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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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 2 에서 유시민 작가님이 추사의 말년 글씨체를 보여주고 이전 글씨도 보이며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준 적이 있다.

 

아, 글씨도 늙을 수 있구나.

늙었을 때의 글씨도 나름대로 멋이 있구나.

 

글씨는 그 사람과 함께 나이를 먹으며 늙어간다. 같은 사람이 쓴 글씨여도 초등학생 때 쓴 글씨와 고등학생 때 쓴 글씨가 당연히 다르고, 이십 대에 쓴 글씨와 사십 대에 쓴 글씨도 다르다. 칠십 대, 팔십 대가 되면 더욱 그렇다. 십 대 때는 동그란 글씨만 썼던 소녀도 할머니가 되면 자연히 그런 글씨를 쓰지 않게 된다. 글씨도 나이와 함께 변화한다.   182쪽

 

동생이 시집을 가게 되어 집을 정리하면서 편지 뭉치들을 많이 발견하고는 버려도 되냐고 물은 적이 있다.

 

무심히, 어, 했다가 아니 그래도 가서 좀 볼게, 했다. 

 

그렇다. 나도 아직은 어딘가 좀 낡은 인간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 얼마 전에는 친정도 아니고 우리집에서 대학 때 전공노트, 대학원 때 노트도 발견했다. 확실히 글씨가 미세하게 변했다. 특히 요즘 필사를 가끔 하는데 글씨가 참 많이 변했다는 걸 느낀다. 많이 길쭉하고 허술해졌다. 

여고생 땐 밤톨같이 단단한 글씨체였는데.

뚜유폰트로 제작한다면 제작할 수도 있을 만큼.  

 

*

<츠바키 문구점>은 이렇게 사라져가는 문화인 편지와 대필업에 얽힌 이야기이다. 

 선대(할머니)의 문구점과 대필업을 이어받은 주인공 포포는 선대와 풀지 못한 감정을 갖고 있지만 선대의 유업인 대필업은 성실히 수행한다.

 

손님들 각자의 사연을 주의 깊게 듣고 그 상황에 맞는 내용을 구사해 어울리는 글씨로 잘 적어보낸다. 물리적인 편지지나 우표, 봉투, 도장 등에도 세심하게 마음을 쓴다.

 

여러 가지 사연이 다 인상깊었지만 돈을 빌려달라는 걸 거부하는 편지나 '절연장'이 신선했다. 오래 사귄 연인끼리도 카톡 하나 없이 차단만으로 잠수 이별도 하는 세상에 부러 의뢰를 해서 인연을 잘 매듭 지으려 하는 것이 고풍스럽게 여겨진다.

 

촌스럽게 요즘 누가 '절교'씩이나 하는가, 그저 카톡 차단이나 SNS 친구 끊기로 해결되는 세상인데.

 

사람들이 많이 강해지고 독해진 듯하나 이런 식의 인연 맺음은 자아가 많이 허약하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흔해진듯하다. 관계를 맺는 것만큼이나 마무리가 중한데  그 마무리에 드는 시간과 감정을 소비하기 싫고 두렵기도 해서 잠수를 택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지금까지 보낸 즐거운 시간, 정말 고마워.

너를 만나서 행복했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

이제 서로 거짓말하는 것은 그만두지 않겠니?

나는 너와의 멋진 시간을 멋진 시간인 채,

가슴에 담아 두고 싶어.

이것은 나의 절연장이야.

이제 널 만날 일은 없을 거야.

이유는 알겠지.

너 자신의 솔직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렴.   256쪽 

 

연인이 아닌 동성에게 보내는 익명 씨의 절연장이다.

이걸 받으면 상대는 순간 기분이 언짢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을 강하게 묶어두었던 우정이라는 끈을 끊고 결국 상대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한 차원 높은 배려라는 생각도 든다.

 

포포는 연락이 닿는 혈육은 없지만 바바라 부인, 빵티, 남작, 큐피라는 아이, 큐피의 아빠와 유사가족 관계를 맺고 소소하게 일상의 낙을 찾는다. 마지막에 좀 급작스럽게 큐피와 큐피의 아빠와 이어지는 것말고는 읽는 동안 평안했다.

 

언젠가 츠바키(동백나무) 문구점이 있을듯한 가마쿠라를 거닐어 보고 싶다. 지금은 그저 역자 후기에 가마쿠라 여행기가 실려 있어서 읽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뿐.

 

부록으로 포포가 쓴 듯한 그동안의 편지들이 실려 있다. 일본어 잘알못이라 필체가 어떤지까지 가늠할 수 없어 안타깝다.

 

요즘 좋은 연필들을 사모으고 있는데

아이들만 주지 말고 나도 부지런히 써야겠다.

 

오래 전에 소식이 끊긴 벗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도 써보고 싶다.

 

 

"평범한 편지도 써주십니까?"

소노다 씨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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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카스트
스즈키 쇼 지음, 혼다 유키 해설, 김희박 옮김 / 베이직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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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교실에는 불가촉천민이 있다.

