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학자의 아웃사이더 인생 수업 - 젊은 민들레들을 향한 한 식물학자의 힘찬 응원가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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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하면 떠오르는 것이 죽여도 죽여도 살아남는다는 것. 결코 죽지 않는 강인함 정도일 것이다. 식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잡초를 통해 종의 다양성, 유전자의 다양성 그리고 개성의 존재이유 등을 언급하며 다른사람과 똑같아 지기 위해 애쓰거나, 다른 사람과 달라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알려준다. 마치 수업처럼 구성되어 목차 또한 1교시, 2교시 등으로 분류했으며, 설명 또한 친절하고 거듭 말하지만 쉽다. 처음 1교시와 2교시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평균, 수치 그리고 등급이나 분류체계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를 위해 만들어둔 제도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A와 B중 무엇이 더 크고 작은지, 어떤 능력이 뛰어나며 어떤 부분이 취약한지 등은 개성의 문제일 뿐 우열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이유는 모두가 똑같아서 경쟁하고 멸종하지 않기 위한 생존 능력이다. 잡초 뿐 아니라 19세기에 있었던 아일랜드 대기근을 사례로 들며 품종이 우수한 단 한 종의 감자를 심었다가 어떤 재앙을 맞이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넘버원 만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것 같지만 실제 자연계나 인위적인 실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각자 영역에서 침해하거나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 꼭 그런것만은 아니다. 또, 개성이 생존의 이유라면 무조건 ‘온리원‘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 역시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저자는 이를 ‘니치‘라고 표현하는데, 니치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게는 넘버원이 될 수 있는 영역이 있는데, 이렇게 넘버원이 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영역을 생태학에서는 ‘니치(niche)‘라고 한다. ‘니치‘라는 말은 원래 장식품을 꾸미기 위해 교회 벽면에 설치한 홈을 말한다. 하나의 홈에는 하나의 장식품만 걸 수 있듯이 하나의 니치에는 하나의 생물종만 들어갈 수 있다. 106쪽

니치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요즘, 나만의 니치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특히 잡초를 표제로, 또 핵심주제로 삼은 잡초의 강인함인데, 이것이 평소에 생각해온 부분과 조금 다른 점이었다. 6,7교시에 이어진 잡초가 ‘강한‘ 진짜 이유는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죽여도 죽여도 살아남아서? 경쟁에 우위를 차지해서가 아니었다. 잡초가 강한 이유는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 때문이었다.

영국의 생태학자인 존 필립 그라임은 식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의미에서 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는 경쟁에 이긴다는 의미다.(...) 혹독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것이 두 번째 강하다는 의미다.(...)세 번째는 변화를 이겨 낸다는 의미다. 161-162쪽

처음에는 책을 읽기 전에 알 수 없었던 자연계와 분류체계에 대한 새로운 사실 때문에 흥미로웠고, 3교시 이후에는 잡초와 다양성에 관한 사례가 등장하기 때문에 몰입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지금껏 ‘강함‘이라고 생각해왔던 정의와 인식이 깨어지는 신선한 충격에 시간을 두지 않고 한 번에 다 읽어버렸다.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맺음말까지 어느 한 페이지 그냥 넘길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그저 우리는 우리 그 자체로 다 소중하고 누구와도 결코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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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게이하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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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강 유역에 있는 작은 마을 해버퍼드에서는 여전히 루시 게이하트 이야기를 한다. (9쪽)


