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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개항부터 해방 후까지 역사를 응시한 결정적 그림으로, 마침내 우리 근대를 만나다!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1년 6월
평점 :
요즘 아이들은 근대와 현대에 대해서도 바로 보기를 하여 배운다.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부끄러운 과거인지라 배웠는지 안배웠는지도 모르게 넘어가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어정쩡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에게 설명해주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마주하지 못하는 교육을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역사는 그 어느 때이건 마주 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근대와 현대를 알게 되면서 깨닫게 되었다. 물론 가슴아프고 없었으면 더 좋았을 과거이다. 하지만 이렇게 잘 견뎌내고 있지 않은가, 지금 이 퇴행하는 순간에도 말이다.
표지의 소녀는 대한제국 시절 우리나라를 즐겨 그리던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덕혜옹주의 벗 민용아의 모습이다. 한복을 곱게 입은 조선의 소녀이건만 우리의 그림과는 조금 색다르게 느껴진다. 당시 서양의 화가들은 이렇게 우리 나라의 풍경, 생활 모습, 사람을 그리곤 했지만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탓인지 굉장히 낯설다. 그래서 왠지 더 슬퍼보이기도 한 것이 그래도 우리를 그린 서양의 화가들은 우리의 모습을 안쓰럽고 다정한 시선으로 보았나보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위안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당시 우리 나라의 모습을 그린 대표적 외국 화가로 위에서 말한 엘리자베스 키스를 중심으로 휴버트 보스, 윌리 세일러, 릴리언 밀러를 꼽고 그들의 작품을 통해 당시 우리 사회의 특징과 사건들을 설명하였다.
고종 황제가 초상화를 청하게 된 계기가 된 휴버트 보스의 그림 속 주인공인 민상호는 휴버트 보스가 "민상호의 얼굴 생김이 한국 민족을 대표하는 데 부족함이 없고, 학식이 높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그렸다."라고 하여 그렸으나 결국 친일에 앞장서게 되었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가장 한국적인 인물로 보여진 그가 택한 삶이 그랬다는 것이 씁쓸함이 많이 남는다.
릴리언 밀러의 작품으로는 <한강의 황포돛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 나라의 배 모양이 저러했다는 사실을 서양 화가의 그림을 통해 낯설게 보다 보니 더 잘 보게 되었다. 이런 누렇고 서정적인 배만 보던 사람들이 이양선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놀라움, 두려움은 어떠했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해본다. 늘 그렇듯 우리의 뜻과는 무관하게 다른 나라의 힘이 들어오는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개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다음에는 우리 나라 서양 화가들의 작품도 당시의 모습을 나타내는 작품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솔직히 일제의 탄압 속에 살아가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감히 나는 가늠하지 못하겠다.
외국인 의사가 기획하고 외국인 화가가 그린 크리스마스 씰 조차도 그림 속에 그려진 산이 높다는 이유로, 일본의 연호가 아닌 서기 연대를 썼다는 이유로 검열당한 사건을 보더라도 참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일로 많은 사람들을 억눌렀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 그 시기를 견뎌낸 모든 분들은 그 이유만으로 충분히 존경스럽다. 감사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우리는 당시를 부끄러운 역사라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저 회피한 채 그 시간을 견뎌온 사람들에게 고마움은 커녕 제대로 된 보상조차 해 주지 못하고 있다. 그건 불운의 시대를 요행히 피한 사람들로서 취해야 할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좀 서먹서먹했던 시대와 마주하게 된 점이 가장 기쁘다. 가장 힘들었던 시대조차 웃을 일도 있고 행복한 일도 있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알게된 것도 개인적으로는 의미있다. 작가는 엘리자베스키스의 그림을 많이 제시했는데 이 책 말고도 그녀의 그림을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책이 몇 권 더 있다. 전시회도 했다는데 난 왜 까맣게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