정말이냐고? 자극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언젠가 지켜본 적이 있는데 진짜 아이들이 닿는 것도 싫어하는 그런 애들이 전교에 한둘은 있었다.

 

요즘 애들은 왕따, 학폭이나 일으키고 허 인성이 참.... 혀를 끌끌 찰 것만은 아니다. 우리 세대에도 뭔가 가까이하기 꺼려지는 아이들은 늘 있었다.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도 모든 아이들이 그냥 싫어하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원래 1학년 때부터 성격이나 하고 다니는 게 그랬고 생긴 것도 그렇고 아무튼 원래 그렇단다.

아들아 너마저. ㅜ.ㅠ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아이들은 그래도 순수하다 여기고 부정하려고 해도 교실 역시 사회의 축소판이며 어쩌면 학교현실은 사회보다 더 잔인하다. 드라마 <여왕의 교실>에서와 같은 차별과 배제는 현실에서도 흔하다.

 

<교실 카스트>는 이렇듯 현존하는 학생들 간의 묘한 역학관계를 밝히고 하부계층이 억압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밝히고 있다.

 

학교라는 공간은 서로 다른 관심사와 능력을 지닌 아이들을 같은 연령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커리큘럼 하에 한 공간에 지나치게 장시간 머무르게 하는 곳이다. 책에도 잠깐 나오지만 같은 공간 장시간 이게 의외로 큰 문제다.

 

초중등 시기에 학폭, 왕따를 경험했는데 대학에 가서 극복한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대학에 가서 그 학생이 성격이 크게 바뀌었다기보다는 학급 체제가 아니라 수업을 선택하여 듣고 집단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중등 시기에 보다 커리큘럼을 다양화하여 학생들의 수준과 흥미에 맞게 수업할 수 있다면 계급이 공고해지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학급 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다수의 아이들을 관리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에 학급 체제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책에서는 정보의 축적이 계급을 나눈다고 한다. 아이들은 발달을 다 마치지 않았고 판단력 역시 아직 부족한 초등 시기에 서로에 대한 정보를 축적한다. 운동을 잘하는 아이, 똑똑한 아이, 힘센 아이, 예쁜 아이 등 아이들 사이의 평가는 사실 무자비하다. (결국 어른들의 시선이 투영된 결과이다)

 

이때 감정표현이 서투르거나 별 특징 없는 아이들 중 아주 사소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아이들의 배척을 받는 애들이 몇 명 생기고 고학년이 되면 그간 축적한 정보에 의해 그 아이는 헤어날 길이 없는 비호감 재수탱이로 낙인 찍힌다. 그애 곁에만 가도 아이들은 옮는다고 싫어한다. 대체 뭐가 옮아?

 

책에서는 하위계급 아동이 적극적인 성격이 되려고 노력하거나 하는 것도 다 소용이 없다고 한다. 오직 지배계급 아이들이 그만 이제 그애를 받아주자 하는 신호가 떨어져야 그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배층 아이들의 특성은 호감 가는 외모, 이성들 사이의 인기, 공부, 운동, 가무 실력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공통되는 특성이라면 소통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상위계급인지 학급에서 쉽게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은 쉬는 시간이든 수업시간이든 마음대로 발언할 수 있고 쉽게 호응받을 수 있다면 그 아이는 상위계급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어떻게 행동해도 비웃음을 산다면 그애는 하위계급인 것이다.

 

소위 초등 시절부터 약은 아이들.

이 아이들이 학급의 행사를 주관하고 학급의 귀찮은 일은 적당히 다른 애들에게 맡긴다. 이 아이들에게 권위를 실어주는 건 놀랍게도 교사이다. (우리가 이미 학창시절에 목도한지라 별로 놀랍지 않을 수도 있지만. ) 교사들도 필요에 따라 "상위계급 아이들에게 아첨하고" 각 계급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한다. 

 

기가 약한 교사들이 상위계급 아이들에게 찍혀 힘들게 교직생활하는 경우도 있다. 책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교사들 사이의 계급이라면 인기교사, 비인기교사로 나눌 수 있겠다. 중등에서는 상위계급 아이들이 인기 교사들과 협력해 그 학교의 문화를 만들어간다. 나머지는 비주류이고 비인기교사들이 하위계급 아이들을 챙겨주어도 그 아이들은 크게 반가워하지 않는다.    

 

학교에는 수업말고도 축제나 운동회 등 각종 행사가 있는데 이때 성과를 내기 위해 상위 학생들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책에서 재미있는 사례는 해외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상위계급 아이들이 물갈이로 배가 아파 행사를 주관하지 못하게 되자 하위계급 아이들만으로도 무사히 프로그램을 잘 마쳤다는 것이다. 요컨대 아이들에게는 자신을 발휘할 기회가 부족한 것이지 애초 계급간에 능력 차라는 것이 크지 않은 것이다.

 

화합의 장이라는 명목으로 마련하는 축제가 계급간의 차이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된다. 여름에 학교운동장에서 6학년 아이가 학예회에서 출 걸그룹 댄스를 친구에게 앙칼지게 가르치는 걸 보고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일본의 현실이라지만 우리나라의 학교현장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사라면 이 책을 읽고 학급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권력을 분산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학부모라면 내 아이의 소통력에 대해 고민하고 중심 그룹에 속하는 아이들을 잘 지켜보고 적대적으로 지내지는 말라고 조언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다.

