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번역된 체호프(Chekhov)의 단편소설 중에 제목은 다르지만, 내용이 같은 것이 있다. 그중 한 편이 우수(憂愁) 또는 애수(哀愁)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1886년에 발표된 이 작품의 러시아어 원제는 Тоска. 우울과 애수를 뜻한다.

    

 

 

 

 

 

 

 

 

 

 

 

 

 

 

 

 

    

*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문예출판사, 2006)

*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9)

    

 

 

     

Тоска를 수록한 체호프 단편 선집으로는 체호프 단편선(문예출판사)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등이 있다. 이 두 권에 수록된 Тоска의 작품명은 다르다. 체호프 단편선에 표기된 작품명은 우수이며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에 표기된 작품명은 애수. 이 글에서는 Тоска의 국내 작품명을 애수로 쓰겠다.

    

 

 

 

 

 

 

 

 

 

 

 

 

 

 

 

* 스티븐 킹 미저리(황금가지, 2004)

    

 

 

애수의 영문판 제목은 ‘Misery’. 이 단어는 1990년에 나온 스티븐 킹(Stephen King) 원작의 동명 영화 제목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misery’정신과 육체에 부담을 주는 극심한 고통을 의미한다. 애수의 영문판 제목은 슬픔, 근심, 우울을 뜻하는 러시아어 원제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소설의 줄거리를 보게 되면 고통이라는 제목이 어울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마부 요나 뽀따뽀프(‘열린책들판에는 이오나 뽀따뽀프로 되어 있다)는 아들의 죽음에 깊은 실의에 빠진다. 그는 죽은 아들이 계속 생각나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요나는 여러 명의 손님을 태워 그들이 원하는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그는 마차에 타는 손님들에게 자신의 슬픔을 하소연한다. 그러나 손님들은 요나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

 

일을 마친 요나는 동료 마부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향한다. 그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젊은 마부에게 아들이 죽은 사실을 말하려고 한다. 하지만 젊은 마부는 이내 잠들고 만다. 온종일 마음이 괴로운 요나는 아무나 붙잡고 아들의 죽음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다. 결국 그는 마구간에 있는 자신의 말()에 다가간다. 그리고 말에게 귀리를 주면서 사람들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 네게 새끼 말이 있고, 넌 그 새끼 말의 엄마라고 하자…‥. 그런데 갑자기 새끼 말이 어딘지 먼 곳으로 가버렸단 말이야…‥. 그런데도 슬프지 않니?”

 

(문예출판사, 247)

 

 

애수는 요나가 말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끝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담담하다.

 

 

 요나는 흥분한 어조로 자초지종을 말에게 이야기한다.

 

(문예출판사, 247)

 

 

애수는 단순한 줄거리로 이루어져 있지만, 반전을 이용한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의 슬픈 감정을 극대화하고 있다. 요나는 아들의 죽음에 슬퍼할 뿐만 아니라 슬픔에 빠진 자신의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해서 고통스러워한다. 슬픔을 마음속에 묻으면서 살아가는 것은 정말 괴롭고 힘든 일이다.

 

슬픈 내용의 단편소설을 소개하는 글에 어울리지 않은 내용이겠지만, 그래도 문제 있는 번역에 대해서 언급하겠다. 내가 이 글에서 맨 처음 인용한 우수의 번역문(문예출판사, 274)은 고칠 필요가 있다. 우수』의 번역가새끼 말이 어딘지 먼 곳으로 가버렸다면이라고  썼으며 애수(열린책들)의 번역가는 새끼 말이 죽었다면이라고 썼다.

 

 

만일 말이다, 너에게 새끼가, 네가 낳은 새끼가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말이다, 그 새끼가 죽었다면 말이다‥… 얼마나 괴롭겠니?

 

(열린책들, 31)

 

 

어딘지 먼 곳으로 간다는 표현은 생이별을 의미한다. 인간을 위한 가축또는 상품이 되어야 하는 망아지에게는 어미 말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지 않다. 인간에 의해서 강제로 생이별을 해야 한다.

 

한편 망자가 사는 세계를 먼 곳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말할 때 먼 곳으로 갔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예출판사 번역문은 어미 말과 망아지의 생이별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망아지와 사별한 어미 말의 상황을 뜻하는 것인지 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이 번역문을 중의적 표현으로 볼 수 없다. 영어로 번역된 애수에서는 망아지의 죽음을 뜻하는 문장(다음에 나올 인용문에 밑줄이 있는 문장)이 나와 있다.

 

 

 “Now, suppose you had a little colt, and you were own mother to that little colt‥…. And all at once that same little colt went and died‥…. You’d be sorry, wouldn’t you?‥….”

