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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그밖의 것들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오늘의책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동료철학자 조지 산타야나가 한 말을 들었다면 러셀도 분명 공감을 표했을 것이다. :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반복하는 벌을 받게 되어 있다."

                                                                                     p.8

 

 통제할 수 없는 분노는 일종의 심리적 탈선이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것은 사악함의 징후가 아니라 질병의 징후이다.

                                                                             pp.57~58

 

 청년들이 품을 수 있는 최선의 희망은, 모든 개개인의 위대한 업적을 남길 능력이 있다고 믿어주는 분위기, 따라서 그들의 자부심이 질투에서 비롯되는 조롱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분위기에서 사는 것이다.

 청년에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기대하라. 그러면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교훈이다. 더 적게 기대하면, 정말 당신이 기대하는정도만 얻게 되기 쉽다.

                                                                                    p.91

 

 불행 가운데 진정으로 보람된 불행이 딱 하나 있으니, 좋은 것을 상상만 하고 실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행이 바로 그것이다.

                                                                                  p.169

 

 우리 시대가 앞선 시대들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어린 세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짓에 대한 혐오감이다.

                                                                                  p.176

 

 불유쾌한 진실들을 알지 못하도록 차단시켜주는 습관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어른들은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른들 자신이 솔직한 것을 괴로운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채택되는 것뿐이다.

  현대교육의 가장 나쁜 결점 중 하나는 현실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p.212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그저 전통만 고수하는 것이 지혜는 아니라는 것을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다 알게 될 것이다. 열정 대신에 지성이 경제를 이끌도록 만들어주면 그 즉시 우리 모두가 부유해질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지성보다 열정을 따르는 것이 더 즐겁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대한 벌이 굶주림이라면 결국에는 그들도 합리적인 방향을 따르게 될 것이다.

                                                                                  p.275

 

 

버트런드 러셀, 『인간과 그 밖의 것들』 中

 

 

+) 비트겐슈타인의 저서를 읽으면서 그가 스승으로 만난 사람이 '러셀'이라는 것을 알았다. 친구가 권해준 러셀의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위트와 풍자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것 뿐만 아니라 고집까지 발견할 수 있다.

 

    읽다보면 풋,하고 웃음이 터지기도 하는데, 괴짜같은 그의 발상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 현실을 메마르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씁쓸함을 느꼈지만, 그만큼 객관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인간'에 중심을 두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것은 감성에 좌우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로맹가리의 소설을 떠올렸다면 무리일까. 어쩐지 로맹가리와 러셀은 세상이나 인간에 대한 시선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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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랜덤 시선 16
김경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다 간 밤

 

 

불을 끄고 방 안에 누워 있었다

누군가 창문을 잠시 두드리고 가는 것이었다

이 밤에 불빛이 없는 창문을

두드리게 한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곳에 살았던 사람은 아직 떠난 것이 아닌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문득

내가 아닌 누군가 방에 오래 누워 있다가 간 느낌.

 

이웃이거니 생각하고

가만히 그냥 누워 있었는데

조금 후 창문을 두드리던 소리의 주인은

내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들을 두드리다가

제 소리를 거두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곳이 처음이 아닌 듯한 느낌 또한 쓸쓸한 것이어서

짐을 들이고 정리하면서

바닥에서 발견한 새까만 손톱 발톱 조각들을

한참 만지작거리곤 하였다

 

언젠가 나도 저런 모습으로 내가 살던 시간 앞에 와서

꿈처럼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방 곳곳에 남아 있는 얼룩이

그를 어룽어룽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이 방 창문에서 날린

풍선 하나가 아직도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어떤 방을 떠나기 전, 언젠가 벽에 써놓고 떠난

자욱한 문장 하나 내 눈의 자하에

붉은 열을 내려 보내는 밤,

나도 유령처럼 오래전 나를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김경주,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中

 

 

+) "고백하건대 시는 내게 현기증 같은 것이었다."라고 시인은 말했다. 현기증이라.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처음 그 문장을 읽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게 시는 어떤 것일까. 오래도록 생각했지만, 나는 아직 그 질문에 스스로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저 평생 함께해야 할 존래라는 생각 밖에.