 

'교실 카스트'는 인정하기 싫어도 현존한다.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책임은 상당 부분 어른들에게 있다. 외모지상주의, 물질숭배, 능력주의 사회에서 아이들이 쉽게 이러한 가치들을 내면화하고 자신들의 세계에 적용한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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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 10인의 작가가 말하는 그림책의 힘
최혜진 지음, 신창용 사진 / 은행나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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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년기를 세 단어로 요약한다면 나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프랑스, 벨기에를 무대로 활동하는 그림책 작가 열 명을 저자가 직접 방문하여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좋은 질문을 해야 가치 있는 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상상력, 창의력, 작가의 유년기, 부모와의 관계 등을 통해 창작활동과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 서구의 그림책을 보고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강할 것이라 짐작만 하는데 그림책 저자들의 유년기가 마냥 행복하고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연배 있는 분은 우리나라 60대같이 전쟁을 겪기도 하고 냉정한 엄마 슬하에서 불우하게 자란 분도 있다. 희망적이고 고무적인 건 유년기나 학창시절이 인생과 창작에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불완전하며 그 불완전을 딛고 시도해보는 데서 예술, 창작이 시작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인터뷰 면면을 살펴보자.

 

 

‘관찰하는 시선’ 조엘 졸리베

 

 

관찰력을 기르려면 '좋다', '예쁘다' 하는 식의 첫인상에 머물러서는 안 돼요. '이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어디에서 온 이미지인가', '누가 만든 것인가' 주체적으로 정보를 소화하고 판단하면서 보려고 하는 것이 관찰력과 시각적 문해력을 기르는 첫걸음이에요. 26쪽

 

관찰력은 보는 대상에 감정이입을 하거나 감탄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감탄하는 마음이 관찰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관찰이라는 행위 안에는 사랑의 성분이 분명 들어 있습니다. 저는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째 카페나 지하철에서 관찰 크로키를 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흔히 못생겼다고 치부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전 그 사람만이 가진 선과 형태감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요. 그림 그리는 사람들 특징 같기도 한데 사실 전 모든 존재는 아름답다고 믿습니다.

27쪽

 

 

관찰력을 기른다고 자연백과를 들이거나 무리하게 나들이를 다닐 필요 없이 일상에서 만나는 이미지를 진지하게 살펴보면 되는 거다. 아들 어릴 때 강원도 국도변에서 하루종일 여러 차들과 화물트럭을 오가는 걸 지켜보던 때가 생각이 난다. 차바퀴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던 아들의 눈망울이 떠오른다.

 

 

‘상상을 만드는 질문’ 키티 크라우더

 

키티 크라우더는 선천적 난청을 통해 사람들의 말과 표정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 너머의 감정을 자주 상상했다. 저 가면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키티 크라우더는 요즘 학생들이 몸을 쓰는 수업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글을 쓸 때 기억을 관장하는 뇌가 자극을 받는 편인데 손글씨도 잘 쓰지 않는 실정이다.

 

키티 크라우더가 좋은엄마 상을 제시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30년 후에 두 아이가 저를 좋은 엄마였다고 회상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은 엄마 이전에 자신만의 삶을 가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어요. 아무리 음식을 잘하고 뒷바라지를 잘 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엄마의 열정과 영혼이 안 느껴진다면 아이는 껍데기 엄마만 만나는 겁니다. 뭔가에 열정을 지닌 살아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표를 모으거나 봉사활동을 다니거나 정원을 가꾸거나 그 대상은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어요. 엄마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요.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나 자신의 행복을 디자인하는 과정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61쪽

 

 

 

‘공감의 쓸모’ 올리비에 탈레크

 

 

부모님이 가족과 친구, 이웃을 섬세하게 돌보는 타입이어서 어느 정도 보고 배운 것도 있겠지만 관찰로도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어릴 때 동네 친구들 관찰하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81쪽

 

 

탈레크는 자의식 강한 예술가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혼자 작업실에 있다 보면 과장된 자의식이 생기기 마련이다. 밖에 나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지 상상해보는 게 공감 능력의 본질이라고 한다.

 

‘치유하는 상상’ 클로드 퐁티

 

 

클로드 퐁티는 부모님의 불화로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유년기를 어렵고, 슬펐고, 혼자라는 세 단어로 정리할 정도였다. 작가는 딸 아델에게 선물하기 위해 그림책을 만들어 지금도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 아델을 키울 때 완벽한 부모는 없다는 것과 아이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세웠다고 한다.

 

   

“시도해보고, 감탄하고, 수정하고, 배우고 다시 해보면서 변화하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거짓말이에요. 그 말 좀 믿지 마세요. 아이에게든 어른에게든 산다는 건 예측 불가능한 난관을 통과하는 과정이고, 우리는 언제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수정하고 진화할 수 있습니다.” 103쪽

 

 

아이는 조부모, 부모의 양육방식과 세계관에 영향을 받지만 인간은 그것에 절대적으로 지배될 정도로 약하지는 않다.

