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그린 그림 - 미술사 최초의 30가지 순간
플로리안 하이네 지음, 최기득 옮김 / 예경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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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술사적 사실, 진실 혹은 거짓  

 


 

 

 

 

 

 

 

 

 

 

 

 

 알브레히트 뒤러 <멜랑콜리아 I>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875525   
  

 #1 인간의 꿈을 그림으로 표현한 최초의 화가는 살바도르 달리이다. 
 

 #2 팝 아트라는 장르를 최초로 시도한 화가는 앤디 워홀이다. 
 

 #3 동판화를 처음 그린 화가는 알브레히트 뒤러이다.   

 

 

미술사에 조금이라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제시된 세 가지 미술사적 사실들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달리의 그림들은 의식 속의 꿈이나 환상의 세계를 주제를 하고 있다. 팝 아트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앤디 워홀이다. <기사와 죽음과 악마><멜랑콜리아Ⅰ><서재의 성 히에로니무스>는 뒤러의 3대 동판화 걸작이라고 불릴 정도로 뒤러는 판화의 대가이다. 지금까지 출판되어 온 각종 미술사 관련 도서에서 세 명의 거장들이 남긴 미술의 발자취를 많이 볼 수 있기에 자연스럽게 이들이 미술사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 가지 사실들은 틀린 내용이다. 이들은 그 분야에 관련된 작품들을 많이 남겼을 뿐이지 최초로 시도한 것은 아니다. 

 

뒤러가 목격한 꿈 속 세상   


플로리안 하이네라는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면 딱히 눈에 띌만한 내용이 없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했을 뿐이지 저자는 전문적인 미술사가가 아닌 프리랜서 사진작가이다. 저자의 이력 때문에 책의 내용이 깊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부제에도 밝혔듯이 미술사에 관한 책이지만 지금까지 출간된 미술사 관련 도서와 차별화 하고 있다. ‘최초’라는 키워드를 통해 미술사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트마다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각종 미술사적 용어 위주로 미술사를 풀어내지 않아서 읽는 내내 지루함이 없으며 관심 있는 챕터를 골라 읽을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잘못된 세 가지 사실들과 관련된 내용은 각 챕터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가지 내용에 대해 살짝 언급해보자면.....  

 

동판화를 처음 그린 화가는 오락용 카드를 만들었던 ‘오락 카드의 대가’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는 무명 화가가 그렸다. 팝아트 장르를 최초로 선보인 화가와 작품은 리처드 해밀턴의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특이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가?>이다.

그리고 최초의 꿈 그림을 그린 화가는..... 놀랍게도 알브레히트 뒤러이다.   

 

이 책의 각 챕터에는 최초의 누드화, 최초의 정물화, 최초의 초상화, 최초의 풍경화 등을 소개하고 있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 제일 기억이 남고 흥미로웠던 챕터는 단언 최초의 꿈 그림에 대한 내용이다. 개인적으로는 수많은 미술사 관련 도서를 뒤적거리지는 않았지만 뒤러가 자신이 꾼 꿈의 내용들을 그림으로 기록한 사실은 어느 미술사 도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뒤러가 꿈에서 본 세상을 그린 그림은 단순하다. 어마어마한 물기둥이 하늘 위로 솟아올라 여러 개의 거대한 물폭탄이 되어 떨어지는 장면이다. 꿈에서 이루어진 허구의 장면이지만 직접 꿈을 꿈으써 가상 현실을 체험한 것이나 다름없는 뒤러에게는 그 장면이 무섭게 느껴졌는가 보다. 그는 꿈에서 본 장면들을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라 장면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느낌까지 글로 남겼다.       

 

  물기둥은 커다란 소리를 내면서 들판 전체를 휩쓸어버렸다. 땅을 내리쳤던 물기둥은  

  너무나 빨랐고 바람소리와 함께 무섭게 울렸다.

  - 뒤러가 쓴 글의 일부(1525년 기록), 플로리안 하이네 『거꾸로 그린 그림』p 228 -  

  

이전 미술사의 그림들은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을 그렸다. 현실이 아닌 상상이 가득한 그림을 그렸지만 대부분 성서 속의 신비적인 종교적 내용을 그린 것이 고작이다. 수면 중에서 일어나는 환상적인 심상인 '꿈'을 그림으로 기록한 점은 미술사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뒤러가 최초의 꿈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후세의 화가들로 이어진다는 것은 비약적일지도 모르나 꿈을 그림으로 남긴 새로운 미술의 시도가 초현실주의가 등장했던 20세기 초가 아닌 이보다 먼저 수백 년 전인 16세기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놀라운 점이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위대한 미술사의 오리진(Origin)  