 

그의 시에서는 "바람"이 떠돈다. 아니,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시어와 시어 사이에서 바람이 흐른다. 물론 그렇다고 틈이 많은 것은 아니다. 빽빽하게 들어선 사유들 사이에서 "자유"와 "꿈"을 소망하는 "영혼(귀신)"들이 "날아다닌"다. 그들은 "자신이 만든 시간"속에서 "자신의 경계를 고민"한다.([맨홀]) 바로 그 시공간 사이에서 끝없이 바람이 불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 "고향"은 그에게 단순히 유년의 모습이 아니다. 과거 혹은 기억 속의 한 장면이 아니라,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계속 움직이는 "시간"을 의미한다. 시인은 자신과 삶의 테두리에서 방황하는 존재에게 차분하게 그러나 계속해서 활동하는 '시간성'을 부여한다. 자아뿐만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에서도 '시간'은 살아서 움직인다.

 

어쩌면 그 끈기있는 시간의 역동성 때문에 이 시집에서 '촘촘하게 얽힌' 힘이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 그 빡빡한 삶의 자세가 여유로움을 앗아간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인은 "생의 마지막 리듬인 자신의 맥박"([음악은 우리가 생을 미행하는 데 꼭 필요한 거에요])을 천천히 받아들인다. 음악과 자신을 교차시키며, 비워내야 할 순간들을 버리고 채워야 할 것들에 대해서 고민한다.

 

이 시집에는 사람이 그립다라는 말이 없지만, 절실하게 사람을 그리워하는 그의 애틋함에 가슴이 저린다. 매우 소중한 존재에 대해서(그것이 사람이든, 삶이든, 기억이든, 시간이든) 손대기 아까울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이 시집에서 묻어나는 사람에 대한 그의 흔적과 관심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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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7-09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우 소중한 존재에 대해서 손대기 아까울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참 소중한 문장이네요. 이 시집의 느낌이 이런거군요.

우비소녀 2007-07-10 09:43   좋아요 0 | URL
소중한 문장이라.. ^^ 고맙습니다. 한 글자, 한 문장이 마음이 쓰이던터였는데. 잉크서재님 덕분에 편안해지네요. 김경주의 시집은 묘한 매력이 있어요. 시간을 움직이는 힘이랄까?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문학동네 시집 93
조동범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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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리운 남극

 

 

 당신은 진지한 표정으로 배낭을 꾸린다. 창 밖에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비 내리는 어느 오후, 당신은 소풍을 떠나려 한다. 배낭 안에 바나나 따위는 없다. 동물원으로 가는 길, 위로 비구름 지나간다. 당신은 배낭을 메고 소풍을 간다. 우산도 없이, 폭풍을 뚫고 가는 소풍. 이 길이 끝나면 비 그치려나. 신발 안의 빗물이 둔탁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비에 젖어, 당신은

 나침반을 꺼낸다. 나침반의 바늘은 고집스럽게 극점을 가리키고 있다. 바늘의 끝을 따라가면 빙산을 만날 수 있을까. 당신은 비를 맞으며 동물원으로 가고 있다.

 그곳에서 펭귄을 만나리라.

 동물원의 펭귄, 물 위에 누워 나침반처럼 극점을 가리키고 있다. 비에 젖은 당신, 유빙처럼 살아온 삶이었느냐고, 남극을 잊었느냐고 펭귄에게 묻는다. 펭귄은, 극점에 담겨 깊은 바다로 가라앉고 있는 중이다.

 두 눈 가득 남극을 담고

 

 

조동범, 『심야 베스킨라빈스 살인사건』中

 

 

+) 이 시집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시어는 아마도 '죽음'일 것이다. 그가 죽음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삶의 이면이지만,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일부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그가 생각한 것은 하나의 '길'이다.

