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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는 나는 내내 사랑이 하고 싶었다. 지난 시간이 둑을 허물고 쏟아졌다. 그리움이 넘쳐 내내 마음이 휘청거렸다. 그의 여행으로부터 기록된 글들은 자꾸만 나의 가장 연약한 곳을 건드리며 나를 괴롭혔다. 깊이 사랑했던 이의 흔적을 마음으로만 내내 어루만지다 불쑥 소식을 듣게 된 것처럼, 나는 고통스러우면서도 설렘으로 뛰는 심장의 움직임을 느꼈다. 가라앉을 줄 모르는 여운이 뜨거운 계절의 볕 아래서도 나를 서럽고 울적하게 했다.

 

떠나지 못해서라고, 그렇게 이유를 달아야한다. 그래야만, 내가, 덜, 비참해질 테니까.

 

 

 

여행은 내게 꿈이고 허상이며 미래이거나 그림자에 불과한 일이다. 떠나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떠나고픈 마음도 잃어버린 지 오래. 그 마음을 오래 입어온 옷처럼 익숙하게 걸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을 와락 끌어안을 수 있는 건 내 안에 그리움이 있고 사랑이 있어서가 아닐까. 그 마음을 더듬는 것만으로 나는 잠시 소녀가 되었다. 잃어버렸던 단어, 설렘. 두근거림. 마음속으로만 더듬는 누군가의 얼굴. 작가의 몸은 낯선 나라에 놓여 있지만 마음은, 생각은, 글은, 늘 사람과 사랑을 향해 있었다. 낯선 곳에 있지만 그는, 여행은, 이야기는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변종모 작가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 제목에 끌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을 처음 만났을 때, 작가의 따뜻한 사진과 섬세한 글들이 너무 좋았다. 사랑에 대한, 마음에 대한, 이별에 대한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를 책 속으로 깊이 이끌었다. 책 모서리를 접으며 읽다가 접혀지는 페이지들이 많아질 것 같아 그만 두었던 기억. 어디를 펼쳐 읽어도 메마른 마음을 위로받기엔 충분했다. 읽을수록 마음은 고요해지고 담담해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작은 위안, 같은 것이었을까.

 

 

 

이번 책,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에는 이전 책에서도 만날 수 있던 변종모 작가의 여행지에서 얻은 마음과 생각, 사람과 더불어 '음식'에 대한 기억들이 담겨 있다.

그의 여행은 하나 하나의 평범하고도 소소한 음식으로부터 기록되고 있다. 한강 작가가 자신의 소설 속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파키스탄의 '훈자'. 설산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는 곳에 그는 있다. 똑같은 슬픔을 가졌던 적이 있는 여자와 함께. 두 사람은 다시 우연히 만났고 한 끼의 식사를 나누려 한다. 하얀 쌀밥과 고소하게 만들어진 감자볶음이 전부인 가난한 식사지만 그 가난한 밥상도 진수성찬이 되고 큰 위로가 될 수 있는 건 음식의 온기가 사람의 체온을 닮았기 때문이다. 여행길에서 병이 난 자신을 위해 과일과 야채를 사서 흉내 내었던 어머니의 물김치. 그것이 담긴 병을 다른 여행자들의 음식이 쉬고 있는 냉장고 속에 넣으면서 내내 맘을 쓰던 모습. 그는 후에 뜨거워지는 코끝을 느끼며 물김치를 마셨을까.

 

저자는 여행길 위에서 자신의 눈과 귀와 입술에 닿았던 음식으로 깊이 위안 받고 치유된다. 음식을 먹음으로써 나아갈 길을 얻고, 내일을 기대할 마음을 얻는다. 그는 여행지에서 기억속의 음식들을 꺼내 만들고 먹으며 스스로를 응원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했고, 그러다 감정이 넘쳐 울컥 그리움에 떠밀리기도 했다. 그 감정들을 견디며 작가가 건져 올리는 삶의 이야기들은 아름답다. 그것이 고통일지라도, 아름다워서 너무 아름다워서 선뜻 만져보고 싶게 만든다. 여행지에서 마주보고 있는 낯선 이와 마음을 나누고 싶을 땐 음식을 나눔으로써 그 첫 발을 떼기도 한다. 타인과 나눌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온기. 음식이 주는 든든하고 평온한 위안. 그는 길 위에서 그것을 나누며 여행길을 만든다. 낯선 곳에서 자신의 발자국을 사람들의 가슴에 새기어 가는 일. 그렇게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는 힘을 비축한다. 여행이 계속된다.

 

 

 

 

내가 잠시 당신에게 빈 그릇이었나 보다.

 

문득, 텅 빈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길을 나섰고, 자주 누군가가 빈 공간을 메워주기도 했지만 그만큼 허기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걸었다. 걷지 않으면 만날 수 없고 만나지 않으면 채워질 수 없던 많은 공복의 날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생각이 나를 길 위로 내몰았다.