책 한 권에는 30가지의 미술사 최초의 순간들을 담아냈지만 일부 내용들은 나름 미술사 지식의 정도가 중, 고급이라고 자부하는 독자들에게는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읽고 배우는 미술사가 기록된 종이에는 순차적으로 구성된 미술사조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한 유명 미술가들의 이름과 명화들로 가득 차 있다. 이상하게도 미술사에서는 ‘최초’라는 내용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그리고 세세한 미술사적 기록들이 후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화가’라는 시대상의 인식이 작용했다. 중세부터 르네상스까지 화가는 단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 때는 미술은 오랜 세월을 연마하면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멋진 그림 한 점 남겼다 치더라도 그림을 그렸을 화가에 대한 기록과 증거를 일절 남기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동판화가 ‘오락 카드의 대가’라는 이름 없는 화가가 처음 그렸다는 사실을 지금까지도 알지 못하게 된다. 역사속에서 기록되지 않은 화가들은 후세에 와서도 무명으로 알려진 현실에 대해 서러울 판에 자신의 위대한 공로가 다른 이에게 돌아가게 된다면 하늘에서 억울해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미술사에서 가려져 있던 이름 없는 오리진(Origin)들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다른 미술사 책들과 비교하면 전문성이 떨어지지만 이전에 미술사 책에서 볼 수 있었던 구성 형식과 다르다는 점, 그리고 새로운 관점으로 미술사를 접근했다는 점에서 이제 막 미술사라는 흥미로운 학문에 발을 내딛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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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영혼의 거울 다빈치 art 18
프란시스코 데 고야 지음, 이은희 옮김 / 다빈치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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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며칠 전, 모 검색 사이트에서 연재하는 미술과 관련된 글에서 고야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내가 본 글은 단순히 고야의 유명 작품들을 열거하여 쓴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광기를
주제로 한 낭만주의 그림들에 대해서 썼는데 그 글에서 고야의 그림이 있는 것이다. 
그림 제목은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판화집 [카프리초스] No.43  
   

이성을 가지고 있는 어느 사나이가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 책상 위에는 사나이가
무엇을 쓸려고 했는지 종이와 펜이 놓여 있다. 잠에 빠져 있는 사나이 뒤에는 밤에서만  

볼 수 있는 야행성 동물들이 모여 있다. 부엉이 떼와 고양이 두 마리는 자고 있는 사나이를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그리고 날아다니던 박쥐 떼들이 이제 막 사나이  

곁으로 다가오려고 하고 있다. 잠을 자게 되면 인간의 움직일 수 있는 모든 힘들은 잠을  

자고 있는 동안 멈추게 된다. 결국 이성의 힘을 잃어버리게 되면 야생 동물로 상징되는  

잘못된 미신과 악한 본능들이 우리의 마음과 두뇌에 침입하여 결국에는 그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 통제가 되지 않는다. 고야는 인간이 이성을 잃어버리게 되면 초래하는  

위험성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리고 먼훗날, 이 그림의 제목처럼 자신도  

잠들어버린 이성 때문에 괴물이 되고 만다.
  

 

 고야가 쓴 고야에 대한 모든 것?

책 앞 표지에는 저자명에 ‘프란시스코 데 고야’라고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공식적인
출간물이나 자서전을 출판한 적이 없다. (제목에도 ‘고야’가 들어가 있고, 저자명에도
‘고야’라고 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고야의 그림이 실려 있는 자서전인 줄 알았다)
고야가 친한 친구였던 마르틴 사파테르에게 보낸 편지들과 그가 그린 판화집 

『카프리초스』이외에는 나머지 글은 다른 사람이 쓴 것이다. 고야의 생애에 대해서는  

이탈리아 미술사가 마게리타 아부르체세가 집필하였고, 고야의 후기작들에 관한 글은  

디스토피아 소설『멋진 신세계』의 작가로 알려진 올더스 헉슬리가 썼다. 참고로 책을  

펼치고 속표지 뒷장을 살펴보면 조그맣게 책에 대한 구성이 적혀 있다. 그러니 책의 전체  

내용이 고야가 모두 쓴 것이 아니라고 해서 오해를 사지 않기를. 그리고 고야의 모든  

작품들은 실리지 않았다. 판화집『전쟁의 참상』『어리석음』『투우』 시리즈 중 일부  

몇 점만 실려 있고,  대신에『카프리초스』를 구성하는 총 80점의 판화는 모두 실려 있다. 

그러나 책 한 권에는 고야에 대한 모든 것이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검은 그림 
 

사실 내가 알고 있는 고야의 그림은 최근에 검색 사이트에서 본 그림까지 포함하면  

별로 없다. 그림 출품 당시 모델과의 스캔들을 낳게 한 그 유명한 마하 부인, 살기와  

광기가 서린 눈으로 자식들을 잡아먹는 시간의 신 사투르누스, 나폴레옹 병사들에게  

총살당하는 마드리드 시민들을 그린 그림은 익히 알고 있었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보게  

된 고야의 그림은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에서 실린 모래 구덩이 속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개가 그려져 있는 그림과 수잔 손탁의 <타인의 고통>에서 나온 

절단된 채 죽어 가고 있는 사람을 그린『전쟁의 참상』시리즈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최근에 고야의 그림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온『거인』까지.....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에서는 개가 그려진 그림이 고야 작품이 아니라는 설이 

있음을 밝혔다) 

 

고야의 그림들이 대부분 어둡고 무시무시한 공포의 아우라를 보여주고 있다.  

