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개항부터 해방 후까지 역사를 응시한 결정적 그림으로, 마침내 우리 근대를 만나다!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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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근대와 현대에 대해서도 바로 보기를 하여 배운다.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부끄러운 과거인지라 배웠는지 안배웠는지도 모르게 넘어가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어정쩡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에게 설명해주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마주하지 못하는 교육을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역사는 그 어느 때이건 마주 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근대와 현대를 알게 되면서 깨닫게 되었다. 물론 가슴아프고 없었으면 더 좋았을 과거이다. 하지만 이렇게 잘 견뎌내고 있지 않은가, 지금 이 퇴행하는 순간에도 말이다. 

표지의 소녀는 대한제국 시절 우리나라를 즐겨 그리던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덕혜옹주의 벗 민용아의 모습이다. 한복을 곱게 입은 조선의 소녀이건만 우리의 그림과는 조금 색다르게 느껴진다. 당시 서양의 화가들은 이렇게 우리 나라의 풍경, 생활 모습, 사람을 그리곤 했지만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탓인지 굉장히 낯설다. 그래서 왠지 더 슬퍼보이기도 한 것이 그래도 우리를 그린 서양의 화가들은 우리의 모습을 안쓰럽고 다정한 시선으로 보았나보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위안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당시 우리 나라의 모습을 그린 대표적 외국 화가로 위에서 말한 엘리자베스 키스를 중심으로 휴버트 보스, 윌리 세일러, 릴리언 밀러를 꼽고 그들의 작품을 통해 당시 우리 사회의 특징과 사건들을 설명하였다. 

   

고종 황제가 초상화를 청하게 된 계기가 된 휴버트 보스의 그림 속 주인공인 민상호는 휴버트 보스가 "민상호의 얼굴 생김이 한국 민족을 대표하는 데 부족함이 없고, 학식이 높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그렸다."라고 하여 그렸으나 결국 친일에 앞장서게 되었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가장 한국적인 인물로 보여진 그가 택한 삶이 그랬다는 것이 씁쓸함이 많이 남는다. 



   

  릴리언 밀러의 작품으로는 <한강의 황포돛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 나라의 배 모양이 저러했다는 사실을 서양 화가의 그림을 통해 낯설게 보다 보니 더 잘 보게 되었다. 이런 누렇고 서정적인 배만 보던 사람들이 이양선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놀라움, 두려움은 어떠했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해본다.  늘 그렇듯 우리의 뜻과는 무관하게 다른 나라의 힘이 들어오는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개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다음에는 우리 나라 서양 화가들의 작품도 당시의 모습을 나타내는 작품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솔직히 일제의 탄압 속에 살아가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감히 나는 가늠하지 못하겠다. 
   외국인 의사가 기획하고 외국인 화가가 그린 크리스마스 씰 조차도 그림 속에 그려진 산이 높다는 이유로, 일본의 연호가 아닌 서기 연대를 썼다는 이유로 검열당한 사건을 보더라도 참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일로 많은 사람들을 억눌렀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 그 시기를 견뎌낸 모든 분들은 그 이유만으로 충분히 존경스럽다. 감사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우리는 당시를 부끄러운 역사라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저 회피한 채 그 시간을 견뎌온 사람들에게 고마움은 커녕 제대로 된 보상조차 해 주지 못하고 있다. 그건 불운의 시대를 요행히 피한 사람들로서 취해야 할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좀 서먹서먹했던 시대와 마주하게 된 점이 가장 기쁘다. 가장 힘들었던 시대조차 웃을 일도 있고 행복한 일도 있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알게된 것도 개인적으로는 의미있다. 작가는 엘리자베스키스의 그림을 많이 제시했는데 이 책 말고도 그녀의 그림을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책이 몇 권 더 있다. 전시회도 했다는데 난 왜 까맣게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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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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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보다도 이름을 먼저 들었다. 사실, 그랬을 땐 거부감이 먼저 들곤한다. 
어쩌다가 그의 글을 만났다. 한참 후의 일이었다. 까닭없는 거부감을 가진 스스로에게 피식 웃었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 그를 문학계의 아이돌로 칭하곤 '사려깊은 연인같'다고 표현한 글을 보았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아이돌은 모르겠는데 그의 글은 정녕 '사려 깊은 연인같'다는 그 말 밖에는 달리 더 좋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공동체의식 뭐 그런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게 느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안겨준 책의 제목이 별 100개라고 생각한다. '느낌의 공동체'