 

 

‘작은 용기’ 세르주 블로크

 

알자스 시골뜨기, 행복한, 뛰어놀다를 유년의 키워드로 택한 작가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최고의 자산으로 이것을 꼽는다.

 

 

매일 정육점으로 출근하는 아버지를 보며 규칙적으로 일터로 나가는 것의 의미와 무게감을 배운 것요. 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기복 없이, 대단한 기대감이나 불안감 없이, 어제 노력했던 일을 오늘 또 해보는 태도. 그건 예술가에게도 꼭 필요한 태도거든요. 사실 창작 활동에서 ‘반복’은 피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마음에 드는 선 하나가 나올 때가지 똑같은 짓을 계속해야 하는데 그걸 지겨워하거나 진도가 안 나간다고 좌절하면 성장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140-141쪽

 

 

똑똑하고 가진 게 많은 부모가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게 아니라 묵묵하게 자기 일을 불평 없이 해나가는 평범한 부모가 자식의 삶에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작가의 부모님은 작가의 불안정한 작업을 묵묵히 바라봐주었다. 세상의 속도대로 살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살아본 사람은 좀더 용기를 낼 수 있다. 작가는 창의성이 뭔가를 해보는 용기, 잘 안된다 하더라도 시도해보는 용기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학창시절에 쉬는 시간에 놀 때 큰 결심을 가지고 노는 게 아니듯이 그냥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결점에서 태어난 창의성’ 벵자맹 쇼

 

벵자맹 쇼는 참고 자료를 전혀 보지 않고 생각한 것을 그리는 작가이다. 그의 성장기는 완벽주의자로 살던 시기와 결점을 받아들이고 결점과 함께 일하는 지금으로 나뉜다고 한다. 부모님은 시골 농사꾼 장남이 불확실한 예술을 한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으신 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말수가 적었지만 항상 아들을 믿고 있다는 걸 마음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 역시 아이들이 보호가 필요할 때 나서고 대개는 믿고 기다리려고 한다.

 

그의 스케치 노트는 학창시절 깜지같이 빽빽하게 선과 형태들이 채워져 있다. 마음에 드는 선을 찾기까지 시도하고 또 시도할 뿐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나타나는 선은 없으니.

 

‘깊은 심심함’ 에르베 튈레

 

스마트폰, 상업적 놀이공간으로 가득한 요즘을 사는 아이들은 심심할 겨를이 없는데 심심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은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했다. 저자가 창의력을 기르려면 더 무얼 해야 하냐고 묻는데 튈레는 오히려 뭔가를 하지 말라고 한다. 창작하는 데에는 “결핍과 심심함, 불확실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다르게 보기, 오래 보기’ 안 에르보

 

아이들 어릴 때 많이 읽었던 안 에르보라 너무 반가웠다. 특히 이 인터뷰가 좋았다. 책에 커피포트가 자주 등장하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냐고 묻자 이렇게 답한다.

 

전 자기만의 몸가짐을 가진 물건을 좋아합니다. 의자나 커피포트가 그래요. 220쪽

 

딱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여기에 텀블러나 책도 더해서.

 

“저는 책에 질문을 많이 넣습니다. 하지만 답은 절대 적지 않습니다. 인생의 본질이 그래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정답은 아무도 모른 채 나아갑니다. 우리를 발전하게 만드는 건 인생의 그 모호함입니다.”

 

안 에르보는 창의력이란 자신만의 답을 찾는 과정의 불편과 막막함을 견디는 데서 시작한다고 본다.

육아철학마저 신선했다. 아이를 내 삶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 놓으려 한다는 것. 아이 중심으로 가족의 삶이 짜이면 아이가 막강한 무게를 느끼게 되고 겁이 많아져 결국 뭐든 제대로 시도할 수 없게 된다는 걸 한국의 부모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삶의 주변에 놓는다는 건 아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과 아이의 삶을 분리하고 자신의 삶에 더 충실한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의 나. 명심하고 명심해야 할 말이다.

 

‘시간 사용법’ 이치카와 사토미

 

이치카와 사토미는 일본에서 정규 예술교육을 받지 않고 프랑스로 건너와 보모를 하며 그림책을 배우고 작품을 내놓고 있다. 아프리카와 개발도상국을 여행하면서 사진을 찍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스케치하며 여행하고 있다. 시간을 들여서 할 일이 세상에 많은데 그중 어느것에 시간을 더 많이 들일지 자신이 정하는 게 중요하다. 좋아하는 일을 시간을 들여 천천히 하라는 충고가 와닿는다. 전부터 난 뭐든 빨리 많이만 하려고 했다. 요즘 책읽기도 그런 편이다. 몇 권 안 되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자주 공들여 읽어야겠다.

 

‘자기 믿음’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유년기를 즐거움, 여행자, 관찰자로 설명한 작가는 완벽주의를 가진 아버지로부터 끈기와 투지를 배웠다.

