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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싶다. 고요하고 싶어 알리의 신곡 <지우개>를 반복해 듣고 있다. 이렇게 1월이 고요하게 흘러갔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느끼는 것이 기쁘다. 내 작은 아이가 곧 서서 걸을까, 싶은 기다림으로 하루하루를 쓴다.  2월, 이 달에 읽을 두 권의 에세이책을 기다리며 1월에 출간된 새로운 책들을 만났다. 나보다 앞서 시간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눈에 밟힌다. 그들의 뒤를 따라 갈 수 있다는 것이, 왠지 살아가며 실패와 좌절을 통해 얻은 지혜를 조금 더 얻어갈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책 냄새 속에 삶은 아름답게 익는다. 그렇게 내 삶도 익어가기를 바라며 ... ...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석지영 지음, 송연수 옮김 / 북하우스 / 2013년 1월

 

지난 달 신간을 살펴보다 미리 담아두었던 책이다.

발레에서 문학, 하버드법대까지. 저자의 이력은 연관성이 없지만 그 모든 것을 해낸 이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자아낸다. 아시아여성 최초, 한국계 최초 란 화려한 수식으로 일컬어지는 저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나 온 시간들을 기록하면서 '책'을 통해 얻어진 상상력과 감수성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이야기 한다. 거기엔 실패와 좌절 속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힘과 지혜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을 것이다. 새해,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고 싶지만 두려움에 발목잡혀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녀의 이야기가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년 1월

 

 

정호승 시인의 7년이 담긴 두 번째 산문집. 살아가는 일의 지혜라는 것은 명확한 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을 다스리며 고통을 담담히 견뎌내고 기쁨을 기꺼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지혜일 것이다. 소박한 것들이 더 오래 머무는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건 나이를 제대로 먹고 있다는 증거일까. 삶을 바꾸는 깊은 여운과 위로의 한마디, 시인에게 용기가 된 영혼의 양식들이 여기 있다. 시인의 글을 읽으며 내가 미처 바라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삶의 시선을 갖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선 이곳만을 바라보며 제자리걸음하지 않고 더 멀리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나아가길, 그 걸음을 주저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용기를 만나게 해 줄 책.

 

 

 엄마와 딸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13년 1월

 

딸이라는 이름과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 땅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 결혼하기 전엔 나의 엄마가 여자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저 하루 종일 식당을 지켜야했던 엄마의 상처투성이 손과 모자에 눌린 질끈 묶은 머리가 안쓰러웠을 뿐. 그것이 내 삶을 위한 것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바빠서 곁에 없는 엄마의 손 밖에서 스스로 컸다고 생각했다.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부끄러운 생각인지 지금은, 안다. 도무지 명명할 수 없는 삶, 그러나 저자는 여성의 삶에서 놓쳐서는 안 될 무언가를 글로 꾸려낸다. 이번엔 엄마와 딸. 그 이름에 대한 이야기. 저자의 따뜻한 글에 위로받고 싶은 마음. 그 속에서 사느라 잃어버렸던 엄마의 체온을 되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이젠 내가 되돌려드려야 할 그 체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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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에서 새로운 해로 넘어오며 지독하게 앓고 있다. 몸엔 기운이 하나도 없고 마음은 우울하다. 또다시 되는 데로, 닥치는 데로 살지 싶은 마음으로 시간을 포장한다. 그러면서도 책을 통해 위안을 얻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책 곁으로 나를 이끈다. 부드럽고 팽팽한 종이의 긴장. 활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아직도 내가 가야 할 길은 멀었고 그러므로 멈추면 안 된다는, 그 이유를 얻기 위해서.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
윌 슈발브 지음, 전행선 옮김 / 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12년 12월

 