 

그리고 길 위에서 알았다.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자신의 빈 공간을 영원히 채울 수는 없다는 것. 결국 빈 공간은 처음부터 나의 것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반쯤은 빈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허기질 것이다. 그래서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연습을 했어야 했다. 당신이 내 마음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부풀려 당신을 밀어낸 건지도 모른다. - p.72, '8. 빈 그릇' 전문

 

 

우리가 각자 짊어진 모든 것들은 세상이 준 것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가지려 했고 원했던 것이다. 누구도 나에게 부담을 준 적이 없다. 단지 내 마음의 허기와 내 생각의 허영이 만들어낸 무게를 따라 스스로 짊어지고 사는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누구도 권하지 않는 일을 내가 선택한 것이므로. 이제 이것을 알았으니 그만 내려놓고 가뿐해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슬픈 마음으로 술을 마시지 말라. 술의 힘을 빌려 위로하지 말라. 알코올의 힘으로 휘발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잠시 자신을 속이고자 깊이 취하지 말라. 스스로 도취되어 위로하는 마음은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p.75, '9. Saperavi, 2009, Dry Red Wine, Georgia' 중에서

 

 

그녀는 나의 마음을 읽었을까? 그것이 부끄러워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어차피 돌아갈 곳도 마땅치 않고 내 집이 어디인지도 모르겠으니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말이에요."

 

그녀는 세상에 그런 곳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설령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에 들어 있는 것에서부터 멀어질 수 있나요?" -p.229, '27. 그대의 집은 어디인가' 부분

 

 

우리의 삶이란, 나무에서 떨어진 그린 파파야처럼 정해진 시간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배분하여 정확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예측하며 적절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란 반드시 그 안에 끝을 내고 다음 단계로 건너야 할 어떤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것에 도달하는 그때가 바로 정해진 시간이다. 조금 늦는다 해도 혹은 아주 많이 늦어진다 해도, 그 시간을 사는 동안 우리는 끝내 최선을 다할 것이므로. 우리는 세상이 맞춰놓은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인생에 각자의 시간을 맞추며 사는 것이므로. 한 번뿐인 삶이니까. 세상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니까.

 

-p.285, '33.더 늦기 전에, 그린 파파야' 부분

 

 

 

우리는 여행을 고된 삶으로부터의 도피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여행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과 너무나 닮았다. 낯섦과 싸워야 하고, 끊임없이 어딘가로 나아가야 하고, 때론 타인과 옥신각신해야 하기도 하며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가 반드시 있다. 하지만 그 때, 그래도 여행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순간을 너그럽게 감수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그런 불안을 느낄 때, 우리는 죽고 싶은 감정을 느낀다. 사는 공간과 여행하는 공간이 무엇이 다른가. 내 마음이 다른 것뿐이다. 내가 여행하는 곳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다. 불행을 바꾸기 위해선 내 마음을 먼저 바꿔야 한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던 글이 내 마음이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요리는 누군가를 향한 기록이 되었다. 먹고 마시는 일에서 배고픔을 어루만지고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일의 따뜻함을 느꼈다. 내가 하는 요리가 의무감을 떠나면 가족의 허기진 맘을 채워 든든하게 할 수 있는 일이란 걸 느꼈을 때,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고 뜨거웠다. 체기가 있는 아버지를 위해 쑨 야채죽. 아이가 저녁메뉴로 고른 볶음밥. 가족등반대회 날 아삭한 오이와 부드러운 어묵을 넣어 싼 김밥. 햄과 오이로 만들었던 간편 샌드위치. 따뜻한 계란 토스트. 카레까지…… 그것은 부러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음식을 먹어줄 누군가에게 체온이 되고 뜨거운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누군가의 끼니를 챙겨주는 일은 사랑을 나누는 일이며 그 사람과 삶을 나누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전까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던 내 삶이 조금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여행 속에서 삶을 길어 올리는, 그 삶이 여행과 닮았음을 다시 한 번 인정하게 하는 책이었다. 따뜻하고 섬세했던, 눈물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던 글들 밖을 나오며 나는 사랑을 끝냈다. 마음으로만 마음으로만 만지던 감정을 작게, 좀더 작게 접혀 기억 한 쪽에 옮겨놓자 어느 새 새 계절을 준비해야 할 때에 섰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처럼 짐짓 비장하다.