병으로 인해서 청력을 상실한 이후부터 그 유명한 ‘귀머거리의 집’에서 일명  

‘검은 그림’ 연작을 그린 것은 유명하다. 하지만 고야는 방 안에 틀어박혀
이런 무시무시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그것도 귀가 안 들린 이후부터 말이다.
안 들리기 이전에 어두운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했다.  

 

   

 고야는 친불(佛)주의자였다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후반기에 귀머거리가 되는 불행한 일을 겪은 것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가난에 괴로워한다거나 살아가면서 고생한 일은 없다. 젊은 시절에 그린 그림들은
종교화 몇 점 있었다. 고야가 종교화를 그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대성당에 종교적인 성향이 짙은 종교화를 그리기도 했다. 카를로스 4세 밑에서
궁정 화가로 일했을 때의 그림들도 슬슬 조금씩 검은색의 사용이 늘어났지만
광기, 공포를 담은 표현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는 궁정 화가 생활 대부분 카를로스 4세의
왕족들과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의 그림이 무시무시한 그림으로
변한 시기가 프랑스가 에스파냐(구 스페인)를 침략해서부터이다. 그는 에스파냐에서  

일으킨 프랑스 군들의 잔혹한 살상 행위들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고 그 유명한 

『1808년 5월 3일』과 판화집『전쟁의 참상』을 완성하게 된다.

그런데 고야의 생애 중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고야가 나폴레옹 1세의 형인 조세프
보나파르트의 궁정 화가로 일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 중에는 친불(佛)주의자가 

 많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미술사가 마게리타 아부르체세의 평이 없는 걸로 보아서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고야의 은밀한 활동 사항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지기 않은 거 같다.
그리고 그가 왜 자신의 고국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침략자 나라의 왕족 밑에서
궁정 화가로 활동한 이유에 대한 기록도 없다. 단지 이 제한된 텍스트만으로 고야가
친불주의자라고 단정 짓기에는 부족하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인간의 광기를
표현한 그림과 훗날 그리게 될 ‘검은 그림’ 작업에 몰두한 이유가 자신의 친불 행위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자신의 땅에서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잔혹한 행위를
목격하고 치를 떨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야는 적국의 궁정 화가로 일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궁정 화가로서의 명예도 얻는 부족함 없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런 호화로운 삶으로 인해서 고야가 가지고 있었던 이성은 잠들어 버리고  

그의 영혼과 그림들은 점점 괴물이 되어갔다.  신은 그런 고야의 모습이 아니꼬웠던  

것일까? 반(反) 애국적이면서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고야에게 신이 내린 잔인한 벌은  

바로 청력 상실이었다. 승승장구하던 고야의 삶이 한 순간에 바뀌게 된 사건이었다.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고야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그나마 행복했던 시간은 어둡고 폐쇄적인 방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뿐이었다. 세상 사람들과 단절된 채, 자신이 살면서 보고 느낀 세상의  

추악함과 어둠, 광기들을 거대한 벽화에 담아냈던 것이다. 벽화 속에는 고야가 목격한  

인간의 악한 본능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 악으로 오염되어 있었던 자신의 영혼을  

그림 속에 표현하였다. 앞에서 언급했던 모래 구덩이 속에 빠진 개를 그린 그림이  

‘검은 그림’ 연작 중 하나이다.  

 


 

 

 

 

 

 

 

 

 

 

 고야 <개>, 1820~1823년 제작

개의 몸은 이미 모래 구덩이 속에 들어가 있고 언젠가는 머리도 모래 구덩이 속으로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자포자기한 것일까? 그림 속의 개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보이지 않으며 이미 곧 다가올 최후를 맞이하고 있다.  

모래 구덩이 속에 빠진 개는 악의 구렁텅이 빠진 젊은 고야의 영혼이다. 그는 이미  

악의 구렁텅이에 깊숙이 빠진 이상 다시 나올 수가 없다. 악의 구렁텅이 안에는 죽음이  

고야의 영혼을 기다리고 있다. 머리만 남은 개는 허공에 주시하고 있다. 그가 보고 있는  

곳에는 검은 형상이 보인다. 죽음의 신일까? 아니면 고야의 영혼이 저질렀던 죄를  

씻을 수 있게 해줄 구원의 신일까? 하지만 개가 본 것은 죽음의 신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완성된 지 5년 뒤에 고야는 원죄의 삶을 마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조국인 에스파냐가 아닌 그의 그림 속에 악마로 표현한 사람들의 나라, 