 2006년부터 2009년까지의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그의 말처럼 평론집이 아니라 산문집이라니 그렇게 믿기로 하지만 전해받은 느낌은 평론에 버금간다. 사실 평론을 읽다보면 감탄도 하고 공감도 하고 비판도 하고 그와 더불어 머리 깨지는 과정이 행해지지만, 이 책은 앞의 것들은 다 하지만 머리는 다행히 깨지지 않으니 난 이런 류의 책이 더 좋다 개인적으로는.

 책 읽고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참으로 많은 글을 쓰시었다는 생각에 감탄을 안할 수 없다. 아, 부럽다. 나도 읽는 책마다 쓰긴 쓴다만 읽는 양이 그에 비해 한참 모자르니 뭐 쓰는 양이 모자라는 것이야 부러워할 거리도 안되지만 쓰여진 글들이 어쩜 이리 부드러우니, 그 점만은 부럽고 또 부러운 노릇이다. 그는 부드러운 듯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묵직한 검을 쓰는 이 시대가 원하는 검객은 아닐까.

'느낌의 공동체'는 마치 나를 위해 쓴 책인양 싶었다. 좋아하는 시인들을 원한도 신파도 없이 안내해주시더니, 아름다운 시들을 또 얼마나 많이도 알려주시는지, 게다기 시 이야기가 끝나고 소설인가보다 싶으면 마무리는 다시 시를 잊지 않도록 불러주시니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다. 사실 이렇게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시들을 다정스레 불러서 느낌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준 책들이 언제 있었던가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이 책은 특별했다.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야말로 내게도 시인에게도 시들에게도 '사려깊은 연인'인 채로 그는 존재했다. 

 이 책을 통해 좋아했던 시인은 더 좋아하게 되었고, 잘 알지 못했던 시인의 시집과 시에는 동그라미와 밑줄의 잔상이 수도 없이 남겨져 있으며, 솔직히 좋아하지 않았던 시인의 시에도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사실, 시인이란 모두 고맙고도 아름다운 사람들이므로. 참고로, 시 외에 소설 몇 편에도 동그라미와 밑줄은 그려져 있지만 어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사이. 작가의 말처럼 미련한 이 독자가 잠이 들기 전에 얼른 시와 소설의 춤을 보아야겠다. 신형철이라는 사람의 춤은 실컷 보고 웃고 느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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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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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답게 글맛을 보이며 써 내려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첫 번째 시리즈 작이다. 5년 전쯤 읽었던 기억이 나지만 다시 읽어도 늘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 신화나 전설이 아닐까, 특히 신화의 신들의 이름과 계보는 여러 번 읽지 않고서는 며칠 지나고 나면 금세 가물가물 하는 것이 현실이니까. 어쩌면 신화 속에 나오는 망각의 샘은 인간의 머릿 속 리바디아에 살고 있는 건 아닐런지, 인간의 머릿 속이 하나의 올림푸스 천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12가지 열쇠가 무엇이냐고 읽고 난 사람들은 질문할 지도 모른다. 분명 12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1권에서는 작가가 말하는 열쇠가 다 들어있을테지만 그것을 파악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므로, 이어 말하는 열쇠들은 다분히 개인적 견해임을 알아두시길.

 1. 신발

  신발에 관한 이야기는 흔하게 신데렐라에서부터 콩쥐팥쥐 그리고 테세우스까지 우리는 많은 이야기 속에서 들어온다. 역사라는 이름을 족적이라 부를 수 있다면, 잃어버린 한 짝의 신발을 찾는 과정을 우리는 역사(뿌리)를 찾는 과정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이야기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에서 시작되므로.

 2. 혼돈과 질서

 난세영웅이라고 했던가. 무질서한 세계에는 그를 정리할 1인이 필요한 법이다. 최초의 신들의 세계에서는 그 역할이 제우스의 몫이고 그로 인해 올림푸스 12신이 정비된다. 혼돈을 정리하며 나선 영웅신 제우스, 그가 만든 세계에서 펼쳐지는 또다른 혼돈과 질서의 이야기. 그것이 바로 신화일지니.