 

 

독자들에게 혼동을 주지 않으려면 망아지의 죽음을 가정하는 문장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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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1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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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1 23: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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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내기 Mystr 컬렉션 58
안톤 체호프 / 위즈덤커넥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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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Anton Chekhov)가 남긴 수많은 단편소설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걸작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1888년에 발표된 내기(The Bet, 러시아어 원제: Пари).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은행가와 변호사는 사형제와 종신형 중에 어느 형벌이 더 나쁜지에 관해 토론한다(이 소설에서 두 사람의 실명은 언급되지 않는다). 변호사는 사형과 종신형 모두 부도덕한 제도라고 비판하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종신형을 선택할 거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인간의 한 번뿐인 생명은 소중하므로 죽지 않고 삶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은행가는 변호사가 거짓말하고 있다면서 그에게 황당한 내기를 제안한다. 처음에 은행가는 변호사가 감옥에 5년 동안 살지 못한다는 데에 200만 루블을 건다. 그 당시 200만 루블은 어마어마한 돈이다(현재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3,764만 원이다). 그런데 패기로 뜨겁게 타오르던 변호사는 5년이 아니라, 15년을 감옥에서 살 수 있다면서 은행가가 제안한 내기를 받아들인다.

 

변호사는 은행가의 저택 정원 안쪽에 있는 작은 건물에 수감 생활을 한다. 그의 수감 생활은 1870111412시부터 시작되어 1885111412시에 종료된다변호사는 15년 동안 건물 밖으로 나올 수 없으며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모든 수단(편지와 신문)을 금지한다. 이를 어길 시 은행가는 내기의 승자가 된다. 변호사가 생활하는 독방은 바깥세상과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다. 그래도 건물에 쪽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작은 창문이 달려 있는데 이것은 변호사가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다.

 

작품은 수감 생활에 점차 적응하는 변호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진행된다. 해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호사의 생활 패턴이 다양하게 변한다. 수감 생활 첫해에 변호사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두 번째 해에 그는 고전 작품을 읽다가 다시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글을 쓴다. 여섯 번째 해가 끝날 무렵에 변호사는 언어와 철학, 역사를 공부한다. 열 번째 해가 지나자 변호사는 책상에 앉아 신약 성서를 읽는다.

 

18851114일 전날에 은행가는 15년 전에 자신이 먼저 내기를 제안한 것에 후회한다. 다음 날이 되면 변호사가 어처구니없는 내기의 승자가 되고, 은행가는 전 재산인 200만 루블을 줘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은행가는 내기뿐만 아니라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 쓸쓸한 말년을 보내야 한다. 파산에 이르는 내기의 결과에 두려워한 은행가는 변호사를 죽이기로 한다. 변호사를 죽이면 내기는 무효가 된다. 은행가는 15년째 자유를 포기한 채 살아온 변호사를 죽이기 위해 직접 독방에 들어간다. 은행가는 빈사 상태에 빠진 변호사의 모습을 보면서 그를 불쌍한 영혼이라고 말한다. 은행가는 변호사가 종이에 쓴 글을 읽는다. 그 글을 읽고 난 후 은행가는 독자의 예상에 벗어난 행동을 한다.

 

내기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열린 결말의 단편소설이다독자들에게 진한 여운을 주게 만드는 결말은 체호프 단편소설의 특징이. 이 작품은 처음에 우화(Fairy Tale, 러시아어 원제: Сказка)라는 제목으로 잡지 <Novoye Vremya>에 게재되었다. 이야기는 3로 이루어졌는데, 소설의 제목이 바뀌면서 3부는 삭제되었다. 3부가 있는 원고는 사라져서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체호프는 1903년에 쓴 편지에 결말이 너무 냉소적인데다가 잔인하게 느껴져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서 3부를 삭제한 이유를 밝혔다.[] 체호프 본인이 생각하기에 나름 충격적인 결말을 구상했던 것 같은데 그게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만약 내기두 개의 결말로 이루어진 이야기로 만들어졌으면 어땠을까? 그렇게 되면 내기는 체호프의 대표작으로 거론되지 못하더라도 체호프 연구자와 독자들의 뇌리에 잊지 못하는 독특한 작품으로 남았을 것이다.

 

내기는 별 네 개를 주고 싶은 작품이지만, 오역이 있어서 별 하나를 뺀다. 수감 생활 중인 변호사가 은행가에게 보내는 편지 속 내용에 번역이 잘못된 문장이 있다.