 

“행복에 대해 말하는 창작물을 짓고 싶다면 우선 자신이 행복했던 느낌을 떠올려 그걸 전달해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창의력은 자기를 믿는 것입니다. 창의성이 최초로 태어나는 순간은 우리가 보고 느끼고 경험할 때입니다. 그 느낌과 생각, 충동, 자기 안의 목소리를 믿고 그리로 자신을 던지는 것. 저에겐 그게 창의성입니다. 자기 믿음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불가능해요.

303쪽

 

인터뷰 끝까지 하나하나 버릴 장이 없는 책이었다.

 

창의력이나 상상력이라고 하면 뭔가 어떤 특별한 환경에서 길러진다고 믿는다. 특히 한국의 획일적인 교육환경이며 문화가 어떻고 비판하며 한국은 이래서 안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인터뷰를 읽다보니 서구 작가들이라고 해서 크게 자유롭고 풍부한 환경에서 자란 것만은 아니다. 몇몇 작가는 부모가 믿고 지원해주었고 몇몇은 불우한 유년기를 보내면서도 예술과 내면의 힘으로 극복했다.

 

유년기나 부모가 어떻든 간에 작가들의 공통적 특질은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버틸 줄 알고 매일매일 꾸준히 작업을 하며 불확실한 가운데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자신을 믿는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아이를 키운다고는 하지만 부모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용기를 주고 믿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나를 믿고 내 삶에 여유를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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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어른일 리 없어 - 할머니 선생님이 알려 주는 어른들의 거짓말
시미즈 마사코 지음, 이주희 옮김 / 티티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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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어른일 리 없다고!

 

제목부터 도발적인 분홍 표지의 책에 부제는 할머니 선생님이 알려 주는 어른들의 거짓말이라니. 큰 기대 없이 들었는데 중간중간 정신 없이 서표를 붙이며 읽어나갔다. 독박육아니 똑게육아니 하는 육아서 대신에 부모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무엇보다 ‘나’를 길러줄 책이다.

 

01 귀여운 할머니 따위 되고 싶지 않아요

 

 

어른들에게 A 같은 아이는 얼마나 편한 존재일까요. 그런 아이들과 마주하는 어른의 지위는 언제나 안정되고 위협을 느낄 일이 없습니다. 질문 세례를 받는 일도 없고 스스로를 바꿀 필요도 없습니다. 어쩌면 권력자들은 자신의 칼과 지배력에 어떠한 해도 가하지 않는 것을 ‘귀엽다’고 하는 게 아닐까요. 18쪽

 

 

일본 전설에 나오는 모모타로를 그림 A는 귀여운 그림체로, B는 아기장수 스타일로 투박하게 표현한 것을 보고 학생들은 늘 귀여운 A쪽을 선호한다. 그런데 저자가 A와 B 중 누가 먼저 엄마 무릎에서 벗어나려 할까, 라는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그제야 ‘귀엽다’라는 말의 맹점을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귀여운 아이, 귀여운 소녀, 귀여운 여자, 귀여운 아내가 되어 자립할 기회를 쉽게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02 화를 내야만 할 때가 있어요

 

 

화의 밑바닥에는 자기 자신을 소중히 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 짜증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대신 희망 없는 인내가 있고, 포기가 있고, 무력감이 양쪽을 덮칩니다. 비굴함과 증오, 모멸과 오만이 우리를 갉아먹어 버립니다. 24쪽

 

 

‘화’는 교육현장에서는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다루어지고 보육현장에서는 교사의 중재로 ‘미안해’, ‘괜찮아’가 남발되고 있다. 자신이 무시당해도, 맞아도 상대에게 화를 드러내기보다 교사에게 이르고 중재받는다. 일상에서 건강하게 화를 낼 기회를 잃어버린 아이들은 커서 부당한 압력을 받아도 화를 낼 줄 모르고 짜증을 내거나 애먼 상대에게 분풀이를 한다. 저자는 엄마에게 등굣길에 화내는 여중생을 보고 ‘화내라, 화내라’ 몰래 응원할 정도이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전혀 납득하지 못하면서 감정의 앙금을 가득 안은 채 ‘미안해’. ‘괜찮아’ 이후 포옹을 강요당한다. 오카 켄 교수는 “싸움이야말로 상대의 생각을 배울” 기회라고 한다. 우리는 어쩌면 아이들이 감정을 처리할 기회를 쉽게 박탈하고 있는 건 아닐까.

 

03 혼자 조용히 있는 게 뭐가 나빠요?

 

요즘에는 말수가 적은 아이, 혼자 있는 아이는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뭔가 다가서서 도움을 주어야 할 아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일상을 떠들썩한 이벤트와 배움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도무지 아이가 혼자 있을 틈을 주지 않는다.

