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에 페이스북 계정 있을 때 아는 분이 '쓰레기집' 청소하는 분의 블로그를 링크해서 보여주신 적이 있다. '쓰레기집'이란 정말 호더들처럼 쓰레기를 쌓아두고 사는 집을 말한다. 그런 집을 청소하는데 큰 보람을 느끼고 남는 시간에는 키티 굿즈로 자신의 집을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살았던 분인데 청소하고 오는 집과 구성원에 애정을 갖고 포스팅하는 게 인상적이어서 가끔 보고 오곤 했다.

 

다시 찾으려니 못 찾겠다. 어디 가셨을까.

 

이분이야말로 영화 속의 '미소'처럼 살아가는 분이었는데.

 

원래는 사무직을 했다고 하는데 몸을 써서 뭔가를 변화시키는 게 좋아 청소업을 시작하셨고 워낙 잘하셔서 예약도 많았다.

 

언제나 다감한 말투로 그냥 정리가 잘 안 되는 보통의 집보다는 버리고 닦을 것이 많은 '진짜 쓰레기집'만을 치우고 싶다고 하셨다. 정리가 안 되는 집말고 거의 뉴스나 다큐에 나올 수준의 집을 집주인과 상의해 함께 치우고 정돈하며 보람을 느낀다고.

 

(내용 유출 주의)

 

과거 밴드를 했던 '미소'(이솜)는 담배, 위스키, 남자친구만 있으면 행복하다. 그러나 이 모두를 누리려면 최소한의 비용을 벌어야 한다. 미소가 잘하는 건 청소와 요리여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일이 끝나면 좋아하는 바에 들러 위스키를 한 잔 마시고 담배를 피는 게 낙이다.

 

 

 

 

때는 2014년

아마도 말많은 그 정권 시기에 담배 가격이 대폭 인상되었을 것이다.

 

보통 이럴 때 사람들은 담배를 끊지만 미소는 금연 대신 월세집을 나와 최소한의 짐만 꾸리고는 밴드를 같이하던 시절 친구들 집을 전전한다.

 

집이 없으니 거지라고 하지만 미소는 "나는 여행하는 중일 뿐"이라고 말한다. 남자친구 한솔(안재홍)은 숙식이 해결되는 공장기숙사에서 살고 둘은 데이트를 위해 영화표를 받으려고 헌혈을 하기도 한다. 

 

밴드시절 친구들은 대개 그 시절과 달리 생활에 찌들어 있다. 

 

맨 먼저 미소가 찾은 문영은 수액을 스스로 놓을 정도로 피로에 쩌들어 회사를 다니고 있다. 문영은 예민해서 혼자 지내야 한다며 미소를 거부한다.

 

다음에 찾아간 친구 현정이는 키보드를 쳤던 밝은 친구. 그러나 이제는 오래된 변두리 주택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백수남편과 살고 있다. 미소는 치워도 치워도 표도 안 나는 친구의 낡은 살림을 정돈해주고 밑반찬도 만들어주고 네 밥은 잘 챙겨먹으라고 쪽지를 남기고 나온다.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는데 찌들대로 찌든 아줌마 친구는 서럽게 울더니 입을 벌리고 잔다. 진짜 변두리 빌라에 있을 법한 아줌마였다. 생활연기 정말 좋았다. 결혼하고 나서 나도 울 때면 저렇게 울지는 않았는지. 그런데 정말 머쓱한 게 아이 재우며 울다가 그러고 그냥 피곤해서 입 벌리고 잔다는 것. 

 

다음날 아침에 나오면 펼쳐지는 집안의 풍경.

정돈되지 않은 채 반복되는 어제와 오늘이 똑 닮았다.

 

신혼집 분위기 물씬 풍기는 남자후배 대용이네 집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쓰레기집이 되어 있다. 대용이는 퇴근하고 와서는 술만 마시고 은둔한다. 아내와 신혼초부터 각자의 길을 가기로 되어 있는데 그럼에도 집대출은 남아 20년간 회사를 다니며 꼬박 100만원씩 은행에 내야 한다. 게다가 더 기막힌 건 월급은 고작 190이고 아내도 없고.

 

대용은 이런 집이 꼭 감옥같다며 운다. 다음날 미소는 쓰레기집을 깨끗이 치워주고 집밥을 차려 대용이를 위로한다.

