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듀어런스 -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
캐롤라인 알렉산더 지음, 김세중 옮김, 프랭크 헐리 사진 / 뜨인돌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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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8,000m급 고봉들 가운데 최초로 인간의 발걸음을 허용한 일은 1950년 프랑스 원정대의 모리스 에르조그에 의한 안나푸르나(8,091m) 정복이었다. 이보다 약 40년쯤 전인 1911년에는 아문센에 의해 남극점이 정복되었다. 뒤이어 1914년 8월에는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이 27명의 대원을 이끌고 세계 최초로 남극 대륙 횡단에 도전한다. 탐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생존 드라마로 불리는 섀클턴의 영웅적인 모험담을 담은 '인듀어런스'라는 책은 90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생생하게 되살아나서 한 편의 영화를 보는것 같은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섀클턴이 극지 탐험용 배의 이름을 '인듀어런스'라고 정한 이유는 그의 집안의 가훈인 'Fortitudine Vincimus(인내로 극복한다)'에서 따왔기 때문이었는데, 이 배의 이름 그대로 '인듀어런스'호에 승선한 탐험 대원들에게 엄청난 고난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으며, 수많은 역경 끝에 탐험 대원 전원이 극적으로 구조되면서 인간의 불굴의 의지가 뛰어넘을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의심하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느끼게 해주는 멋진 책이다.

섀클턴의 이야기는 리더십을 배우는 훌륭한 교범으로서도 수없이 많은 책에서 다루고 있다고 한다. 특히나 위기 상황에서의 리더십에 관한 한 섀클턴의 이야기보다 더 감동적으로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들을 가르쳐 주는 책도 쉽게 찾아내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에서 가르쳐주는 리더로서의 자질들은 대략 리더로서의 완벽하리만치 풍부한 경험과 지식, 낙관적인 자세, 용기, 결단력, 불굴의 의지,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선각자적 기질, 탐험대 전원에 대한 깊은 신뢰와 부정(父情)과도 같은 따뜻한 인간애 등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처절한 시련을 겪은 인듀어런스 호의 대원들에게 유일한 축복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섀클턴의 부하였다는 점이었다.'는 말로 섀클턴의 리더십을 더한층 인상깊게 만들어주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찾아낼 수 있는 형언할 수 없이 고통스런 모습들은 너무나도 많다. 영하 60도를 넘나들고, 시속 300km의 강풍이 몰아치고, 수개월동안 햇빛조차 볼 수 없는 기나긴 겨울이 지속되는 남극의 환경은 기본적인 바탕에 불과할 뿐이다. '인듀어런스'호가 부빙에 갇히고 마침내 침몰하고 나면서부터 시작되는 떠다니는 얼음 위에서의 수개월 또한 고난의 작은 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항해를 떠난 이후 천신만고 끝에 497일만에 처음으로 '육지'에 상륙했으나, 거칠고 험하기 그지없는 그 곳 엘리펀트섬은,  식량도 다 떨어지고 난 뒤여서 서너달 동안에만 1,300마리의 펭귄을 잡아먹으면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기에도 벅찬 환경을 제공할 뿐이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그곳에서 섀클턴은 중대한 발표를 한다.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자신이 5명의 대원을 이끌고 길이 6m에 불과한 배(제임스 커드호)를 타고 길이가 장장 1천2백80㎞에 달하며, 지구에서 가장 험난하다는 드레이크 해협을 통과해서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구조 요청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저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전혀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던 것이었고, 그건 실로 엄청난 계획이었으나, 마침내는 그 섬에 도달했고, 또다시 섬의 반대편 스트롬니스 포경기지까지 가기 위해 3일분의 비상 식량과 밧줄 30m, 얼음용 손도끼를 챙기고 아무도 넘어본 적이 없는 해발 3,000m의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산을 넘어간다. 얼어죽을 것이 뻔한 진퇴양난의 암담한 상황에서 섀클턴은 빙산을 넘어 내려가기 위해 목숨을 건 대담한 결단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끄러져 내려간다!" "우주 공간에 던져지는 것 같았다." "머리가 쭈뼛 곤두섰다. 그러다가 갑자기 흥분이 되더니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그 아슬아슬한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우스 조지아 섬에 상륙한 이후, 1차 대전 와중이라 몇 달 만에야 겨우 칠레 정부가 급파한 군함으로 엘리펀트 섬의 해안까지 도달한 새클턴이 초조한 모습으로 대원들의 숫자를 헤아렸고, 해안에 있는 인원은 정확히 22명이었다. "그는 쌍안경을 집어넣고 나에게 돌아섰다.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인,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916년 8월 30일, 프랭크 헐리의 감광판과 필름이 있는 상자를 챙겨 군함에 승선한 그 날은 '인듀어런스'호가 항해를 떠난지 634일째 되던 날이었다. 당시 섀클턴의 심정은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너무나도 잘 나타나 있다. "드디어 해냈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우리는 지옥을 헤쳐나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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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구승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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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후쿠야마가『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이라는 책을 통해 막스헤겔주의적 의미의 '역사의 종언'을 주장한 이후, 경제에 관한 책을 한 권 써야 마땅하다고 생각해서 그 속편 격으로 썼다고 하는 책이다.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은 경제적 번영에는 문화적 배경이 중요하다는 것이며, 강한 공동체적 연대를 가진 고신뢰 사회와 공동체적 연대가 무너진 저신뢰 사회를 국가간의 비교를 통해 분석한 결과로서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적 특성, 즉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는 점이다.