 

서두에서 저자는 “인사를 하지 않게 된 소녀가 있으니 성장이란 이렇게 완성되는 것”이라는 단가를 소개했다. 인사를 하지 않는(못하는) 아이를 이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어른이 있어 감동했다. 어른을 만나면 곧잘 쾌활하게 인사하던 꼬마도 사춘기가 되어 자의식 과잉으로 힘겨울 때도 있고 혼자가 편할 때가 많다. “적어도 등하교 시간.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 시간만큼은 자기 자신으로 있어주면” 좋겠다고 한다. 가만 보면 인사에 목숨 거는 직군 중 하나가 교사 집단인데 참 별난 선생님이셨다. 무리해서 친하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다가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04 자신감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자는 흔히 ‘자신감을 가져!’라고 할 때의 그 자신감의 정체가 궁금해 여러 사전까지 뒤져보다 결국 자신감의 근원은 자기 평가라는 점을 깨닫는다.

 

타인과 비교했을 때 조금이라도 뭔가가 낫다고 보이면 금세 자기 평가는 높아지고,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면 자신감은 순식간에 사그러지고 자기 평가는 낮아집니다. 그런 자신감 따위 가질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 것에 휘둘리다니 바보 같지 않나요? 69쪽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좋아해주라고 말한다. 자신을 좋아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아, 할 수 없지. 이런 나라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이 정도여도 충분하다. 그건 체념과는 다른 있는 그대로의 나로 충실히 살아가는 걸 말한다.

 

05 어둠과 슬픔이 있는 삶의 한가운데로

 

 

어둠이 있어야 비로소 빛이 있고, 슬픔이 있어야만 기쁨이 존재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둠도 슬픔도 처음부터 있어서는 안 되는 것 피해야만 하는 것으로 취급합니다. 이게 얼마나 큰 불행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고민하고 슬퍼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결심을 하고 한 발짝 내딛었을 때의 상쾌한 긴장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요. 74쪽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면 “원래는 밝은 아이라고” 편드는 척 말을 한다. 마치 어두운 아이라면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는 듯이. 잠깐 봤지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언제나 밝아 보였던 아이들 쪽이었다. 정말 무서운 아이들은 힘든 일을 겪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감정을 덮고 애써 밝은 척 하는 아이들이었다. 저자는 CM송을 쓸 때는 반음을 쓰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다. 윤형주의 CM같이 조그만 그림자나 망설임도 없는 밝음. 피아노 검은 건반을 전혀 쓰지 않는 상태. 그것이 올바른 심리상태일까?

 

06 규칙을 잘 지키는 어른이 어떤 세상을 만들었는지 보세요.

 

 

마음이 풍요롭다는 것은 단지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중략) 마음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은 천국을 보는 것과 동시에 지옥을 보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96쪽

 

07 정답을 말하기보다 좋은 질문을 하세요

 

 

질문은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만 하는 게 아닙니다. 해답에는 결국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질문을 통해 세상과 연결됩니다. 112쪽

 

 

저자는 지식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세상과 타인에 대한 관심을 확장하는 질문이 좋은 질문이라고 말한다.

 

 

08 그렇게까지 드러내도 괜찮아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생각이나 느낌까지 없을 리는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자주 겉으로 활발하게 표현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내면의 활동을 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126쪽

 

 

문학 시간에 저자는 학생들에게 감동을 받은 부분을 이야기하라고 재촉하곤 했는데 어느 날 별로 친분이 없는 학생이 일부러 나오더니 지금은 말하지 않겠지만 몇 년이 지나 이야기하러 가겠노라고 한다. 학생이 스스로 감동을 받은 바가 있고 내면이 변한다면 꼭 교사에게 확인받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외눈박이 고양이>의 네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지만, 겉으로 조용한 네드의 내면은 사실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저자는 또 카운슬링에서 범하는 잘못을 지적한다. 이른바 ‘털어놓기 놀이’와 같이 자신의 내면을 함부로 유출하고 속절없이 함부로 자신을 남에게 내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클라이언트’라는 말 자체가 예속자, 측근을 뜻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는 게 어딘지 지배당하는 느낌이 들어 상담이 두렵다고 한다.

 

09 그래 봐야 상처받는 건 너뿐이라는 거짓말

 

저자는 학생들에게 건방져보라든가 기지개를 펴라고 주문하는데 건방진 건 좋지만 시건방지게 되는 건 곤란하다고 한다. 말장난 같지만 오묘하다. 기죽지 말고 어른들에게 자기 의견을 솔직히 말해도 되지만 오만해지지 말라는 뜻이다.

 

 

"인생에서 진짜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말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작은 무엇인가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로즈마리 서트클리프 (추억의 푸른 언덕 저자)

 

 

10 누구나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요

 

저자는 가족이 위안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때 어떤 가정에서든 그런 일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가정이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다 해서 아이를 불쌍하게 보지 말라고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그렇게 약하지 않다! (물론 영혼을 파괴하는 학대가정의 경우를 얘기하는 건 아니다) 다만, 아무리 돌아가기 힘든 가정이어도 어느 한 순간이라도 따뜻함을 느꼈다면 희망은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라도 따뜻함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가정이라면 아동의 성장에 악영향을 끼칠 뿐이다.

