐지나간다. 풍경이, 계절이 앞으로 나아가는 듯하면서 뒤로 스쳐 지나간다. 내가 잡았던 손과 놓았던 손을 생각하기도 하고 하지 못한 말과 해서는 안 되었던 말들을 삼킨다. 영등포 역에서 내려 ‘오직 세 사람’의 언어를 쓰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오른다. 동인천 급행을 타고 오랫동안 병중인 엄마를 만나러 간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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