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자전(丁侍者傳)                    -석식영암-

 줄거리

 어느 날 정시자(여기서는 지팡이를 말함)가 고승 식영암에게 찾아 가서 제자 될 것을 청했다. 그리하여 식영암은 정시자와 대면해 앉아서 정시자가 오게 된 사유를 듣는다.

정시자는 본래 포희 씨(복희 씨)의 손으로 수백 년 풍상을 겪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진나라 때에는 범 씨의 가신이 되어 몸에 옻칠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당나라 때는 말 잘하는 조로의 문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정도땅에서 정삼랑을 만나 생김새가 정(丁)자와 같다며 정씨 성을 받는다. 자신의 직책은 항상 사람을 붙들어 도와주는 것인데, 지금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여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토우인(土偶人)에게 비웃음을 당한 뒤 하늘님이 화산(花山)으로 가 스승을 만나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식영암은 정시자에게 후덕스러운 정상좌라고 칭찬을 마지 않는다. 또한 하나하나 예를 들어 여러 가지 아름다운 덕을 베풀어 오래 살고 늙지도 않을 성인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식영암 자신은 정시자의 스승이 될 수 없다며, 화산으로 각암이라는 늙은 화상을 찾아가라고 한다.

 

 

 이해 및 감상

 고려 말엽의 승려 석식영암이 지은 대화체로 된 가전체 작품으로, 지팡이를 의인화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깨닫고 도를 지킬 것을 경계한 가전체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정시자가 식영암을 찾아와 제자로 삼아 줄 것을 청하니 식영암은 정시자 가문의 내력과 덕행을 들어 본 후 자기는 감히 정시자의 스승이 될 수 없는 몸이라고 사양을 한다. 그리하여 화산에 있는 각암이라는 늙은 화상에게로 보낸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인세의 덕(德 : 인, 의, 예, 충, 효)을 경계하는 당시 사회를 직접 비판, 분석할 수 없기 때문에 식영암은 의인화의 기법을 동원하여 당시의 사회상과 배불사상을 비판하였고, 사람을 부시(의지하고 믿는)하는 정시자를 통하여, 중생을 인도한다는 크나큰 사명감을 가지는 승려를 비유적으로 표현하였다. 고려말 불교의 전횡과 그 사회적 혼란을 그린 내용은 부패한 불교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고 승려와 지도층에 자각과 반성을 촉구하는 일종의 우화문학적인 성격을 띤다. 무엇보다도 천하를 편력하면서 성인이 되어 (壯勇信義仁禮正命) 인간에게 교훈을 주고, 더 나아가 종교적,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도 노장사상을 배격하고 유불사상의 장점을 혼용, 완성하여 성불로 나아가려는 작자의 종교관이 잘 나타나 있음을 볼 수 있다.

불교 포교와 지도층의 겸허를 권유한 것으로, 선문답(禪問答) 같은 내용을 지닌 파격적인 작품이다. 또한 가전체 작품의 전형적 구성이 도입부, 전개부, 평론부 등 3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하면, 이 작품은 그 가운데서 작품 말미에 평론부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 소개된 내용은 주인공의 가계와 품행과 덕행을 주 내용으로, 자신을 알아서 도의 생활을 지킬 것을 이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주옹설
(舟翁說)                    -권 근-

손[客]이 주옹(舟翁)에게 묻기를,

“그대가 배에서 사는데, 고기를 잡는다 하자니 낚시가 없고, 장사를 한다 하자니 돈이 없고, 진리(津吏) 노릇을 한다 하자니 물 가운데만 있어 왕래가 없구려. 변화 불측한 물에 조각배 하나를 띄워 가없는 만경(萬頃)을 헤매다가, 바람 미치고 물결 놀라 돛대는 기울고 노까지 부러지면, 정신과 혼백이 흩어지고 두려움에 싸여 명(命)이 지척(咫尺)에 있게 될 것이로다. 이는 지극히 험한 데서 위태로움을 무릅쓰는 일이거늘, 그대는 도리어 이를 즐겨 오래오래 물에 떠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으니 무슨 재미인가?“

하니, 주옹이 말하기를

“아아, 손은 생각하지 못하는가?   대개 사람의 마음이란 다잡기와 느슨해짐이 무상하니, 평탄한 땅을 디디면 태연하여 느긋해지고, 험한 지경에 처하면 두려워 서두르는 법이다. 두려워 서두르면 조심하여 든든하게 살지만, 태연하여 느긋하면 반드시 흐트러져 위태로이 죽나니, 내 차라리 위험을 딛고서 항상 조심할지언정, 편안한 데 살아 스스로 쓸모 없게 되지 않으려 한다.