 

화자 앞에 놓여 있는 길은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다. 화자는 끝없이 뒤를 돌아보는데("남자는 고개를 돌려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청기와 주유소]) 그것은 "아직도 하늘을 배회하"며 "망설"이는 "종이비행기"와 다름없는 모습이다. 그는 길 위에서 걸어가고, 멈추고를 반복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반성과 후회 사이에서 멈칫거리는 그의 단면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방향상실을 몰고 온다. "도심"의 한 가운데서 길을 바라보는 "그"의 앞에 "아득히 휘어진 길"이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그 "길의 끝이 안개에 잠긴"채 막막한 풍경을 드러낸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손바닥에"서 "갈 곳을 잃은 손금만이 수없이 많은 길을 내"는 것처럼,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도심에서 화자는 갈 곳을 잃은 채 수없이 많은 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마술을 파는 심야])

 

끝없이 언급되는 "죽음", "눈(눈동자, 눈망울)", "속도", "식욕(허기, 배고픔)"은 길에서 발견하는 시적자아의 존재감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죽음을 통해서 삶을 조망하며,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눈망울에서 자신과 타자를 발견하고, 육체 혹은 물체가 움직이는 순간들에서 삶을 경험하고, "냉장고"에서 "식욕의 흔적을 더듬"으며([냉장고]) 살아있음과 죽음의 경계를 오고간다. 그 모든 것들이 자아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순간순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시집은 거기서 멈추고만다. 그 이상을 나아가질 못한다. 모든 것을 길 위에서 하나로 모으고 있을 뿐, 역동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지 못한다. 경험한 것들을 통해서 시를 쓰는 시인의 글쓰기 방식은 존중하나, 그로인해 주제가 한정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소재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단점으로 지적하고 싶다. 소재의 반복은 주제의 일관성을 단순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그에게 다른 색깔의 시를 요구한다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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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취인 불명
캐스린 크레스만 테일러 지음, 정영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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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모두는 똑같은 상황에 봉착해 있습니다. 다른 헛되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승리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헛된 삶을 살고 있고 솔직하지 못해요.

                                                                                    p.47

 

 

자유주의자는 무언가 행동하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인간의 권리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지만 그냥 말만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 떠들어대기를 좋아하죠. 그런데 표현의 자유라는게 무엇입니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적극적인 사람들이 하는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일 뿐 아닌가요? 자유주의자만큼 쓸모없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한때 자유주의자였던 나는 자유주의자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며 수동적인 정부를 비난하죠. 하지만 강력한 사람이 떨쳐 일어나고, 적극적인 사람이 변화를 만들기 시작할 때 당신의 자유주의는 어디 있는 겁니까? 자유주의자는 변화에 반대합니다. 자유주의자에게는 모든 변화가 잘못된 것이죠.

                                                                                  p.96

 

 

캐스린 크레스만 테일러,『수취인 불명』中

 

 

+) 나치 지배 하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이 소설은 미국에서 함께 우정을 쌓았던 '막스'와 '마틴'의 서신으로 엮어 전개된다. 독일로 돌아간 마틴에게, 변치 않을 우정을 맹세하며 시작되는 편지는 나치가 지배하게 되면서 긴장감이 들끓는 내용으로 변화한다.

 

한 사람의 사고 혹은 가치관이 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작이 어려울 뿐 한번 변화의 물꼬를 트면 엄청난 속도로 달라진다. 그건 사고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이끌어 간다. 달라지는 세계 속에서 더불어 변해가는 마틴에 대해, 막스는 끝없이 그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며 걱정하지만 마틴은 막스를 "케케묵은 감상주의"자로 몰아갈 뿐이다. 그에게 현실은 어느새 "적극적인 행동주의"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의 목표와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이지만, 그것을 다른 색깔로 만들어버리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회이다. 이미 마틴에게 독일은 적극적인 승리자들이며, 막스는 수동적인 안일주의자이다. 대체 현실에 안주한다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수취인 불명", 이 소설에서는 그것만큼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말이 없다. 절친한 관계를 유지한 독일인과 유태인. 그들 사이에서 "수취인 불명"은 이미 '단절'의 표상이 되었다. 그것은 믿음의 단절이자 현실의 끝이다. 종족과 종족의 갈등, 국가와 국가의 전쟁,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오해 등을 서신을 통해 보여주는 이 책은 꽤 적나라하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지만, 모든 관계의 단절을 던져주며, 믿음의 파괴를 제시한다. 물론 그 바탕에는 나치 하에 주입식 교육으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다.