 

한솔이는 집이 없다지만 성별이 남자인 후배네에 간 걸 불편하게 여긴다. 그래도 미소는 갈 데가 없어 '록이'라는 남자 선배네도 방문하는데 연로한 록이부모님은 미소를 며느리라도 되는듯이 아껴주고 살갑게 대한다. '록이'마저 부모님을 위해 미소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자 미소는 정색을 하고 거절한다. '록이'네 집에서 탈출하는 과정이 재미있게 그려진다.

 

미소가 묵어본 곳 중에서 가장 넓고 비싼 집은 기타를 쳤던 정미네집이었다. 아이를 어르면서 수행하려면 아이를 낳아보라고 시니컬하게 말하는 정미는 시댁은 잘살지만 남편은 그녀를 존중해주지 않는다. 정미는 집도 없는데 술, 담배나 하는 미소가 염치가 없다며 모욕하고 미소는 그 집을 나온다.

 

미소가 방문할 친구들 집을 찾지 못해 다른 셋집을 구하러 다니는 과정이 참으로 분노를 부른다. 어떻게 저런 환경의 집을 저렇게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세를 내고 살아야 하는 건지.

 

미소가 가사도우미로 일했던 집의 젊은 여자는 집을 유지하려고 자신의 청춘을 뭇 남성들에게 팔고 있었다. 아버지도 모르는 아이를 가져 낙담한 그녀를 미소는 백숙을 해서 잘 먹인다.

 

*

술과 담배를 즐기고 남에게 베풀기 좋아하고 잘 웃는 사람이 남자라면 천상병 시인급의 한량으로 사람 좋아 보일 뿐이다.

 

여자라면 즉, 미소같이 행동한다면 불편하게 보는 시선이 뒤통수에 꽂힌다. 대다수 사람들은 선배 정미와 같은 시선으로 그 정도 생활수준이면 술과 담배를 끊으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미소는 노숙인이나 광녀가 아니라 염치를 알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다.  

 

남의 집을 방문할 때면 계란 한 판이라도 꼭 사가고 신세를 지고 나올 때면 집을 치워주거나 요리를 해두고 나와서 꼭 그 빚을 갚는다. 집은 없지만 위스키, 담배를 즐기고 책을 읽고 취향만은 분명하다.

 

 

 

 

영화 속에서 눈부시게 빛났던 미소와 밴드부 친구들의 젊은날들 

밤새 웃고 떠들고 마시고 포커를 쳤던 날들은 너무나 짧고 이후의 생활은 길기만 하다.

 

힘겹게 맛집 데이트를 하려고 마음먹은 날 재료가 소진되어 실패로 돌아가고 한솔은 학자금을 갚고 미소와 살 집을 구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다고 선언한다.

 

미소와 한솔이 시리도록 푸른 새벽에 이별하는 모습이 마음 아팠다.

 

 

**

 

록이 아버지 장례식장에서야 모인 밴드부 친구들은 저마다 미소를 만났던 얘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지만 돈이 없어 핸드폰이 끊긴 것으로 추정되는 미소를 다시 만날 길은 없다.

 

미소는  달팽이같이 늘 자신의 집을 짊어지고 다니며  공터에 텐트를 치고 산다.

 

행복을 주지 않는 집을 포기하고 눈앞의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 하루하루 성격이 명확한 일을 하는 그녀를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앞으로도 분명한 취향을 가지고 확고하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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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복수의 밤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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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나 등에 문신을 새기고 끝없이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사내를 보면 누구나 한심한 인생이라고 혀를 찰 것이다.

 

이름보다 1752번같이 수형번호로 불리는 게 편한 사내.

 

교도관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출소하는 그에게 하루라도 빨리 안정을 찾으라고 한다. 

 

"교도관님 말씀처럼 하루라도 빨리 안정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1쪽

 

무심히 읽었던 이 대사가 전체를 다 읽고 나니 너무나 마음 아픈 결심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

(내용 유출 주의)

 

쉰아홉인 가타기리라는 재소자는 스물일곱 살에 교도소에 처음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끝없이 범죄를 일으켜 사회와 격리되어 간다.  

 

아내와 딸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가타기리는 사소한 시비에 휘말려 조직폭력배에게 상해를 입힌 것으로 구금되어 결국 가정을 잃는다. 그 후 가타기리는 얼굴에 커다란 문신을 새기고 기이한 범죄를 반복하며 전국의 교도소를 떠돌다 잠시 출소한 사이 공장에서 팔을 잃고 그러고도 범죄를 계속해 수감된다.