하물며 내 배는 정해진 꼴이 없이 떠도는 것이니, 혹시 무게가 한쪽에 치우치면 그 모습이 반드시 기울어지게 된다.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시리 내가 배 한가운데서 평형을 잡아야만 기울어지지도 뒤집히지도 않아 내 배의 평온을 지키게 되나니, 비록 풍랑이 거세게 인다 한들 편안한 내 마음을 어찌 흔들 수 있겠는가?

또, 무릇 인간 세상이란 한 거대한 물결이요, 인심이란 한바탕 큰 바람이니, 하잘 것 없는 내 한 몸이 아득한 그 가운데 떴다 잠겼다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한 잎 조각배로 만 리의 부슬비 속에 떠 있는 것이 낫지 않은가? 내가 배에서 사는 것으로 사람 한 세상 사는 것을 보건대, 안전할 때는 후환을 생각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느라 나중을 돌보지 못하다가, 마침내는 빠지고 뒤집혀 죽는 자가 많다. 손은 어찌 이로써 두려움을 삼지 않고 도리어 나를 위태하다 하는가?“

하고, 주옹은 뱃전을 두들기며 노래하기를,

    “아득한 강바다여, 유유하여라.

     빈 배를 띄웠네, 물 한가운데.

    밝은 달 실어라, 홀로 떠 가리.

    한가로이 지내다 세월 마치리.”

하고는 손과 작별하고 간 뒤, 더는 말이 없었다.

 

    # 주옹(舟翁) : 배타는 늙은이. 뱃사람

    # 진리(津吏) : 나루터를 관리하는 벼슬아치

    # 만경(萬頃) : 만경창파(萬頃蒼波)의 준말로 끝없이 넓은 바다

    # 지척(咫尺) : 매우 가까운 거리

    # 고기를 잡는다 ~ 왕래가 없구려. : 손[客]이 뱃사람[舟翁]의 생활 모습을 관찰하고 나름의 느낌을 표현한 부분. 고기를 잡는 것도 아니고,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진리(津吏) 노릇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뱃사람의 생활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 정신과 ~ 있게 될 것이로다. : 몸과 마음이 흐트러져 결국 물에 빠져 목숨이 위태롭게 될 것이다.

    # 내 차라리 ~ 되지 않으려 한다. : 뱃사람[舟翁]의 생활 태도가 드러난 부분. 느긋함을 즐기다가 위태롭게 되기보다는 늘 위태로운 배에 사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긴장하며 살겠다.

    # 무릇 인간 ~ 큰 바람이니, :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란 큰 물결과 같이 흔들림이 많으며, 이 가운데 사는 인간의 마음이란 바람처럼 변화무쌍한 것이니,

    # 한 잎 조각배로 ~ 낫지 않은가? : 물 위에서는 배의 중심만 잘 잡으면 되지만 인간 세계는 자신만이 중심을 잡는다고 되지 않으므로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돼지가 삼킨 폭포((猪喫瀑布)    

                                    - 서거정 채록

한 조관(朝官)이 일찍이 진양(晋陽) 고을의 수령이 되었다. 그는 가렴 주구(苛斂誅求)가 심하여 비록 산골의 과일과 채소까지라도 그대로 남겨 두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절간의 중들도 그의 폐해를 입었다.