세월이 흘렀어도 누군가의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가는 경우는 두 가지 경우일 뿐이다. 아름답고 선하거나 아니면 악인이거나. 다행히도 루시 게이하트는 전자였다. 휴며니스트 세계문학 32번째 작품, 윌아 캐더의 <루시 게이하트>의 시작은 이렇듯 ‘루시‘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된다. 루시는 스케이트를 잘 타고, 긍정적이었으며, 피아노를 연주하고, 시계공이지만 악기 연주를 잘하는 게이트씨의 딸이다. 나이차이가 많이나 엄마의 빈자리까지 채워준 언니가 있고, 마을의 누구라도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은 이는 그녀를 경쟁상대로 여기는 사람외에는 없다. 가난했지만 부족한 것이 없는 루시는 학업을 위해 시카고로 떠나 유학중일 때 만난 성악가 서배스천에게 순식간에 빠져버린다. 루시가 그에게 점점 빠져들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며 다가갈 때의 부분은 요즘처럼 꽃이 만발한 계절과 햇빛이 강해도 이제 막 추위를 걷어낸 날씨에 정말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런 설레이는 순간은 영원하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같은 성별인 루시보다는 이제 어느 정도 저문 나이가 되어서 인지 서배스천의 상황에 내게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루시를 만났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매서운 추위에도 그녀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려고 했던 것은 단순한 연애 감정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글에서도 나타나듯 루시가 가져오는 ‘빛‘, ‘명랑함‘(루시 게이하트 이름에 담긴 의미이기도 하다)은 추운 날, 햇빛이 드는 자리로 몸을 움직이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이어지는 비극과 슬픔속에서도 이 소설이 내게는 ‘빛‘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작 3시간 남짓 시간동안 루시를 알았던 내게도 오래 기억될 것이 뻔한데 루시의 종종 걸음이 해버퍼드 사람들의 기억속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 소설의 첫 문단은 그러니 얼마나 놀라운가. 백수린 작가 또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입부를 읽으며 나는 내가 이 책을 사랑하지 않기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뒷표지 인용)

‘추위를 외투 삼을 수 있는 열정‘을 가진 루시, 결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 흐리거나 비가 내리지 않을 루시는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발췌글만 보아도 ‘루시 게이하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정말 반가울거라 짐작한다.

오늘 밤에는 호수에서 매서운 바람이 불었지만 마차를 잡아타기로 했다. 루시는 추위가 두렵지 않았으니까. (...) 추위를 외투 삼으면 그만이었다. 추위 한복판에서 따뜻한 몸으로 깨어 있는 자기 자신을, 들장미쯤은 한순간에 얼려버리는 찬바람 속에서 식지 않고 흐르는 피를 감각하는 것이다. 43-44쪽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램지 부인이 중얼거렸다. ˝시카고에서 사랑에 빠졌다가 저렇게 됐다는 사람들도 있고. 거기서 평판이 나빠지는 바람에 저렇게 됐다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만 난 루시가 평판에 신경 쓰는 아이 같지는 않아서.˝ 154쪽

˝이건 비밀이야. 이해하지? 절대 말하면 안 돼. 저기 시멘트에 있는 발자국은 게이하트 댁 딸 루시가 어렸을 때 찍어놓은 거야. 이것만 부탁할게. 이 시멘트 블록 두 개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 적어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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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성별 - 가족은 어떻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가 Philos Feminism 7
셀린 베시에르.시빌 골라크 지음, 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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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스 페미니즘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은 <자본의 성별>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임금의 차이가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제프 베조스 부부의 이혼 사례만 보더라도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어도, 이혼을 해도 부를 축적하는 데에 유리한 쪽은 남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혼 전 아내의 재산이 더 많거나 부유한 가정 출신인 경우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혼할 때 여성은 양육자의 몫으로 함께 거주하던 집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차액을 남자에게 지불하거나 집을 선택했기 때문에 다른 재산을 받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양육을 위한 당연한 보상 외에는 어떤 합의나 위로금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주택관련 세금 및 각족 공과금 등 지불해야 할 금액만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여성은 이혼과 동시에 양육으로 인한 지출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나지만 남성은 집을 내어주면서 세금이 사라지고 직업이 있다면 앞으로 모든 임금을 축적할 수 있다.