 

그의 여행은 내게 불가능한 여행이 아니라 가능한 여행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는 여행, 에 대한. 사랑에 대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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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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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를 찾아 읽었다. 천천히 옮겨 적었다. 새벽 2시의 고요함 사이에서 그것은 어떤 의식처럼 행해졌다. 마음이 알 수 없이 든든했다. 잠이 들고 싶지 않았다.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 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들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와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데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그녀의 글을 읽는 일은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는 일 같았다. 숲과 바다가 생동하며 바람이 다정히 지나가고 동물들이 우리와 시선을 나란히 한. 인간이라는 권위가 사라지고 오롯이 내가 숨 쉬는 곳 가장 가까이에 그들은 나와 함께 살아 움직이는 듯 했다. 그녀의 문장은 쉴 새 없이 그들의 생명력을 예찬하고, 자연의 품에서 시인이 받는 위로와 기쁨, 행복감을 아낌없이 드러내었다. 정지된 듯한 그녀의 글에 처음엔 집중하기 어려웠지만 욕심내지 않았다. 천천히, 물을 입에 머금듯이 문장을 읽는다. 책장 속 그녀가 바라보는 풍경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기대도, 욕심도 없이 고요하게 음미해야만 문장은 풍경과 여운을 나눠주었다. 섬세한 감정 묘사와 글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자연의 생생함, 삶에 대한 깊은 시선과 사유들은 우리가 살며 진실로 마음을 쏟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언제나 빠른 속도를 지향하며 편리를 위해 무엇이든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있는 지금.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갇혀 점점 좁은 시야에 익숙해져가는 현실.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떤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일까. 어떤 가치와 어떤 사치가 우리를 풍요롭게 해줄 수 있을까.

그냥 그녀의 글을 읽었을 뿐인데, 내 안으로 바깥이 들어왔다. 귀여운 초록 잎을 매단 나무와 노란 봄꽃들, 푸르러진 산의 전경이, 비가 오려는 어두운 하늘이 들어왔다. 낯선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듯이, 모두가 인기척을 가지고 다가왔다. 등을 마주 데고 앉아 잠들고 싶은, 그런, 따뜻함. 위로 혹은 희망 같은 것.

 

 

문제는, 삶에서든 글쓰기에 있어서든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독한 날씨는 이야기의 완벽한 원천이다. 폭풍우 때 우리는 무언가 해야만 한다. 어디론가 가야만 하고,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기쁨을 느낀다. 역경, 심지어 비극도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스승이 된다.

우리 모두 도전과 용맹을 찬양한다. 바람 없는 날 단풍나무들이 천개를 길게 드리우고 푸른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을 때, 어느 향기로운 들판에서 불기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안 된 바람이 살그머니 우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 우리가 하는 건 무엇인가? 너그러운 땅에 누워 편안히 쉬는 것이다. 그리고 잠이 들기 십상이다. -p.62, '완벽한 날들' 중에서

 

 