하루는 중 하나가 수령을 찾아가 뵈었더니, 수령이 말하기를, “너의 절의 폭포가 좋다더구나.”라고 하였다. 폭포가 무슨 물건인지 모르는 중은 그것도 또 세금으로 거두려고 하는가 두려워하여 대답하기를 “저의 절의 폭포는 금년 여름에 돼지가 다 먹어 버렸습니다.”라고 하였다.

강원도 한송정(寒松亭)의 산수 경치가 관동 지방에서 으뜸이었으므로 구경꾼이 끊이지 않고 말과 수레가 사방에서 모여 들었다. 고을 사람들은 그 접대하는 비용이 적지 않았으므로 항상 푸념하기를 “저 한송정은 어느 때나 호랑이가 물어 갈까.”라고 하였다.

어떤 시인이 다음과 같이 두 구(句)의 시를 지었다.

 

  폭포는 옛날에 돼지가 먹어 버렸네만,      瀑布當年猪喫盡

  한송정은 어느 때에 호랑이가 물어갈꼬.   寒松何日虎將歸      

=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 조관(朝官) : 조정에서 일하는 신하

    # 가렴주구(苛斂誅求) :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들이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음

    # 한송정(寒松亭) : 강릉 경포대에 있는 정자로, 관동팔경의 하나임.

    # 푸념 : 마음에 품은 불평을 말함

    # 하일(何日) : 어느 날

    # 瀑布當年猪喫盡(폭포당년저끽진) : 폭포는 옛날에 돼지가 다 먹어 버렸다.

    # 寒松何日虎將歸(한송하일호장귀) : 한송정은 어느 날에 호랑이가 물어 갈꼬.

    # 그는 가렴주구(苛斂誅求)가 ~ 폐해를 입었다. : 고을 수령의 수탈 범위가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가혹함의 정도를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중이 폭포를 돼지가 먹었다고 엉겁결에 대답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하고 있다.

    # 저의 절의 ~ 먹어 버렸습니다. : 고을 수령의 가혹한 수탈 정도에 대한 일반 백성들의 반응을 짐작할 수 있는 표현. 무엇이든 빼앗기지 않으려는 민중들의 경계심을 해학적으로 표현하였으나 웃음보다 연민(憐憫)이 앞선다.

    # 폭포는 옛날에 ~ 물어갈꼬. : 벼슬아치에게 수탈당하는 괴로움을 압축하여 표현한 시로 백성들의 원성(怨聲)은 아랑곳하지 않고 횡포를 계속하는 지배층에 대한 풍자와 더불어 당대 민중들의 어려운 삶의 현실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데메트리오스 2004-08-10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니 예전에 중국사 책에서 본 일화가 생각나네요. 5대 10국 시절 송주(하남성 상구)의 지방장관 조재례는 가혹하게 세금을 짜내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 자가 전근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백성들이 '눈 속에 박힌 못이 뽑힌 듯 후련하다'고 하자 이를 들은 조재례가 다시 송주에 유임하여 1년 동안 백성 1인당 1천 전의 <못뽑이세>를 징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강(안휘성)의 지방장관 장숭이 역시 가혹한 수탈로 백성들로부터 '쌍놈'이라고 불렸는데, 그가 소환을 받고 수도로 가자 백성들이 '그 쌍놈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겠지'하고 기뻐했답니다. 그런데 장숭이 다시 돌아와서 그 소식을 듣고 분개하여 <쌍놈세>라는 명목의 세금을 물렸답니다. 얼마 후 장숭이 또 소환되자 '설마 이번에야 다시 못오겠지'라며 백성들이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기뻐하였는데, 또다시 장숭이 돌아오는 바람에 이번에는 <수염 쓰다듬세>를 냈다고 합니다 -_-;;

꼬마요정 2004-08-10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권력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그쵸?
 