 

편지 한 장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었던 상황, 그게 나치가 지배하던 현실이었다. 유태인과의 인사 한 마디로 온 가족이 파멸에 이를수도 있는 것. 이 소설은 짧지만 그 모든 것을 순식간에 보여준다. 마치 실화처럼 생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편지의 형식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다. 서술자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 하지만 아무렇게나 중얼거리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생각이 녹아나는 표현들이 요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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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자들 랜덤 시선 11
여태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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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상대하는 일
 

바람이 분다 아스팔트 위에 하얗게 눈칠을 하고 바람은 조금씩 또 다른 바람에게 자신을 숨긴다 파랗거나 노랗거나, 바람의 색은 무수하다 상계(上溪)에서 하계(下溪)로 서로를 지우거나 섞이면서 물은 흐르고, 버스는 하루 종일 같은 곳을 스쳐 지나간다

바람은 지나온 정류소와 이정표를 아무렇지도 않게 옮긴다 바람 속에는 어제의 바람이 있고, 당신의 눈을 아프게 하는 먼지가 있고, 버스 속에는 바람 든 무처럼 먼지를 묻히고 내가 맥없이 앉아 있다 사람들은 버스 안에서 아무렇게나 어울린다

버스를 막 올라탄 소녀의 귓가에 바람은 묻어다닌다 소녀의 저 환한 꽃다발 속에 바람의 씨앗이 있다 바람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세상을 쓰다듬는 법을 알고 있다 차창에 남아 있는 바람의 문신들이 떠나는 이의 뒤숭숭한 마음을 전해준다 졸지 말라고

바람을 피하는 건 무모한 일이다 틈새로 불어온 녹색 바람에 놀라 벌떡 일어선 머리를 보니 당신도 바람이 들었다 얌전히 바람의 세상을 빠져나갈 수 있다면, 하고 내뱉는 당신의 입에도 소리를 내며 바람은 분다 바람이 눈비를 몰고 월릉교를 지나면 새로운 바람의 지도가 만들어질 것이다



여태천, 『국외자들』中

 

+) 시인에게 "불확실"하고 "불명확"한 것들은 "생의 기록"으로 남는다. 이 시집에는 유달리 '말', '소리', '노래', '읽다', '편지' 등의 소재가 많이 쓰였는데, 그것은 "불안"이나 "근심"을 느끼는 현대인의 내면심리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의사소통의 행위로서 '말'이나 '글'은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 매개의 기능을 한다. 각각의 존재들 간에 발생하는 생의 흔적들을 "이야기"하거나 "기록"한다. 그것은 소외받는 것들에 대해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며, 잊혀져가는 기억에게 간직하고 싶은 장면들을 선물하는 것이다.

"바람"은 "문"과 마찬가지로 "안과 바깥(밖)"을 연결해주는 선로에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우선 "문"은 정적인 존재로서 안과 밖 사이에 놓여서, 주체의 위치에 따라 다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바람"은 안과 밖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나, 어느 한 곳에 정착하는 존재가 아닌만큼 동적인 존재로서 안과 밖 사이를 오고간다.

사실과 사실 사이, 명확한 것들과 불명확한 것들 사이, 추상적인 것들과 구체저긴 것들 사이에 "문"과 "바람"이 있다. 그렇다면 좀 더 깊이있게 시를 파고들었을 때,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시집에서는 표층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뚜렷하지 않다. 그것이 시인의 장점일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말하고자 하는 것 앞에서 주춤거리다 마는 기분이 자꾸 든다. 상징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난해한 용어가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의 시를 읽는 것은 만만치 않다. 왜일까.

그것은 여태천의 시가 개인의 경험적인 부분을 무리하여 사회 속으로 끌어내려 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기에 선명한 주제를 발견하기 보다 보여주기와 들려주기에 몰입한 것이 아닐까 싶다. 흔들리는 생의 거리에서 "중심"을 찾기란 어려운 법이다. 안과 밖의 경계에 선 화자는 주변과 중심의 경계에서도 적절한 대응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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