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바라지 않게 되었다. 그저 무탈한 하루와 가족의 건강, 좁은 방에 여러 개의 이불을 깔고 함께 누워 서로 포개어져 자는 일. 그 하루에 늘 겸손하며 감사할 따름이다. 거기에 '찾아오는 장소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는' 비와 이른 아침의 산책과 포근한 햇살 속에서 느끼는 '돌연 발작적인 행복감'이란 삶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덤'이라 생각한다. 쫓기듯 사는 삶 속에서 자연이 주는 쉼표들을 무시하고 산다면, 그건 여백 없는, 여운 없는 시간만을 살아 넘기는 일밖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일상과 그녀가 애정한 자연과 넘치는 사랑으로 써내려간 시들, 노래들. 천천히 음미할수록 그것은 짙은 향으로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내 삶에 쉼표를 찍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산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온 고통과 시련을 쉬이 인정하지 못하고 견디려하지 않고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몫의 고통을 넘겨내려고 힘써 그 고통 속으로 몸을 밀고 나아갈 때 나를 억누르는 듯 했던 무게는 어느덧 사라지고 희망이 저 발치에 있었다. 두려움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고 했던가. 나는 어쩌면 우리의 삶이 내가 읽어간 이 한 권의 책과 같은 무게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 두 손에 포옥 안기는 이 한 권의 책만큼 삶은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고 비에 젖기도 하며 그 흔적들에 위로받기도 한다. 메리 올리버, 그녀의 문장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신이 누구든, 어떤 시간을 살아내고 있든 당신이 시작한 오늘이 바로 완벽한 날들이란 것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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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책 읽기 - 그 시절 만난 책 한 권이 내 인생의 시계를 바꿔놓았다
김경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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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생각한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대학교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조금은 삐뚤어져 볼걸. 교과서 밖의 것에 마음을 줘 볼걸. 철저히 혼자여 볼걸. 그 때는 그것만이 오직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성적이 떨어질까 봐, 대학에 가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시간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부모님께 좋은 자식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매일 독서실에 갔다. 문제집을 풀었다. 정리 노트를 채웠다. 그러면서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막연한 꿈이었다. 책을 읽지 않으면서 시를 썼고 논술을 했다. 도무지 그 글들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글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강의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학점을 쫓았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하는 사람 없이 스스로 훈련해야 하는 대학생활은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동경하는 작가의 소설과 시 만을 읽었다. 고르지 못한 독서는 식탐과 다르지 않았고 내 안에서 허상과 탐욕의 씨앗이 되었다. 노력과 희망이 아닌, 나도 그들과 같아지고픈 헛된 욕심뿐이었다. 고등학생인 나에게 누군가 고전 한 권을, 세계문학 한 권을 권해왔더라면. 교과서 밖의 책들을 만날 수 있었더라면. 대학시절 다양한 책을 읽었더라면. 겸손했더라면. 혼자 무언가와 치열히 싸우려 시도해보았다면. 나는 지금과 많이 달라져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그 시간을 열렬히 그리워하게 될 줄은 나를 반성하게 될 줄은 몰랐다. 대학에 들어감과 동시에 고등학교 시절은 잊고 싶었고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와 그 시간이 영영 사라진 것이 너무나 슬프고 아플 때가 있다. 혼자일 수 있었던, 자유로웠던 그 때. 그 때의 가치를 너무나 몰랐다. 그리고 살아버렸다. '이 책에 등장한 서른여섯 권의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낯모르는 젊은이'가 나는 이 순간 진심으로 부럽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지나간 그날들을 떠올렸고 지독한 후회를 앓았다. 지금, 그 순간을 살아갈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저자는 책의 제목처럼 자신을 바꿔 놓은 책들에 대해 이제 막 입시를 벗어 난 젊은이들, 사회 초년생들에게 이야기한다. 그것은 저자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어느덧 스물 셋부터 서른한 살이 된 그들을 떠올려 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글은 진실하고 애틋하며 열렬하다. 저자가 지나 온 시간이며, 스스로 열심히 싸우고 앓아 넘긴 시간 끝에 맺은 열매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20대를 휘두르는 단어들 - 비주얼, 자존심, 스펙, 야심 등. 자신을 취업으로 이끌어 줄 요소들을 채우는 데에 급급해져 버렸다. 독서보단 외국어 점수를 올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데에 진솔한 이야기와 성실성보다 자격증과 토익성적이 필요한 것 현실. 우리는 사람을 '이해'가 아닌 '평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은 20대 만의 현실이라 할 수도 없다. 직장에 적응한 30대도, 40대도 , 퇴직을 앞둔 50대 퇴직한 60대도 자신을 감싸고 있던 사회적 위치와 주변 시선으로부터 늘 불안을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남이 바라봐 줄 자신의 겉모습에만 신경을 쓰며 산다.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기를, 그들이 나를 높이기를, 그들보다 내가 더 갖기를 열망하고 집착하면서 삶을 삶답게 살아가지 못한다. 피투성이로 싸우며 끌려간다. 그리고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야, 라고 자포자기 한다.

 

 

지금 내 마음의 한가운데를 채운 것은 무엇인가. 남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필요했던 '그럴듯한 비주얼'에 대한 집착,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던 이런저런 물건들, 잘난 척하고 싶어 몸이 달아 해댔던 온갖 짓거리들로는 결국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물거품처럼 반짝하다가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내 마음을 조금씩 채워 나를 허깨비가 아닌 나 자신일 수 있게 만들고 동시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게 만든 것은 바로 문장들이었다. -p.35, <내 마음을 채운 것들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중에서

 

 

학창 시절엔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로 보였다. 성적을 올리고 시험에 합격하는 일만큼 중차대한 일은 없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일의 성취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었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처럼 가볍고 변덕스러운 것을 잡으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보다 백배 천배 어려운 일이 있음을. 그것은 바로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 임을.

-p.146, <내 마음의 주인으로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에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진솔하게 책과 연결하여 펼쳐낸다. 학창시절 겪었던 갈등과 후회의 시간들. 그것은 내가 앓고 있지만 문장화할 수 없었던 감정과 이미 지나온 이의 담담한 깨달음이었다. 읽으면서 마음이 뜨거웠다. 살면서 늘 바깥만 바라보고 지냈다. 날 인정해주는 사람이 많았으면 싶었고, 그러지 못할 때마다 괴롭고 쓸쓸했다.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나는 나답게 피어나지 못했다. 사람들의 시선과 말에 휘둘려 삐뚜름하게 자라났다.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내 이름을 단, 누군가에게 필요를 원하는 사물이었다. 어떤 불행을 직시한 느낌. 내가 정말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에 대한 저자의 글을 통해 왕따란 누가 만든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고,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는 인문학 공부의 중요성과 가난은 무지로 인해 스스로 껴안을 수밖에 없는 고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에 관한 글을 통해서는 엄마에 대한 추억과 지금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 밖에도 많은 책들이 저자의 깊이 있는 생각과 어우러져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그것은 자기반성이 아닌 내 안을 들여다보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추억과 상념에 젖는 일. 식구가 모두 잠든 방을 나와 작은 방에서 홀로 되어 생각에 잠기는 일. 내 안에 무언가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 이었다. 그 마음이 지금 이 글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여기에 그 증거가 있다.