3.  사랑

 못말리는 바람둥이 제우스는 감히 결혼의 신인 헤라 여신을 두고도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채운다. 올림푸스의 대신이 그러할진대 세상사 사랑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할 자 누구란 말인가. 비록 그 사랑으로 인해 상처를 입고 손가락질 당한 들 신들의 세상에서는 크게 개념치 않을 일일 터. 신화 속에서도 헤파이스토스를 두고 아레스나 헤르메스와 정을 통한 아프로디테의 음탕함을 지적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있겠어?'라고 생각하고, 프쉬케의 경솔함을 탓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런 열렬한 사랑을 꿈꾸고 행하라.'고 말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 진심으로 사랑하라, 그러면 다 된다 그게 무엇이든.

4. 태양

이 책에서는 아폴론 이전의 태양신이었던 헬리오스와 파에톤 부자의 이야기만 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본질적으로는 태양마차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루의 절반을 태양마차를 모는 것은 태양신만이 할 수 있는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임을, 그리하여 인간은 비록 그가 태양신의 아들일지라도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태양(신)에 대한 경외감을 품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5. 나무

태양과 마찬가지로 나무 역시 자연의 이름으로써 더욱이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과 곡식의 여신 데메테르가 보살피는 나무에 대한 경외감 역시 신화를 푸는 열쇠가 되고 있다. 그리스인들의 승리의 전유물로 '월계관'을 씌우는 것이 큰 상징이듯. 하지만 태양과 다른 점은 나무는 사랑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것. 

6. 저승

신화의 세계는 하늘의 세계 뿐만 아니라 바다와 땅과 그 아래의 세계를 포함한다. 따라서 저승의 신인 '하데스'와 그를 만나러 가는 세 개의 강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책에서는 페르세포네를 아내로 맞이한 하데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오르페우스와 헤라클래스의 이야기를 첨가하여 저승의 영역을 중요시 다루며 당시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이 생각보다 입체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7. 노래(유흥, 희로애락)

자연계와 인간계를 굳이 나누자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은 어느 세계의 인물들일까. 이들 자연계에 속한 자연물이기도 하고 인간의 품성을 가진 자들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이 그들이 만들어낸 창조물이기도 하겠지만 신화를 읽다보면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인간과 자연의 융화에 대한 어떤 의도된 목적의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희로애락을 느낌에 있어 노래란 빠질 수 없는 것. 오르페우스란 신의 이름이기에 앞서 노래나 사랑의 또다른 이름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가수도 자연의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는 법.

8. 바다

바다의 신이 포세이돈이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어느 한 곳 빠짐없이 12신을 골고루 배치한 꼼꼼함이란. 바다라는 것은 가만히 두면 별 탈이 없으나 노하게 하면 안된다는 사실, 바다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미약한 존재라는 사실 역시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신들을 노하게 하면 파멸할 것이요, 그들을 언제나 존경하고 두려워해야 함을 바다를 통해 경고한다.

9. 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의 조각상에는 뱀들이 함께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뱀이라는 존재는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법인지라 그들을 대할 때 인간은 조심스럽게 마련이다. 하지만 신들의 경우 그들을 통해 마법같은 일을 벌이기도 한다. 그것은 뱀이라고 해서 죽이지 않고 다른 생물과 같이 대하는 그들의 태도 덕분일 것이다.

10. 술

노래와 마찬가지로 술은 누군가를 홀릴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디오니소스가 주신으로서 인간들에게 경계하는 것은 술을 먹고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먹고 취하여 빠져나올 수 있다면 마시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죽음의 귀로에서 제우스의 허벅다리에서 생을 다시 얻은 디오니소스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11. 뿔

뿔이라는 것은 일종의 저장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먹을 것과 필요한 것, 식물과 동물의 번식에 관한 풍요의 상징물. 그리고 그것은 모두 신(자연)들의 몫.

 12. 기억

누구나 잊기에 살아갈 수 있는 법이다. 이것은 신들이 애시당초 그렇게 인간을 만들어 놓았기에 가능 한 것이기도 하다. 저승에 도달하기 전 이승을 잊는 것은 망각의 강과 망각의 걸상이 하는 일이 듯 세상 모든 일은 잊음으로서 기쁨이 올 수 도 있지 않겠는가. 기억하는 것은 므네모쉬네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저 잊어가보자.