프랑스 보르도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악의 영혼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거울   

 

그의 그림들은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 때문에 보는 이들은 그의 그림이 무섭다고 하지만  

반대로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높게 칭송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사악한  

본능을 사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그런 고야만이 할 수 있는 미적 재능은  

‘검은 그림’ 시리즈와『전쟁의 참상』에서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결국에는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추악함을 유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영혼의 거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거울에 갇혀버린 고야의 젋은 영혼도 볼 수 있다.  비록 고야의 그림은  

두 눈으로 보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우리가 그의 그림을 외면하게 된다면 우리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악의 본성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요즘 사악한 인간들이 판치는  

세상인만큼 고야의 그림은 지금도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인용 및 '고야' 관련자료

[광기와 어두운 욕망 - 낭만주의 미술] 우정아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글
http://navercast.naver.com/art/western/3143 

[개 - 프란시스코 고야] 우정아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글
http://navercast.naver.com/art/western/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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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미술관 - 그림이 즐거워지는 이주헌의 미술 키워드 30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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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 경매 회사의 실체

미술 경매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는 어느 미술품 경매 회사가 김환기, 천경자 등  

한국의 유명한 현대 화가의 초기 작품들과 고액가의 보석, 시계 등을 경매하게 된다는  

기사를 알고 있을 것이다. 김환기, 천경자라면 미술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는
인기 화가들이다. 하지만 이들 작품들보다 컬렉터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경매 작품들의 백미(白眉)가 있었으니, 그것은 프랑스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목욕하는 여인>이다.  

  


 

 

 

 

 

 

 

 

유명 미술 경매 회사에서 출품한 르누아르의 <목욕하는 여인>

 

경매 작품들 중에서 제일 높은 추정가를 기록한 작품이 천경자의 <백일>이라는 작품이며  

3억~5억 5000만원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높은  추정가의 작품은 바로 르누아르의  

작품으로 1억 5000만~2억5000만원이다.  나머지 다른 작품들은 한국 화가들의  

작품들인데, 추정가는 르누아르의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평균적으로 500만원~2000만원 사이의 추정가 범위를 정하고 있다.

천경자의 작품이 이번 경매 출품들 중에서 최고의 낙찰 가격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르누아르의 작품도 무시할 수가 없다. 한국의 미술 경매장에서 외국의 그림이
출품된다는 점은 보기 드문 일이다. 무엇보다도 르누아르는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화가이다. 루브르나 오르세와 같은 세계 유명 미술관에는 그의 작품 하나 정도는
소장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컬렉터들은 르누아르의 그림에 당연히 눈독 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르누아르는 벌거벗은 여자를 주제로 한 그림들을 많이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그래서 ‘목욕하는 여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림이 많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목욕하는 여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작품을 경매 관련 기사를 통해서 처음 보게  

되었다. 다른 미술 책에서 보지 못한 작품이었다. 물론 르누아르는 죽을 때까지  

어마어마한 양의 작품을 그렸으며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작품들이 어딘가에서 어둠과  

함께 지내고 있을 것이다. 아마 이 그림도 긴 세월동안 어둠과 먼지들 사이에
지내다가 드디어 이번 경매를 통해서 빛을 본 것일 게다. 그래서 나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낯익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보고 나니 또 한 번의 태클 본능과 결합된 호기심이 솟아올랐다.
과연 이 유명한 그림이 어떻게 한국 경매 시장에서 등장하였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르누아르의 그림이 천경자의 그림보다 추정가가 낮은지,
그리고 이 그림이 정말 진품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세 가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그런데 유통 경로가 보안성이 짙은 거래라서  

그런지 내가 알고 싶어 하던 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르누아르의 작품 추정가가  

생각보다 낮게 책정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외국 작품들은 자신들의 무대인  

외국 경매 시장보다 우리나라 경매 시장에서는 낮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미술작품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따라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국내 컬렉터들의 작가 인지도, 작품 선호도에 따라 해외에서 통용되는 가격보다  

훨씬 낮은 선에서 경매 추정가가 책정된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르누아르가  

유명하다고 해도 작품 인지도가 낮으면 우리나라 컬렉터의 구입 의지가
낮을 것임을 고려하여 낮은 가격으로 책정하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검색을 하다 보니 기사에 나온 이 유명한 미술 경매 회사에 대해서
새로운 점을 알게 되었다. 확인 결과, 이 미술 경매 회사는 이전에도 다른 르누아르의  

작품을 경매 시장에서 출품한 적이 있었다. 르누아르 말고도 경매 시장에 출품되었던 
우리가 알고 있는 화가들을 열거하자면 이중섭, 조르주 브라크, 앤디 워홀 등이 있다.
그리고 최고로 높은 경매 낙찰률이 70%이었다. 이것은 침체되었던 한국의
미술 시장의 부활 조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많은 경매 회사 관련 뉴스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하였다. 4개월 전의 기사였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회중시계가 경매 물품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 시계가 진짜로 순종이  