 

 

11 당신의 세상은 그렇게 작지 않아요

 

작가는 존경하는 사람이 부모나 선생님인 학생은 좁은 세계에 갇힌 것이라고 한다. 아들이 청년기가 되어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느니 하면 자신은 어리석은 존재니 바짝 기쁘긴 하겠지만 아들이 한심하게 여겨질 거라고 한다. 얼마나 쿨한 엄마인가! 또 자신을 편하게 만드는 사람만 만나지 말고 불편하게 하는 존재들과 부딪혀야 성장한다고 조언한다.

 

12 심심할 때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

 

03번과도 통하는 이야기이다.

 

선생님이나 부모는 학생들을 혼자 내버려 두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과제를 부여한다. 그러나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고 그런 시간을 스스로 만드는 훈련 없이 어른이 되어서 요즘 아이들이 제대로 못 사는 건 아닐까?

 

또 요즘은 일상을 하찮게 생각하고,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정체와 동의어로 취급한다. 학교나 가정에서도 늘 특별한 체험을 준비하고 아이의 일상을 1년 내내 축제처럼 기획하려고 한다. 여기서 뜨끔했다. 내가 어려서 제한된 경험을 해서 용기가 없고 제한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 애들 어릴 때 여행도 많이 다니고 이런저런 기획된 행사에 많이 다녔다. 그래서 그런지 충분히 혼자 지낼 법한 초4, 초2인데도 주말이면 심심해, 오늘은 어디 안 가? 를 달고 산다.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배려 경쟁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는 말도 인상 깊다. 예를 들어 손님이 오셨는데 내가 미처 차를 준비하지 못했을 때, 나보다 먼저 하는 사람이 칭찬을 받는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멋진 사람들의 조용한 배려를 지켜보기로 한다고. 맞다, 정말.

 

이 멋진 할머니 선생님은 내가 먼저 스스로 바로 서야 비로소 타인과 연결될 수 있다고 반복해서 주장한다. 또한 스스로 서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K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데 반복되는 이야기가 많기는 하지만 교육을 할 때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를 던져준다. 특히 귀여움 받으려 하지 말라는 말은 나에게 하는 이야기. 아이들에게조차 귀여운 엄마가 되려고 한 적이 있다. 깊이 반성...

 

*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하고......무언가를 많이 해야 행복해진다고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사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그랬듯이 10대는 허공의 시절, 비우고 또 비워야 행복해진다. 꽉 차서 넘치는 잔이 되기보다 크게 비어 있어 어느 것이든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갈 수 있는 큰그릇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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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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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157쪽

 

부모님이 살아 계시지만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항상 내처질 때 고아라고 느낀다.

 

혈연지연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비빌 언덕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일정 부분 고아가 아닐까?

 

아니다. 이것조차 사치스러운 소리다. 정말로 '보육원'에서 나와 자립해야만 하는 아이들의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실로 눈물겨웠다. 같이 울어줄 이가 없는 아이들. 그래서 더 마음 아팠다.

 

 

그늘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11쪽

 

가열차게 남들이 하는 건 다 해보자고 세상밖으로 나선다. 학교에 진학하고 취업을 하고 돈을 모아 보금자리를 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런 걸 모두 평범한 삶이라 하지만 모두에게 허용된 삶은 아니다. 아등바등하는 동안 그늘은 깊어만 간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에서 '밝은'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밝아야 할 시절인데 마냥 그럴 수만 없는 청춘이 많다.

 

불과 몇십 년 전에는 사실 국민 대다수가 밝을 수 없는 '불친절한 노동'에 장시간 시달렸다. 작가의 아버지도  고물상, 메리야쓰 공장 노동자, 구청기능직 공무원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힘들게 살아왔다. 오죽하면 아들에게 대학가지 말라고 했을까. 대학 가서 졸업하고 취직해서 아이 낳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 불행의 끈을 자르라고, 출가를 하는 게 어떠냐고 하셨단다.

 

막 진짜 인생이 시작되려는 자식에게 너무 가혹한 말이라 할 수도 있다.

 

아니다. 이렇게 살아왔다면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한번은 미아리 극장에 <푸른 하늘 은하수>라고 최무룡 씨가 나오는 영화를 보러 갔어. 너 최무룡씨 알지? 몰라? 그 때 극장들은 로비에 벤처스ventures류의 경음악을 크게 틀어놓았거든. 아, 신나지. 그리고 대형 거울도 있었어. 그 때 어디 가정집에서 거울을 들이고 살았나? 극장이나 가야 거울이 있지. 극장 로비에 앉아 거울을 보는데 구석에 어떤 거지가 앉아 있더라고. 거지도 영화를 보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보니 그게 내 모습이었어. 그 때가 양복점 일하기 전에 창동으로 고물 주우러 다닐 때니까 행색이 말이 아니었지.(울먹이시다 끝내 오열. 겨우 그치고) 그 영화 줄거리가 꼭 내 이야기 같았어. 주인공이 고아인데 나랑 처지가 비슷하더라고. 영화 끝나고도 집에 갈 때까지 울었어. 당시 홀아비로 살던 네 할아버지가 나보고 왜 우냐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푸른 하늘 은하수> 보고 오는 길이라고 하니, 할아버지는 먼저 그 영화를 봤나봐, 그러더니 나더러 더 울라고......(다시 오열)" 164쪽

 

아버지는 자식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울고 아들은

 

"그리고 나중에 내가 고아가 되면 <푸른 하늘 은하수>도 구해봐야지. 그때는 내가 아버지처럼 엉엉 울게. 그래. 끊어요. 그말 울고, 아버지" 

 

라고 한다. 아버지의 말은 절절한 한편의 시 같다. 시인과 아버지는 실로 대한민국에서 드문 부자관계 아닌가. 맘껏 울고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이라니.