 

나의 독서에 대한 생각도 있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이 비단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독서는 아니었는지. 무의미하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언제나 의식적으로 해야 할 일처럼 읽었던 책들의 목록을 잠시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후회는 깨달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깨달았기 때문에 그것의 잘못됨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후회를 거듭하며 자신의 삶을 좀 더 곧게, 좀 더 바른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가족을 꾸리고 살다보니 알게 되는 주옥같은 깨달음도 있다. 마음의 가난이 몸을, 내 삶을 빈곤하게 함을. 삶에서 중요한 것이 부와 명예보다 평범한 삶에 있음을.

 

저자의 '인생의 시계'를 바꿔놓은 독서 기록들을 읽으며 내가 걸어갈 시간의 틈에서 청춘을 어루만질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행동은 결코 늦지 않는다, 는 말처럼 나는 지금이라도 무엇이 되어보고 싶은, 될 수 있다는 설렘을 느낀다. 책을 덮으며 부끄럽게도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 많아 꼭 숙제를 받은 기분이기도 하지만, 이런 숙제라면 두고두고 해도 좋겠다. 이제 나는 바깥에 연연하지 않는다. 나의 '안'에 더 넓은 삶과 기쁜 내일이 있으므로. 나는 그곳에 더 열중하기로 한다. 나의 기준은, 나다.

 

 

생각해보면 비주얼이나 스펙, 야심이나 자존심의 공통점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그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비교'가 필수적인 개념인 것이다. 내가 아무리 뛰어난 비주얼과 스펙을 갖추었다해도 나와 비교해서 월등한 비주얼과 스펙을 갖춘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나의 자존심을 세우고 꺾는 주체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며, 나의 야심이란 것도 알고 보면 남과의 상대적 비교 우위일 때가 많다. 이에 반해 스토리와 자존감, 진심과 통찰은 절대적이며 자기 충족적이다. 그것은 굳이 남과의 비교를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그 자체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점에서 성장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해가며 성공이라는 것을 했다고 하더라도, 정작 내면이 성장이 멈춘 채로 황폐해져 있다면 그것을 진정한 성공이라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p.6~7, 들어가는 말 부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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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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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엄마, 라고 적는다. 평범한 그 이름이 지금의 내겐 전부다. 다른 일은 없다. 그저 어린 두 아이를 챙겨 먹이고 무탈하도록 돌봐주는 일에 내 시간의 대부분을 쓴다. 그러다 내 시간이 내 시간이 아닌 듯해 슬프고 아플 때가 많다.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밤12시를 넘어야 하지만 아이들을 재우다 함께 잠드는 날은 그것조차 건너뛰어야 한다. 3월 한 달 가까이 정형외과를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았다. 마음이 고단한 것이 몸으로 번지고 있는 것일까. 어제부터는 눈이 심상치 않더니 약국에 들러 다래끼 약을 사야했다. 불편한 눈 때문에 거울 앞에 섰다. 내가 그토록 참혹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다른 이들도 이렇게 힘들게 아이를 키울까. 나만 요란한 것은 아닐까. 왜 이토록 연약하고 못났을까. 좀처럼 표정이 밝아지지 못했다. 하루하루를 어제로 떠넘기기에 급급하며 지냈다. 그나마 빠르게 지나가는 날짜만이 고마웠다.

 

그 시간들 가운데서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를 한 장, 한 장 명상하듯 읽었다. 동시에 '나'라는 책도 함께 펼쳤다. 고통은 읽으면 아름답지만 견뎌낼 땐 너무나 버겁다.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삶의 길을 돌아보며 나는 이토록 작은 점에 불과한데 무얼 더 얻으려는 마음으로 늘 복잡하게 살아왔는지. 내가 사소한 것에 매달리며 힘을 빼느라 정작 그 힘이 필요한 곳에서는 우울해하며 좌절했던 것은 아닌지. 시작부터 책은 내 시선을 나 자신에게로 돌려놓고 있었다. 이 이야기의 중심이 바로 ‘지금’, ‘나’ 에게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했다.

정호승 작가가 7년 간 시간의 힘으로 얻은, 자신에게 용기를 준 영혼의 양식들은 작가 스스로의 말이기도 하고, 어머니가 하신 말씀, 존경하는 스님이나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 또 작가나 선현들의 말씀이나 속담 등이기도 하다. 그 말이 작가에게 깊은 용기로 다가올 수 있었던 일상 이야기와, 그 깨달음이 작품으로 어떻게 이어져 어떻게 쓰여졌는지도 읽어볼 수 있다. 시집 밖에서 그의 시를 이야기와 함께 읽으니 더 애틋하고 말랑말랑하게 느껴졌다.