즉, 공동체적 연대와 결속은 경제적 도약의 기초이고, 이것이 바로 제임스 콜먼이 말하는 '사회적 자본'이며 사회적 자본은 경제생활 뿐만 아니라 사회적 삶의 모든 국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한 사회의 연대와 결속은 규범과 가치를 공유하고 개인의 이익을 집단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공동체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한다. 여기서 신뢰가 탄생하며 신뢰는 중요한 경제적 가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책이 특히 흥미를 끄는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주된 분석의 틀로서 다루고 있는 국가간의 비교를 통해 일본, 독일 및 미국을 고신뢰사회로, 중국, 한국, 이탈리아 및 프랑스를 저신뢰사회로 분류한 점이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 별도의 장을 통해 세세히 다루고 있어서 한국이 처한 여러가지 어려운 봉착점들에 비춰봐서도 이 책이 출간된지 상당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는 분석과 주장들이 넘쳐난다.

두 번째로는 '학술 흥행사'라는 저자의 별명에 어울릴 정도로 '신뢰의 경제적 가치'를 따지기 위해 저자가 파헤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의 범위가 실로 매우 넓다는 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경제학자 혹은 사회학자들 가운데에서 중요한 인물들로는 존 로크, 토마스 홉즈, 칼 맑스, 막스 베버, 아담 스미스, 슘페터, 알렉시스 토크빌, 에밀 뒤르껭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러서는 사무엘 헌팅턴, 케네스 애로우, 제임스 콜먼 등에 이르기도 하며, 정치, 경제, 종교, 철학, 인종등을 아우르는 '문화'의 문제를 다루다 보니 불가피한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각 국가와 문화별로 오랜 세월에 걸쳐 전승되어온 독특한 '가족 문화'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비교분석을 끊임없이 내어놓는다. 심지어는 한국에서의 김씨와 이씨의 인구비율에 관한 분석이라든지, 같은 혈통의 가문에서 위계서열을 확실히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아직도 버리지 않고 사용중인 공통의 글자(소위 항렬)에 대한 문제까지도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 스스로도 밝혔듯이 경제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한 방법이라든지, 미국이 어떻게 하면 일본이나 독일을 모방할 수 있을지를 가르쳐 주는 '경쟁력' 분야의 지침서가 아니다. 이 책은 경제적 삶이 어떻게 현대의 삶 자체를 반영하고 형성하며 지탱해 주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경제적 성취와 관련해서 상이한 문화를 비교하고 대비하는 연구이다보니 수많은 독자들에게 저자와는 다른 여러 가지 일반화에 대한 반대의견과 모순된 증거들을 수없이 찾아낼 수 있는 즐거움도 제공해주는 측면도 많다. 여기서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무수히 있어왔던 반박과 비평들에 대해 몇 가지를 덧보태는 것보다는 저자의 주장을 통해 얻은 수확들 가운데 일부분만이라도 이 글에서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번째는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적 특성, 즉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 점이다.