 점          몽 (占夢)                    -성현 채록-


   
옛날에 유생(儒生) 세 사람이 있었다. 장차 과거(科擧) 시험에 응시하러 가고자 하는데, 한 사람은 거울이 땅에 떨어지는 꿈을 꾸었고 한 사람은 쑥으로 만든 사람[애부(艾夫) : 쑥으로 만든 인형]을 문 위에 달아 놓은 꿈을 꾸었으며, 또 한 사람은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모두 함께 꿈을 점치는 사람의 집을 찾아갔더니 꿈점 치는 사람은 없고 그의 아들만이 있었다. 세 사람이 꿈의 길흉을 물으니 그 아들이 점쳐 말하기를

“세 가지 꿈이 다 상서롭지 않으니 소원을 성취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조금 있다가 꿈점치는 사람이 와서 자기 아들을 꾸짖고는 시(詩)를 지어 주기를,

 

  쑥 인형은 사람들이 우러르는 것이요,        艾夫人所望(애부인소망)

  거울이 떨어지니 어찌 소리가 없을꼬.        鏡落豈無聲(경락기무성)

  꽃이 떨어지면 응당 열매가 있을 것이니,     花落應有實(화락응유실)

  세 분은 함께 이름을 이루리라.                  三子共成名(삼자공성명)

 

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 세 사람은 모두 과거 시험에 급제하였다고 한다.

     

    # 유생(儒生) : 유학을 닦는 사람

    # 애부(艾夫) : 쑥으로 만든 인형, 단오 때 문 위에 걸어 두면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고 함

    # 세 가지 꿈이 ~ 못하겠습니다. : 점술가 아들의 부정적인 해몽. 인생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이 같은 해석은 긍정적인 가치관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대조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 과연 그 ~ 시험에 급제하였다. : 꿈 속의 가능성을 찾아내어 용기를 준 점술가의 해몽이 가져다 준 결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서   동   요               - 서동(薯童)-
 

善化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卯乙抱遺去如 
  
 
 

[현대어 풀이]
 
 선화 공주님은 / 남 몰래 시집가 놓고(정을 통해 놓고) / 서동을 / 밤에 몰래 안고 간다.
 
 [배경 설화]
 
 백제의 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 모친이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되어 백제의 서울 남쪽 못가에 살면서, 연못의 용과 정을 통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은 재주와 도량이 커서 장차 큰 일을 할 바탕을 갖추고 있었는데 항상 마(薯)를 캐어 팔아서 생계를 꾸려 갔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서동'이라 불렀다. 그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아름답기 그지 없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자 머리를 깎아 중의 형색을 하고 신라의 서울로 들어갔다. 서울 근방의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면서 그들과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자 자신이 지은 동요를 부르게 하였다. 이 노래가 <서동요>인 것이다.

이 동요의 내용이 대궐에까지 알려져 공주는 먼 곳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귀양길에 오르는 공주의 애처로운 모습에 왕후는 순금 한 말을 노자로 주었고, 공주가 귀양처로 가는 도중에 서동이 나타나 맞이하며 시위(侍衛)하여 가고자 하였다.  공주는 그가 어디서 온 지는 모르나 외로운 귀양길에 친구가 되리라 생각하고 그를 따르게 되었다.  공주는 서동이 밎음직스럽고 좋아 그와 결혼했는데, 그 후에야 서동의 이름을 알고, 동요의 영험함도 알았다.

백제로 와서 어머니가 준 금을 내어 생계를 꾀하려 하니, 서동이 크게 웃으며, "이것이 무엇이냐"하였다. 공주가 "이것은 황금이니 가히 백 년의 부를 이룰 것이다." 하니, 서동은 "내가 어려서부터 마를 파던 곳에 흙과 같이 쌓아 놓았다."하였다.  공주가 듣고 크게 놀라 "그것은 천하의 지보(至寶)니 지금 그 소재를 알거든 그 보물을 가져다 부모님 궁전에 보내는 것이 어떠하냐."고 하였다.  서동이 좋다 하여 금을 모아 구릉과 같이 쌓아 놓고 용화산 사자사의 지명법사에게 가서 금을 옮길 방책을 물었다. 법사는 "내가 신력으로써 보낼 터이니 금을 가져오라."하였다. 공주가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사자사 앞에 갖다 놓으니 법사가 신력으로 하룻밤을 사이에 신라 궁중에 갖다 두었다. 진평왕이 그 신비한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존경하며 항상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이 이로부터 인심을 얻어 백제의 왕위에 올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