 

 

 나의 경애하는 간수님, 지금 이 글은 6개의 언어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에게 보여 주세요.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이 글을 큰소리로 읽게 하세요. 만약에 그들 중 한 명이라면 실수를 발견한다면, 정원에서 총알을 발사하도록 하세요. 그 폭음이 들리면, 내 모든 노력이 헛된 것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겠죠.” (TR 클럽 옮김)

 

 

 친애하는 나의 간수님! 당신에게 이 문장들을 여섯 개의 언어로 쓰겠습니다. 이것을 전문가들에게 보여주고 읽어보라고 하세요. 만약에 그들이 틀린 곳을 한 군데도 찾아내지 못할 경우에는 간청하건대 사람을 시켜 정원에서 총을 한 발 쏘도록 해주세요. 그 총소리는 나의 노력이 헛수고가 아니었음을 나에게 확인시켜 줄 것입니다.”  (박현섭 옮김, 체호프 단편선, 139)

 

 

두 번째 인용문은 민음사에 나온 체호프 단편선의 문장이다. 내가 러시아어를 잘 몰라서 내기》 영문판[주2]을 참고했다. 인용한 문장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My dear Jailer, I write you these lines in six languages. Show them to people who know the languages. Let them read them. If they find not one mistake I implore you to fire a shot in the garden. That shot will show me that my efforts have not been thrown away.”

 

 

민음사의 번역문이 맞다. ‘그들 중 한명이라면 실수를 발견한다면(문장 형식도 잘못되었다)이 아니라 그들이 실수 하나라도 발견하지 못한다면으로 고쳐야 한다. 그 다음 문장인 ‘내 모든 노력이 헛된 것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겠죠’는 ‘내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겠죠’로 고쳐야 한다. 원문에 나온 ‘mistake’실수보다는 틀린 곳’, ‘잘못된 곳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들 중 한 명이라는 표현을 영어로 쓰면 ‘one of them’이다.

 

 

 

 

[1] 위키피디아 영어판 내기항목에 있는 원문: “As I was reading the proofs, I came to dislike the end, it occurred to me that it was too cold and cruel,”

 

 

[2] The Bet, translated by Constance Garnett in The Schoolmistress and Other Stories(1918).

링크: https://en.wikisource.org/wiki/The_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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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동안 잊힌 작가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작가의 이름은 안토샤 체혼테(Antosha Chekhonte). ‘체혼테’는 필명이다. 그는 1860년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체혼테는 모스크바대학교 의대생이었는데,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1880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주로 쓴 글은 서너 장 분량 정도 되는 단편소설이었고 싸구려 잡지에 실렸다. 체혼테의 단편소설은 러시아의 사회 문제나 특정 계급의 인물을 풍자하여 웃음을 유발하는 형식이다. 일 년에 그가 쓴 단편소설의 수는 100편 이상이었다. 이 정도면 글을 대단히 많이 쓰는 편이다. 체혼테는 돈을 벌기 위해 짧은 글을 계속 썼다.

 

 

 

 

 

 

1886년에 체혼테는 그리고로비치(Grigorovich)라는 작가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그리고로비치는 당시 러시아 문단에서 알아주는 중진 작가였다. 편지에는 젊은 작가가 더 잘 되길 바라는 선배 작가의 진심 어린 충고가 있었다. 그리고로비치는 체혼테에게 가벼운 분량의 글을 빨리 쓰는 습관을 버리고, 진지하게 사색을 하면서 글을 써보라고 충고한다. 이 편지는 체혼테의 작가 활동에 큰 전환점이 된다. 1887년부터 발표된 체혼테의 작품들은 코믹한 소품 형식의 글에서 점점 멀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밝은 일상 속에 가려진 어둡고 무거운 삶의 한 단면을 소재로 쓴 글이 늘어났다. 이때부터 체혼테는 자신의 본명을 내세워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체혼테의 본명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이 글을 읽으면서 체혼테의 정체를 일찍 간파한 독자가 있을 것이다. 장난으로 체혼테라고 소개한 체호프의 사진이 결정적인 힌트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로쟈 님이라면 이 글의 제목만 보고 체혼테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챘을 것이다.

 

체호프는 너무나도 유명한 단편소설의 대가이자 극작가다. 어떤 사람은 이 글을 쓴 의도가 궁금할 것이다. 내가 체혼테와 체호프를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소개한 이유가 무엇인지 말이다. 체혼테와 체호프는 분명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체혼테와 체호프의 작품은 따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체혼테는 문학적으로 깊이가 있고 성숙한 글을 쓴 체호프가 되기 전 단계인 프로토타입(Prototype, 초기 모델)이다.