사용한 회중시계가 맞는지 논란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순종의 시계가 경매 사이트에 공개한 것을 본 문화유산 관련 전문가는
순종의 시계는 순종의 능에 들어가는 부장품 목록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땅 속에 있어야 할 시계가 어떻게 경매장에서 등장하였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표하면서 진품 논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을 쐈다. 무엇보다도 전문가의 의견이  

신빙성이 높은 것은 순종의 능이 지금까지 도굴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전문가는 경매 시장에 나온 시계가  단순히 순종이 소장한 시계가 아니라  

자신이 구입한 많은 시계들 중의 하나라고 추정하였다. 결국, 경매장에서 출품  

예정인 시계는 순종이 직접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서 전문가는  

영리적인 목적을 위해서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단정 짓고 홍보를 하는 경매 회사를  

비난하였다.  그리고 진위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를 거쳐 경매에  

나오게 되었는지 확실히 밝힐 것을 요구하였다.     
 

 

 

 작품의 본질을 보는 능력

사이토 다카시는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이라는 책에서 세계사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다섯 가지 힘의 영향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하였다.
그가 말한 다섯 가지 힘 중의 하나가 바로 ‘욕망’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욕망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이라도  

명시되어 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시대와 공간을 다르지만 인간들이 일으켰던  

역사적 사건들은 공통적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던 다양한 욕망들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욕망들이 서로 상충되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많은 재화와 권력을 누리는 부귀영화의 욕망은 사람들 간의 대립과  

경쟁 메커니즘을 형성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런 메커니즘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일어나고 있는 사회 현상의 본질을 들어다보면 역사를 움직여왔던
보이지 않는 힘이 눈에 보이게 된다. 그래서 미술도 욕망의 힘으로 인해서 발달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해본다. 앞에서 언급한 르누아르 작품의 경매와 경매 물품의 진위  

논란은 근본적으로는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의 힘에 기인하고 있다.

대중적인 미술 평론가인 이주헌은 <지식의 미술관>의 서문에서 직관을 활용해 작품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능력을 배양하는 방법을  

구슬을 꿰는 실로 비유하였다. 지식과 경험의 확대를 위한 노력이 구슬이라면 직관은  

실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실로 구슬을 꿰는 것처럼 하게 된다면 감상 능력과  

안목 수준이 높아진다. 그리고 미술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예술의 본질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식의 미술관>에 소개하고 있는 몇 몇 키워드를 동원하여  

두 가지 욕망 코드와 관련시켜서 오늘날의 예술 현상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1 남성의 성(性)적 욕망 : 
     나는 보고 싶지만, 남들에게는 절대로 보여줘서는 안 돼! 
 

여성의 벌거벗은 몸을 그린 그림들은 여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남성들의 관음증을 유발하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성적 판타지도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 재미있게도 벌거벗은 여성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나서 성적인 행동을 보이는 이상 증세가 심리학계에서 보고되고 있는데 이것을  

루벤스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오늘날의 예를 들자면 에로틱 연극으로 인기를 끌었던 '교수와 여제자' 있다.  

남성 관객들이 보면 화끈거릴 정도의 외설적인 성적 표현의 대사가 나오며    

두 남녀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전라의 연기와 파격적인 성행위 묘사 연기를 펼친다.  

가까이에서 보기 드문(?) 장면들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남성들은  

공연 내내 꽤나 어질어질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간혹 감정의 혼란을 주체하지  

못한 일부 남성 관객이 갑자기 무대 앞으로 뛰어들어 연기 중인 여배우를 껴안으려는  

돌발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래서 연극이 잠시 중단되었고, 남성 관객은 극단 측  

인원들에 의해 강제로 퇴장 당하였다. 연극도 예술의 한 일부분임을 생각하면 루벤스  

신드롬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벤스 신드롬은 벌거벗은 여성의 몸을 보면 성적 욕망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는
남성들만의 심리가 만드는 증후군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남성들의 특정 심리를
이용한 정보 매체가 많다. 컴퓨터에서 보는 야동이나 포르노뿐만 아니라
이제 집 안의 TV에도 채널 돌리다보면 너무 심하다 할 정도로 성적 코드를
무차별적으로 내보낸다. 그래서 지금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정보와 매스컴 등이
그런 남성들의 심리를 24시간 자극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먼 옛날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여성 누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입장이었다. 이때는 여성 누드보다는 남성 누드가 보편적이었다. 그리스 인들은
남성이야말로 ‘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여성은 아예 ‘인간’의 범주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그리스 시대의 조각품들은  

다 벌거벗은 남자를 모델로 한 작품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벌거벗은  

여성의 몸을 주제로 조각을 만들 생각도 없었다. 만들어봤자 여성의 불완전성만  

부각시키기 때문이니깐. 물론 몇 몇 여성 누드를 주제로 한 조각이 남아 있다.  