어머니의 죽음을 곁에 두고 모자母子가 나눈 책 - 삶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가 투병하며 죽음에 조금씩 다가서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말을 건낼 수 있을까. 누구나에게 예정된 일이지만 결코 담담할 수 없는, 희망이 무너지는 예정된 미래. 그런 그들 앞에 '책'이 놓여 있다. 책은 어머니와 아들에게 말의 물꼬를 터주고 서로의 삶을 긴밀하게 엮는다. 슬픔과 절망을 뚫고 희망을 꿈꾸게 하는 힘, 그 힘이 세상의 모든 책에 있다는 사실. 따뜻한 모정과 함께 그려낸 글들이 무척 기대된다.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김진송 지음 / 난다 / 2012년 12월

 

<상상목공소>를 읽으며 조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모습이 낯설고 멋있었다. 현재 전시회를 열고 있는 그의 최근 인터뷰를 통해 그가 전직 작가였었고, 우연히 나무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에 몰두하게 된 사실을 알았다. 글로 쓰는 행위나 나무를 깍아 이미지를 만드는 것 모두 같은 '창작'이라는 것. 이야기의 서사성에 비해 이미지의 서사성은 상상의 폭이 더 넓고, 그것이 가 닿는 사람 사람에게 새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평범한 나무 위에 조각으로 숨을 불어 넣어 움직이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그의 진짜 이야기가 몹시 궁금하다.

 

 

추억은, 별미
강선옥 지음, 박재진 사진 / 톨 / 2012년 12월

 

음식과 관련된 에세이 서적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요리와 음식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헤아려주는 것. 음식을 하려면 필요한 따뜻한 온도 때문일까, 요리를 하고 음식을 내는 그 모든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책은 더불어 워커홀릭 저자의 일상과 그 속에서 일어난 기쁨과 눈물, 추억의 소소한 자리가 담겨 있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따뜻함. 그 속에서 매서운 겨울바람에 언 손을, 마음을 녹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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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지 않아도 시간은 오고

배웅하지 않아도 시간은 간다.

 

내 것이나 내 것이 아닌 시간.

돌아보고 돌아보다

괜스레 쓰라린 자리가 되는, 12월.

 

이 달에 내가 주목한 도서들을 차곡차곡 적어본다.

 

 

 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
마크 네포 지음, 박윤정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11월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라는 부제에 마음이 끌려 책을 열었다.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끌려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해야 할 일들을 내려놓고 고요하게 자신 안에 고여 있어 보는 일이 아닐지. 저자는 두 번의 암투병으로 죽음의 문턱을 서성이며 겪었던 내면의 변화, 삶과 시간, 순간을 다르게 바라보며 되찾은 삶에 대한 열정을 기록하고 있다. 짤막하게 기록된 내용들은 읽는 이에게 보다 긴 여운과 생각을 남기게 될 것 같다.  죽음과 삶의 사이에 늘 놓여있는 우리들에게 지금 있는 자리를 다시금 돌아보게 할 책.

 

 

 그림꽃, 눈물밥
김동유 지음, 김선희 엮음 / 비채 / 2012년 11월

 

치열한 삶이 줄 수 있는 에너지를 알고 있다. 그에게서 그런 에너지를 느꼈다. 가난과 부모의 반대, 무명시절, 자살시도...... 어둠을 뚫고 나와 눈부신 성공을 이뤄낸 그의 그림엔 삶의 슬픈 생기가 느껴지지 않을까. 무언가에 묵묵히, 치열하게 자신을 쏟아 온 그가 이제 들려줄 수 있게 된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고 싶다. 그의 그림을 보며 함께 듣게 될 그의 삶 이야기가, 그가 딛고 올라선 그림과 눈물의 무늬가 너무나 궁금하다. 그의 고백을 응원함과 동시에.

 

 

 

 

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떠나지 못한 나는 이렇게 여행자의 발자국을 어루만진다.  