 

대부분 사람은 체호프가 누군지 알고 있어도 그가 체혼테라는 필명을 썼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처음부터 체혼테를 잊힌 작가라고 언급한 이유가 있다. 사실 체호프는 초창기에 작가 활동을 할 때 필명을 여러 개 사용했다. ‘체혼테는 가장 많이 알려진 체호프의 필명이다. 그 밖에 체호프가 사용했던 필명은 내 형의 동생’, ‘쓸개 빠진 놈이다. 체호프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필명을 내세워 유머 작가로 활동했다. 문학 연구자들은 체호프가 짧은 분량의 유머 소설을 많이 쓴 1880년에서 1885년까지의 시기를 체혼테 시대라고 이름 붙였다. 체호프의 초기 작품들은 체혼테 시대에 나왔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나온 작품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초기 작품들이 중기와 후기 작품들에 비해 문학적 우수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체혼테 시대의 작품 형식은 단조롭다. 어떤 장소에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나거나 어리숙하고 무지한 인물이 등장하여 비웃음을 살만한 말과 행동을 한다. 이러한 형식의 글을 러시아에서는 스쩬까라고 한다. 스쩬까는 일정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을 소재로 한 글을 뜻한다. 체호프가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미 스쩬까가 유행했고, 대중은 잡지에 유통되는 짧고 유머러스한 글을 선호하고 있었다. 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글을 쓴 체호프는 사회 문제를 살짝 건드리기만 하지 엄할 정도로 비판하지 않는다. 그저 웃음을 나오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만 보여준다. 체혼테 시대의 작품들을 보면서 나오는 웃음은 너무나도 가벼워서 빨리 증발한다. 웃음마저 금방 사라지니 급속도로 전개되는 짧은 이야기들도 기억 속에 잊히게 된다. 이런 독자의 반응은 크게 웃을 정도로 재미있지만, 아주 빠르게 나오는 개그의 대사나 한 장면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관객의 상황과 비슷하다. 따라서 체혼테 시대의 작품 중에서 대표작 몇 편을 꼽기가 어렵다. 사실 초기 작품들은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자주 번역되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체호프의 대표작은 중기 및 후기 작품에 속한다.

    

 

 

    

 

 

 

 

 

 

 

 

 

 

 

* [품절] 안톤 체호프 개와 인간의 대화: 안톤 체호프 선집 1(범우사, 2005)

* [품절] 안톤 체호프 《콘트라베이스와 로맨스: 안톤 체호프 선집 2(범우사, 2005)  

    

 

오래전에 범우사는 단편과 중편, 그리고 희곡을 수록한 다섯 권짜리 안톤 체호프 선집을 펴냈는데, 모두 절판되었다. 첫 번째 선집(개와 인간의 대화)과 두 번째 선집(콘트라베이스와 로맨스)에 체혼테 시대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개와 인간의 대화1885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아주 짧은 분량이지만, 술에 취한 관리가 자신을 향해 짖어대는 개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이 재미있게 그려졌다.

    

 

 

 

 

 

 

 

 

 

 

 

 

 

 

 

* 안톤 체호프 처음 소개되는 체호프 단편소설(인디북, 2011)

* 안톤 체호프 체호프 유머 단편집(지만지, 2013)

 

    

 

개와 인간의 대화》는 절판되었지, 2010년대에 들어서 다행히 체호프의 초기작만 따로 모아 번역한 처음 소개되는 체호프 단편소설(인디북)체호프 유머 단편집(지만지)이 출간되었다. 그동안 국내에 출간된 체호프 단편 선집들은 중기 및 후기에 나온 작품 위주로 구성되었다. 이런 책에 수록된 초기작은 고작 한두 편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처음 소개되는 체호프 단편소설체호프 유머 단편집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단편 선집이며 체호프의 작품 세계에 들어서는 첫 번째 관문 역할을 하는 책들이다. 체호프 유머 단편집에 있는 이웃 학자에게 보내는 편지1880잠자리라는 주간지에 발표된 체호프의 공식적인 첫 작품이다. 처음 소개되는 체호프 단편소설에 있는 아버지라는 작품은 이웃 학자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은 해에 발표된 체호프, 아니 체혼테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잠자리에 실렸다.

 

, 지금까지 체혼테의 작품과 체호프의 작품을 구분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프로토타입과 진캐(진짜 캐릭터)가 쓴 작품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1880년에서 1885년 사이에 나온 작품은 체혼테가 쓴 것이다. 체혼테 시대의 연도만 기억하면 된다. 체호프 단편 선집을 읽을 때 작품 끝부분에 있는 작품 발표 연도를 꼭 확인하시라(발표 연도를 밝히지 않은 번역본도 있다). 그러면 이 작품이 체혼테가 쓴 것인지, 체호프가 쓴 것인지 알 수 있다.