그러나 조각의 모델들은 대부분 창녀, 무희, 신화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은  

여인들이었다. 즉, 남성의 문명에서 소외된 여성들이다.

헬레니즘 시대가 오면서 드디어 여체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여성 누드의 조각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인간’ 여성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으로  

작품을 설정하였다. 여자의 신체를 이상적인 형태로 표현한 조각품으로는  

‘밀로의 비너스’가 유명하다.   

 


 

 

 

 

 

 

 

 

 <밀로의 비너스>

 

우리는 그 조각을 보면서 당연히 상반신을 노출한 비너스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헬레니즘 시대에도 완전히 벌거벗은 여자의 몸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 대신에 얇은 옷을 입은 것처럼 표현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보고 있는  

저 비너스도 상반신 올 누드가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고대 그리스의 예술은 남성 중심적이며 성차별적인 미(美)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예술적 의식은 19세기 근대까지 전해져 내려오게 된다. 

 

  

 근대 예술을 지배하고 있는 성적 욕망
  

근대 예술의 여성 누드는 여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장르로 확립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남성의 권력적 시선에서 바라 본 타자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근대의 여성  

누드는 예술에 관심이 많은 상류층들은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주었다.  

하지만 역설적인 것은 당시 예술의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던 영국의 로열 아카데미와  

같은 공적 미술 교육 기관에는 누드 실기를 주로 남성 모델로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미술 학교 내에서는 여성 누드를 그릴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반(反) 아카데미 화가들은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여성 모델을 고용하여 여성 누드를  

그렸으며 간혹 아카데미 소속 학생들이 화가의 아틀리에에 찾아가서 여성 누드를  

그리곤 하였다. 어떻게 보면 아틀리에는 화가들만의 공간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은밀한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고용한 여성  

모델들도 그리스 시대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모델들은 매춘업, 술집 같은 하류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근대 문명에서 소외된 여성들이다.   

 

여성 누드는 단순히 누드를 바라보는 남성 관람객들에게만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킨 것만은 아니다. 주로 남성인 화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구스타브 클림트는 황금빛과 같은 다채롭고 화려한 색깔을 이용하여 여성 누드를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지금은 예술적 평가는 높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클림트의 작품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아틀리에에 여성 모델들이 자주 드나들었다는데  그 중에서 무려 13명의 모델들과  

관련된  염문을 뿌렸으며 심지어 클림트의 누드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그와 잠자리를  

해야  한다는 소문도 돌 정도였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도 남성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여성 누드의 무서운 위력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여성 누드는 여성 신체의 아름다움을 표방하면서도 남성의 성적 욕망을 채우는
이중적인 예술 장르이다. 여성 누드화가 이중적인 것처럼 남성들의 생각도 여성 누드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들은 여성의 알몸을 보고 싶어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것은 혐오하고 오히려 그런 여성들을 폄하하기도 한다.

그런 남성지배적인 사고는 지금도 남아 있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로 뜬  

파라과이 노출녀 라리사 리켈메의 예를 들 수가 있다.
전 세계 남성들 대부분은 지금의 리켈메라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한 문제의 사진을
봤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그 사진을 봤다. 전 세계 남성 네티즌들은 그 한 장의 사진으로
그녀를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고 리켈메가 자신의 고국이 월드컵이 우승하게 되면
올 누드로 거리를 돌아다니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으니 전 세계 남성들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파라과이는 우승을 못하게 되었고, 월드컵 폐막이 

다가올수록 과거에 찍었던 그녀의 누드 사진이 공개되면서 그녀에 향한 일부 남성  

네티즌들의 시선은 싸늘해져만 갔다. 그리고 그녀가 최근에 인터뷰에서 월드컵을  

이용해서 세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그 기사 이후로  

그녀의 빼어난 몸매와 쿨한 매력에 흠뻑 빠졌던 남성들은 한순간에 그녀를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단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몸을 팔았던 여자라고 말이다. 물론 그녀의  

누드 사진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 그녀를 옹호한 남성 네티즌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의 상황과 전혀 다르다. 불과 3주 전에 그녀의 몸매에 대해서 끝이 없는
칭찬이 이어졌으며 그녀가 말한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곤 하였다.
속내는 리켈메의 누드를 보고 싶어 했으면서도 그녀가 단지 마케팅 차원으로 벗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의 마케팅에 속아 넘어갔다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아

그녀의 행동에 대해서 부끄러움도 없이 개념 없이 옷을 벗는 풍기문란한 여자로  

손가락질하고 있다. 
 

 

 

 #2 소유와 지배의 욕망 : 나,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이야 
 

15~16세기는 유럽은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동방과 신대륙으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게 된다. 이를 세계사에서는 ‘신항로 개척’이라고 말한다.  신항로 개척으로  

인하여 유럽과 다른 대륙 간의 교역이 더욱 활발해지게 된다.  그래서 동방과 신대륙의  

다양한 새로운 작물들과 물품들이 유럽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상업혁명에 큰 공헌을 한다. 