재밌게 읽었지만 아직도 신화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하여 작자의 의도를 알지 못한 까닭에 횡설수설이다. 그런 들 어떠랴, 내일이면 잊으리. 
 

* 참고 : 올림푸스 12신

1. 제우스 : 최고의 신. 신들의 지배자
2. 헤라 : 제우스의 처, 결혼과 가정의 수호신. 신중의 여왕
3. 포세이돈 : 제우스의 형, 바다의 지배자
4. 데메테르 : 대지의 여신, 곡물과 농업기술 관장
5. 아테나 : 전쟁, 지혜와 각종 기예의 신
6. 아폴론 : 궁술과 의술, 예언, 태양의 신
7. 아르테미스 : 아폴론의 쌍둥이 여동생. 들짐승, 가축의 보호신, 달과 수렵의 여신
8. 아레스 : 전쟁의 신
9. 헤파이스토스 : 불과 대장장이의 신
10. 헤르메스 : 상업과 통신의 신이며 죽은 자를 안내하고 도둑, 거짓말의 신.
11. 하데스(하이데스) :  죽음의 나라 지배자. 저승, 땅속의 신
12. 헤스티아 : 불의 여신. /아프로디테 : 사랑과 풍요와 미의 여신 / 디오니소스 : 포도와 술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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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대한민국 30대를 위한 심리치유 카페 서른 살 심리학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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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처음 표지를 보고 흠칫 놀랐다. 그 언젠가 꿈을 꾸웠던 나의 모습이 있었다. 그 땐 호퍼의 그림이 떠올라 기억에 지금껏 남아 있던 그 꿈. 이 책을 만나려고 그랬나 보다.

  한 십년 전 쯤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다. 서른이 되면 그 때의 힘든 일들이 모두 해결되어 편안해질거라고 막연히 기대했다. 서른은 마치 전지전능한 나이인 것으로 믿었던 모양이다. 순진하고 어리석게도.

  작가는 서른 살이라는 나이를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한 과도기로 본다. 그래서 방황도 하고, 자신을 감추기도 하고, 도망도 치는 사춘기와 비슷하게 보는 것 같다. 그 첫 번째로 꺼내는 이야기가 '쿨함'이다. 서른 즈음의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쿨함을 내세운다. 시련을 당해도 쿨하고, 살짝 서운해도 쿨하게 대처한다만 그 모습에 작가는 연민을 내세우는 건지도 모르겠다. 부정할 수 없었다. 다양한 감정을 cool로 표현하는 몸부림이 스스로도 안쓰러웠다.

  여타의 감정적인 것 외에도 이 즈음에 겪는 사회적 관계의 문제나 업무의 문제, 가족 관계, 사랑 등에 대해서도 쉽게 풀어낸다.(영화나 소설을 예로 드는데 그 예로 든 컨텐츠가 젊은 감각의 것이라 사실 작가가 젊은 줄 알았다가 혼자서 당황했다.)

  결국, 서른이라는 나이는 꿈을 꾸어야하는 나이지만 그 꿈은 현실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 너무 조급해하지도 너무 도망가지도 말아야 하는 나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하다.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고 그저 편안할 줄 알았던 내 나이 서른은 여전히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하지만 서른이 되어 보니 지금의 고민은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해결을 해야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러하기에 지금 난 그 때와 달리 나이 먹는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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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미술관 - 그림, 한눈에 역사를 통찰하다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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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숨은 이야기 찾기

 