 

 

    

 

 

Trivia

    

 

 

 

 

 

 

 

 

 

 

 

 

 

 

 

*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민음사, 2002)

*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문예출판사, 2006)

    

 

 

독서 모임 우주지감-나를 관통하는 책읽기의 이번 달 선정 도서민음사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체호프 단편선이다. 민음사 판의 관리의 죽음, 거울과 문예 판의 복수자는 체혼테 시대의 작품들이다. 그런데 독서 모임을 위해 두 권의 책만 읽는 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 책 모두 중기 및 후기 작품들 위주로 수록되었지만, 체호프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 TMI(Too Much Information)인데, 모임 날짜가 130, 이번 달 마지막 목요일이다. 모임 전날인 129일은 체호프가 태어난 날이고(어떤 번역본에는 117일로 되어 있는데 이 날짜는 율리우스 달력에 가까운 러시아 구력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현재 전 세계가 사용하고 있는 달력은 그레고리 달력이다), 체호프 탄생 16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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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1-27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보니까 알겠던데. 체호프라는 거.
그런데 1년에 단편 100편을 썼다니 대단하군.
글치 않아도 그의 책이 있긴한데...ㅠ

얄라알라 2020-01-27 21:11   좋아요 1 | URL
저도 지금 우와 신기해, 하며 읽다가 댓글에 ˝1년 단편 100편이라고요? ˝쓰려고 했는데 stella.K님께 찌찌뽕해야겠어요.

로쟈님께서 이 글 읽으시리라 확신합니다~

cyrus 2020-01-28 20:09   좋아요 0 | URL
To. stella.K // 저는 체호프 단편 선집 두 권 가지고 있어요. 역시 단편은 분량이 짧아서 좋아요. 금방 읽을 수 있으니까요. ^^

To. 얄라알라북사랑 // 언젠가는 제 글을 보시겠죠? ^^

Angela 2020-01-31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본 순간! 제 최애 작가라는걸 알았죠 ㅎ

cyrus 2020-02-01 17:45   좋아요 0 | URL
수염 있는 체호프의 모습이 있는 사진은 워낙 유명하죠. ^^
 

 

 

 

 

 

 

 

라플레시아(rafflesia)는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이다. 이 식물은 독특한 외양을 자랑한다. 줄기도, 잎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뿌리도 없다. 우리 눈에 보이는 건 5개의 잎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적갈색의 꽃뿐이다. 이 거대한 꽃을 피우기 위해 다른 식물의 줄기나 뿌리에 기생하면서 자란다. 꽃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난다. 이 꽃이 내뿜는 고약한 냄새는 파리를 불러들인다. 파리가 수컷의 꽃가루를 암컷에게로 옮겨 수분이 이뤄진다.

 

 

 

 

 

 

그러나 개화 기간이 많아야 한 달 정도 걸리며 완전히 피어나도 일주일도 못 버티고 진다. 꽃이 지면 불에 타버린 것처럼 시커멓게 변한다.

    

 

 

 

 

 

 

 

 

 

 

 

 

 

 

 

 

 

 

 

 

 

 

 

 

 

 

 

  

* 샤를 보들레르, 김인환 옮김 악의 꽃: 앙리 마티스 에디션(문예출판사, 2018)

* 샤를 보들레르, 황현산 옮김 악의 꽃(민음사, 2016)

* 샤를 보들레르, 공진호 옮김 악의 꽃(아티초크, 2015)

* 샤를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03)

    

 

 

보들레르(Baudelaire)의 시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라플레시아다. 보들레르는 1857년 시집 악의 꽃을 발표한다. 그러나 이 시집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된다. 결국 여섯 편의 시를 삭제한 채 시집을 출판하라는 명령과 함께 보들레르는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자연이나 사랑, 예술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에서 시상을 찾던 당대 시인들과 달리 보들레르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추악한 현실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했다. 보들레르는 작가 겸 비평가인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에게 보내는 악의 꽃헌사에서 지극히 겸허한 마음으로 이 병든 꽃을 바친다라고 쓴다. 그는 자본의 시궁창인 파리 한복판에 병든 꽃을 키우는 데 성공한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열린책들, 2009)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의 소설 향수(열린책들, 2009)의 주인공 그르누이(Grenouille)는 최고의 향수를 만들고픈 욕망에 사람들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향기를 탐한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을 위한 양분을 얻기 위해 파리 구석구석을 산책하면서 음산하고 퀴퀴한 냄새들을 모은다. 도시인들의 물질적 욕망에서 뿜어 나오는 꺼림칙하고 불쾌한 냄새. 보들레르가 형제라고 말한 도시인들, 즉 위선적인 독자[1]들은 문제작이 된 악의 꽃에 흥미를 느낀다. 독자들은 도덕적으로 해로운 냄새가 나는 줄 알면서도 그의 시에 호기심을 느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시집을 통해서 그동안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에서 피어나는 추악한 욕망의 냄새를 맡는다. 악의 꽃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라플레시아의 악취에 홀린 파리와 같다. 오늘도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도시에서 붕붕 날아다니는 파리들은 18세기 중반 파리의 악취를 간직한 보들레르의 시를 읽는다.