두번째는 신고전파 경제학이 제시한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 행동의 기본 모델은 80% 정도 들어맞았고 나머지 20%의 인간 행동에 대한 해결은 기질, 습관, 도덕 등 물려받은 윤리적 습관의 결과인 '문화'에 달려있다고 주장한 점이다

세번째는 사회적 자본은 그것이 통상 종교나 전통, 역사적 관습 등 문화적 기제를 통해 창조되고 전수된다는 점에서 다른 형태의 인적 자본과는 차이가 있으며, 한 국가의 부존자원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네번째는 '자발적 연대'라는 윤리적인 관습이 있는데, 이런 관습은 조직의 혁신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어서 부의 창출에 필수적인 요인이 된다고 주장한 점이다.

다섯번째는 소련과 동유럽에서 사회주의가 실천되는 과정에서 파생된 가장 참담한 결과는 아마도 '시민사회의 철저한 파괴'일 것이라고 주장한 점이다. 저자는 이로 인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둘 다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고 보며, 레닌주의 국가는 경제의 '최상부'에서부터 무수한 농장, 소기업, 노동조합, 교회, 신문사, 시민단체 등을 거쳐 가족에 이르기까지 권력에 있어 모든 잠재적 경쟁자를 용의주도하게 궤멸시켜 나갔다고 주장한다.

여섯번째는 모든 경제적인 시도는 가족기업, 즉 소유와 경영권이 가족 구성원에게 주여져 있는 사업으로 시작되며, 가족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자발적 결사체가 상대적으로 미약한 네 개의 사회(중국,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한국)를 저신뢰사회로 규정하고, 가족을 초월한 강력한 자율적 결사체로 구성된 일본, 독일과 미국을 고신뢰사회로 규정한 점이다.

일곱번째는 수천년 동안의 유교주의 전통이 질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유교 문화권에서의 가족주의적 문화가 공동체적 연대를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장애로 작용한다고 주장한 점이다. 이러한 모습은 가족을 벗어난 신뢰관계가 미약한 이탈리아의 경우에도 발견되는 현상으로서 저자는 이를 '이탈리아식 유교주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홍콩, 대만, 이탈리아 등의 국가는 소규모 기업들이 가족지향성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므로서 거대한 규모를 요구하지 않고 신속한 의사결정구조를 요구하는 급속하게 변화하고 고도로 분절적인 소비자 시장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많이 있음도 지적하고 있다.