유럽의 신항로 개척은 노예무역과 팽창을 통한 식민지 형성이라는 사고가 지배하게 된다. 

특히 신항로 개척으로 급부상하게 된 신흥 상류층들에게는 자신의 부와 권력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진귀한 물건들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솟아올랐다. 그들은 자신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모은 물건과 동식물들을 따로 자신만의 컬렉션으로 만들어 자신의 능력과 

부자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과시욕은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또 하나의 예술 장르가 탄생하게 된다. 자신의 수집품들을 모은  

컬렉션을 그린 그림을 쿤스트카머라고 한다. 반대로 그림과 조각 등 예술 작품만 모은  

컬렉션을 그린 그림을 피타코테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의 과시욕은 자신이 사냥한  

동물들을 그림까지 표현할 정도이다. 사냥감 그림도 한 때 유행하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세 가지 예술적 유행이 상류층의 욕구만 의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17세기에 이르러 정물화의 발달도 쿤스트카머와 피타코테카의 유행에 한 몫 기여했다.
상류층들은 자신들의 컬렉션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권력에 관한 과시뿐만 아니라 지적  

호기심과 탐구를 과시하기도 하였다. 컬렉션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전혀 다른 세상. 즉, 동방과 신대륙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과 그 곳의 진귀한 물건을  

소유하고 싶어지는 욕망을 불러 일으켰다.

19세기는 동방에 대한 서양인의 관심이 한창 하늘을 찌를 때였다. 당시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동방은 오스만 제국이 지배했던 지중해 부근뿐만 아니라 인도, 아시아까지  

범위가 확장되었다. 그리고 동경에 대한 그들의 상상력의 동경은 식민지를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와 맞물리게 되면서 동방 지역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동방에 대한  

서양인들의 관심은 오리엔탈리즘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시대를 나타나는 문화적  

유행의 흐름에 따라 화가들은 오리엔탈리즘 회화를 구축하게 되면서 그들은 식민지에  

대한 우월적인 시선과 제국주의의 가치를 노골적으로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과거에 쿤스트카머가 진귀한 물건들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일으킨 것처럼
오리엔탈리즘 회화의 그림들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방 문화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식민지나 다른 동양의  

약소국에 침입하여 그곳의 문화재를 약탈하기까지 이른다. 서양인들은 예술품을  

애호(愛好)한다는 명분으로 식민지와 약소국의 문화재를 약탈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전쟁의 승리자가 패자로부터 전리품을 약탈해오는 그들만의 관례에서 유래된  

일종의 소유 욕구 해소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은근히 자신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는 우월감도 내세우기도 하였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가해국인 유럽과 피해국인  

아시아나 아프리카 사이에 일어나는 대륙 간 문화재 반환 시비는 아직까지도 합리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무조건 그림만 팔면 그만  

 

시간이 흐르면 시대와 공간은 변하고 역사의 먼지 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소유와  

지배라는 욕구의 바다는 여전히 흐르고 있다. 그리고 이 두 바다는 서로 이어져있다.  

하나의 대상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지배하는 자만이  

가능하다.  지금도 상류층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명예를 축적하고 있다.  

그리고 멈출 줄 모르는 소유와 지배욕은 미술 시장에서도 손을 뻗고 있다.
과거에는 화가가 그림을 팔기 위해서는 자기와 거래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화상을 통해서  

그림을 팔고 수입을 얻었다. 화상들은 화가의 그림을 팔기 위해서 대형 백화점에 물건
진열하듯이 그림들도 쇼 윈도식 마케팅을 이용하여 미술 애호가들의 시선을 끌도록  

하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단순히 그림들을 진열하고 고객이 구입하기를  

기다리는 방식을 원하지 않게 되었다. 현대에 오면서 미술 시장은 두 가지 마케팅  

방식으로 명확하게 갈라지게 된다.

화가들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VIP 고객들이 자신의 작품을 구입하도록 만드는  

마케팅 전략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을 팔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화가라는 이름을 알리는 것이 우선이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 방법 밖에 없다. 그들은 가만히 화가의 아틀리에에 처박혀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아틀리에를 벗어나 좀 더 대중들에게 노출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자신만의  

마케팅을 개발하여 미술 시장뿐만 아니라 미디어까지 접근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화가는 앤디 워홀이 있으며 이런 부류의 예술가들을 아티스트 마케터라고  

부른다. 앤디 워홀은 자신의 아틀리에는 ‘팩토리’라고 부르면서 당시 인기 스타들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대중적인 스타들을 자신의 작업장에
초대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키게 되었다.