 

   

 

 

[1]

 

제일 흉하고 악랄하고 추잡한 놈 있으니!

놈은 야단스런 몸짓도 큰 소리도 없지만

지구를 거뜬히 박살내고

하품 한 번으로 온 세계인들 집어삼키리.

 

그놈은 바로 권태! 눈에는 무심코 흘린 눈물 고인 채

담뱃대 빨아대며 단두대를 꿈꾼다.

그대는 안다,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자 독자여, 내 동류, 내 형제여!

 

(독자에게중에서, 윤영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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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1-09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서재의 달인 등극 축하드리며 새해복많이 받으셔요^^

cyrus 2020-01-20 08:22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카스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페크pek0501 2020-01-12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때 악의 꽃, 시집에 반했었죠. ㅋ

cyrus 님, 새해에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건필을 기원합니다.

cyrus 2020-01-20 08:19   좋아요 0 | URL
답글과 새해 인사가 늦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국내에 번역된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책이 꽤 많다. 대부분 사람은 츠바이크를 소설가 또는 전기(傳記) 작가로 기억한다. 츠바이크는 발자크(Balzac), 에라스뮈스(Erasmus),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등의 전기와 평전을 썼다. 그뿐만 아니라 시와 희곡도 썼다. 츠바이크가 작가로서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은 시집이다.

 

 

 

 

 

 

 

 

 

 

 

 

 

 

 

* 최성일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1)

 

 

츠바이크의 작품들은 그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를 난감하게 만든다. 사실 필자도 그런 독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번역서 중에 뭐부터 읽어야 할지 고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총 218명의 작가와 사상가의 쓴 책들을 사전식으로 정리한 출판 평론가 최성일 씨의 유작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을 참고했다. 이 책은 작가와 사상가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길잡이로 활용될 수 있다. 최성일 씨는 외국 저자의 국내 번역서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목록 형식으로 작성했다. 국내 번역서 목록은 번역서 한 권의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이 책에 츠바이크의 국내 번역서 목록이 있다. 만약 최성일 씨가 지금 살아 계셨더라면 국내 번역서 목록이 수정된 개정 증보판이 나왔을 것이다. 최성일 씨 필생의 노력이 반영된 국내 번역서 목록은 2011년에 멈춰진 상태다. 그 이후에 최성일 씨가 관심을 보인 저자의 번역서들이 출간되었고, 이제는 누군가가 그 목록을 고쳐야 한다. 필자가 그 일을 하려고 한다.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절판] 슈테파니 츠바이크 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북스캔, 2003)

* [품절] 슈테파니 츠바이크 아프리카, 나의 노래(까치, 2005)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에 있는 츠바이크의 국내 번역서 목록을 수정하기 전에 먼저 오류부터 언급하고 싶다. 이 목록에 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아프리카, 나의 노래라는 두 권의 책이 포함되어 있다. 이 두 권의 책을 쓴 저자는 독일 유대계 여성 작가 슈테파니 츠바이크(Stefanie Zweig). 성은 같지만 이름이 다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계 작가다. 최 씨가 책을 조사하는 과정 중에 작가 이름을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츠바이크의 작품이 중복으로 출판된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내용은 같지만, 제목이 다른 번역서가 있다. 가장 많이 중복으로 출판된 츠바이크의 작품은 낯선 여인의 편지(Brief einer Unbekannten). 이 작품은 1962년에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것까지 포함해서 현재까지 총 14번이나 출간되었다. 특히 박찬기, 원당희의 번역은 여러 출판사를 거쳐 중복으로 출간되었다.

