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근에 읽고 있는 책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신경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위치'에 맞게 행동하라는 것.
부모로부터 합당한 애정을 받지 못한 사람이 애정을 충분히 받은 사람과 같은 상태로 출발하려고 지나치게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
육체적인 한계와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심리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론이나 사례에 얽매이지 않고 편안한 어조로 자신의 본연의 모습, 자신의 위치를 지키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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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올해에는 진득하게 책을 읽지 못했다. 그렇다고 크게 후회되지는 않는다.
아이들 덕분에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나 웃기도 하고 애태우기도 하면서 인간 관계 맺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이 빠진 주말에는
'역시 무리야.' 나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하다가도
아이들이 친구들을 원할 때 다시 불려나간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인간관계 DNA 같은 것도 분명히 있겠지.
2호 친구를 보면 어떤 유형의 아이도 척척 사귀는데 2호는 한동안 그 친구만 생각해서 그 아이가 다른 애랑 놀면 유독 힘들어했다.
난 엄마가 되서는 용기를 주지는 못하고 같이 속상해할 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다행히 요새는 2호가 다른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고작 여덟 살에 왕따가 되었던 기억이라든가 인기에 대한 갈망을 버리진 못하고 있다.
10대가 된 1호는 역시 2호랑 비슷하게 친구가 한 명인데 반에서는 두루 잘 논다고 하니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제는 친구가 한 명도 없는 나.
역시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라고 쓰고 '않으려고 노력한다'로 이해)
친구가 없는 것을 인정하고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면 된다.
'친구'에 목매고 애정을 갈구하고 그래도 이 사람은 '친구'이지 않을까 하고 번민하기보다는
동네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소박한 이웃들과 원만하게 지내면 될 듯하다.
꿈에서 전에 친구였던 이들을 만나면 반갑다, 그뿐이다.
다시 시작할 연결 고리도 없다.
<사는 게 뭐라고>는 작년에 이런저런 드라마에 한참 버닝하면서 함께 읽은 책이다. 내가 뒤늦게 왜 그토록 다양한 드라마에 빠졌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시크한 독거작가님은 편찮으시고 생의 의무를 다한 시점에서 한국 드라마에 빠져 몸은 쓰지 않고 마음만 쓰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매일 알뜰살뜰 보살펴야 할 아이들이 있는데 '화사함'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나도 역시 작가님처럼 아팠으니까.
드라마 세계에서는 초라한 여주라 해도 늘 변함없는 애정으로 자신을 응원하는 부모가 있고 내 상황이 전과 달리 눈에 띄게 좋아져도 시기하지 않는 진정한 친구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황이 아무리 나빠져도 여주를 사랑해주는 사소한 결함이 있는 멋진 '남주'가 있다.
"스토리 전개는 문제되지 않는다. 오로지 정밖에 없다. 연인 사이의 깊은 사랑, 가족 간의 두터운 애정, 친구들끼리의 희생정신, 정이란 정을 있는 대로 다 쓴다." <사는 게 뭐라고, 136쪽>
아, 좋은 삶이었어.
잠은 죽어서 자는 거라고 했든가.
"한류 열풍은 허구의 화사함에 의해 일어났다. 나도 빠져들었다. 아아, 즐거운 1년이었다. 1년 내내 왼쪽을 보고 침대에 드러누워 욘사마와 이병헌, 류시원에게 화사한 마음을 맡겼더니 1년이 지나자 턱이 틀어졌다." <사는 게 뭐라고, 224쪽>
ㅎ 삶의 내공이 있는 노작가도 이런 곤란을 겪고 나서야 살짝 벗어날 수 있었다.
나도 언젠가 벗어날 수 있겠지.
아직은 아니고.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은 1호랑 놀숲에 갔다가 읽은 책이다.
아이 없는 부부의 담백한 삶을 보여준다. 소소한 다툼이 있지만 갈등으로 발전되지 않는 것은 역시 아이들 문제까지 얽히지 않아서겠지. 그리고 기적을 믿기보다 순간에 충실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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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서재엔 글을 안 섰지만 개미지옥인 알라딘 사은품에 빠져 몇 년치 책을 다 사버린 듯하다.
도라에몽 시리즈에, 에코백에, 물병에, 무민스툴함, 열쇠고리, 냄비받침....
역시 굿즈를 그냥 사는 게 낫겠다.
시작할 때 바보같은 글이 될 거라는 거 예상은 했는데 역시 더 심각하네.
그래도 가끔 먼지는 털고 이웃들과 만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