지금은 최고의 아티스트 마케터는 데미안 허스트이다. 그의 작품들은 일반인들이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생각지도 못한 재료와 독특한 표현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데미안 허스트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 

 죽은 상어 시체에 모터를 달아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담긴 유리관에서 움직이도록 

 설치하였다. 작품 출품 당시 갤러리들의 충격을 주었으며 최초의 낙찰가가 

 1억 원이었다가 2005년에는 140억 원에 거래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예술 같지 않은 예술 작품을 VIP 고객을 대상으로  

노골적인 마케팅이다. 한 때 미술계를 떠들썩했던 스캔들이 있었는데
해골에 무수히 많은 고가의 다이아몬드를 박은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세계 전시 투어를 하게 되는데 전시의 목적은 단순히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팔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5000만 파운드의 가격이라는  

최고가 기록을 세우면서 팔리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미술 경매 시장이 활성화된 것을  

알 수 있듯이 현대의 미술 시장은 과도하게 시장화 되었으며 상업적인 측면이 강하게  

변해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략은 위작을 만들어 거래하는 것이다. 유명한 화가의 초창기  

작품이라고 한다거나 지금까지 공개되지 못한 새로운 작품 발굴이라는 식으로  

소란스럽게 홍보를 하는데 대부분 위작 작품을 알리기 위한 일반적인 방식이다.  

단순한 방식일지도 모르겠지만 소유욕에 눈 먼 고객들은 화상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 개봉한 영화 <인사동 스캔들>처럼 김래원이 분한  

복원 전문가는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거대 미술 경매 시장과 관계를 맺어
위작들을 만들어 내고 경매 시장에 내놓고 있다.  결국에는 위작 거래도 고객들의  

소유욕을 부추기게 되면서 미술 시장을 상업화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욕심은 욕심을 낳는다 
 

지루하고 긴 리뷰를 읽게 되면 책 속에 등장한 키워드가 눈에 보일 것이다.  

나름 리뷰를 조리 있게 쓰려다보니 내용도 길어지게 되었으며 간혹 읽다가 내용이  

비약적일 느낌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와 관련된 책 속의 도판들을  

리뷰에 넣으려고 했지만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누를 끼칠 거 같아서  

넣지 않았다. 읽는 내내 길고 지루한 형편없는 글이 되고 말았지만 독자들이  

직접 책 속의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리뷰 내용마저 책의 내용을 

스포일러성을 느끼게 했더라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내용의 논리성은 썩 좋지 않았지만  

이번 리뷰 작성 덕분에 책에 있는 미술 키워드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이 책과 리뷰 작성을 계기로 제대로 미술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다.

팔만대장경에는 짧지만 읽으면 긴 여운이 남는 문장 한 구절이 있다.
'욕심은 욕심을 낳는다’
역사도 그렇고 미술사를 간단히 한 문장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거 같다.  

리뷰도 잘 써야겠다는 과도한 욕심 때문에 내가 봐도 욕이 절로 나오는 글이 되고 말았다.
별로 집착하지도 않을 정도의 조그마한 ‘욕심’이 결국에는 우리가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커다란 ‘탐욕’으로 발전하게 된다. 벌거벗은 여체의 아름다움을 상징했던 여성 누드는
지금은 남성들의 관음증을 유발하게 만드는 음란한 표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동방에 대한 서양인들의 지적 욕구가 먼 훗날 동경했던 동방을 식민지로 삼아 약탈하고
무자비하게 살육할 것이라고는 상상이나 했었을까?
살아있는 동안 500여 점의 작품들 중에서 단 한 점만 팔았던 기인(奇人) 화가 반 고흐.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자신이 불행한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작품들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액수로 팔리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그린 적도 없는 해바라기 그림이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면서  

거래 되고 있다. 안 그래도 고흐가 한 가닥 성격 하는 다혈질인데 하늘에서 인간들의  

끝이 없는 욕심과 욕망이 가득찬 세상을 보고 있자니 분해서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일 것이다.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K옥션, 21일 명품그림, 보석, 시계 122점 경매] 한국경제 7월 15일자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71567021 

 

[佛 유명 화가 브라크 작품…K옥션, 11억~14억 경매] 한국경제 5월 26일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52677441 

 

["외국작가 작품 경매 해외보다 국내가 싸네"] 서울경제 2008년 6월 17일자 

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0806/e2008061717315094210.htm 


[K옥션, 경매 눈앞에 두고 진위논란 '시끌'] 문화저널21 3월 9일자  

http://www2.mhj21.com/sub_read.html?uid=26358&section=section2 

 

[`교수와 여제자` 여배우 알몸연기에 남성 관객 돌발 난입] 

매일경제 2009년 12월 8일자  

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9&no=63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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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백과사전 - 광수의 뿔난 생각
박광수 글.그림 / 홍익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일상적인 모든 것들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독자들의 고정된 두뇌도 비틀어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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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미술관 - 비즈니스에 감성을 더하는 Morning Art 아침 미술관 시리즈 1
이명옥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아침에 명화 한 점. 아침에 우유를 마시듯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열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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