 

 

 

 

1. 모르는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황혼의 이야기(육문사, 1962)에 수록

 

 

2. 미지의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동민문화사, 1967)

 

 

3. 미지의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주영사, 1974)

 

 

 

 

 

 

 

 

 

 

 

 

 

 

 

4.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원당희 옮김 (고려원, 1991)

 

 

5. 모르는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감정의 혼란(깊은샘, 1996)에 수록

 

 

6. 외사랑

이초록 옮김, 사랑의 슬픔(산들, 1997)에 수록

 

 

 

 

 

 

 

 

 

 

 

 

 

 

 

7. 나를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원당희 옮김 (사민서각, 1997)

 

 

8. 편지

안의정 옮김 (맑은소리, 1997)

 

 

 

 

 

 

 

 

 

 

 

 

 

 

 

9.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안의정 옮김 (맑은소리, 2003)

 

 

 

10. 모르는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황혼의 이야기(서문당, 2003)에 수록

 

 

 

 

 

 

 

 

 

 

 

 

 

 

 

 

 

11. 모르는 여인의 편지

원당희 옮김 (자연사랑, 2003)

 

 

 

 

 

 

 

 

 

 

 

 

 

 

 

 

 

12. 낯선 여인의 편지

김연수 옮김, 체스. 낯선 여인의 편지(문학동네, 2010)에 수록

 

 

 

 

 

 

 

 

 

 

 

 

 

 

 

13. 모르는 여인의 편지

송용구 옮김 (고려대학교출판부, 2011)

 

 

 

 

 

 

 

 

 

 

 

 

 

 

 

 

 

14. 모르는 여인의 편지

양원석 옮김, 마리 앙투아네트 / 모르는 여인의 편지(동서문화사, 2015)에 수록

 

 

 

낯선 여인의 편지다음으로 많이 중복으로 출판된 츠바이크의 작품은 황혼 이야기(Geschichte in der Dämmerung). 이 노벨레(Novelle)1911년에 출간된 첫 경험, 네 편의 이야기(Erstes Erlebnis. Vier Geschichten aus Kinderland)에 수록된 츠바이크의 초기 작품이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노벨레는 다음과 같다.

 

 

1. 황혼 이야기(Geschichte in der Dämmerung)

2. 여자 가정교사(Die Gouvernante)

3. 타 버린 비밀(Brennendes Geheimnis)

4. 여름날의 사건(Sommernovellette)

 

 

2, 4번 노벨레를 제외한 나머지 두 작품은 번역되었다. 비록 번역되지 못한 작품이 몇 편 있으나 츠바이크의 소설을 읽으려고 한다면 이미 번역된 초기작부터 읽으면 된다. 1911년에 발표된 네 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타 버린 비밀이다. 1913년에 이 작품만 따로 출간되었으며 1933년과 1988년에 영화화되었다.

 

 

 

 

 

 

 

 

 

 

 

 

 

 

 

 

 

 

 

* 슈테판 츠바이크 타 버린 비밀(세창미디어, 2019)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 일급비밀(자연사랑, 2003)

 

 

 

타 버린 비밀2003년에 일급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적이 있다. ‘일급비밀80년대를 풍미한 3인조 남성 댄스 그룹 가수 소방차의 노래 제목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일급이라는 표현은 원제의 의미와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소설의 핵심 주제인 비밀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다행히 최근에 타 버린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외교관 부인의 아들인 에드거(Edgar)는 우연히 만난 남작과 친하게 지낸다. 사실 남작은 부인을 유혹하기 위해 에드거에게 접근한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어른의 감정을 잘 모르는 순수한 열두 살 소년 에드거는 처음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작은 노골적으로 부인에게 추파를 던지고, 남작이 부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두 사람의 관계를 가까이서 지켜본 에드거는 남작을 질투한다. 이제 에드거는 은밀한 곳에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어른의 세계에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제목에 있는 단어이자 소설의 핵심 주제인 비밀은 에드거가 무척이나 궁금하게 여기는 어른의 세계. 타 버린 비밀은 어른의 세계에 접근하려고 애쓰는 소년의 정신적인 성장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일급비밀타 버린 비밀은 같은 역자가 옮긴 작품이다. 제목만 달라졌다. 번역 문장도 약간 달라졌지만, 막상 읽어보면 크게 고친 티가 나지 않는다. 일급비밀타 버린 비밀에 있는 문장을 인용해서 비교해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이는 자신에게 그토록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는 이 낯선 신사에 대하여 너무 자의식이 강한 것 같아 보였다.

 남작은 대화를 나누며 한번도 아이에게 거만한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고, 오히려 매번 좀 당황해 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행복한 감정과 동시에 부끄러움 때문에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대화를 정말 지속시키고 싶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일급비밀19)

 

 아이는 자기에게 이토록 친절하게 말을 걸어 주는 이 멋있는 낯선 신사에게 대단히 자의식이 강한 모습을 보이려는 것 같았다. 그는 한 번도 건방진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고 항상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이제 그는 행복한 동시에 부끄러운 감정으로 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기꺼이 대화를 지속시키고 싶었으나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타 버린 비밀26)

 

 

사랑의 슬픔외사랑첫사랑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두 편의 노벨레가 수록되어 있다. 이 두 편의 노벨레는 각각 낯선 여인의 편지황혼 이야기.