 

 

분노는 벌레처럼 저를 갉아먹습니다. 어떠한 분노든 제 인생을 쓰러뜨립니다. 분노에서는 제 인생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긍정성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하는 단 하루라도 분노하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p.107, '해가 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라' 중에서

 

인생의 장미도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게 아니라 고통과 절망의 가시에서 향기가 납니다. 장미의 존재성이 아름다운 꽃에 있는 게 아니라 날카로운 가시에 있듯이 내 삶의 존재성도 바로 고통에 있습니다. 실패의 고통 없이 성공의 기쁨만을 원한다면 가시 없는 장미를 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장미라면 내게 반드시 가시가 있어야 합니다. -p. 126,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시 많은 나무에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 중에서

 

고통을 극복하려는 것은 고통에 대한 저항의 자세입니다. 그런 자세를 지니면 지닐수록 고통은 더욱 고통스러워집니다. 그러나 고통에 대한 견딤의 자세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세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받아들이지 않고는 고통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p. 162,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견디는 것이다' 중에서

 

 

76개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알면서도 몸으로 실천하지 못했던 삶의 방향을 담고 있다. 삶의 소박함과 겸손함 -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여 나아가면서도 늘 겸손하며, 분노에 힘을 쏟는 어리석음을 피할 것. 고통 없이 삶은 나아갈 수 없고 행복도 꾸려질 수 없으니 고통은 받아들이며 행복엔 매달리지 말 것. 지나간 일과 앞선 걱정보다는 지금에 집중하여 삶을 살아갈 것에 대한 지침들. 그것만이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삶을 가져다준다는 것.

이토록 많은 깨달음 속에 놓인 작가도 작은 바람에 휘둘릴 것을 두려워하며 계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내가 어느 곳에 마음을 쏟아야 하는 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책 앞에서 내 '지금'을 돌아다본다. 어떻게 살고 있는가, 에 관한 피하고 싶던 생각들을 꺼내어본다.

에세이를 읽는 이유가 이런 것 아닐까. 삶의 길 위에서 나보다 앞서 걸어가는 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장애물이 있는 곳이나 돌아가야 할 길, 거기서 다시 일어서야 하는 이유와 쉬어가는 여유를 배우며 나만의 다른 길을 생각해 볼 마음을 정비하는 것. 그것을 내 것으로 이루기 위해서 나는 보다 짙은 삶이 묻어나는, 에세이 책을 읽는다. ~해야 한다, ~해라 하는 명령조의 문장을 버린 작가의 겸손한 문장에서 삶과 경험과 생각을 만날 수 있는 책. 그것은 때로 나를 꾸짖고 부끄럽게 하며, 깊은 공감으로 내 안에 들어와 겸손하고 소박한 마음을 갖게 한다. '내 인생'에 대한 애착과 느긋함을 갖게 하며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할 용기를 준다. 내게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는 그런 책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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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기술 밀란 쿤데라 전집 11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 민음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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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에세이, 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막연했던 뜻이 명확해지고 이 책이 왜 에세이 분야에 속해 있을까를 다시 생각해야 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문학이론 분야로 분류되어야 할 것 같았던 책. 『소설의 기술

밀란 쿤데라 책을 소설이 아닌 이론집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어쩜 그의 소설을 한 편도 읽지 않았는지. 나의 게으른 독서 이력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이야기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예상대로 낯선 내용들에 시선은 활자 위를 겉돌았고 좀처럼 깊게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어설프게나마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겨갈 때 순간순간 가슴을 환하게 하는 문장들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 점점 또렷해지는 단어 하나. 소설. 사건과 줄거리를 담고 있는 이야기로써가 아닌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있는, (내가 읽고 덮고 잊어버리는, 우리 곁에서 무수히 태어나고 죽는) '소설이란 무엇인가' 에 관한 생각.

 

 

1부, 세르반테스의 절하된 유산 에는 에드문트 후설이 남긴 유럽의 위기와 유럽 인문정신의 소멸 가능성에 대한 유명한 강연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후설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철학은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를 풀어야 할 의문의 대상으로 파악했으며, 그것은 이러저러한 실제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앎에의 열정이 사람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근대 초기, 갈릴레오와 데카르트가 세계를 단순히 기술적이고 수학적인 개발의 대상으로 축소하고 인간의 삶이 아닌 기술과 과학의 전문화된 분야에 사람들을 몰아넣으며 사람들을 '존재의 망각'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위태로움이었다. 밀란쿤데라는 이 의견에 대해 '철학과 과학이 인간의 존재를 망각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바로 이 망각된 존재를 찾아내려는 유럽의 위대한 예술이 세르반테스와 더불어 형성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소설이 인간을 따라다니며 인간의 구체적인 삶을 살피게 하고 '존재의 망각'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었다는 것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소설은 나름의 방식과 고유한 논리에 따라 존재의 상이한 면모들을 찾아냈다. 세르반테스의 동시대인들과 더불어 소설은, '내면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와 감정의 은밀한 삶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발자크와 더불어서는 역사에 뿌리내리는 인간을 발견한다. 플로베르와 함께 소설은 그때까지 미지의 세계였던 일상의 지평을 탐사한다. 톨스토이와는 사람들의 결정과 행위에 개입하는 비합리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시간을 탐색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와 더불어 붙잡을 수 없는 과거의 순간을, 제임스 조이스와는 붙잡을 수 없는 현재의 시간을 탐색하는 것이다. 토마스 만과 더불어서는 시간의 밑바닥세서 유래하여 우리 발걸음을 원격 조정하는 신화의 역활을 묻는다. -p.14