 

자신의 부인을 구하다 가타기리가 범죄를 저질렀기에 부채감을 지니고 있는 기쿠치, 한심한 아버지를 한순간 외면해 허망하게 보낸 후 가타기리에게 이끌렸던 변호사 나카무라, 가정이 와해되고 외삼촌을 아버지라 믿고 성장한 히카리, 가타기리의 삶을 파괴시킨 가지와라에게 인생을 저당잡힌 아야코,  자신의 범죄를 뒤집어쓰고 가타기리가 교도소에 간 덕에 아들의 임종을 지킨 아라키, 이렇게 다섯 사람의 시선으로 가타기리가 왜 그렇게 범죄를 반복하여 살 수밖에 없었는지 밝혀간다.

 

인생을 걸고 한 여인을 사랑했고 결국 그 여인을 죽게 한 남자를 찾아 전국의 교도소를 떠돌다 자신의 복수를 완성하고야 안정을 찾은 가타기리가 너무나 불쌍하고 한스러워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도 한숨이 나왔다.

 

굉장히 90년대 홍콩 누아르 풍의 이야기이고 신파 그 자체다.

그런데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부인과 딸을 위한다는 그 자체에 매료되었나보다.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자신의 생을 파괴해야만 완성되는 사랑이라니 처절하다.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의 절망감은 더욱 크지. 하지만 그런 존재가 마음속에라도 있으면 불행한 삶을 버텨나갈 힘이 되기도 해." 94쪽

 

다섯 사람이 가타기리를 대하는 시선과 그들의 내면, 표면상으로는 중범죄자이지만 그런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가타기리의 상황이 잘 그려진다.  

 

특별한 반전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반전이 있는 작품이다.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건 이런 풍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휴가철이나 후텁지근한 여름밤에 볶음우동에 맥주를 마시며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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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읽은 책들이다. 전담육아의 끝은 강제 독서이다.

그래도 키즈카페나 놀이터 무한순환에 비하면 도서관은 천국이다.

아 진짜, 다 키웠다. 감격

 

가족을 범죄 피해로 잃은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런 주제를 읽다보면 뭔가 감정이 되살아나 힘들어서 피했었다.

 

그런데 모임에서 자기 취향과 상관없이 돌아가며 지정하면 읽어오기로 해서 사기도 하고 빌리기도 한 책들이다.

 

토요일에 소쇄원에 다녀온 직후 딸아이가 어린이실에 있는 동안 <기다렸던 복수의 밤>을 읽기 시작했다.

 

굉장히 90년대 *홍콩 누아르 분위기도 있고 신파 그 자체인데 빨려들어가서 읽었고 집에 와서 씻고 맥주를 마시며 나머지를 다 봤다.

 

아마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부인과 딸을 위한다는 그 자체에 매료되었나보다.

 

휴 그래도 이런 상황이 만약 내게 닥친다면 그래도 남편은 그냥 살던 대로 살면 좋겠다.

으 인생을 건 복수라니......그리고 야쿠자와 그 주변 참 무섭다.

 

특별한 반전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반전이 있는 작품이다.

휴가철이나 아무튼 여름밤에 볶음우동에 맥주를 마시며 읽기 좋은 책이다.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의 절망감은 더욱 크지. 하지만 그런 존재가 마음속에라도 있으면 불행한 삶을 버텨나갈 힘이 되기도 해." 94쪽

 

 

 

<침묵을 삼킨 소년>도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신파고 역시 단번에 읽었다.

 

부모라면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되는 것을 익숙하게 여기고 '가해자'가 되었을 때의 상황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는다.

 

<침묵을 삼킨 소년>은 내 아이가 살인을 저질렀을 때 과연 부모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역시 내용 유출 주의)

 

요시나가는 이혼하고 나서 사귄 직장동료와 재혼할 단꿈에 부풀어 있을 때 떨어져 지낸 아들 쓰바사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형사사건 피의자가 된 아들은 일체의 대화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 판결에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높아진다. 아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서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이후의 무거운 십자가를 감당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역시나 특별한 반전이 없다면 없고 있다면 또 있는 그런 작품이다.

 

요시나가는 처음에 아들과 떨어져 지낸 자신은 큰 책임이 없다고 자신을 변호하다가 말미에 가서는 아들의 인생을 같이 헤쳐가려고 변모하는 성장을 보인다.