 

 

 

 

 

그런데 이 번역서는 두 작품의 원제를 잘못 썼다. 황혼 이야기의 원제가 ‘Erstes Erlebnis’라고 되어 있는데, ‘Erstes Erlebnis’황혼 이야기가 수록된 노벨레 모음집의 제목이다. 낯선 여인의 편지의 원제로 잘못 적혀 있는 ‘Amok(‘아모크또는 아목이라고 부른다)1922년에 발표된 노벨레 모음집의 제목이다. 여기에 수록된 소설은 낯선 여인의 편지환상의 밤(Phantastische Nacht), 달밤의 뒷골목(Die Mondscheingasse) 이다.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 감정의 혼란(깊은샘, 1996)

감정의 혼란’, ‘모르는 여인의 편지’, ‘달밤의 뒷골목’, ‘황혼 이야기수록

 

 

 

 

 

 

 

* [절판] 슈테판 츠바이크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하문사, 1996)

달밤의 뒷골목과 같은 내용임.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 사랑의 슬픔(산들, 1997)

외사랑(= 낯선 여인의 편지)’, ‘첫사랑(= 황혼 이야기)’ 수록

 

 

 

 

 

 

 

 

 

 

 

 

 

  

* 슈테판 츠바이크 황혼의 이야기(서문당, 2003)

모르는 여인의 편지’, ‘마음의 파멸(Untergang eines Herzens, 1927)’, ‘황혼의 이야기수록

 

 

 

 

 

 

 

 

 

 

 

 

 

 

 

* 슈테판 츠바이크 환상의 밤(세창미디어, 2018)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 환상의 밤(자연사랑, 1999)

 

 

 

감정의 혼란황혼의 이야기에 공통으로 수록된 모르는 여인의 편지황혼의 이야기는 같은 역자가 번역한 것이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라는 번역서 앞표지에 장편소설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번역서의 원작은 단편 형식에 가까운 노벨레로 분류되는 달밤의 뒷골목이다. 그런데 소설이 시작되는 첫 문장(15~16쪽)은 원작에 없는 내용이다. 즉 역자가 원작에 없는 문장을 추가로 쓴 것이다. 소설을 장편인 것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쓸데없는 내용을 추가한 것일까. 왜 역자가 원작을 넘어선 번역을 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아무튼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는 츠바이크의 소설을 읽으려고 하거나 구매하는 독자들이 피해야 할 번역서다. 앞서 언급한 사랑의 슬픔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이 책을 중고도서로 샀는데, 가격은 1,900원이었다. 금전적으로는 큰 손해를 본 건 아니지만, 괜히 샀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필자는 모르는 여인의 편지황혼 이야기가 수록된 번역서를 가지고 있다. 이래서 구매자가 직접 작성한 번역서 목록과 리뷰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나처럼 책 사는 데 헛돈을 쓴 독자가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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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0-2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오바네요. 왜 역자가 내용에도 없는 걸 썼는지...

cyrus 2019-11-01 17:38   좋아요 0 | URL
8, 90년대에 나온 외국 작가의 번역본 중에 역자가 윤색한 것도 있었어요. 제가 ‘셔얼록 호움즈(셜록 홈스) 시리즈’ 문고본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 책도 원작에 없는 내용이 나와요. ^^;;

boooo 2019-10-28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체스로 시작했습니다. :)

cyrus 2019-11-01 17:39   좋아요 0 | URL
츠바이크의 후기 작품인데 아직 안 읽었어요. ^^

stella.K 2019-10-28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츠바이크를 <체스>로 알게 되었는데 그 소설은 정말 대단했지.
그후 몇권 읽긴했지만 지적인 면에선 뭐라할 수 없지만
딱히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않더군. 좋긴 좋은데 막 좋지는 않아.

그나저나 최성일 씨의 책은 읽었나?
난 몇년 전 사 놓고 안 읽고 있어. 중고로 너무 싸게 사서
어떤 책인가 사 봤지. 정가로만 살 수 있는 책이라면 안 샀을 텐데...
핑계지만 나이 드니까 이런 책은 점점 안 읽게되더군.ㅋ

cyrus 2019-11-01 17:43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지고 있는 최성일 씨의 책은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뿐이에요. 도서정가제 시행 전에 샀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적립금을 쏠쏠하게 쓸 수 있었던 시절이었어요. 정말 이 책 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전 형식의 책이라서 가끔 생각날 때마다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