 

 

소설은 작가의 탄생과 그들의 고군분투로 태어난 글에 따라 행로를 만들어왔으며, 그것은 근대의 역사와 더불어 이어져 왔다. 소설가들은 '소설만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었고 그것을 소설 속 인물에 투영해 이야기를 꾸려왔다. 그러한 행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소설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그것은 근대의 종말이면서, 새로운 미래와 새로운 예술을 위해 사라지게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매스미디어의 장학. 그것은 세계를 축소했다. ' 인류 전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단순하고 상투적인 똑같은 내용을 전 세계에 퍼뜨린다. 그것들이 가진 서로 다른 기관지들이 상이한 정치적 이해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표면적 상이함의 이면에는 동일한 정신이 군림한다. (p.33)' 그러나 이에 대해 밀란쿤데라는 말한다.- 소설의 존재 이유란 무엇일까. 그것이 우리를 '존재의 망각'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라면 오늘 날, 매스미디어가 장학하여 개개인의 모습을 똑같이 만들어버리는 이때에 소설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닐까. -라고. 밀란쿤데라는 소설의 죽음, 활자의 죽음을 당연시하는 이들에게 소설이 가진 시간의 연속성과 매개성을 이야기한다. 이제 '앎의 어려움과 잡을 수 없는 진실의 어려움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하는 세르반테스의 원숙한 지혜는 거추장스럽거나 쓸데없는 것으로 보일 뿐' 이다. 현재에 고정된 시대의 정신을 버리지 못하면 시간은 현재의 순간으로만 축소되고 이 같은 체계에 휩쓸린 소설은 더이상 작품이 아닌, 시사적 사건과 내일 없는 몸짓이 될 수 밖에 없다. 소설이 소설로써 '진보'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세계의 진보에 역행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p.35)는 것.

밀란쿤데라의 소설에 대한 애착과 그 위기에 대한 호소가 느껴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소설이란 유희와 도피를 위한 것이 아닌 인간의 생각을 촉발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다리 역활을 한다는 것을 느꼈다. 글의 힘이 절실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소설은 세르반테스의 원숙한 지혜를 과연 버릴 수 있을까, 밀란 쿤데라 제목엔 절하된 유산이라 표현했지만 글의 마지막엔 세르반테스의 절하된 유산 말고는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고 쓰고 있다.

 

 

2부 소설의 기술에 관한 대담 에는 살몽과 쿤데라의 대화의 기술로, 쿤데라의 작품에 대한 작가 본인의 이야기와 의견을 들을 수 있다.

 

 

모든 시대의 소설은 자아의 수수께끼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당신이 어떤 상상의 존재, 인물을 창조해 내는 순간부터 당신은 저절로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에 의해 포착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죠. 소설 자체가 지닌 근본적인 물음 가운데 하나입니다. -p.40

 

 

밀란 쿤데라 유럽 최초의 소설들은 심리적 접근법이 아닌 행동과 모험을 기술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꾸려냈지만 그 이면엔 사람은 '행동에 의해 모두가 서로 그렇고 그런 다람쥐 쳇바퀴 같은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 행동에 의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어 한 개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쿤데라의 소설이 가시적 세계보단 내면의 삶으로 시선을 기울이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쿤데라는 심리 중심의 소설이 인간의 내면적 삶에 대한 탐구의 길로 들어서게 한 리처드슨을 시작으로 괴테, 콩스탕, 스탕달, 그 뒤를 이어 프루스트와 조이스에서 극점을 이루며 그 뒤로 새로운 지향을 가진 카프카 이어진다, 고 설명한다. 그들의 작품이 그에게 준 인상과 영향력은 그가 그들의 작품을 애정어리게 설명하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우스운 사랑들』, 『삶은 다른 곳에』 와 단편 속 인물들의 대화와 행동을 짚으며 그들의 자아를 포착하는 방법으로 '실존적 약호'를 포착한다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 그것은 인물의 열쇠어와 같은 것으로 개개인에게 전혀 다른 이름을 갖으며, 행동과 상황을 통해 점차 나타난다. 그는 소설 속 인물을 작가라는 이름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며 그들이 움직이길 기다렸다. '보시다시피 저는 야로밀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제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 주는 겁니다. 제가 만든 인물인 야로밀을 오랫동안 관찰한 후 저는 한 걸음씩 그의 태도의 심장부로 접근해 그 태도를 이해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여 주고 그것을 포착하는 것이죠.(p.49)'