여덟번째는 현대의 각종 법, 경제제도는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번영과 사회복지를 탄탄하게 유지해 나가기에는 충분치 못한데 그 이유는 이와 같은 제도들이 성공적으로 실행되려면 특정한 전통사회 그리고 윤리규범과 결합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점이다. 풍족하고 복잡한 시민사회는 산업화의 필연적인 귀결이 아니며, 이와는 반대로 일본, 독일, 미국같은 나라는 산업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자본과 자발적 사회성이라는 건전한 사회적 유산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부문에서 주도적인 세계 산업 강대국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아홉번째는 고신뢰사회인 독일과 일본의 문화적 유사성이 대부분 고도로 발전된 공동체적 연대감에 따라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대체로 보아 일본인들의 신뢰의 범위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고정적이고, 오직 일본인들에 대해서만 확대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서 독일은 2차대전 이후 근본적인 문화적 변동을 겪게 되면서 일본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회로 변모하였으며 독일인들의 정체성을 유럽인에서 찾음으로써 세계시민으로 거듭나고자 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열번째로는 개인주의 사회의 전형인 것으로 간주되는 미국이 탈중심화된 자발적 사회성과 미국식 자유주의를 발전시키고 탄탄한 사회적 연대를 일구어내는 고신뢰사회가 된 데에는 유럽의 어떤 나라와도 다른 종교적 전통을 지닌데 힘입은 바가 크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그러나 미국 신교의 최후의 유산은 안정된 권위나 사회적 여론을 받아들일 수 없는 개인주의적인 정신적 기질이 될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현대세계에서 거의 모든 경제활동은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사회적 협동을 필요로 하는 조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재산권, 계약, 상법 등은 시장지향적인 현대 경제체제를 이룩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제도이지만, 이런 제도가 '사회적 자본'과 '신뢰'로 보완된다면 경제활동 비용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다. 한편 신뢰는 공유되는 도덕규범이나 가치를 지닌, 그 전부터 있어 온 공동체의 산물이다. ...... 이런 공동체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합리적 선택의 산물이 아니다.  필자는 지난 번 책『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에서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동기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실제로는 합리적인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인정받으려는 욕망의 구체화임을 다소 장황하게 주장한 바 있다. ...... 경제생활이 가능한 한 최상의 물질적인 풍요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승인과 인정을 얻기 위해서 추구되는 것이라면,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상호 의존성은 더욱 명백해진다. ...... 경제학자 알베르트 히르쉬만은 근대 부르주아의 등장을 귀족사회의 특징인 명예에 대한 '열정'을 신흥 부르주아지의 특징인 물질적인 '이해관계'로 대치시킨 '윤리적 혁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상 이런 대체는 최초의 자유주의적 정치이론가 토마스 홉스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홉스가 보기에 시민사회란 종교적인 열정에서든 귀족적인 허영심에서든 간에 합리적인 부의 축적에 명예에 대한 욕망을 의식적으로 종속시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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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기업의 조건
라인하르트 K. 슈프렝어 지음, 배진아 옮김 / 더난출판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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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책의 제목이 주는 거창함과 책의 앞부분에 놓인 추천사(이 책은 '신뢰'가 기업 경영을 위한 핵심 자산이자,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유용한 도구인지를 밝힌 최초의 책이다....) 때문에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읽었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신뢰가 경제적 성공을 위한 유일한 해법'이며 '경영의 도구로서의 신뢰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추천사 내용의 핵심 부분(추상적이고 모호한 관점이 아닌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신뢰의 개념과 의미를 밝혀내며, 신뢰를 구축하고 강화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에 대해서는 뭔가 체계적 논증이 다소 부족한듯한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는 성공적인 경영을 위한 중요한 요소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감하며, 신뢰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제시하고 있는 부분은 이 책의 효용을 높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신뢰는 그 자체로서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신뢰란 어떤 시대에나 늘 필요로 하는 것이겠지만, 신뢰는 본질적으로 공동체 혹은 사람과의 관계속에서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고, 신뢰가 기능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서 '주체들간의 상호작용'들을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는 '신뢰는 선한 것이다.'라는 명제에 데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것이 오히려 '신뢰에 대한 결정적인 오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비도덕적인 신뢰관계도 있는 것이며 신뢰가 악용되거나 그럴듯하게 포장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부터 넓게는 국가라는 조직에 이르기까지 신뢰는 늘상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가치를 창출해내는 유용한 '도구'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에 빗대어 보자면, 신뢰 또한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날이 갈수록 우리를 둘러싼 경제 환경 가운데 기업의 존재 만큼이나 그 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시기에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기업이라는 조직속에서 어떤 경제적 메커니즘을 가지는지에 대해, 또한 무엇이든지 측정하고 또한 축적하고 싶은 인간 본성의 욕구에 따라 신뢰라는 무형의 요소를 기업 경영에서 어떻게 '측정'하고 '구축 또는 강화'하며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슈프렝어가 제시한 해답도 읽어볼만 하다. 이 책은 경영의 유용한 도구를 찾으려는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필요하겠지만 '기업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이윤을 창출하는 경제적 요소'로서의 '신뢰'에 대해 궁금해했던 나같은 사람들에게도 분명 도움이 되는 책이다.

