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일즈의 전쟁 -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1 ㅣ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2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새로운 그리고 간만에 재미있게 기대하며 읽을 수 있는 SF 작품 시리즈를 만났다. 마일즈 보르코시건! 열일곱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대단한 녀석이다. 물론 엄청난 가문, 즉 황제의 섭정을 했던 바라야 최고의 가문 후계자라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그를 성숙하게 만든 것은 그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암살 음모의 희생양이 되어 건강하지 못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 때문에 수많은 고민을 했어야 했다는 것이 그를 크고 대단하게 만든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뼈가 부러지는 병이기 때문에 어렵게 얻은 사관생도 입학 체력 시험에서 다리가 부러져 떨어진 마일즈는 낙담한 채 그의 가신이자 태어날 때부터 자신을 지켜 준 보타리와 그의 딸 사랑하는 엘레나와 함께 어머니의 나라로 외할머니를 뵙고자 여행을 떠난다. 그곳은 바라야와는 다른 체제로 운영되는 베타 콜로니였다.
마일즈가 그곳으로 가기로 한 이유는 엘레나의 어머니 무덤이라도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사건은 마일즈가 손만 대면 어쩔 수 없이 커져만 간다. 도대체 마일즈의 머리에는 무엇이 들어 있고 그의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그는 역시 타고난 군인이었다. 피는 못 속인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 일이 그와 그의 부친의 정적들의 표적이 될 줄이야...
이 작품은 우선 마일즈의 신체적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전진하는 모습 속에서 기회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마음만 먹었다면 그저 백작으로 탱자탱자 유유자적 방탕한 생활을 할 수도 있었을 테고 부정하게 사관학교에 입학하려고 했다면 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위에는 그에 걸 맞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고 자신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많은 이들의 목숨을 책임져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그의 백그라운드는 그에게 장점이자 약점이 된다. 또한 자신의 능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면 내 것이 될 수 없고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지만 그는 어린 나이에 이런 우리가 배워야 할 점들을 보여주고 있어 그 어떤 CEO가 되는 법 같은 책보다 백배는 낫다. 누구나 자기 그릇에 맞는 인물로 성장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것 또한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 노릇을 못하는 이들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바라야라는 나라와 베타 콜로니라는 나라는 중심에 놓일만한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그들 생활상만 가지고도 두 나라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마치 중세 영국과 현대 싱가포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아니 중세와 현대의 지구의 모습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말에 걸맞게 좀 더 다양한 행성들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을까 예측해보는 재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슐러 르 귄의 작품과 같은 완벽한 이중 구조로 볼 수는 없겠지만 다 나름의 장점이 있는 거니까. 새로운 우주가 배경이 된다는 건 이런 매력이 있어 보게 되는 점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보타리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사실 많이 기분이 상했다.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승자와 패자 사이에 그 어떤 것도 묵인될 수 있다는 식의 작가의 발상은 너무도 위태로워 보여 충격적이었다. 물론 그 일을 한 개인에게 물어서는 안 될지 모르지만 개인이든 국가든 잘못을 덮어두려는 생각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이 시점에서 마일즈의 모든 것은 마음에 들지만 작가가 군국주의자는 아닌 가 의심이 들었고 어떤 것을 참고해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스타십 트루퍼스>를 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중요한 장면이고 마일즈 일생의 전환점이 되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점이었다. 이 장면만 없었더라면 정말 개운하게 읽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추천하고 싶다. 마일즈의 성장 과정과 무엇보다 추리적인 면도 등장하는 점은 나를 끌어당기는 또 다른 매력이다. 이 매력적인 시리즈가 모두 출판되기를 바란다. 이 작품을 보지 않고 넘어간다면 진정한 SF 독자라 할 수 없을 것이고 SF 독자나 장르 소설을 싫어하는 분이나 잘 안 보는 독자라도 성장소설로 보면 대단히 좋은 작품이다.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의 뜻을 이뤄가는 마일즈는 우리가 꿈꾸는 자아이고 또 우리 아이들에게 바라는 모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