이혼한 여성들은 양육비를 소득으로 신고하고 세금을 내야 하지만, 채무자인 남성들은 세금을 공제받는다. 이런 규칙의 존재 이유는 신비롭다. 왜 이혼한 아버지는 자신이 낸 자녀의 양육비를 소득에서 공제받는 것일까? 그런데 왜 자녀와 함께 생활하는 어머니는 그렇지 않을까? 219쪽

사례로 등장하는 부부와 가족은 한국이 아닌 프랑스였는데, 특히 '팍스'라는 동거인들을 위한 제도로 주목받고 있는 프랑스에서 결혼이나 팍스 모두 여성의 경제상황은 결별시 나빠진다는 통계를 보면서 해당 제도가 한국에서 차별받고 있는 다양한 가족형태에 해답이 될 줄 알았기에 씁쓸함이 더 클 수 밖에 없었다. 이는 부부관계뿐 아니라 사별 혹은 재산 증여에 있어서 '좋은 상속자'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여성이 아닌 남성이라는 점이 보편적이라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이혼이나 재산상속 문제를 다룰 때 변호사 뿐 아니라 공증인들과 같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때부터 재산이 많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대우가 다르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성별에서도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은 원가족으로 부터 받을 수 있는 유산에 있어서도 성별이 다른 형제보다 적게 받거나 '가족의 평화'를 위해 포기를 강요당한다. 부의 축적 정도에 따라 전문가들의 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합의를 위해 시간을 끌면 끌수록 더 많은 수의 전문가들을 내세운 남성보다 여성은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여성이 받을 수 있는 위자료 혹은 유산상속과 관련된 부의 불평등 부분만 흥미로웠던 것은 아니다.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에서 다뤄진 불평등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가족내의 부의 불평등은 무엇인지, 또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여성은 일을 하지만 자본을 쌓지는 못한다.(...)

일생에 걸쳐 남성은 부유해지고 여성은 평생 동안 부를 박탈당하는 과정은 가족이라는 친밀한 영역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306쪽

자본을 쌓을 수 없는 여성의 불평등한 구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저자의 말처럼 태어나는 순서와 성별의 구성과 수에 따라 잘못 학습되어진 부분도 분명 있겠지만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희생당하는 동안은 제대로된 부를 쌓을 수 없으니, 계급의 불평등이 해결될 수 없고, 이는 결국 여남간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으니 '성별 질서를 뒤집(309쪽)어야 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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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B의 은유 - 윤슬빛 소설집 꿈꾸는돌 38
윤슬빛 지음 / 돌베개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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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플랜 B를 세우면서 살았는데 플랜 A도 B도 C도 다 실패하는 게 인생이더라고." 9쪽

7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윤슬빛의 소설집, 플랜B의 은유는 표제작이자 이어지는 다른 모든 작품을 아우르고 있다. 청소년기에 찾아오는 불안과 고민이 성적이나 이성문제 그리고 교유관계에 밀집되어 있는데 해당 소설집에서는 현실에 맞게 좀 더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대도시가 아닌 외곽에 거주하고 있다는 공통점 외에 소설 속, 청소년들의 공통점은 아이들의 부모역시 미성숙하거나 존재 자체가 부재이거나 같이 살아도 심리적 거리를 전혀 좁힐 수 없는 타인처럼 살아가고 있다. 플랜A가 정상적인 가정에서 부모의 지지와 응원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재호, 은유, 찬우, 선호, 새나 등을 포함한 모든 아이들은 플랜B 혹은 그 이상의 다른 문의 존재를 발견하거나 열어가고 있었다.

아주 멀리까지 가고 싶은 마음과 기꺼이 이곳에 붙들려 있고 싶은 마음이 매번 부딪혔다. 44쪽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것과 존중하거나 배려할 수 없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는 것도 안다. 이성이 아닌 동성을 좋아하는 마음, 혹은 그런 사람이 자신의 부모라고 생각했을 때, 그 자리에 소수라고 부르는 어떤 대상을 넣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직 자신의 성별에 확신이 서지 않는 사람들을 두고 당연한 것을 거부하거나 반항하고 있다고 쉽게 말해서도 안된다. 우리에게 그런 고민이 없었다고 무조건적으로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듯, 나와 다른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다. 이런 인식개선은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아빤 어땠어? 같이 살기 괜찮은 사람이었어?"