 

요시나가의 아버지가 한 말

 

"행동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식이 왜 그랬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게 부모야." 279쪽

 

돌이킬 수도 없고 용서받을 수도 없는 중범죄를 저지른 아들이지만 아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피해자 가족에게 진정으로 사과하려고 하는 부자의 모습이 눈물겹다.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답게 역시 소년범죄와 속죄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 인물의 심리 묘사에도 공들인 작품이다.

 

<눈의 아이>는 미미 여사의 명성에 비하면 소소한 작품이었다. 역시 장편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눈의 아이>는 사건들보다는 영적인 존재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실 미미 여사 작품을 거의 본 게 없다. 오래 전에 <이유>를 잘 읽었는데 이제는 왜 좋았는지도 그 이유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추리 소설 읽는 법>을 빌려왔고 <삼귀>도 보고 싶구나.

 

 

 

 

 

 

 

 

 

 

 

 

 

 

 

 

우리동네에 있는 추리소설을 좋아하신다는 독립책방 주인장의 서가에도 가보고 싶다.  

 

이런 주제의 책들을 오래 봤더니 가뜩이나 유리 멘탈인데 쓸데없는 불안이 더 깊어졌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항상 발생 시 대처법을 교육받고 있는 그런 일들(유괴, 납치, 따돌림 등)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지금은 아이들이 공부방에서 자고 있는 걸 보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역시나 멘탈이 약해서 공포물도 거의 못보는 ( 부산행, 곤지암 다 안 봄) 나는 장르 문학도 가끔만 읽어주어야겠다.

 

그래도 누군가 선정해주는 묻지마 읽기 방식도 참 좋은듯하다.

 

 

 

*누아르에서 차용한 것으로 알려진 홍콩 누아르는 국내 일부 영화 평론가들이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단어로 국제 영화계에서는 공인받지 못하고 있는 용어라고 한다. 그리고 범죄를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야쿠마루 가쿠 작품 전체는 음울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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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방학 동안 아들이 배드민턴에 갑자기 빠져서 어느 날은 하루에 네 시간도 같이 쳐주다가 몸살 감기에 걸렸다. 아들말고 나만. 무려 4일이나 쉬어서 송정역 인생가게 서점과 조선대 장미원도 다녀오고 아이들 친구네도 가서 밤늦게 같이 개콘도 시청해주고 하니 좀 힘들었나보다.

 

다행히 아들, 딸은 멀쩡하다. 아이들의 체력이란 경이롭다.

 

물론 우리가 치는 건 바보 배드민턴이다.

 

코트도, 룰도 없고 그저 공터에서 선수들이 하듯이 끈질기게 랠리를  이어가야 만족한다.

 

제대로 배우게 해주고 싶어서 근처 클럽을 찾아보는 중인데 아직은 엄마랑 친구들이랑 치고 싶다고 한다. 공원에 코트는 있지만 그늘이 없어서 그늘 찾아 치다가 나무에 셔틀콕이 올라가면 그거 빼내느라 쉬는 재미도 있고 하니. 

 

책과 유튜브로 버티다가 가서 선생님께 배우고 싶다면 보내야겠다.

 

배수아 작가님같이 독학자 기질이 있는 것일까. 

 

독일 맛집에 대한 답변이 좋았다. 빵 굽는 법을 배우지 않고 혼자 여러 번 시도하시다가 입맞에 맞는 빵을 찾아내셨다는 것과 어디 가서 배우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 작가님답다.

 

 

 

 

 

 

 

 

 

 

 

 

 

 

 

 

매일 누워서 책을 읽어서 누워서 읽지 말라고 하면 읽던 책을 밀어두고 안 본다고 반항해 혼내곤 했다. 아들에게 눈 건강과 자세를 위해 좌식생활을 하라고 하면 자신은 와식 생활이 좋다나.

아예 호를 '와식'이라 짓겠다 선언하기도 했다. 이제 많이 배운 분이라 말로는 못 이긴다.

 

나도 어떤 책은 좀 누워서 읽기도 하고 해서 만화는 누워서 보기도 하라고 그냥 두었다.

 

연휴에 아이들이 읽은 만화

 

 

 

 

 

 

 

 

 

 

 

 

 

 

연휴에 드디어 유유 굿즈가 왔다.

 

 

 

북 슬리브는 딱 유유 책 사이즈일 줄 알았는데 좀 큰 책들도 잘 들어가고 꽤 두께도 있어 마음에 든다.