 

그에겐 자신의 소설 속에서 역사를 최대한 경제적으로 취급하며 그 가운데서도 인물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사회적 역사를 기록한 역사적 연대기를 배제하고 인간의 연대기를 이용해 역사적 분위기를 암시한다. 역사가 인물의 행동과 연결되지 않는 한, 소설에 특별한 영향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p.58~57)

 

 

3부 『몽유병자들』에 관한 단상들 에서는 브로흐의 『몽유병자들』을 분석했다. 삼십 년 동안의 유럽 역사를 포괄한 3부작으로 각각의 시간에 갇힌 인물들의 생각과 행위를 통해 '실존의 가능성'을 포착하고자 한다. 브로흐는 외부의 비합리적인 체계가 이성적인 생각보다 얼마나 더 우리의 태도를 좌우하는지,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은 혼란스러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브로흐는 그것을 '다주제적'인, 다양한 분야의 '오직 소설만이 찾아낼 수 있는 것'을 추적해 소설을 쓰는 것으로 집중해 표현했다. 이것은 인간의 존재를 비추기 위해 모든 지적 방법과 시적 형식 들을 동원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쿤데라는 그의 위대함을 이 부분에서 꼬집고 있다. '시나 철학은 소설을 포용할 수 없지만 소설은 시나 철학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하더라도 소설의 정체성을 조금도 잃어버리지 않는다. (p.98)

 

4부 예술의 구성에 관한 대담 에는 2부에서 이어지는 그의 창작론을 읽을 수 있다. '소설의 건축술과 음악술'에 대한 것으로 그의 소설이 7부나 6부으로 나눠 써지는 것과 각 부나 장마다 음악의 템포 변화와 같은 분위기의 변화를 두어 정서적 분위기의 변화까지를 이끌어 내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것이 미리 짜두고 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 하니, 소설가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부 소설에 관한 내 미학의 열쇠어들 에서는 쿤데라 작품의 '실존적 약호'라 할 수 있는, 작품에 쓰인 언어들에 대한 그의 의견과 설명을 만날 수 있었다.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는 장이었다. 그가 이렇게 단어들을 정리하게 된 것이 수많은 나라로 자신의 소설이 번역되어 나가면서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윤색하고 변질하여 소설이 새로 써지는 불상사를 보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단어 하나 하나가 특별하지 않은 친숙한 것들이었지만 그의 설명과 함께 단어를 만나자 내가 알고 있는 세계는 너무나 비좁았다는 사실, 보다 더 넓은 표현의 세계가 있음을 각성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어의 뜻이 아니라 쿤데라 소설 속에서 의미하는 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으니 그의 단어장이라 해도 무관할 것이다.

 

 

소설가란 역사가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닙니다. 실존의 탐구자일 뿐이지요. (p.67)

 

 

총 7부로 나뉘어진 이 책을 들추고 덮고 접힌 페이지를 다시 쫓아가 읽으면서 글을 썼다. 복잡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어느 만큼은 그의 글을 이해했고 애정했다는 느낌이 남았다. 밀란쿤데라의 소설을 읽으면 무언가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벌써 2년 전 일인가. 은희경 작가님의 낭독회에 갔을 때, 그 분이 밀란쿤데라의 『생은 다른 곳에 』를 곁에 두고 보신다고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

리뷰 마감일을 맞추기 위해 마음이 급했고, 또 이해하지 못할까봐 미리 겁도 먹었지만 그 마음이 무색하도록 이 책은 내게 소설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가져다 주었다. 10년 전, 글을 쓰고 싶었던 내가 젊은 작가들의 소설만 읽자 교수님은 내게 고전을 먼저 읽을 것을 권했었다. 젊은 작가들의 문장이 샘이 났고 그들처럼 쓰고 싶었던 나는 그분의 충고를 실천하지 못했다. 내 문장은 젊은 작가들을 따라하기에 불과했고, 오롯이 내 문장이 되지 못했다. 그 시절, 내가 좀더 겸손하게 그분의 말을 따르고 좀더 부지런하게 고전을 읽었더라면 무언가 다른 것을 얻을 수 있진 않았을까.

소설 창작을 꿈꾸는 이들에겐 꼭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아주 천천히,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야기를 토해내는 재미에 취한 손끝을 보다 묵직하고 힘있게 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드는 하나의 생각, 이것은 에세이가 아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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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31 15: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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