너무나 잘 알려진, 미워할 수 없는 각계각층의 명사들이 떠나고 돌아와 남긴 기록들. 이것이 프로젝트였다는 사실은 이제야 알았지만, 그모든 곳에 이병률 시인이 동행하고 사진을 찍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지만. 어쩐지 그들의 눈 속에 담긴 풍경들을 훔치고, 그들의 문장을 내 것으로 하고 싶은 마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남긴 글이니 만큼 다양한 시선과 느낌을 만날 수 있어 기대가 되는 책. 제목이 주는 따뜻함도, 너무 좋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안도현 지음 / 도어즈 / 2012년 11월

 

그의 이름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책. 안도현 시인의 삼 십년 작품들 사이에서 골라 낸 빛나는 문장들을 담고 있다고 한다. 안도현 시인은 시적 감수성과 동시에 시대를 통찰하는 날카로운 문장이 늘 인상 깊었던 분이다. 그 분의 작품들을 모두 만나보지 못했지만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나마 그 분의 자취를 띄엄띄엄 더듬어 보는 것도 많은 여운을 갖게 될 것 같다. 걸어온 시간만큼 무겁고 깊어진 삶에 대한 시선을 마주하며 내 시선의 깊이도 갖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가장 낮은 데서 피는 꽃
이지성.김종원 지음, 유별남 사진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그 분의 책에는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 그만큼 그의 글이 마음을 움직이는 진실된 문장이기 때문이리라. 세계 3대 빈민 도시, 필리핀 톤도의 파롤라 마을에서 길어올린 희망의 꽃씨들. 쓰레기 마을이라 불리지만 그곳의 아이들은 너무나 해맑고 예뻤다. 가난과 무지에 갇히지 않고 그들의 피워올릴 미래의 꽃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지. 주어진 삶을 비난하고 부정하지 않고 서로에게 체온을 나누며 희망을 갖는 이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응원이 되고 희망이 될 것이라 믿는다.

 

 

 

 

에세이들에 담겨진 삶의 짙은 여운들이 좋다. 그 진솔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곁에 두고, 희망을 어루만진다. 신간 에세이들을 살펴보면서, 그 책들의 부제와 내용들을 읽고 더듬으면서 마음에, 담으면서, 문득 내 안에서 덜어내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본다. 너무 많은 것들을 담고 있어 정작 끌어안아야 할 것은 끌어안지 못한 나의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천천히 비워나갈 채비를 한다. 천천히, 그렇게 또, 12월이 가고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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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는 세 사람, 남편과 두 아이의 숨소리가 고요하고 따뜻하게 공기를우고 있다. 나는 아이의 장난감과 빨래 건조대, 옷장들로 정신없는 부엌방에 쪼그려 앉아 책과 노트북을 펼친다. 새벽 1시, 유일한 나의 시간. 무탈하게 하루를 지 시간의 끝에 이 책을 펼칠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하다. 아주 오랜만에 나를 위해 산 책. 『시옷의 세계다정한 작가님의 사인을 갖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누군가의 편지를 기다리듯, 낯선 이의 체온을 갖고 싶.었.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땐, 시의 옷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상상도 했었는데 예상이 아주 틀리지는 않아 더없이 기뻤다. 내 마음이 아직은 열려있구나, 싶어서.

문장들을 천천히 읽어내려간다. 마음 속으로 조용히 낭독한다. 행복하다.

 

며칠 째 떠나는 가을의 등을 떠미는 싸늘한 비가 쓸쓸하고 외롭게 내렸다. 아무와도 눈 마주치지도 못한 채 주룩주룩 흩어졌다.

그녀의 책, 그녀의 문장 위로 나를 포개면서, 일상과 감정을 포개면서, 고요한 정적 속에 이는 또 다른 시간의 물결을 느낀다. 좀처럼 아름다운 줄 몰랐던 시간도 떠나고 돌아보면 그리운 자리, 아련한 여운 같은 것임을 느낀다. 상처가 아문 자리를 더듬어 찾다가 상처를 받은 고통의 순간이 아닌, 그 상처를 견뎌내고 회복한 사랑의 순간을 떠올리며...

나의 이야기가 그녀의 이야기와, 그녀가 좋아한 시 구절과 사이좋게 어울리는 모습을, 본다.