맥락 없는 말이었지만 듣자마자 실소가 나왔다.

"그랬음 이러겠냐?"125쪽

책을 읽는 내내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아닌,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지 못하는 모든 어른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특히 미성숙을 넘어 무책임에 가까운 부모때문에 십여년 만에 함께 살게 된 재희자매의 이야기는 부모가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을 사회마저 외면하고 있는 현실의 민낯이라 아프고 아렸다. 그나마 이들을 보듬는 것은 성숙한 일부의 어른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또래 친구와 형제들이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우리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소설을 통해서라도 들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그 구절이 좋았어. '같이 없어도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 질 때가 있다.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 것처럼."76쪽

수록된 작품들을 순서대로 읽었지만 읽는 순서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모든 작품을 긴 간격없이 전부 읽어보길 권한다. 청소년이라면 플랜B 혹은 그 이상의 존재를 확인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어른이라면 플랜B 이모가 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 소설 중간중간 '아직 시간이 있다'라는 표현이 결코 나이에 국한 된 것만은 아닐것이다. 우리모두에겐 플랜 자체가 없었더라도 분명 빛나는 삶을 희망할 수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빛날 수 있다.

지금은 무엇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했다. 플랜B 이모의 말처럼 플랜 A도 B도 C도 다 실패하는 게 인생이라면, 거창한 계획 따위 조금 미뤄 봐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 모든 계획들이 실패하더라도 일상은 또 다른 반짝이는 순간들로 채워진다는 것.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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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익숙해지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톨스토이가 말년에 남긴 문답 중에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과 ”바로 옆의 사람“이라는 답변이 있다. 우리는 소중한 옆의 사람을 계속 소중한 사람으로 대할까?

-홍세화, ’결: 거칢에 대하여‘ 179쪽

지난 한 주는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대학원 과제와 시험이 연달아 있었고, 학교수업 외 듣는 강의에서 발표도 했다. 또 새로운 전시 도슨트 활동도 있었다.

아, 그리고 오랜만에 면접도 다녀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가 매일 등원을 해주었고,

가족 누구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약간의 불편함에 불평도 했다. 그래도,

힘들어 죽겠네.

라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었으나 이번 주는 한 번도 내뱉지 않았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 정도의 지각은 다행히 남아있었다.













16일 전후로 묵주기도를 바치며 안타깝게 세상을 먼저 간 이들을 추모했고, 18일 홍세화 님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 이와 관련 해 아무 글도 적을 수가 없었다. 위에 나열한 것처럼 해야 할 일들이 있었고 날씨가 흐려 안 그래도 처지는 몸을 일으켜 세워야 했으니까. 아이와 더 열심히 놀았고, 30분의 여유도 없으면서 상설전시장을 다녀왔고, 좋아하는 시집의 기념식도 환승하는 틈을 타 다녀왔다. 굳이 그렇게 무리를 해야하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이게 내가 견뎌내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내게는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숨차게 뛰어 약속시간에 도착해야 하더라도 혼자서 일어설 수 없었던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것이다. 두 다리로 뛰어다닐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잠못이뤄본 사람도 그럴테고. 숨이 턱까지 차올라 겨우 탄 지하철을 어쩔 수 없이 다음 정차역에서 내려 시계를 거듭 바라보면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것.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아닌 감사한 일.

누구몫까지 산다는 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나처럼 내 몫마저 잘 살아내는 게 아닌 사람에겐 더더욱 그렇다.

바람이 있다면 내게 주어진 모든 생을 잘 살아내길.

#기록 #추모 #봄비 #기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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