 

 

 

들고 다니며 읽기 편해 모으는 민음사 쏜살문고도 잘 들어간다.

 

 

 

그간 읽은 아니지 모은 ^^ 

유유의 책들

 

 

잘 읽었던 유유의 책들

다른 책들도 차근차근 읽어보고 싶다.

 

이 지역 독립서점에 가면 어디에든 유유 코너가 있을 정도이다.

그래도 아직은 읽고 쓰는 사람들이 간간이 있나보다.

 

 

 

 

 

 

 

 

 

 

 

 

 

 

 

 

 

 

 

 

 

 

 

 

 

 

 

 

 

 

 

 

 

 

 

 

 

 

 

 

 

 

 

 

 

 

운동이든 독서든 무리는 하지 말아야지.

독학이든 함께 배우는 것이든 가리지 말고 해야지.

 

오늘은 배드민턴 라켓 줄 끊어진 걸 고치고

독서모임 사람들 만나 점심이나 먹고 저녁은 진짜 간단히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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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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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나오게 된 배경을 보다 직접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삶과 철학에 대해 알 수 있는데 소설과 삶이 일치하는듯해서 더 마음 아팠다.

 

잠시 살았던 강원도 한 면 소재지에서도, 지금 살고 있는 대도시의 공단 지역에서도 결혼 이민여성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속해 있던 공동체의 언어와 문화를 잃고 '문맹'이 되어 낯선 곳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며 살아낸다. 자신을 배척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어떻게든 듣고 읽고 말하고 쓰려고 한다.

 

나는 5시 반에 일어난다. 아기를 먹이고 옷을 입히고, 나 역시 옷을 입고 공장까지 나를 데려다주는 6시 반 버스를 타러 간다.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공장에 들어간다. 공장에서는 저녁 5시에 나온다. 나는 어린이집에서 딸아이를 찾고, 버스를 다시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마을의 작은 가게에서 장을 보고, 불을 피우고(아파트에는 중앙난방이 들어오지 않는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를 재우고, 설거지를 하고, 글을 조금 쓰고, 나 역시 잠을 잔다. 87-88쪽

 

힘겹고 치열했던 시기를 담담하게 서술해서 더 슬펐다. 작가의 또다른 작품 <어제>의 토비아스를 통해서도 이 시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말하거나 쓸 때에는 엄청난 제약이 따른다. 끝없이 문법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식어나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보이는 동사나 형용사를 적절하게 구사하는 것은 사치이다.

 

내가 프랑스어로 말한 지는 30년도 더 되었고, 글을 쓴 지는 20년도 더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언어를 알지 못한다. 나는 프랑스어로 말할 때 실수를 하고, 사전들의 도움을 빈번히 받아야만 프랑스어로 글을 쓸 수 있다. 52-53쪽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112쪽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113쪽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는 이런 상황에서 완성되었다. 또한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글을 써야 하는 숙명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한 것은 물론 충분한 성찰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전쟁의 경험과 이방인으로서의 절절한 외로움이 언제나 장황하지 않게 있는 그대로 표현된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 103쪽

 

아이와 함께 외국어를 배우고 장시간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썼다. 네살에 이미 글자를 배워 닥치는 대로 읽었고 어떤 언어로 쓰였든 간에 문장이 일으키는 감각에 매료된 사람이라 가능했을 것이다.

 

작가가 적은 문장들이 나에게 환기시키는 감각, 나는 그것에 일찌감치 매료되었다. 문장은 작가의 것이었지만 감각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으니까. 조용한 도서실의 한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활자들은 일렁이는 물결처럼 내 안을 흔들어놓았고 때로는 파도처럼 밀려와 나의 조그만 세계를 여지없이 부수었다.    116쪽

 

 

짧은 분량이고 그동안 그녀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지만 읽고 나면 자꾸 질문을 하게 된다.

 

모국어 외에는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없지만 익히 알고 있는 그 모국어마저 제대로 쓰고 있는가, 하는 고민도 된다.

 

뜻도 모르고 장황하게 남들이 쓰는 상황에 의지해 쓰거나 시류에 편승하는 오염된 언어를 쓰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 염려가 든다.

 

사전에서 단어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상황에 맞는 표현을 고르고 또 골라가며 정갈하고 단순하게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삶이 곧 쓰기인 작가를 만나면 뭔가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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