그러다 문득 손글씨를 꾹꾹 눌러 지나간 시간의 이름을 써보고, 다정히 불러도 본다. 사랑했으나 사랑으로 끝나지 않았던 이름도, 그림자처럼 바라본다. 부른다. 끊임없이 넘겨지는 삶의 페이지에 새로운 문장들이 쓰여지고 지워진다. 나를 웃고 울게 만드는, 그곳에 내가 있고 당신이 있다. 시인이 있다.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번 선물은 시옷의 낱말들이다. 사람이, 무엇보다 사람의 사랑이, 사랑의 상처가, 실은 그 선물이, 그리하여 사람의 삶이, 삶의 서글픔이, 그 서글픔이 종내는 한 줄의 시가 된다. 세상을 바꾸려는 손길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려는 시선이 되는. 그런 시에다 옷을 입히듯 나의 이야기를 입혀보았다. 나의 이야기가 내가 좋아하는 시 구절과 사이좋게 사귀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 사귐, 이책을 건내며 중에서

 

나에게 일어났던 일이라고 해서, 이건 매우 시시한 사건에 불과하며 당연한 과정 그 사례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이런 일은 나에게도 너무 많이 일어났던 것임을 기억해냈다. 나에게 일어났던 작은 혜택들이 실은 은총이었으며, 그건 내가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기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중 하나일 뿐이라 여겼던 건 교만임을 아주 뒤늦게 알았다. 나에게 일어난 우연한 일들과 나를 여태껏 지탱해주었던 자잘한 행운들은, 내 믿음의 결과물이었다.

- 사소한 신비 중에서

 

그러고 보면, 지금의 나는 소원이 없다는 생각. 무언갈 희망하지 않고 꿈꾸지 않고 사는 삶의 지루함을 알면서도, 정작 나는 소원을 갖고 있지 않다.

어떤 소원을 빌고, 그 소원이 도착하길 기다려야 할까.

음......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까... ....... 내일은 눈이 올까, 비가 올까. 늘 고민만 많은 꿈꾸기는 어려운... 나는... 어른일까 어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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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책 『우리가 보낸 순간』 을 구매하고, 한 세트인 듯 아주 아담한 노트 한 권을 받았다.

 



"날마다 읽고 쓰는 노트"

 

김연수 작가가 읽은 시, 소설집의 인상깊은 부분과 함께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담긴 따뜻한 문장들이 인상적인 책, 『우리가 보낸 순간』을 아껴읽으며
나는 문득문득 이 노트의 빈 페이지를 바라보았고, 내가 읽은 책, 읽고자 하는 책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 노트를 채우고 난 뒤에 나는 분명, 어떤, 거대한 시간의 앨범을 갖게 되리라는 기대감.
그것도 내가 읽은 책들의 자국과 함께 지나온 시간들을 또렷이 기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지난 해, 읽은 책들을 떠올리며 막막했던 마음을 올 해는 겪지 않으리라 다짐한 것을 지킬 수 있으리라는 설렘과
오랜만에 손글씨로 한 권의 노트를 채우게 될 일이 반갑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책장 곁을 서성였다. 나의 '책'들 곁을. 그것은 내것이면서도 내것 아닌 것들이었다.
다 읽지 못한 책도 있고, 언젠가 읽었으나 책 내용이 가물가물한 책도 있고 여러번 읽어 애틋한 책들도 있었다. 그들은 가만히 내게 등을 보이며 있었다. 내가 어찌하지 않아도 언제나 내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어주는 책들. 나는 늘 그들을 한 사람의 인연인 듯 아껴왔었다. 아이 엄마가 된 뒤엔 더욱 책 속의 이야기에 너그러워진 나를 느끼곤 한다. 조금, 성숙해졌다는 것일까. 한 장, 한 장의 페이지에 담긴 이야기들이 내게 주는 마음의 신호를 나는 선명히 받아들인다.