 

시인은 아버지 뻘인 문인들과도 친분이 있는 편이라 자주 술자리에 동석한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한 문장 정도의 말을 기억하려 애쓰는 버릇이 있다. “뜨거운 물 좀 떠와라”는 외할아버지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고 “그때 만났던 청요릿집에서 곧 보세”는 평소 좋아하던 원로 소설가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죄송스럽게도 두 분의 임종을 보지 못했으므로 이 말들은 두 분이 내게 남긴 유언이 되었다. 18쪽 (중략)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19쪽

 

 

70-80대 어르신들을 만나다 보면 일상적인 한 마디 대화가 그대로 유언이 되어버린다. 우리 외할머니의 경우 '목마르다'였나. 그것도 남에게 전해들었다. 시아버님이 내게 남기신 유언은 정말로 유언다웠다.

 

"너는 말이 없지만 그래도 믿을 만해"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젊다고 해도, 친구라 해도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어 마지막으로 서로 주고받은 말이 유언이 된 경우도 많다. 한 친구는 내게 "아이 다 키우면 그래도 그때는 볼 수 있겠지'라고 했다. 아이가 아직 다 크지 않아서 10년이 지나도록 못 보고 있다. 한때는 애인보다 소중했던 친구였는데. 가끔 그애 남편 블로그를 들여다보다 그마저도 열없어 관두었다. 잘 지내고 있으면 된 거지 꼭 만나야 한다는 생각도 이제 들지 않는다.

 

*

시인은 서울 태생인데 이게 참 시인에게는 득이 될 게 없다. 그저 군대에 갔을 때 '서울 깍쟁이'라는 이미지를 심을 정도이다. 나도 유년을 서울 언저리에 보냈고 별 의미는 없다. 그냥 여의도에서 자전거 타고 중고등 시기에 시험이 끝나면 명동에 가고 그 정도이지 수도 서울에 살아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문화적인 것을 맘껏 누린 것도 아니었다.

 

작가, 시인이라면 순천, 보성, 통영, 남해, 강릉 출생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내 생각과도 비슷하다. 시인은 서울 태생의 한계를 지우려 남도로 봄마중도 가고 여러 곳을 여행다녔다. 나도 5년 전 광주에 온 이후로 남도의 여러 곳을 기회가 날 때마다 다녀보았다. 도시에서 벗어나 한 두시간만 가면 경치 좋고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남도다. 

 

해남에서 온 편지

 

배추는 먼저 올려보냈어.

겨울 지나면 너 한번 내려와라.

내가 줄 것은 없고

만나면 한번 안아줄게. 69쪽 

 

봄이 오려고 하면 정말 해남에 가게 된다. 아이들은 두꺼운 겉옷을 입고 나섰다 대흥사 경내로 들어서 달음박질치며 옷을 벗는다.

 

올해 초에 통영 거제에도 가보았다. 알쓸신잡으로 더 유명해지기 전에도 통영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도다리쑥국'을 먹었다. 비린 걸 즐기지 않는 나도 한그릇 잘 비웠고 어쩐지 어른이 된듯한 느낌도 들었다.

 

*

시인이 시를 쓰기 위해 여기저기 다니려면(아니 한곳에 붙박혀 생활하기만 해도) 당연히 돈이 필요할 것이다. 전업 시인은 그래서 힘들고 시인도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 따르면 문인들이 창작을 통해 벌어들이는 평균 연봉은 214만원이라 한다. 월급이 아닌 연봉이 214만원.

 

"사는 게 낯설지? 또 힘들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야.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삶이 나를 가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 다그치는 일은 잘 하지 않게 돼."  63쪽

 

밥벌이와 꿈이 일치하지 않는 신산한 삶을 오래 살아와 그런지 시인은 빨리 늙어버렸고 이런 선배 문인의 이야기에 위안받나보다. 

 

시인의 시는 사실 오래 전에 유명한 드라마에서 제목만 보았고 산문도 처음이다. 그런데 어느 장이 시이고 어디가 산문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이고 자꾸 돌아가서 다시 읽고 싶은 장이 생긴다. 경험의 장이 같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서울 변두리에서 유년을 난 사람들의 정서라고나 할까.

 

시인이 남도로 여행다니며 쓴 시와 글이 따스해서 좋다. 산문집도 잘 되고(이미 잘 되셨지만) 앞으로 시집들도 잘 읽혀서 오래오래 쓰셨으면 좋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중략)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늦은 답서를 할 것이다. 우리의 편지가 길게 이어질 것이다.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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