'글머리에'에 쓴 작가의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서양의 그림과 달리 우리 나라의 옛그림엔 스펙타클한 '역사화'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사실. 우리에게도 신화가 있고, 영웅이 있고, 사건이 많았을진대 얼핏 떠올려도 정조대왕의 행차도를 비롯한 도화원의 그림 외에는 떠오르는 역사화가 없다.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의 풍속화가 그것에 조금 해당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발달'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므로 역사화로서 우리 옛그림을 분류하고 연구할 필요성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책은 역사화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 제일 처음 지배자에 관한 역사화를 다루고 '산은 높고 골은 깊다'라고 제목을 붙인 장에서는 알렉산드로스, 아우구스투스, 루이 14세, 나폴레옹, 이반 뇌제, 스탈린의 사상과 생을 담은 그림들을 보여준다. 태양왕이라는 별칭이 붙은 루이 14세의 상징은 화가들의 그림에서였을 뿐 실제 그는 타협왕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자신의 지배력을 위해 화가들을 후원하여 자신을 태양왕으로 보이게 했다는 점에서 서양의 역사화가 발달할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사관이나 화원들은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을 가장 중시했기 때문이다. 옳고 그르고의 여부를 떠나 루이 14세는 표면적으로 절대 왕정의 판타지를 이루었고, 나폴레옹은 정치에 그림을 더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고 이후의 서양 지배자들 역시 자신의 권력을 강화 혹은 미화하기 위하여 화가의 붓을 이용했고 화가들은 기꺼이 그것에 응했다.

 

두 번째 장에서는 여성에 관한 역사화를 다루었다. 역사 속의 여성이라면 첫 번째로 꼽힐 클레오파트라를 비롯하여 퐁파두르 부인, 오달리스크, 매춘 여성까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녀들을 그린 그림을 볼 때 외면적 아름다움이나 관능미, 교태 등을 중심으로 감상한 후 지나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작가의 설명을 겸해 듣다 보면 당시의 여성으로서 각자의 지위에서 충실히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살아야했던 모습이 다가오게 된다. 마지막까지 사명감을 잊지 않음을 보여주는 '클레오파트라의 죽음'과 어떻게든 자신을 팔아야했던 여인을 그린 '노예시장' 처럼 말이다. 작가의 말을 잠시 빌리자면, '시대의 자식인 그림은 이렇게 그 시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203쪽)'

 

세 번째 장은 전쟁화이다. 장의 이름처럼 '역사는 피를 먹고 자란다.'. 우리 나라도 전쟁이라면 빠지지 않는 나라인데 그런 기록화들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오래 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본 몇 점 안되는 그림들이 아주 어렴풋이 떠오르곤 하지만 무슨 전쟁인지, 누가 그렸는지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서양의 전쟁화는 화가들의 철학이 묻어나는 그림들이 많았다. 풍속화가로 알려진 피터르 브뤼헐(피터 브뤼겔)의 '죽음의 승리'를 보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오직 죽음 뿐임을 우리는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때로는 강력하게 때로는 냉철하게 전쟁과 혁명을 바라보는 시선이 유독 전쟁을 그린 역사화에서 많이 느껴졌다. 사는 게 다 뭐란 말인가, 이렇게 한 번 휩쓸고 가버리면 아등바등한 행동들이 모두 의미없어지는 것을 말이다.

 

마지막 장은 '정신의 역사, 역사의 정신'이라는 내용으로 역사화의 주제가 된 인물들의 카리스마와 유럽의 종교와 철학,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네이처리즘을 다룬다. 그 가운데 당대 역사화가로서 이름을 높인 다비드의 그림만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마라의 죽음'과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그린 다비드는 격동의 시대를 산 만큼 그가 그린 그림도 역사화의 범주 안에서도 다양하다. 신들의 모습부터 당시 가장 핫이슈가 된 내용까지. 개인적으로는 그의 그림 중에 새로 알게 된 '사비니의 여인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로마인과 사비니인들과의 전투에서 로마로 잡혀간 사비니 여인들이 중재하는 모습, 그 둘의 피가 섞인 아기들을 데리고 중재하는 모습은 울컥할 정도로 마음이 아파왔다.

 

그림은 그런가 보다. 역사란 그런가보다. 그린 사람도 보는 사람도, 살아간 사람도 지나간 사람도 모두 울컥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개인적으로 서양의 역사화에 대해 깊은 호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들의 역사였고, 그들만 아는 사람들이었고, 그들만 아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그들의 역사를 나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그들만 알던 사람을 나도 알고 있게 되고, 그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다. 그림의 힘이다. 글의 힘이기도 하다. 찬찬히 숨은 이야기를 찾아보고 싶어진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을 읽다가 글에서 설명하는 그림이 글 옆면이 아니라 뒷면에 나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아 몰입이 조금 번거로웠다. 이 책의 한국판도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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