 

한번도 목록을 적어 책을 읽어 본 적 없는 내가 처음으로 이 노트에 반해 독서목록을 만들어 본다.
그래서 책장에서 나와 함께 지내온 책들의 등을 오래 바라보았고, 언젠가 읽으리라 다짐했던 책들을 적어 둔 쪽지를 여기저기서 찾아내었다.
책장에 있지만 미처 읽지 못한 책들과 내게 아직 없는 책이지만 제목이 아름다워 적어 둔 책들, 어느 분의 리뷰를 보고 꼭 읽고자 마음에 담았던 책들, 그리고 꼭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의 제목이 점점 선명하게 머릿속에 차올랐다. 여행 짐을 싸듯 차곡차곡 빈 노트안에 그 제목들을 적어넣었다.
60개, 한 해 동안 이룰 목표를 가진 듯 마음이 뿌듯해진다.
늘 욕심에 적어만 두고 잊어버렸던 책들의 제목을 가지런히 적어넣으며 무언가 마음이 든든해짐을 느꼈다. 
빈 페이지에 담길 내게 인상 깊은 문장들은,
내가 보낸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은희경 작가님의 인터뷰 내용을 보았다.

작가님의 서재는 먼 이국의 공항이라는 말씀, 너무 감명 깊었다. 서재엔 늘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를 두신다는 것, 책을 읽을 땐 한 권의 책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다른 책은 곁에 두지 않는다는 말씀 속엔 늘 긴장속으로 자신을 밀어넣으려는 평범한 한 사람의 의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글쓰기에 관한 부분의 인터뷰는 글을 쓰고 싶지만 길을 찾지 못하는 나를 깨우는 좋은 지침이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지는 마음도 중요하고, 또 '왜' 쓰고 싶은 지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며 심호흡을 해본다. 날마다 읽고 쓰는 노트에 은희경 작가님의 말씀을 천천히 옮겨 적으면서.



소설을 쓰고 싶다면 ‘왜’ 쓰고 싶은지 생각해라


저는 늦게라도 소설을 쓰고 싶어하시는 분한테 ‘진짜 소설을 쓰고 싶어?’라고 얘기하곤 해요. 왜 쓰고 싶은지 스스로한테 질문해야 될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부터 글짓기를 좋아했고, 문학소녀 시절을 보냈고, 국문학과에 갔고, 거기서도 많은 글도 쓰고 했지만, 그때는 왜 소설가가 못 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저는 세상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것은 세상에 대해서 질문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예요. 저는 그 때만 해도 정답을 맞히는 기분으로 세상을 살았기 때문에 뭐가 주어졌으면 그걸 맞히려고만 했지, 내 식대로 무엇을 보고, 내 식대로 새로 해석해 보고, 내 방식대로 사물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그런 나만의 시각이나 관점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은 할 얘기가 없죠. 물론 글 솜씨를 가지고 뭔가를 써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그런 것은 남의 흉내이거나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형태의 허영심의 발로였을 뿐이지, 내가 진정 하고 싶고, 궁금하고, 나의 고통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싶다는 간 절함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늦게라도, 혹은 지금이라도 (소설을) 쓰시려고 하는 분들에게 저는 왜 쓰려고 하는지 그것부터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고, 그러면 뭘 쓰고 싶은지도 생각이 날 것 같아요.      -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은희경 작가 인터뷰 중

 

 
 
 

이 노트 안에 차곡차곡 적어둔 책들을 하나씩 손에 안고 다감히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때, 그 때마다 나는 조금씩 자랄 것임을, 그리하여 나의 꿈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임을 믿는다. 책은 한 번도 나를 아프게 한 적 없이 언제나 나의 가까이에서 힘이 되어주었음으로, 그들은 기꺼이 내 삶의 끝까지 동행해줄 것이다.

2011년, 여전히 꿈을 꾸는 내게 이 노트는 올 한해의 내가 담길, 중요한 한 권의 책이 되지 않을까.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게으름피우지 않고 달리고 픈 마음이 든다.
내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위해서.

  

 

 

우리가 보낸 순간 세트 - 전2권 

김연수 저 / 마음산책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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