펩시사의 회장인 크레이그 웨더는 "사람들은 실수를 너그럽게 보아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들의 신뢰를 망가뜨린다면 그들로부터 신뢰를 다시 얻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뢰를 가장 귀중한 재산으로 여겨야 하는 이유다."라고 말한 바 있다. 노르만 슈바르츠코프 장군은 이에 대해 더욱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지휘란 전략과 신뢰를 견고하게 혼합시켜 놓은 것이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한다면 전략을 포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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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지배
피터 L. 번스타인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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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늘날 인류 역사의 발전 단계에서 지배적 이념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자본주의에 있어서 그 근원적 매개라고 할 만한 '돈'에 관한 책이다. 단지, 돈이라는 다소 저속한 표현 대신에 '황금'이라는 찬란한 빛을 발하는 금속을 빌어 썼을 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이 단순히 인간의 황금에 대한 탐욕의 역사에만 촛점을 맞춰 쓴 것으로 속단할 필요까지는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은 화학기호 AU(빛나는 새벽Aurora에서 유래)로 채워진 금송아지를 만들어 저주받은 유대인들의 얘기로부터 시작하여, 목구멍에 끓는 황금을 부어 살해당한 크라수스, 미다스의 손, 미 골드러시에 참여한 10만명중 400명만 부자가 된 얘기 등으로 이어지면서, 책의 중반부터는 금본위제에 이르기 위한 멀고도 험난한 여정과 브레튼 우즈 체제의 해체에 이르기까지의 국제금융시스템과 통화제도에 대해서도 아낌없이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달러가 세계의 중심통화가 된 오늘날에 이르러서, 과연 달러 또한 과거 금본위제 시절의 황금이나 다름없이 흔들리는 위상을 예고하고 있지나 않은지에 대한 물음까지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물질문명의 핵심요소 중 하나인 돈(황금)과 그 돈의 흐름을 다루는 금융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여길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인류 역사의 중대한 시기마다 문제의 핵심으로 등장하는 황금을 통해 거대한 스케일로 다룬 인류경제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또한 번스타인의 저서인《리스크》와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흥미롭다. 그 이유는 황금이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흥미로운 얘기거리를 만들어 왔으며, 황금을 둘러싼 얘기 하나 하나마다 널리 알려진 역사적 일화의 다른 일면까지 세세하게 파헤쳐 놓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얘기는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 왕 전설로부터 시작해 로마시대, 중세 흑사병의 전염과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인한 대변동 등을 포함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살펴보면 이 책의 밑바탕에 깔린 저자의 인식에는 항상 인간의 의지와 인간 능력의 한계에 대한 관점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한 점은 이 책의 원제목 아래에 '망상의 역사'(The History of an Obsession)라는 흥미로운 부제가 붙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수많은 인용서적과 논문 리스트를 보면 학술서 같은 느낌도 없지 않으나, 주제는 오히려 '황금과 인간 이야기'에 가까워지는 묘한 매력을 던져주기도 한다.

반짝이는 것 외에는 아무런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은 황금이 인류경제의 중심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했던 까닭은 다름 아닌 인간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인간은 황금이 가진 능력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그것에 부여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있어 돈은 수단에 불과할 뿐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보다 근원적이며 교훈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책 또한 번스타인의 방대한 참조 자료와 매혹적인 이야기들을 빛나는 금실로 얼기 설기 엮어 놓아 시종일관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임에 틀림없다.
경제학자의 열정, 역사학자의 눈 그리고 사회학자의 분석력을 겸비한 번스타인은 늘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책 속에서>
약 100년 전에 존 러스킨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어떤 남자가 그의 전 재산인 금화가 가득찬 커다란 가방을 들고 배를 탔다. 그런데 항해가 시작된 지 며칠 후 엄청난 폭풍이 몰려와서 배를 버리고 물속으로 뛰어들라는 경고가 터져나왔다. 그 남자는 가방을 허리에 동여매고 갑판으로 올라가 바다로 뛰어들었고 그의 몸은 곧장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아버렸다. 여기서 러스킨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자, 그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면 그가 금을 소유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금이 그를 소유한 것일까?"

그러고 보면 앞서 제기된 러스킨의 질문에 대한 번스타인의 답은 분명해진다. 러스킨의 주인공 자신이 금을 소유했던 게 아니라 금이 그를 소유했었다는 것 아니겠는가. 하여 번스타인의 결론은 이렇다. “어쩌면 우리 이야기에서 가장 현명한 주인공들은 그들의 생명을 이어줄 소중한 소금을 침묵 속에서 금과 교환했던 젠느와 팀북투의 소박한 원주민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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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 리스크 관리의 놀라운 이야기
피터 L.번스타인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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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리스크 통제권을 신의 영역으로부터 뺏어낸 영웅들의 이야기이며, 아울러 리스크 관리 능력을 신의 능력같이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싶어하는 우리들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 속에는 숫자와 확률에 얽힌 온갖 흥미로운 얘기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근·현대 이론들인 효율적 포트폴리오 이론, 옵션가격 결정 모형, 그리고 게임 이론과 파생상품에 이르기 까지 거의 다루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책 읽는 재미가 가득하다.

인간이 아라비아 숫자를 발견하기까지 고생했던 이야기, 0을 발견한 얘기, 오늘날 알고리즘이라는 말의 유래를 만들어 낸 아랍의 수학자 알 코와리즈미(빨리 발음해 보라)의 얘기도 흥미롭다.

한 때 수학에 무척 흥미를 지녔던 시절이 있었기에, 피타고라스의 정리, 알렉산드리아의 학자 유클리드의 기하학, 복식부기를 발견한 루카 파치올리, 서양의 숫자 이야기의 시작을 담당한 피보나치(황금비율을 발견했으며 이 비율은 신용카드의 모양은 물론 뉴엔 본부 빌딩에도 적용된 비율이다), 독일 수학자 라이프니츠, 스위스의 수학자 야코프 베르누이, 종형 곡선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정규분포구조를 제시한 아브라함 드 무아브르, 찰스 다윈의 친조카이자 수학자였으며「평균으로의 회귀(regression to the mean)」를 발견한 프랜시스 골턴, 그리고 프랑스의 그 유명한 삼총사인 블레즈 파스칼과 피에르 드 페르마, 슈발리에 드 메레의 이야기도 온통 호기심을 자극하는 얘기들이었다.

이들 얘기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얘기는,「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수학자가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나폴레옹이 자신의 군대에게 피해가도록 명령했다는 천재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의 얘기가 아니다. 당사자는 찰스 다윈의 사촌이며 아마추어 발명가이자 사회적 속물에 가까웠던 골턴이다. 측정은 골턴의 취미였으며 취미라기보다는 집착에 가까웠다.『가능한 것은 무엇이건 측정하라.』그가 늘상 되뇌던 말이다.

확률의 발견과 도박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블레즈 파스칼과 피에르 드 페르마로 하여금 혁명적인 확률 이론을 창출하도록 한 것도 다름아닌, 운에 맡기고 하는 승부, 즉 도박이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본질과 미래의 전망에 대한 그 무슨 심오한 의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이 대목에서는 찰리 멍거가 이들 수학자들의 사고를 닮으려고 애쓰는 이유도 짚어볼 만 하다.

   우리는 페르마(Fermat)와 파스칼(Pascal)처럼 사고하려 노력한다.
   설령 그들이 현대 금융이론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 찰리 멍거


시간은 철회할 수 없는 결정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완전한 정보를 토대로 철회할 수 없는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러한 과제에 당면하여, 이 책은 분명 독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기에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리스크를 정복하려는 현대인의 프로메테우스적 시도를 매력적이고 이례적인 방식으로 조망하고 있기 때문이며, 쉽게 읽히면서도 끊임없이 인간의 대응영역과 능력에 대해 무엇인가를 사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확률은, 확률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합리적」이라는 판단이 나올 때만 중요성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확률에 대한 의존은 확률을 어느 정도 고려해서「행동해야 한다」는 판단이 설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확률이 우리에게「인생의 지표」가 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존 로크(Tohn Locke)가 말했듯이, 신은「우리의 관심사 대부분에」단지 미광(微光)만을 부여하셨다. 내가 여기에 부연해 덧붙인다면,「신은 우리에게 확률이라는 미광만을 부여 하셨다」라고 하겠다. 이는 가정하건대, 신이 우리를 놓고 즐거워하셨던「평범(Mediocrity)」과「수습기간(Probationership)」의 상태에 걸맞은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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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재 2004-04-15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렌님의 강력추천에 저도 '리스크'를 구입했습니다~^^

oren 2004-04-17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재님도 이 책을 구입하셨군요..
재미있게 읽으시길 바라며 또한 후회없는 선택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2theleft 2004-06-01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 책은 너무나 감동입니다! 수학, 경제학, 통계학의 깊은 역사....... 초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